추리소설갤에서 현재는 과학수사가 너무 발달해서 추리소설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글을 몇 번 봤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2020년 11월에 발표한 블랙 쇼맨과 이름없는 마을의 살인은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이다.

배경은 별로 볼 것도 없는 시골마을인데 그나마 약간의 관광지와 온천이 있어서 관광이 조금 되는 지방이다.

근데 코로나로 그나마 관광도 무너진다. 이 와중에 존경받던 은퇴한 중학교 교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도쿄에서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던 교사의 딸 마요와 교사의 동생인 다케시가 사건을 추적한다.

딸 마요는 그냥 조연에 머물고 동생 다케시가 뛰어난 추리력으로 이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다케시는 전직 마술사로 현재는 바를 운영하고 있는데 마술솜씨 못지 않게 인간을 관찰하는데도 뛰어나다.

하지만 수사권이 없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과학수사의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기 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주인공을 일반인으로 설정해서 현대 과학수사를 마치 없는 듯이 가리는 묘기를 부린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서문도 아니고 면지에다가 간략하게 이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을 써놓았다.

새로운 수수께끼 풀이방식을 도입해서 작가 수명이 조금 늘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마다 면지글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는데 나는 과학수사를 피해가는데 성공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건 그렇다고 치더라도 소설에서 마술사 다케시가 보여주는 추리력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치밀한 증거조사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추리가 아니라 그냥 뇌피셜로 추리하는데 미흡하다고 느낀다.

그래도 이미 무르익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이 있기 때문에 소설은 당연히 술술 읽힌다.

읽는 동안에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나니까 그다지 높은 평점을 줄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작품 안에 만화 시놉시스가 나오는데 그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 시놉시스로 작품을 하나 써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