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악마와 암흑의 바다(The Devil and the dark water). 암흑의 바다는 다크 워터를 내가 맘대로 번역한 게 아니라 작중 나오는 단어임.

저런 제목으로 나왔으면 절대 안 읽었을 건데 나름 잘 바꾼 것 같다. 

작가는 에블린 하드캐슬의 일곱 번의 죽음을 쓴 사람인데 유치한 제목이라 안 읽었던 소설임. 작가 선생님 제목 짓는 능력이 좀...?

내용은 1600년대에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총독이 암스테르담 갈라고 사르담호에 탔는데 출발 전부터 기괴한 일이 막 벌어지더니 나중에 가니 사람들이 막 죽어나가고 악마가 속삭이고 악마와 계약을 맺고 그런다는 거임. 고딕 호러와 미스터리가 혼합되어 있는 소설이라 보면 됨. 거기에 할리우드 느낌으로 폭탄도 막 터지고 잭 리처 같은 애가 액션 퍼레이드도 펼치면서 600페이지 넘는 내용을 가득 채우는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소설이라 할 수 있음.

재미는 있는데 아 이건 아닌데 싶은 부분이 있는 소설. 특히 서술에 있어서 조금씩 속임수를 넣고 전개에 있어서 타협을 넣는 부분이 대중성을 위해 장점을 살살 갉아먹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꽤 의심스러운 부분을 일부러 대충 다루고 그 대신 집중하지 못하도록 스펙타클을 쑤셔넣는 부분이 과연 이게 좋은 미스터리인가 싶은 마음을 들게 만듬. 고딕 장르의 이단적인 느낌도 너무 강하게 쓰면 안 될 것 같아 적당히 다루면서도 효과는 크길 바라는 안이함이 좀 마음에 걸리기도 함. 암만 배경이 1600년대라고 해도 요즘 시대에 악마숭배 같은 내용 쓰려면 분위기로 제대로 조져야 하는데 그 부분은 많이 아쉽다.

근데 재밌으니 됐다 싶기도 하다. 어차피 내가 역사에 길이 남을 마스터피스를 읽을 생각으로 이 책을 잡은 것도 아닌데 너무 따질 필요는 없지 않나, 읽을 때 재밌었으면 그만이지 싶은 좋게좋게 봐주자의 마음이 드는 건 재밌기 때문임. 600페이지동안 재밌었으면 솔직히 이득이지 않음?

전에 갤에 소개가 한 번 올라왔었음 나도 그때 보고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추붕이들에게 추천하기 미묘한 이유는 위에 다 썼다. 미스터리로 봐도 고딕 호러로 봐도 혼합 장르로 봐도 완성도가 빼어난 부분이 없음. 모난 부분을 깎아 둥글게 만들어 대중성을 추구한 게 눈에 상당히 밟히는 게 아쉬우니 절대 이거 대박임! 하고 추천할 수준은 아니다.

근데 적당히 괜찮은 수준의 재미는 보장하니 적당히 넉넉하게 시간이 남는데 적당히 재밌는 책 좀 읽을까 싶으면 이거만큼 적당한 것도 없다 싶다.

추붕이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글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