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괴>가 '주간문춘 선정 20세기 일본 베스트 미스터리'에서 1위인 이유)

'유괴'라는 소재는 추리소설에서 꽤 흥미롭다. (1) 살인과 달리 유괴는 실시간 타임 어택 사건이기 때문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고 (2) 몸값을 받기 위해서라도 범인은 반드시 한 번 이상 경찰과 접촉해야 하고 (이때 경찰이 실패하는 것은 스포도 아님) (3) 유괴당하는 피해자가 주로 아이처럼 약자이기 때문에 사건 내내 감정적으로 힘들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추리소설인 <64>나 <내가 죽인 소녀>도 모두 '유괴'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대유괴>는 약간 결이 다른 '유괴'다. 표지부터 심상치 않더니 '유괴 사건'이 가지는 심각함 대신 유쾌함이 작품 내내 이어진다.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같이 가볍고, 실소가 넘치고, 어이가 없는 장면이 이어진다. 사건의 마지막에는 추리소설에서 보기 힘든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1978년 작품이기 때문에 핸드폰이나 네비게이션같은 요즘 기기만 있었더라도 쉽게 해결할 문제를 어렵게 꼬아가기는 한다. 또 일본의 지리감이 나에겐 없어서 선뜻 이해 가지 않는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핸드폰이 존재하지 않는 '특수설정'이라고 보면 그냥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가독성도 좋고, 잔인하지도 않고, 유머도 곳곳에 있어서 며칠 만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누구에게나 무리 없이 추천할 만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책이 '주간문춘 선정 20세기 일본 베스트 미스터리'서 1위라고? <화차 (2위)>, <점성술 살인사건(4위)>보다도 순위가 더 높다고? 좀 더 종합적인 리스트같은 2016년 버전 '주간문춘 선정 동서미스터리 100'에서도 역대 7위라고? 이 책을 읽고난 뒤의 진짜 미스터리는 이것이었다.

이것 저것 검색해 보니 한두 가지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기는 하다. 이 책의 저자 덴도 신은 도쿄대를 나온 2차대전 종군기자 출신으로 전쟁 후에는 농민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배경을 보니 작품에도 '선조들이 지켜온 땅과 숲에 대한 애정,' '전쟁따위나 일으켜서 자식을 빼앗아가고, 이제는 땅과 숲마저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가져가는 국가란 존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코미디로 언급되고 넘어가는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미군 등의 묘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생태주의나 반전주의 경향이 일본인에게는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비슷한 경향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처럼 말이다. (그러고보니 작은 체구의 현명한 할머니, 어딘가 모자란 듯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3인조 유괴단, 고지식하지만 츤데레 성격의 형사 등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에서 나올 법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또 하나, 

이 책이 1위에 꼽힌 리스트의 선정 과정을 보니 , 7명의 심사위원이 각자의 베스트 꼽아 중복되는 작품을 골랐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사실... 어느 누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보다는, 모두가 싫어하지 않는 작품이 뽑힐 가능성이 크다. 논쟁적인 작품이 아니라 무난한 책일 가능성이 높다. 한 사람이 10점 만점을 주고 나머지는 0점을 주는 책보단 모든 사람이 7점을 준 책이 결국 총점이 높지 않을까하는 추측이다. 내 느낌에 <대유괴>는 '7의 소설'이다. 이 책에 미친 듯이 열광하는 사람은 없을 수 있지만, 난 이 책이 정말 싫어라고 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리스트 1위'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적당한 좋은 말을 늘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누군가 '이 책보단 다른 책이 더 훌륭해'라고 할 때 딱히 반박할 이유는 못 찾을 것 같다. 

(이 책은 현재 절판이다. 다시 출간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중고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이란 한국 영화도 있다. 몇 가지 설정을 바꿨다는데 영화를 보지 못해 비교는 못하겠다. 좀 더 코미디 장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