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절대 금지!! 반드시 처음부터 읽을 것! 결말 사수!!"라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포일러를 당했다. "~~가 범인이다."라는 댓글을 달았던 그 사람의 목적이 책을 즐기는 것의 방해라면, 실패했다. 등산으로 비유하자면 나는 산 정상의 풍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과정을 즐긴다. 풍경은 사진과 영상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시대다. 소설도 그렇다. 결말을 향해 읽어나가며 작가의 문장과 이야기 설계 과정을 즐긴다. '내가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라면?'하고 상상을 하기도 하고, '내가 작가라면 내용을 조금 바꿔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는 스포일러를 당했어도 《방주》를 구매했고, 후회는 없다.

​유키 하루오(夕木春央)

1993년생. 2019년 「교수상회의 후계인」으로 제60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교수상회』로 데뷔했다. 최근 작품으로는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서커스에서 온 집행관』이 있다.

『방주』는 유키 하루오의 세 번째 작품으로 클로즈드 서클물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수작이다. 폐쇄된 지하 건축물에서 연달아 벌어지는 불가해한 살인사건. 일주일 안에 범인을 찾아야 하는데……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와 ‘MRC 대상 2022’1위를 동시 수상했으며, ‘2023년 본격 미스터리 10’ 1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4위 등을 기록하며 극찬을 받았다.

​ 클로즈드 서클은 뻔한 내용들이 있다. 무인도를 즐기려고 여행을 갔는데 섬에서 배가 사라진다거나, 폭설이나 폭풍이 와서 산장 같은 곳에 갇힌다는 클리셰가 있다. 대부분 '우리 중 누군가는 살인범이야!'라는 전개로 된다.《방주》는 그런 전개에 무언가(스포일러가 되니 말하지 않겠다.)가 더 있다. 그 무언가를 통해 만들어진 반전은 정말 충격적이다. 이야기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나는 클로즈드 서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클로즈드 서클물은 배경이 한정되기 때문에 대개 작위적인 분위기를 지우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이나 배경들이 오직 트릭과 반전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듯하다. 등장인물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A, B, C, D라고 불러도 다를 것 같지 않다. 같이 행동하던 친구가 죽어도 동요나 갈등이 적다. 사건이 발생해도 긴박감이 없어 평탄하다.

​ 추리 미스터리로서의 트릭과 반전은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로는 부족한 작품이다. 추리, 퍼즐 요소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겠지만, 이야기의 서사나 캐릭터성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소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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