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추리소설을 읽으면 추리가 멋지고 범인이 어떻고 하는 감상이 제일 진하게 남아야 하는데,  나는 아버지를 죽이고서 아버지가 된 남자와, 아버지를 죽이고 다른 사람도 죽이려 한 살인마 어머니를 둔 딸 사이의 관계와 감정이 어떻게 이어질지가 무지하게 궁금하고 뇌리에 남더라.

내가 영매탐정을 읽고 분노한 것은 작가가 작품 대부분에서 구성한 달달한 캐릭터성을 여지없이 깨버렸다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깨지고 나온 캐릭터는 지극히 평면적이란 사실이었어. 너무 대단한 천재라서 한 번 보고 그냥 쓱 하고 알았다 -  니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와는 관계없다 ---  감정이 결여된 기계 같은 캐릭터란 느낌을 받았지. 읽으면서 추리가 대단하단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소설을 읽게 만든 원동력인 캐릭터성을 이렇게 깨고 남은 것이 이거야? 싶어서 화가 나더라.

그런데 애꾸눈 소녀는.... 원래라면 역시 화를 내야 해. 전반부에서 구성한 캐릭터를 후반에서 다 깨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캐릭터는 알고 보면 매우 평면적인 미친 년이었고.... 하지만 마지막에서 아버지와 딸로 만난 두 캐릭터의 감정이나 회한, 그리고 서로가 접촉하는 그 부분을 생각하면... 오히려 매우 인상적이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 소설이 끝나고 나서 두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관계를 쌓을까 하는 생각이 며칠이고 머리에 감돌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