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리뷰/정보] 도구라 마구라는 왜 추리소설인가? - 장르의 변화에 관련하여 모바일에서 작성

추갤러(107.77) 2023.10.03 01:24:17
조회 358 추천 10 댓글 2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서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19세기 말부터 정립되기 시작할때 이 장르를 관통하는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범죄와 사건을 인간의 이성과 논리, 과학을 통해 해결한다"였음.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되고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범죄가 늘어나고 사법과 경찰 조직이 확대되는게 근대화의 당연한 수순인데, 이 범죄를 "발전한 문명을 대변하는 탐정"이 등장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해결해나간다"는 것이 초기 추리소설의 핵심임. 21세기에 추리소설을 읽는 우리들에게는 잘 안와닿는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초기 추리소설에 있어서 불가분의 요소였음.


그리고 이건 추리소설 이라는 장르를 본격적으로 서구에서 수입해와 자체적인 창작을 시작하였던 2차대전 이전의 일본 추리소설(이 시기에는 주로 탐정소설이라 불렸지만) 작가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20세기 초의 일본은 서구 열강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과학을 통한 부국강병을 이뤄야 한다는게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였으니만큼, 그 점에서도 아다리가 맞아떨어졌던 거지. 그렇기 때문에 192-30년대 일본에서 초기 본격 추리소설을 썼던 작가들중에는 운노 쥬쟈, 고가 사부로처럼 이공학을 전공하거나, 아예 기기 타카타로처럼 현직 연구자로 활동하면서 과학적인 지식을 적극 차용해 독자들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많았던 거다.


그렇다면 여기서 "도구라 마구라는 왜 탐정소설이라 불리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첫번째 이유로, 이 시기 탐정소설이라는 용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탐정소설이 아니어도 범죄, 모험, SF등의 과학이나 근대화와 연관이 된 다양한 세부장르들을 뭉뚱그려서 통칭하는 말이었다. 이 때문에 기기 타카타로가 2차대전 후 이것을 통틀어 칭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창안한게 "추리소설"이라는 용어의 원조라고 보통 알려져 있음. 두번째로, 앞서 이야기했던 본격 미스터리나 범죄, 모험, 과학 소설들은 근대사회와 문명의 진보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소재로 삼고 이것을 인간의 이성과 합리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을 주된 플롯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한 공통점들을 공유하고 있음. 나는 이 점에서 도구라 마구라를 당시 사람들이 "탐정소설"로 이해했고 그게 현재까지도 쭉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함. 굳이 따지고 보자면 탐정도 트릭도 등장하지 않지만, 인간은 세포 하나 하나에 선조들의 기억이 각인되어있고, 이것이 범죄적인 심리의 원천이 된다고 주장하는 소설의 주된 아이디어는 범죄심리를 과학적인 가설을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당시 "탐정소설"의 기준에는 분명히 부합하는 것이었음.


다른 작품들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오구리 무시타로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임. 21세기에 이걸 읽으면 무슨 말도 안되는 개씹소리를 늘어놓나 싶겠지만 어쨌든 이 작품들은 범죄의 트릭과 동기를 (말이 되던 안되던 간에) 심리학, 정신분석학, 생리학등 방대한 분야의 과학지식을 가져와서 해석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에게 힙하게 먹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고,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임. 에도가와 란포에 관련해서는 "이 사람의 변격은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있나?" "이 사람은 과학하고는 별 연관이 없지 않았나?"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텐데, 명쾌한 답변은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란포는 "D언덕의 살인사건"이나 "심리실험"등에서는 인간의 이상심리에 집중했고, 그 외의 변격 단편들에서도 근대화된 도시사회가 만들어낸 인간의 왜곡되고 일탈된 심리가 어떻게 범죄로 이어지나를 주된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분명 연관점이 있음. 192-30년대의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관심도가 폭증한 과학분야 이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일본에서 현재와 같은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이 정착하게 된건 언제였나? 나는 2차대전 후, 특히 요코미조 세이시와 사카모토 안고가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봄. 안고나 세이시가 영향을 주로 받았던것은 아가사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 같은 2-30년대 소위 "황금시대"의 서구 미스터리 작가들이었고, 이들의 가장 중요한 영향 중 하나가 "추리소설은 독자와 작가가 공정하게 펼치는 논리 대결"이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즉 2차대전 이후에 들어서면서 일본 추리소설들은 2-30년대 서구 미스터리의 영향을 받아 이전 시기에 중시했던 "근대화, 과학, 문명진보"라는 요소들이 점점 줄어들고 "논리적인 트릭 대결"이라는 요소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볼 수 있을 듯. 실제로 사카구치 안고는 1947-8년에 불연속 살인사건을 연재할때 "내 소설 속에 모든 추리의 힌트가 다 들어있다"고 하면서 상금을 걸고독자 공모 범인 맞추기 대회를 개최한적도 있었는데, 그 말은 자신의 소설의 논리의 정합성에 그만큼 큰 자신을 가지고있었다는 것임. 즉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본격 일본 추리소설의 이미지는 이 시기 들어와 정립되었던 것.

추천 비추천

10

고정닉 3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3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29299 일반 방주 많이 까이긴해도 난 올해 최고작임 [8] 추갤러(118.235) 23.10.13 678 13
29298 리뷰/ 찬호께이의 망내인(스포 조금) [1] 마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257 7
29297 일반 명탐정의 제물 방주 유리탑 [4] ㅇㅇ(223.39) 23.10.13 270 1
29296 일반 마야 유타카 좋아하시는 분 있나요? [8] 추갤러(117.111) 23.10.13 233 0
29295 일반 크루이프 책 구한다던 사람인데 [10] 시마다기요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187 0
29294 일반 하루에 책 두권이상 읽는사람있음? [9] ㅇㅇ(122.36) 23.10.13 161 0
29293 리뷰/ 후지타 요시나가 - 살인범 협박 시 주의사항 [4] 에슐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155 5
29292 일반 미스터리가 정확히 뭐냐? [6] ㅇㅇ(175.196) 23.10.13 141 0
29291 일반 스포) 왕과 서커스 읽는데 질문있음 [3] ㅇㅇ(122.36) 23.10.13 109 0
29290 일반 츄린이 갤보고 책삿는데 읽을순서 추천해주라 [6]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183 1
29289 일반 낙원은 탐정의 부재 읽는중 [2] ㅇㅇ(211.195) 23.10.13 125 1
29288 일반 유리탑 vs 방주 vs 명제 [15] ㅇㅇ(112.171) 23.10.13 413 0
29287 일반 방주 최근 추소 중 최고 화제작임은 분명하다 [2] Pheob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199 1
29286 리뷰/ 존 딕슨 카, 연속살인사건. [2]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112 6
29285 일반 이노우에 마기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계약된듯 [6] ㅇㅇ(223.28) 23.10.13 439 7
29284 일반 [추리퀴즈] 테이크 아웃 커피점 미스터리 [13] 웬리(211.229) 23.10.13 182 1
29283 일반 추리와 호러는 불가분의 관계로 돌아가야한다 [7] ㅇㅇ(223.62) 23.10.13 193 2
29282 리뷰/ 명탐정의 제물 읽어왔다 [6] 캬루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254 2
29281 일반 개구리 남자에 추리가 전혀 없냐? [11] ㅇㅇ(119.195) 23.10.13 332 0
29280 일반 회귀천정사 이거도 절판책중에 희귀한 편인가? [6] ㅇㅇ(27.35) 23.10.13 219 1
29279 일반 존딕슨카 관 법정 뭐먼저?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110 0
29277 일반 미야베월드 계속 정발해주는 북스피어가 대단한 겨 [2] 추갤러(223.39) 23.10.13 283 6
29276 일반 오늘 읽을 책. [2]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113 0
29275 일반 다잉메시지 쓰는 피해자는 정신력 ㅆㅅㅌㅊ네 [5] 추갤러(112.147) 23.10.13 213 3
29274 일반 악의 교전 절판이던데 얘 재입고 될까? [4] 추갤러(118.235) 23.10.13 280 0
29272 일반 추붕이들 다들 어렸을 때 명탐정 놀이 한 적 있다 없다? [1] 추갤러(1.222) 23.10.13 77 0
29271 일반 책스탠드 바이럴 [5] 5555(121.131) 23.10.13 224 1
29270 일반 단편 추리소설 명작 추천할만한거 있나? [13] ㅁㅁ(218.145) 23.10.13 556 1
29269 일반 서양쪽거 좀 읽어봤었는데 [8] 5555(121.131) 23.10.13 190 0
29268 일반 '논리력이 좋다'라고 느낄 땐 어떤 경우임? [7] USER0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269 0
29267 리뷰/ 스포)잘린머리처럼 불길한 것 읽었다. [6] 5555(121.131) 23.10.13 283 2
29266 일반 방주 왜이리 까임? [15] 뱃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466 2
29265 리뷰/ 스포)유리탑의 살인 후기 [3] ㅇㅇ(222.100) 23.10.13 453 2
29264 리뷰/ 스포) 시인장의살인 후기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164 1
29263 일반 방주 근데 논리력은 ㄹㅇ 괜찮지 않았음?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3 285 3
29262 일반 난 방주 거품이라고 생각해 [4] ㅇㅇ(118.235) 23.10.13 258 1
29260 일반 단편집 두권 깰끔하게 완뽕ㅋ ㅇㅇ(211.195) 23.10.13 111 1
29259 일반 스포)신세계에서 ㅇㅇ(182.222) 23.10.12 70 0
29257 리뷰/ 스포)코즈믹 다 봤다 [4] ㅇㅇ(58.239) 23.10.12 161 2
29256 리뷰/ 명탐정으로 있어줘 후기 [3] 추갤러(211.201) 23.10.12 568 7
29255 일반 앞으로 절판된 추리,미스터리책들 재판안될거 같음 [5] 추갤러(118.235) 23.10.12 855 12
29254 일반 책 뽐뿌 온다. [2]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2 151 0
29252 일반 알레스카샌더스 사건 존나 얼탱이없네 [2] 추갤러(39.7) 23.10.12 165 0
29249 일반 중고책 다수 구입(도구라 마구라 외) [11] 3번째모퉁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2 606 7
29248 일반 나카야마 시치리 다작이 지리네 [2] ㅇㅇ(119.195) 23.10.12 197 0
29247 일반 코즈믹 재밌음? [3] 추갤러(14.4) 23.10.12 175 0
29246 일반 짐승의 성은 도저히 못보겠다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0.12 314 0
29245 일반 복수의 협주곡 드디어 나오냐 [3] ㅇㅇ(223.28) 23.10.12 338 0
29244 일반 편의점 퀴즈 정답 공개 ㅋㅋㅋㅋ [4] ㅇㅇ(49.1) 23.10.12 197 3
29243 일반 동서 번역 볼만함? [5] 추갤러(114.204) 23.10.12 122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