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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락까지 갈까

이잉?(112.154) 2022.02.06 20:41:51
조회 535 추천 7 댓글 0

 모처럼 몰려오는 졸음이었다.

사랑도 원망도,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기분 좋은 무상함에 도하는 눈을 감았다.


 "이제 곧 봄이 오겠군."


 너무도 긴 시간이었다. 

사랑으로 보냈고, 원망으로 지샌 세월이었다.

서로를 위해 지독하게 꼬여 버린 인연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그런 날들이었다.




 물씬 풍겨오는 꽃내음에 도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흐드러져있는 동백꽃에,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새푸른 하늘이 보였다.


 "봄이라기엔 조금 이른 것 같은데."


 펄럭이는 옷자락 사이로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새어들었다.


 온몸에 맴도는 가벼운 한기, 따사로운 햇볕, 땅에 디디는 발의 감각.

분명 준오의 몸에서 느꼈던 것들이었지만, 어딘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도하에게는 그런 사소한 감각에 시간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계속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건가?"


 도하의 시선 끝에 한 여인이 있었다.


 강인하나, 나약한 사람.

사랑했고, 또 원망한 사람.


 그녀에게는 왜 모든 것이 모순이었을까.


 "늦으셨습니다 나으리..."


 "...좀 걸을까."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들이 저마다의 방향으로 세상에 기댔다.

시간에 고인 두 사람도, 저마다의 방향으로 정처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 오랜 시간동안 그녀를 원망했다.

분명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겠노라 약조했었는데,

너는 왜 나의 이기적인 사랑을 원망하고 나를 죽였던가.


 그러나 나는 우습게도, 그 원망 속에서 마저 그녀를 사랑했다.

네가 나를 잊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끝없는 시간 속에서 혼자 속을 곪는 일 없이, 

그저 내곁을 떠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너를 잊게 되지 않을까.


 그 감정들이 엉킨 속내가 나를 어지럽혔고,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난 네게 한 그 어떤 약조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미안하게 됐네. 봄이 오면 대가야에 데려가 주겠다던 약조, 결국은 못 지켰어."


 꽃과 바람과 하늘이 지켜보던 적막한 침묵을, 천 오백년 전의 한 사내가 끝냈다.


 "결국은... 제 탓이 아닙니까 나으리. 제가 나으리를..."


 "됐어. 그런 말을 들으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야."


 하늘은 어느새 제 속살을 드러내며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들판 위 동백꽃들은 붉게 물든 모습으로 서로의 사랑을 나눴다.


 한리타는 죄책감에 물든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준 모든 것은, 심지어 방금의 대화 조차도, 그녀를 아프게 하고 말았다.


 "내가 너에게 준 모든 것은 결국 너를 아프게하고 말았군."


 한리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도하를 올려 보았다.


 "저도 그런 말을 들으려 꺼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념하지."


 "...아주 오래 전, 연조와 덕소를 만났습니다. 새로 정착한 땅에서 혼례를 치르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혼례를 치르는 것 까지 보았다 하였습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쫓겨난 가야인들은 모두 그 땅에서 나으리가 보내주신 식량으로 마을을 가꾸어 풍요로운 여생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나으리께서는 약조를 지키셨어요. 너무 개의치 않으셔도 되나이다."


 석양이 지고 밤 대신 또 다른 아침이 떠올랐다. 그러나 하늘에는 해 대신, 둥근 달이 은은하게 차올랐다.

달빛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그들의 앞에서 부서졌다.


 한리타는 걸음을 멈췄다.

도하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몸을 돌려 한리타를 바라보았다.


 "나으리께서는 제가 원망스럽지 않으십니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지.. 이제는 기억도 잘 안 나. 그보다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크네. 우리의 업보를 아이들에게 돌려 몹쓸 짓을 하였으니..."


 도하의 얼굴에 흐릿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리타는 떨군 고개를 살짝 들어, 도하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그의 말대로 천 오백 년이라는 너무도 긴 시간이 지났다.

나라가 여러번 뒤집혔고, 다른 나라에게 주권을 뺏기기도 했으며,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은 아주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아무래도 바뀌지 않았다.


 "나으리께서 저와 한 약조를 들어주셨으니, 이제는 제가 나으리의 부탁을 들어줄 차례입니다.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제가 모두 들어드리겠나이다."


 "무리 할 필요는 없네만."


 새하얀 하늘은 마치 여명과도 같은 달빛을 머금고 있었다.


 도하는 문득 생각했다.


 승려의 말로는 전생의 내가 아무리 업보를 쌓아도, 그것이 현생에 미치는 일은 없다고 그랬다.

비록 한리타는 여러번 환생을 해 그 업보가 잊혀진지 오래겠지만,

천 오백 년동안 천도도 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돌던 자신에게는 아직 업보가 남아 있으리라고.


  그렇다면 이 곳이, 이 순간이.

그에게 남을 업보를 치룰 자신의 나락이 아닐까라고.


 도하는 그녀와 재회한 후 처음으로 똑바로 한리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항상 거짓웃음을 지어보내고, 속으로는 근심을 앓던 그 표정은 아무래도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강하게 감싸 안았다.


 이곳에서 라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아려오는 서로의 선명한 온기 속에서

그들에게 얽힌 지독한 사랑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래, 그럼 함께 나락까지 갈까."





 유튜브 플리에 썼던 댓글인데

조금 수정해서 올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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