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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역] 지키지 못한 약속 <내 안의 25년> - 미시마 유키오

ㅇㅇ(121.140) 2023.02.20 02:42:17
조회 136 추천 6 댓글 0
														

내 안의 지난 25년간을 생각하면 그 공허함에 새삼스럽게 깜짝 놀란다. 나는 '살았다'고는 거의 말할 수 없다. 코를 막으면서 지나쳐 온것이다.

25년전에 내가 미워한것은 살짝 형태를 바꾸기는 했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끈질기게 연명하고 있다. 연명하기는 커녕 깜짝 놀랄만큼의 번식력으로 일본 전역에 침투해버렸다. 그것은 전후 민주주의와 거기에서 생긴 위선이라는 두려운 바이러스다. 이런 위선과 사기술은 미국 점령과 마찬가지로 끝날 거라 생각하고 있던 나는 상당히 안일했다. 놀랄 만한 것은 일본인 스스로 그것을 자기 체질로 삼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조차도.



나는 1945년부터 1957년 무렵까지 어른스러운 예술 지상주의자로 비쳤다. 나는 단지 냉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종류의 약한 청년은 저항의 방법으로 냉소밖에 몰랐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자신의 냉소, 자신의 시니시즘과 싸워야 한다고 느꼈다. 지난 25년간 인식은 나에게 불행밖에는 가져다주지 않았다. 내 행복은 모두 다른 원천에서 담아온 것이다. 물론 나는 소설을 써왔다. 희곡도 많이 썼다. 그러나 작품을 아무리 쌓아올려도 작가에게는 배설물을 쌓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결과 현명해지는 것은 결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름다울 정도로 멍청해지는 것도 아니다.



지난 25년간 사상적 절조를 지켰다는 자부심은 어느정도 있지만, 그 자체가 크게 자랑할 만하지는 않다. 사상적 절조를 지키기 위해 투옥된 적도 없고, 큰 부상을 입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본다면 사상적으로 변절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 둔감하고 옹고집인 머리의 증명은 될지언정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수성의 증명은 되지 않으리라. 결국 '남자의 의지'를 많이 내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괜찮다고 내심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가 정말로 '약속'을 지켜왔는가 하는 것이다. 부정에 의해, 비판에 의해, 나는 무엇인가를 약속해 왔을 터이다. 정치가는 아니니까 실제 이익을 주면서 약속을 지킨 것은 아니지만, 정치가가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고 훨씬 중요한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매일 밤 자책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문학 따위는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때때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도 '남자의 의지'겠지만 그만큼 부정해온 전후 민주주의의 시대 25년간을 부정하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유유히 살아온 것은 내 오랜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개인적 문제에 한정한다면 지난 25년간 내가 해온 것은 상당히 기교한 기획이었다. 그것은 아직 거의 충분히 이해되고 있지않다. 원래 이해를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어서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지만, 나는 뭔가 내 육체와 정신을 등가의 것으로 삼는것, 그리고 그 실천으로 문학에 대한 근대주의적 맹신을 근저에서 파괴해버리려고 생각해온 것이다. 육체의 덧없음과 문학의 강인함 또는 문학의 어리숙함과 육체의 강건함이라는, 극단적인 대조와 지나치게 무리한 결합은 오래전부터 내 꿈이었고, 이는 아마도 유럽의 어떤 작가도 일찍이 시도하지 못한 것이며, 만약 그것이 완전하게 성취된다면 만드는 자와 만들어지는 자의 일치, 보들레르식으로 말하자면 "사형수이자 사형집행인"이 되는것도 가능할 테다. 만드는 자와 만들어 지는 자 사이의 괴리에서 예술가의 고독과 도착된 자부심을 발견 했을 때, 근대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내가 말하는 '근대'의 의미는 고대에 있어서도 타당하며, '만요슈'를 빌려 말하자면 오오토모노 야카모치, 그리스 비극으로 말하자면 에우리피데스가 이미 이런 종류의 '근대'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25년간 많은 친구를 얻었고 많은 친구를 잃었다. 내 멋대로 하길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다. 나에게는 관용이라는 덕이 결여되어 있어 끝내는 우에다 아카나리나 히라가 겐나이처럼 될 게 뻔하다. 나는 충분히 속악하고 투기심도 지나칠 만큼 많은데도 왜 '속세에서 논다'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인지,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의심하고 있다. 나는 인생을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 언제나 풍차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이 도대체 인생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5년 동안 희망을 하나하나 잃어버려 더 이상 도달할 곳이 보이지 않게 된 오늘날에는 그 많은 희망이 얼마나 공소하고, 얼마나 속악하며, 게다가 희망에 필요한 에너지가 얼마나 비대한지 아연 해진다. 이만큼의 에너지를 절망에 사용한다면 좀 더 어떻게든 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일본의 미래에 크게 희망을 이어갈 수 없다. 이대로 간다면 '일본'은 없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일본은 없어지고 그 대신 무기적이고 공허하며, 중성적인 중간색의, 유복하면서 빈틈이 없는, 어느 경제대국이 극동의 한 부분에 남게되리라.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말을 나눌 기분이 들지 않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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