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레이건의 고금리 정책
1970년대 몇차례의 오일쇼크가 발생하여 국제유가와 물가가 대폭등하는 시기를 세계가 격었고
이 시기 소련의 경제가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소련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미국을 급속도로 따라잡고 있었다
따라서 국제유가를 때려잡고 물가를 낮추기 위해 레이건은 20%에 육박하는 고금리 정책을 장기간 유지했다
이후 1985년 플라자합의를 할때까지 미국은 고금리 정책으로 끝내 물가를 잡는데 성공했고, opec 국가들의 연대를 훼손하는데 성공했다
사우디가 미국의 고금리로 인한 수요축소와 영국산 북해유전 개발등으로 인한 시장점유율 축소를 받아들이지 못해
80년대 내내 장기간 유가를 하락시키는 대규모 증산을 시행했고 이는 소련의 수출경제에 크디큰 악영향을 주게된다
2.레이건의 재정지출 증가 정책
고금리로 물가를 잡는 와중에 레이건은 대규모 감세를 시행하여 국가의 경제성장률 자체를 크게 끌어올렸다
이율배반적인 정책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레이건은 물가를 잡고, 동시에 성장률을 끌어올리는데 크게 성공했다
세계 경제가 미국의 고금리에 신음하고 있는데 미국은 재정정책으로 나홀로 호황을 경험하니 달러의 시장가격은 급속도로 상승했다
이것은 소련과 친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상황을 악화시킴으로서 소련의 경제 생태계 자체가 흔들리도록 만들었다
중남미 국가들은 1개국을 제외하고 전부 imf 외환위기를 맞아야 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심각한 부도위기에 빠진다
이때 대한민국은 (전두환 행정부 시기) 일본으로부터 외환을 삥뜯어와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미국이 친미국가들을 구원하고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 외교적 압력을 넣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결과적으로 친소 국가들은 대부분 부도에 빠지고 친미 국가들은 대부분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3.막대한 군비지출을 통한 군사력 경쟁
레이건은 소련의 기대수명이 감소되고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점을 착안해, 핵전쟁의 공포를 되살리고 군비경쟁을 한다면
소련의 신세대 지도자는 민생을 중요시여기며 미국에게 온건한 외교정책을 필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막대한 군비경쟁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핵무기는 한번 늘리기 시작하면 추가 생산량 제약 협상은 가능해도, 이미 만든 핵무기는 감축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으로 통했기에
레이건의 정책은 당시에 많은 비판과 모욕을 당하기도 했으나 포드 행정부 이후로 상대적 약화를 경험하던 미군을 다시 강력하게 만들엇으며
경제 사정이 극도로 어두어진 소련이 미국의 스텔스 폭격기와 우주요격무기에 대항하는 무기체계를 개발할 경제적 여력을 상실하자
신세대 지도자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미국에게 온건한 외교정책을 피게 되고 레이건의 요구대로 소련의 민주화와 자유화 정책을 피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비용은 절대 작지 않았다
미국은 막대한 쌍둥이 적자가 발생하며 정부 부채문제와 국내 제조업 경제 악화의 위기를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레이건은 85년도 즈음부터 금리를 막대하게 내리고 달러의 가격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3저호황이다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독일,영국,프랑스 정부의 금리인하와 내수경기부양 정책을 요구했고
대신 미국이 막대한 유동성을 제공할테니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요구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플라자합의라고 한다
(끝내 대한민국도 내수시장 키우라고 압력을 받았다)
전두환 정부가 막대한 경제호황을 누렸던 이유에는 냉전이 있었고
레이건 행정부는 한국 내수시장을 부양하여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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