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7월 24일,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미국과 소련의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그 무렵
사회주의 진영의 심장인 모스크바에서 미국 국립 전시회라는 재미있는 이벤트가 준비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미국 전시회가 열린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바로 냉전이 심해지던 상황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 간 화해의 제스처로
냉전의 중심인 미국과 소련이 상대국에서 직접 문화 교류 이벤트를 열기로 한 것.
그에 따라 6월에는 뉴욕에서 소련 국립 전시회가
그리고 7월에는 모스크바에서 미국 국립 전시회가 열린 것이었다.
이에 미국은 부통령 닉슨, 그리고 대통령의 동생인 밀튼 아이젠하워가 직접 소련으로 와서 박람회에 참여했고,
소련은 최고지도자 흐루쇼프 서기장이 직접 나서서 그들과 동행했다.
물론 이런 좋은 의도와는 달리
화해 분위기따위를 내는 건 쉽지 않았고
오히려 여기서 냉전 최대의 '설전'이 오갔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부엌 논쟁(Kitchen Debate)!
닉슨이 먼저 컬러 TV, 식기세척기 등 당시 기준 최신 가전제품을 갖춘 모형 부엌을 가리키며 흐루쇼프에게 이렇게 말한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일반 가정의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긁힌 흐루쇼프는 "...우리도 다 있소" 받아쳤고,
닉슨이 한 번 더 "이런 가전이 미국 여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지요."라고 긁자,
흐루쇼프는 "공산주의에는 당신의 자본주의적 여성관이 없소."라며,
여성을 단지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는 닉슨과 자본주의 진영을 돌려까며 맞받아쳤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이 집은 14,000 달러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10,000달러에서 15,000달러에 정도에 집을 살 수 있습니다. 파업 중인 철강노동자들도 저축해서 이 집을 살 수 있고요."
"우리에게도 집 한 채에 14,000 달러를 쓸 여유가 있는 철강 노동자와 농민이 있소."
"미국의 주택은 20년만 버틸 수 있도록 지어졌지. 우리는 자식, 손자들을 위해 튼튼하게 집을 짓소."
"수명은 20년 이상 갑니다. 그게 아니라 미국인들은 20년쯤 지나면 새 집에서 살기를 원하는 거죠. 미국 시스템은 새로운 발명품과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도록 설계되었으니까요."
"소련에서는 태어나기만 하면 집을 가질 수 있소. 미국에서는 가난하면 도로에서 자야 하지. 그런데 당신은 우리가 공산주의의 노예라고 말하나?"
"우리에게는 다양성과 선택할 권리가 중요하오. 천 명의 건축업자는 천 채의 서로 다른 집을 짓고 있지요. 그리고 우리는 한 명의 공무원이 최고위층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체제가 아니에요. 이게 차이입니다."
이후,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흐루쇼프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 생긴 지 얼마나 됐소? 300년? (누군가 : 150년입니다.) 소련은 42년이오. 앞으로 7년이면 미국을 따라잡고, 따라오라며 손을 흔들며 미국을 추월할 것이오."
닉슨이 "경쟁을 하려면 사상의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모든 걸 알지는 못하죠."라고 받아치자,
흐루쇼프는 "당신이야말로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그 외에는 공산주의를 전혀 알지 못하오."라고 대답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우리 국민 앞에 서고, 내가 당신 국민 앞에 섭시다. 당신의 자본주의의 변호인이라면 나는 공산주의의 변호인이오."
이렇게 미국의 부통령과 소련의 서기장.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두 정치인이 직접 만나
자본주의의 변호인, 그리고 공산주의의 변호인이 되어
미국의 부엌을 두고 양국의 정치 체제와 경제에 대해 대화하며 첨예하게 대립한 이 부엌 논쟁은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컬러 텔레비전과 비디오 녹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냉전을 대표하는 설전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때 흐루쇼프는 자신을 공산주의의 변호인,
닉슨을 자본주의의 변호인이라 칭하며 경쟁하자고 말했지만
결국 흐루쇼프는 1964년 실각하고 소련도 1991년에 붕괴.
또 다른 주인공인 닉슨은 이 토론을 통해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대선에 도전했으나
공교롭게도 TV 토론에서의 이미지 메이킹 실패가 결정적인 패인이 되어
어느 젊은 정치인에게 대권을 빼앗기고 야인으로 돌아갔다가 1968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임기 중 스스로 하야한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취재진 앞에서 닉슨, 흐루쇼프가 말싸움하는 실제 영상
박람회에서 도널드 켄들(펩시의 생산직에서 CEO까지 올라간 전설적인 인물, 마케팅의 천재)이 건네준 펩시를 시음하는 흐루쇼프 서기장.
이 사진을 계기로 펩시는 소련에도 진출하고,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어 코카콜라를 따라잡는 국제 기업으로 성장한다. 어쩌면 이 사건의 진정한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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