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만 누르면 끝인가. 예쁘면서도 '튀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출과 보정은 필수다. 거슬리는 볼살이나 턱선을 교정한다. 프레임 속 요소도 빈틈없이 배치한다. 내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를, 나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구축한다.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는 젊은 인류학자 황의진은 궁금했다. 또래 여성들은 왜들 그렇게 사진 찍고 SNS에 올리는 데 공을 들일까? 여성들을 만났다. 달라진 관계맺기 양상, 디지털 성범죄 등 사회문화적 배경과 연결해 분석했다. 지난달 출간된 『빈틈없이 자연스럽게』(반비)는 그 결과물이다.
여성들이 공들인 연출·보정을 거쳐 온라인에 공개하는 사진들을 저자는 '독사진', '셀카'와는 다른 "자기사진"이라고 부른다. 자기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일은 퍽 사회적인 행위다. 이를테면 여성들은 서로의 사진을 보고 '좋아요'를 눌러 안부를 확인한다. 체중 관리가 필수적인 직업을 가졌다면 술 마시는 사진은 SNS에 올리지 않는다. 돋보이되 지나치지 않게 수위를 조절한다. 여성들에게 "자기 촬영과 자기사진은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동력인 한편, 그런 관계 속에서만 속해 있는 문화의 결과물"인 셈이다.
2000년대 확산한 '셀카 문화'
여성들의 자기표현·소통의 문화로 나아가
이렇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젊은 여성들의 '자기사진' 찍기 문화를 조명하려는 시도가 최근 이어지고 있다. 여성학자 김지효는 지난해 펴낸 『인생샷 뒤의 여자들』에서 카메라 너머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황의진 작가는 국내에 사진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1920년부터 시작해, 여성의 관점에서 사진의 문화사를 재구성했다는 점이 색다르다.
1920년대만 해도 여성들은 '피사체'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정용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여성들도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지만, 주부로서 일상을 기록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여전히 '사진 권력'은 남성의 것이었고 여성은 '예쁜 피사체'였다. 2000년대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싸이월드'가 인기를 끌었다. '셀카 문화', 핸드폰 카메라의 확산 속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자기 사진을 촬영하고 서로 보여주는 문화가 형성됐다. SNS가 젊은 여성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기표현과 소통의 장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여성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사진을 서로 교환하며 넓고 느슨한 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관계에 뛰어들면서 또는 휘말리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게 되지요. 그런 경험들은 또래 여성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공감을 끌어내면서 집단적인 경험이 됩니다."
한편 여성들은 이렇게 찍고 공유한 자신들의 사진이 누군가에게 품평당하거나, 남성 집단의 성적 욕구 충족에 악용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털어놨다. 점점 더 일상을 위협하는 디지털 성범죄와 무관하지 않다.
"인터뷰를 한창 진행하던 2019년~2020년은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왔던 시기인데요. 제가 만난 촬영자 여성들은 자신들이 경험해 왔던 '사진의 공포'와 해당 사건이 긴밀히 이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좋아서 찍은' 자기사진이든 강제로 찍은 사진이든, 자기 몸과 얼굴이 나온 사진이 모종의 경로를 거쳐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죠."
연출이나 보정 없는 여성의 본모습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여성의 사진이 쉽사리 각종 범죄의 도구로 쓰이는 사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황 작가는 "여성들이 자기사진을 자유롭게 찍는 듯해도 '내 사진'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작가는 여성이 '내 사진'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디지털 사진의 복제와 공유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는 온라인 환경 때문이다. 여성들이 올린 자기사진은 타인의 손에 아주 쉽게 들어갈 수 있고, 때로 원치 않는 타인의 접촉을 받기도 한다.
둘째, 사진을 통한 여성들의 자기 재현이 '아름다운 피사체'의 재생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여성들은 오랫동안 '아름다운 피사체'로 규정돼 왔고, 촬영자가 되더라도 남성에 비해 보조적인 위치를 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오랜 역사로 인해 촬영자로서의 여성은 애초에 불리하면서도 모순적인 위치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속 여성들의 모습이 어떻든 끊임없이 구설에 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고요. 자기사진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찍을 수 있는 지금, 여성들이 정작 자기사진을 온전히 소유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다가옵니다."
다음 세대 여성들의 '자기사진' 문화는 어떻게 변해 갈까.
"자기사진을 수집하는 타인과 플랫폼의 논리가 더욱 정교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지금도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은 개인의 자유로운 자기 재현을 권유하면서도 그 결과물들을 수익 창출에 운용하고 있지요. 한편으로는 그런 '체계화된 사진 수집'이 가진 모순성과 부당함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게 될 것 같아요."
황 작가는 "사진에 대한 공포를 말하고 서로와 공유하는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여성에게 강요돼 온 전형적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자기 촬영은 여성이 자유로운, 온전히 '나다운' 자기 촬영을 할 가능성을 넓히려는 시도이겠지요. '전형성'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죄책감을 갖지 않고, 그러면서도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내 사진'을 찍어보고, 무엇보다 어떤 사진이 '내 사진'임을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 것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사진을 찍지 않기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사진'에 대한 말하기와 선택이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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