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불거진 김영삼과 이회창의 갈등.
당시 신한국당 당원이 포항에서 김영삼 인형을 화형에 처하는 퍼포먼스를 할 만큼 여당 지지층이 김영삼에게 분노했고,
이회창은 현직 대통령인 김영삼에게 탈당 요구를 하고 김영삼은 이회창 대신 이인제에게 기대를 걸 정도로 둘의 사이가 틀어졌음.
이 갈등의 핵심에는 '김대중 비자금 의혹'이 있었는데,
이회창 측에서 김대중의 비자금 의혹을 제시했지만
문민정부의 검찰에서 수사 유보 결정을 내려 이회창과 여당 지지층이 분노했던 것.
결국 이 갈등의 여파는 김대중 당선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재미있는 건 이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YS, DJ, 昌의 입장이 각각 다르다는 거임.
먼저 김영삼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위와 같이 설명함.
요약하자면 대선을 2개월 앞두고 김대중을 구속하게 되면 전라도와 서울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고
그래서 김태정 검찰총장을 불러 수사 유보를 지시했다는 것.
대통령 선거를 정상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임.
이회창의 회고록에서는 이와 조금 다른 입장이 나오는데
요약하자면 이회창은 이해타산을 접고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원칙을 가지고 결단했으며,
하필이면 자신이 국회에서 대표 연설을 하는 동안에 청와대가 수사 중단을 발표한 게 기막히다고 설명함.
그리고 김영삼이 수사 유보를 지시한 이유를
수사가 1992년 김영삼 자신의 대선자금 조사로까지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했음.
그렇다면 당사자였던 김대중의 입장은 어떨까?
역시 사뭇 다른 입장이 나오는데
김대중은 비자금 의혹이 이회창이 개입한 여권의 공작이라고 설명하며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의 의로운 결단으로 수사가 공식 유보된 거라는 견해를 밝힘.
여기서 김대중이 현명하고 용기있다고 평가한 김태정 검찰총장은
김대중 당선 이후 검찰총장에 유임되고 이후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했으나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옷로비 사건으로 인한 책임을 지고 15일 만에 장관에서 사퇴했는데
이건 TMI지만 이 조폐공사 사건으로 구속되고 나중에 유죄 선고받는 진형구 당시 공안부장이 한동훈의 장인임
이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며
검찰은 당시 관행적으로 오간 정치자금이라 처벌하기 어렵다고 보고
공소시효도 이미 지나서 결국 무혐의 결정을 내리게 됨
정리하자면 DJ 비자금 의혹에서 김영삼이 수사 유보 결정을 내리면서 당정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김영삼 - 전라도, 서울에서 폭동 일어나서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 못할까봐 김태정에게 지시해서 수사 유보
이회창 - 정의와 원칙에 따라 수사를 주장했으나 김영삼이 자신의 대선자금 폭로를 우려해 수사 유보
김대중 - 나는 죄가 없고 다 여권의 공작이었는데 김태정 검찰총장의 의로운 결단으로 수사 유보
후일 회고록에서 당사자들이 이런 입장을 밝혔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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