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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맞이 백일장 당선작을 발표합니다.

박진성x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2.04 05:52:52
조회 837 추천 20 댓글 5



겨울맞이 백일장 당선작을 발표합니다늦었습니다몸이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백일장에 참가한 작품들을 곰곰 반복해서 몇 번 읽었습니다참여해주신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해서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어쩔 수 없이 순위로 갈려야 할 운명인 것이 조금 안타깝지만 약속드린 것처럼 수상작을 발표합니다심사는 저와 출판사 직원분들이 함께했습니다.

 

_

 

1위 선정작

 

기흉()

 

뚫린 폐로 숨이 들다가 숨이 들다가 새어나가면

내쉰 적 없는 방 안의 공기가

따뜻해 우리 어디서 만나지 않았나요

뒤를 보면 양초가 하나 주전자가 하나

이상하지 온데간데 없는 사람들은

혼자를 알기도 전부터

우리는 혼자서

 

분주히 제 몸을 뜨는 겨울나무

 

눈물의 염도와 간만에 적은 이름의 온도

적막의 밀도와 이산화탄소의 농도

밤은 촛농처럼 물렁해지고

더이상의 호흡은 무리임을 느꼈을 때

잠결을 받아쓴 혼자의 문장은

당신이 무사하기를 바랍니다

긴 꿈을 꾸고 또 한참 깜깜하다가

영영 그럴 것 같다가 눈을 뜨면

왔다가 갔군요 간밤에

열린 창 머리맡 어린 빛 당신

[감상평]

(기흉)에 대한 시입니다그리고 사랑에 대한 시입니다병과 사랑이 절묘하게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시입니다오래 시 창작 수업을 해 온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오래 시를 써 온 내공이 느껴집니다제가 배울 점이 많은 시입니다.

 

시 전체를 보더라도 쓸데없는 말이 단 한 마디가 없습니다시는 어쩌면 할 말을 꼭 하는 장르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하지 않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시를 읽다가 사실 조금 울었습니다이런 문장은 정말 영혼을 울게 합니다.

 

밤은 촛농처럼 물렁해지고

더이상의 호흡은 무리임을 느꼈을 때

잠결을 받아쓴 혼자의 문장은

당신이 무사하기를 바랍니다

 

시적 화자인 는 기흉(폐의 질병)을 앓고 있으므로 숨쉬는 일이 버겁습니다그래서 밤은 촛농처럼 물렁해집니다. “더 이상의 호흡은 무리임을 느꼈을 때”, 그때 쓴 문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무사하기를 바랍니다”. 간곡한 문장입니다어떻게 이렇게 문장을 쓸 수 있을까요우리는 누구나 이기적인 혼자이지만 우리는 또한 누구나 위대한이타적인 우리입니다말장난 같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당신이 무사하기를 바랍니다”, 이 한 문장이 겨울의 한파도 녹일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스스로 언어의 광대가 되는 일을 즐깁니다이미 기성 시인 이상의 수준입니다시가 이상하지 온데간데 없는 사람들은혼자를 알기도 전부터우리는 혼자서분주히 제 몸을 뜨는 겨울나무라고 중얼거릴 때 우리는 홀연 무중력의 공간에 서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혼자를 알기도 전부터우리는 혼자서”, 살고밥 먹고일하고싸우고용서합니다이 이상한 일상 위에 슬쩍 분주히 제 몸을 뜨는 겨울나무를 얹어 놓습니다이러한 문장의 작동 방식이야말로 정확히 시의 매커니즘일 것입니다.

 

마침내 시가 간밤에열린 창 머리맡 어린 빛 당신이라고 말할 때 빛도 문득 어리여리디 여려저서 홀연 당신만 남습니다어쩌면 시가 다다를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간은 타인즉 당신의 공간일 것입니다만나서 이 시의 창작 배경을 꼭 듣고 싶습니다감사합니다정말 좋은 시를 읽었습니다.

 

_

 

2위 선정작

 

겨울 (다극)

 

너는 들리니

 

북에서 오는 검은 바람 소리가

너의 볼은 빠알갛게 물들고

 

따뜻한 나무가 말 걸어줄까

그저 낯설고

모든 것이 서먹서먹하기만 너에게

말할게

 

반가워,

 

[감상평]

 

압도적인 추천수를 받은 작품입니다. 1위로 선정한 작품이 울게 하는 시라면 이 시는 웃게 하는 시입니다이렇게 작품을 쓰는 시인이 꼭 한 명 있었습니다김종삼 시인입니다.

 

이 시의 매력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축축하지 않고 촉촉합니다. “북에서 오는 검은 바람 소리의 검정과 너의 볼은 빠알갛게 물들고의 빨강이 선명합니다. “북에서 오는 검은 바람 소리라는 표현의 기계적인 도식성(겨울 바람이기 때문에 차갑고 그 바람은 북쪽에서 불어옵니다빤한 사실입니다.)과 빠알갛게 물든다는 표현의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담백함은 고스란히 읽는 사람에게 전해져 옵니다그 담백함이야말로 이 시의 진정한 가치라고 해야겠습니다.

 

모든 것이 서먹서먹하기만 너에게말할게// 반가워,”라고 이 시가 군더더기 없이 말할 때 우리는 누구나 사랑의 순간을 대면하게 됩니다그래서 이 시의 겨울은 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사랑의 첫 장면을 이 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서먹서먹하기만 너”. 더할 말도 뺄 말도 없습니다사랑의 은유입니다시작법서 김소월을 몰라도 현대시작법에서 구어체의 힘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정확히 이 시의 반가워가 그 구어체의 힘입니다반갑습니다산뜻한 한 편의 시를 읽었습니다.

 

_

 

3위 선정작

 

성탄 (골포스카)

 

행성의 소음을 견디고 기어이 살아남을 방법

 

낡은 신화를 믿지 않을 것 그리하여 아무것도 듣지 않을 것

언젠가 유성이 우리의 목젖을 가까스로 비껴갔을 때

그때부터 너는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해질녘에야 겨우 빛이 드는 한 쪽짜리 창으로는

도저히 환기할 수 없는 숨을 내쉬다가 너는

손을 바삐 움직였다 우리밖에 없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바깥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입을 크게 벌렸다 또박또박

너는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평화가 찾아왔다 밖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불우한 이웃들은 어디에 있을까

웃음도 울음도 나지 않았다

[감상평]

 

누군가에게는 축복이고 평화이고 축제인 성탄이 누군가에겐 고통이고 상실이고 지옥입니다이러한 사정을 이 시는 힘주지 않고 말하고 있습니다쓸쓸하되 징징대지 않는 것저에게도 주문하는 시의 미덕입니다.

 

도입부의 문장들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행성의 소음을 견디고 기어이 살아남을 방법 // 낡은 신화를 믿지 않을 것 그리하여 아무것도 듣지 않을 것”. 시는 이렇게 명사형 어미로도 시작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 시는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저도 이 매력적인 어법을 따라서 한 번 써봅니다성탄누군가에겐 행성의 소음을 견디고 기어이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하는 시간성탄, “낡은 신화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방에서 쓸쓸하게 견뎌보는 시간성탄, “그리하여 아무것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중얼거려 보지만 결국 제 안의 울음 소리를 듣는 시간성탄.

 

성탄절에 읽기 좋은 시입니다시는 말합니다. “해질녘에야 겨우 빛이 드는 한 쪽짜리 창이라고그 한쪽짜리 창이 바로 의 다른 이름입니다이 분의 영혼은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꼭 시인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저의 간곡한 부탁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시가 불우한 이웃들은 어디에 있을까웃음도 울음도 나지 않았다고 말할 때우리는 시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능력그러니까 타인에 육박하는 어떤 영혼의 숨결에까지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

[총평]

 

(솔직히 2위에 선정되신 분은 잘 모르겠지만) 1위에 선정되신 분과 3위에 선정되신 분들은 시인으로 살아야 할 운명을 지닌 분들입니다이미 제 마음 속에서는 시인이십니다안녕하세요라고 다정하고 쓸쓸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에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드리고 싶은데 정말 죄송합니다백일장에 이렇게나 좋은 작품들이 올라올 줄은 몰랐습니다다음 백일장은 산문으로 진행해볼까 하는데 어떠십니까아이디어 주시면 좋겠습니다이 백일장을 확대하여언젠가는 반드시이 백일장을 통과한 분들께 시인이라는 칭호를 허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열 속에서 씁니다작품 편편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많이 배웁니다.

선정되신 분들은 제 카카오톡(poetone78) 계정으로 성함전화번호주소 주시면 약속드린 것처럼 시집시작법그리고 미디어샘 출판사의 몇 권의 도서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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