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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소설핫산) 고백의 날에 울면서 라멘을 먹는 하야세 유우카 - 前

슬로보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3 03: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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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핫산 모음집


원문

18,150자


일상, 연애


분량이 많아 전, 후로 나누어 업로드











5월 9일. 고백의 날. 5와 9가 ‘고백’으로 읽히는 말장난*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남성이 여성에게 고백하는 날… 이라는데, 아마 어느 기업의 마케팅 전략일 것이다.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 같은 날들과 다르게 ‘숫자에서 유래한 날’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3월 14일이라는, 수학적 운명 아래 태어난 듯한 나에게는 ‘고백’이라는 문자열을 ‘5989’라는 연속된 숫자로 대체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느껴졌다.

* 5(こ), 9(く)가 고백의 ‘고(告, こく)’와 발음이 같음.

계산이 특기인 나. 그것은 ‘그 사람’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5월(コ) 9일(ク), 8시(ハ) 9분(ク).

그렇기에 그날 그 시간에 고백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사랑의 고백… ‘저랑 사귀어 주세요’라는 고백 말이다.






결행할 일시를 정한 것은 숫자에서 비롯된 날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내 안에서는 날로 커져가는 조바심이 있었다. ‘그 사람’은 직업상 매일 많은 학생들을 접하고 있다. 학생들이 가진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주고, 만약 문제나 고민이 없다고 해도 어른으로서, 그리고 때로는 대등한 시선에서 다정한 시선으로 말을 건다.

‘그 사람’을 마음에 둔 학생들은 많다. 그것은 어른이라는 점 외에 매력적인 남성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계속 곁에 있고 싶고, 또 둘이서 함께하고 싶다는 소녀다운 감정을 품은 학생들도 많다고들 한다. 나 또한 그런 ‘그 사람’에게 당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저 그 두 글자를 말한다는 것이 지금껏 계속 잘 되지 않았다. 딱 두 글자를 발화하는 것뿐인데, 그 말이 갖는 의미와 그 말을 하고 난 뒤의 IF 분기를 계산하면 할수록 입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만약 마음을 전할 수 없다 해도 최대한 곁에 있고 싶다.

어느새 나는 매일같이 샬레에 들이닥쳐서 ‘그 사람’의 가계부를 관리하는, 마치 시어머니처럼 귀찮은 학생이 되고 말았다. 사실은 더 귀엽게 보이고 싶었는데.

그런 후회를 하면서도 나는 스스로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못해도 두 번은 ‘그 사람’의 일을 도와주러 샬레에 가고 있다. 만약 당번이 아니더라도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 만나러 간다. 특히 요즘 들어서는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물론 세미나 업무도 바쁘지만 절친한 친구인 노아의 도움도 있어서 나는 부지런히 샬레를 찾는다는 목적을 이루고 있었다.

지고 싶지 않다.

빨리 하지 않으면 다른 아이한테 뺏기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 이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한 날짜와 시간에 나의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이대로는 분명 영원히 전하지 못할,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마감 효과.

5월 9일, 8시 9분에 전하는 거다. 고백의 날, 고백의 시간에 ‘그 사람’에게.

“좋아합니다, 사귀어주세요.” 라고.






준비는 빠짐없이 진행되었다. 한 달도 전부터 ‘그 사람’과 약속을 미리 잡아 두었다. “5월 9일만큼은 비워 주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요!!”라고 면전에서 말했고, 그 뒤로도 계속 강조하기 위해 모모톡을 보냈다. 물론 ‘그 사람’은 그런 내 요구를 늘 그렇듯이 시원스레 받아들여 주었다.

“꼭 비워 둘게. 근데 무슨 용건인지는 비밀이야?”라며 ‘꼭’이라는 확답과 함께 이유를 물었다. 물론 용건은 그날이 오기까지 비밀이니까 그 부분은 적당히 둘러대 놓았다. 호기심이 많고, 놀리기를 좋아하는 ‘그 사람’은 그 ‘용건’이 뭔지 계속 생각하느라 그날 업무에 지장이 생겨서 죄송했지만…

결행일, 5월 9일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여러 화장품이나 향수를 써 보고 ‘그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뺨이 근육통에 시달렸다. 삶은 낙지 같은 내 얼굴을 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당일 약속 장소는 34개의 후보지 중에서 골랐다. 유력할 만한 장소를 둘러본 뒤에 최종적으로 트리니티 장미공원으로 결정했다. 5월은 마침 사랑의 상징인 장미가 피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장미공원에는 그 뒤로도 일을 하는 틈틈이 몇 차례 방문해서 최적의 스팟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오전 8시 9분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서 기뻤다.

준비는 완벽하다. 그럴 텐데.

한 달 동안 내 안을 지배하던 것은 불안감이었다. 이제 와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불안감이 두 배, 세 배, 아니, 제곱을 넘어선 질량을 가진 채로 내 몸을 꽉 짓눌렀다.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예전에 히마리 선배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미래 예측 장치가 있었는데, 아무도 없을 때 그 장치에 대해서 물어보려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그냥 별자리 운세를 보는 장치였다. 그때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 같이 있었다 해도.

그래서 두렵다. 내 계산 결과… ‘저쪽도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라는 가설이 기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감에 짓눌릴 때마다 괜찮아,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해 봤잖아. 난 할 수 있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다 보니 어느새 당일인 5월 9일이 되었다.

두렵고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메이크업을 하고 거울 앞에서 마지막 연습을 했다. 지금은 이른 아침, 아직 많은 학생들이 꿈 속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어젯밤에는 꿈을 꾸지 못했다.

심호흡을 하고 몸단장을 마친다. 목적지에 예정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일찌감치 출발한다. 나는 ‘그 사람’에게 모모톡을 보내고 나서 방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내가 있기를.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는데, 비상사태다.

설마 그 애가 이런 짓을 할 줄이야… 언제나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하는 그녀에게 감금을 당할 줄은 몰랐다. 이유는 전혀 모르겠고, 요구하는 것도 없고, 더군다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하지도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물론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리고 감금이라고는 해도 샬레 집무실 소파에 밧줄로 묶여 있을 뿐이다.

감금되고 몇 시간 동안 그녀는 계속 내 옆에 있었지만 대화에는 응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채로 미안하다는 듯한, 그리고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중대한 사정이 있다는 건 명백했다. 그리고 그 사정에 대해서 묻지 말라고 암묵적으로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밧줄을 내 손으로 풀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저는… 아이지만요.”


그녀는 말한다.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어요. 억누를 수 없었던 마음과 이런 행동, 그리고 소중한 사람 둘을 잃어버릴 가능성까지. 그러니 부디 저를 원망해 주세요.”

“원망하지 않아.”


나는 눈앞에 있는 그녀를 돕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내미는 손을 잡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래도 뭐든지 나한테 이야기해 줘. 그러려고 내가 있는 거니까.”


그런 말을 건넨 뒤 샬레를 떠났다.





오늘, 5월 9일은 지난 달부터 계속 유우카가 무조건 비워 두라고 했던 날이었다. 약속 시간은 오전 8시. 그런데 지금 시간은 벌써 12시 전이다. 나는 서둘러 유우카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모모톡을 열었다. 당연히 맨 위에는 유우카가 보낸 메시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선생님, 슬슬 주무셔야죠? 일은 저랑 같이 끝내셨으니까 이제 주무셔도 되잖아요’ 22:05 읽음

‘유우카 덕분이지’

‘으엣!? 어, 뭐 그렇긴 한데요!’ 22:06 읽음

‘이상한 얘기는 그만하시고 이제 자러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22:07 읽음

‘응, 잘 자’




‘선생님, 일어나셨어요?’ 05:35

‘약속 기억하고 계시죠?’ 05:35

‘오늘 8시 정각에’ 05:35

‘트리니티 장미공원 입구로 와 주세요’ 05:36

‘근데 8시가 오후가 아닌 거 아시죠!?’ 05:37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05:37


‘혹시 아직 주무세요? 잠버릇도 이제 슬슬 고치셔야죠’ 06:11

‘뭐 일단 헤어 스틱이 있어서 머리 만져드릴 수는 있는데요’ 06:12


‘선생님, 읽음 표시가 안 보여서 걱정되는데 설마 아직도 주무시는 건 아니죠!?’ 06:15

‘아니… 이른 아침이니까 읽음이 안 뜬다고 해서 확인하려는 무거운 여자처럼 보이기는 싫은데요’ 06:17

‘그냥 좀 걱정이 돼서 그래요. 그럼 8시에 장미공원에서 봬요’ 06:19


‘조금 이르긴 한데 저는 도착했어요. 선생님은 지금 어디실까요?’ 07:30

‘아, 천천히 오셔도 돼요. 그래도 저희 시간은 꼭 지키자구요, 어른이시니까’ 07:32



‘설마 서프라이즈 하시려고요? 메시지 정도는 좀 읽어주세요!’ 07:41



‘혹시 또 무슨 사건에 휘말리신 거예요!? 무사하시다면 답장 남겨주세요!’ 08:00




‘베리타스한테 들었어요. 아직 샬레에 계신다고’ 08:05




‘이제 됐어요!! 선생님이 평소에도 대충대충이신 건 아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08:12




‘죄송합니다’ 09:30



‘지금까지 늘 귀찮게 해서요. 맨날 잔소리만 해서 싫으셨죠. 가계부나 영수증 관리 같은 것들, 주제 넘게 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09:40


‘이제 더 이상 샬레에 가지도 않고, 선생님도 안 만날게요. 지금까지 계속 선생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10:11








온몸에 핏기가 싹 가셨다. 소중한 학생을, 나를 소중히 여기는 학생을 배신하고서 지금 이 순간에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을, 놓치는 정도가 아니라 망가뜨려 버려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

약속을 무단으로 어기는 어른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라는 것도 명백하게 점심 약속 따위가 아니다. 그녀에게 무척 중요하고, 무거운 결심이 담겨 있는 약속이었음이 내게 전해져 왔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마음을 깨뜨렸다는 사실이 십자가가 되어 내 등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나의 방침이고, 성격이었다.


“지금 갈게!!”


그렇게 외치며 절망에 빠진 온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라졌던 혈기가 순식간에 돌아와 가슴에 힘이 바짝 들어갔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지금 당장 그녀를 찾으러 간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한다. 지금 나에게는 그것만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이었다.





그런데, 그녀와 친분이 있어서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있지만 지금은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코유키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몰라요! 그게 아침부터 계속 안 계세요. 일도 다 끝내셨으니까 문제없긴 한데”

“연락도 안 된다구요! 아 진짜~!! 내 일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적어도 세미나로는 돌아가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어봤지만 아무도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무슨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머지않아 이렇게 사람을 찾아야 할 때 최고라 할 수 있을 만한 조직의 인물로부터 모모톡으로 연락이 온다. 베리타스의 카가미 치히로다.


‘선생님, 세미나 회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았어’ 15:35

‘그런데 미안해’ 15:35

‘선생님이 찾고 있다고 그쪽에도 전달했어. 우리 베리타스는 화이트 해커 집단이니까. 사정을 모르는 이상 상대에게도 전달할 수밖에 없어’ 15:36

‘결론부터 말하자면’ 15:36

‘세미나 회계가 어디 있는지는 알았어. 하지만 그 위치를 선생님한테 알려주는 건 사전에 차단되어 있어’ 15:36

‘아,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건 아냐. 그건 걱정하지 마’ 15:36



나는 치히로에게 고맙다는 말만 전하고서 유우카가 무슨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동시에 사건에 휘말려서 답장도 없고 읽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다시금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게 느껴졌다.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야세 유우카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학생이었다. 선생이라는 입장 때문에 학생에게 우열을 매길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이 보내온 시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학생과는 같이 밤낮으로 게임을 하면서 놀고, 어떤 학생과는 같이 바다에 놀러가고, 어떤 학생과는 같이 축제를 즐기고… 다양한 인연을 맺었던 키보토스 학생들 중에서도 유우카는 모든 면에서 특별했다. 인간을 벗어난 계산 능력으로 내 일을 보조해 주고, 늘 한심한 나를 꾸짖어 주고,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항상 곁에 있어 주었다. 내 유치한 장난에 언제나 리액션을 해 주고, 그런 귀여운 반응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다음번에는 무슨 말을 해서 곤란하게 만들까 하는 나쁜 생각을 하고는 했다.

유우카가 샬레에 오는 게 기다려졌다. 그녀가 당번인 날 전날에는 마치 소풍을 앞둔 유치원생처럼 두근거렸다. 그리고 최근에는 당번이 아닌 날에도 그녀가 오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게 그 어떤 서프라이즈보다도 반가웠다.

그런 그녀… 하야세 유우카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울다 지치고, 걷다 지쳤다.

나는 대체 뭐 하고 있는 걸까. 뭘 제멋대로 일방적인 호의를 가져 놓고서는, 혹시 저쪽도 나한테 호감이 있나? 이딴 망상을 하면서 혼자 신나고, 막무가내로 약속을 잡고, 일방적으로 배신감을 느끼고…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었구나.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져 있었고, 상당히 먼 곳까지 와 있었다. 지금 아는 사람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얼굴을 들 수가 없을 만큼, 지금 나는 분명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학생이 없는 쪽으로 울면서 계속 걸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정처없이 걷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아는 장소에 도달하고 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예전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 장소였다.

라멘 전문점 ‘라멘 센쥬기쿠’.


“어서 옵쇼!”


이마의 땀을 닦는 척 얼굴을 가리면서 문을 열자, 친절한 종업원이 카운터 너머에서 말을 건넨다. 가게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식권 발권기 앞에서 주문을 선택한다. ‘이에케 라멘* 곱빼기’ 버튼을 망설임 없이 누른다. 지금은 그러고 싶은 기분이야. 그리고 토핑으로 ‘비계 넣기’, ‘차슈 추가’, ‘버터’ 버튼도 누른다. 오늘은, 지금은 뭐가 됐든 나 자신을 달래고 싶다. 노력한 나를 위한 보상… 아니, 위로라고 해야 할까.

*라멘의 한 종류. 돈코츠쇼유에 굵은 면, 계유를 쓰고 데친 시금치, 김 등이 올라가는 진한 라멘

가격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평소에 그 사람―지금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그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면서 지출을 두고 설교했었는데 이제 그런 건 상관없다.

식권 4장을 들고 만일을 대비해서 입구에서 보이지 않는 안쪽 자리에 앉는다.

식권을 종업원에게 건넨다.


“취향에 따라 선택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취향’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안 돼, 지금은 마음이 예민해. 종업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리고 떨리려 하는 목소리를 억누르면서 주문을 말했다.


“진하게, 많이, 면 딱딱하게.”

* 원문은 라멘의 ‘お好み’를 묻는 문장인데, ‘취향’이라는 뜻 말고도 ‘좋아함’이라는 뜻이 있음


셀프 코너에서 냉수를 따르고, 이런 대기시간에 평소 같았으면 꺼내들었을 핸드폰을 꺼내지 않고 나는 그저 뚫어져라 카운터 테이블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라멘집 ‘라멘 센쥬기쿠’는 그 사람이 추천해 준 가게였다. 예전에 소소한 잡담을 나누던 중에 ‘잘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계산, 내 절친은 기억과 기록. 학생들, 특히 밀레니엄 학생들은 저마다 독특한 특기를 가지고 있다. 그 사람은 아무래도 그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나도 뭔가 그런 게 있으면 멋있을 텐데…”


아니, 그냥 멋진 척 하고 싶으신 거 아닌가요. 그렇게 지적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아, 근데 요즘 들어서 생각하는 건데…”


그 사람에 대해서라면 뭐든지 알고 싶었던 나는 그때, 손에 쥔 서류의 탄약 숫자를 계산하는 척을 하면서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숨은 맛집을 잘 알아.”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게 특기라고 할 수 있나…? 그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직업상 키보토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이동 중에 외식할 일이 많잖아… 어? 아니, 그야 지출이 많아지기는 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조, 좀 봐 줄래? 아, 알았어. 그래서 있지? 처음에는 리뷰 평가가 좋고 흔히 말하는 ‘맛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요즘에는 그러면 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굳이 리뷰 수가 적은 가게를 찾아다니거든.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르는 가게를 공략할 때의 그 두근거림. 이게 너무 좋더라고! 그래서 ‘숨은 맛집’을 몇 군데 발굴했어. ‘미식연구회’ 라고 알지? …그, 그렇지. 뭐 좀 과격한 면도 있는 애들이긴 한데… 아무튼 내가 ‘숨은 맛집’ 정보를 알려주니까 그날 중에 다 같이 먹으러 갔나 봐. 맛있다고 하더라. 아하하, 그랬더니 되게 기쁜 거야. 그 미식연구회한테 인정받았구나 싶어서… 어라, 왜, 왜 그래? 내가 뭐 말실수라도 했나…?

…그때 들었던 말을, 내 가장 친한 친구만큼은 아니더라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목소리, 아이처럼 그때그때 바뀌는 표정, 그 전부를… 그리고 나 자신이 느꼈던 두근거림과 설렘, 그 사람에 대한 감정,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 대한 질투심… 그런 것들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도 당연히 그 이야기를 들은 날에 추천받은 곳 중에 한 군데를 찾아갔다. 그곳이 바로 이 ‘라멘 센쥬기쿠’였다.

학생들이 거의 오지 않을 것 같은, 중심가에서 떨어져 외진 곳에 덩그러니 있는 가게였다. 처음 왔을 때는 어떻게 이런 가게를 용케 찾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들어갈 생각을 했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긴장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일단 평범한 라멘을 주문했다. 그때는 건강을 생각해서 ‘연하게, 적게, 면 보통’으로 주문했다.

그렇게 나온 라멘을 먹고 깜짝 놀랐다. 진짜 맛있어… 물론 그 사람을 의심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평가 수가 적은 가게 중에서는 맛있는 편이라는, 일종의 편견이 작용한 평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이 가게가 밀레니엄 근처에 있었으면 매일 줄을 서서 기다렸을 거라는 확신이 들 만큼 내 입맛에는 맞았다.

그런데 추천받은 가게에 갔다는 사실을 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그 사람이니까 분명 좋아하겠지만, 이런 외진 곳에 있는 가게에 굳이 그날 당장 찾아갔다는 게 좀 무거운 여자 같기도 하고, 할 짓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 미식연구회 사람들한테 대항하려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뭐랄까 그, 먹보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도 않고…

그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내 라멘이 나왔다.


“여기 이에케 라멘 곱빼기, 비계, 차슈, 버터, 진하게 많이 딱딱하게!”


…주문 내용을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는데. 가게 안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눈앞에 놓인 기름기 가득한 요리에서 피어오르는 김부터 먼저 들이마신다. 배가 고파지는 냄새다. 본격적인 코스 요리에서는 식욕을 돋우기 위해 아페리티프(식전주)라는 것을 먼저 내놓는다는데, 이 라멘이라는 음식에는 그런 건 필요 없다. 내 배는 순식간에 식욕이 극에 달했다.

오늘만은, 지금만큼은 평소의 ‘하야세 유우카’로 있을 수 없다. 초라하고, 필사적이고, 욕망에 충실하게 지저분한 한 명의 아이이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테이블에 놓여 있는 마늘 용기 뚜껑을 열었다. 마늘 특유의 톡 쏘는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자 식욕이 100%를 넘어 120%로 상승한다. 숟가락에 듬뿍 담아서 먼저 차슈 위에 툭, 툭! 뿌린다. 한번 더, 이번에는 국물에 녹아들게 퐁당!

마늘은 하루 권장 섭취량(하루 2쪽, 10그램 정도)이 있는데 체취가 심해져서가 아니라 장내의 이로운 균을 죽이기 때문이다. 내가 넣은 마늘은 그램으로는 계산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니 무조건 권장 섭취량을 초과했을 것이다.

그럼… 나는 합장을 하고 나서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올린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었다면 적은 양을 찔끔찔끔 먹었을 테지만 오늘은 다르다. 주위에는 주방 안쪽으로 들어간 가게 주인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대량의 면을 후후 불어 식힌 다음…

후루루루룹!!!


“으음!!!”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진한 국물과 진한 기름, 그리고 녹아든 비계가 폭력적으로 입 안을 지배한다. 아아~!! 이, 이렇게 맛있다니… 방금 전까지 느끼던 절망과 실망감, 비참함이 지금만큼은 맛있다는 감정으로 덮어씌워진다.

나는 입에 넣은 면을 몇 번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킨다. 다음, 다음, 다음!

면 다음에는 국물이다. 아니 국물을 먼저 마셨어야 했나… 아무튼 이 진한 국물을 마셔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숟가락을 가라앉히자 기름이 떠다니는 진한 갈색 액체에 하얀 비계 덩어리가 점점 숟가락으로 들어온다. 후후 불어 조금 식힌 다음…


후루루루룹!!!


“오옷!!!”


평소보다 기름이 많이 들어가서 걸쭉한 국물이 뺨 안쪽을 간지럽혀! 오랜만에 먹는 라멘, 그리고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폭력적인 맛에 내 몸의 세포들이 기뻐하고 있어! 내가 그, 그런 성… 아니, 이게 아니라 그, 그런… 취향이었던가!?

그 다음부터는 마치 그 사람의 지휘에 따라 싸우는 데카그라마톤 전투 같았다. 지시가 연이어 내려지고, 정신도 없고 생각할 겨를도 없어서 모든 판단을 지휘자에게 맡기던 그 경험. ‘배리어를 펼쳐!’, ‘전진!’, ‘내가 신호하면 일제히 공격!’,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번에는 다른 점이 있다면 지휘자가 내 본능이라는 점이다. ‘면!’, ‘다음은 국물이다!’, ‘차슈를 베어물어!’, ‘여기서 멘마*!’, ‘면 먹고!’, ‘국물!’, ‘시금치 먹어!’, ‘차슈랑 마늘에 시금치까지 한번에 입으로!!’

*라멘에 고명으로 들어가는 죽순

후루룹! 스으으읍! 냠! 우물우물! 후룹! 꿀꺽. 스으읍, 후룹! 냠! 하아… 하아.. 덥석!

모든 것들이 씹을수록 진한 감칠맛이 넘쳐난다. 나는 식사 전투로 인한 플로우 효과도 있었기에 행복감에 휩싸인다. 분명 트리니티 학생이었으면 머리 위에서 천사가 나팔을 불고 있을 것이다. 밀레니엄 학생인 내 머리 위에서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고속으로.

반쯤 먹었을 때 투명한 컵에 담긴 냉수를 꿀꺽! 마셔서 목구멍을 식힌다. 아, 이거 레몬수네. 입 안을 지배하던 감칠맛이 옅어진다. 그렇다, 희석된 것이다. 행복이 줄어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다시 원할 뿐. 지금의 난 욕심을 부려도 괜찮다.

그릇을 양손으로 잡는다.

후룹, 후루루루룹!!

꿀꺽, 꿀꺽… 꿀꺽…


“푸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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