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찬역 연옥편 제2곡 중 76행부터 시작하는

그 축복받은 영혼들은 하나같이

내 얼굴을 바라보는 데 몰두하여

정화하러 가는 것을 잊은 듯하였다.

그중 한 영혼이 앞으로 나서더니

커다란 애정으로 나를 껴안았고

나도 감동하여 똑같이 그를 껴안았다.

오, 겉모습 외에는 헛된 영혼들이여!

내 손은 세 번이나 그를 껴안았지만,

그대로 내 가슴에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 부분을 을유문화사판 최민순 역본이랑 비교해 보니,

이상하게도 김운찬역에 있는 "오 겉모습 외에는 헛된 영혼들이여!" 이 부분을 비롯한 몇 행이 을유문화사판에는 빠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 최민순 신부님이 몇 행을 빼고 번역하셨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을유문화사 구판을 찾아 비교해보았더니,

구판에는 신판에서 누락된 몇 행이 정확히 번역되어 있는 것이었다.......

혹시 을유문화사 가로읽기판 신곡을 읽은 사람은 이 부분을 참고하도록.

최민순 신부님은 역시 전설이다......

틀린 것은 신부님이 아니라 출판사였다.

신판 편집을 대충 했는지, 이런 누락들이 앞에서도 몇 군데 발견되었었는데,

이를테면 지옥편 20곡의 마지막 한 행도 가로읽기판에서는 누락되어 있었다.

"그이는 내게 이리 말하시고 우리는 이냥 걸어가느니라" - 이게 지옥편 20곡의 누락된 마지막 한 행.

이 부분을 잘못 읽은 독자들은 다른 독자들도 널리 알 수 있도록 추천해주길 바란다.

즐독!

+ 구판 사진 마지막 부분에 "저 허깨비는 반만 웃고 물러가고"를 신판은 "저 허깨비 미소짓고 물러가고"라고 바꾸었네

"반만 웃는 것"이 "미소"라는 뜻인 듯. (김운찬역 - "그 영혼은 미소 지으며 뒤로 물러섰고")

원문은 per che l’ombra sorrise e si ritrasse,

이탈리아어를 모르지만 사전을 찾아보면

sorrise의 동사 원형인 sorridere가 미소 짓다, 생긋 웃다, 생글거리다

접두사 sor를 뺀 rìdere는 웃다, 조소하다, 희롱하다.호의를 나타내다, 유리하다.코웃음치다.....등 뜻이 긍정적, 부정적 뉘앙스가 섞여 있는데

sorridere를 뭔가 기묘한 미소라고 해석해서 "반만 웃고"라고 처리했나 봄......? 진짜 스타일리쉬한데?.......

그런데 바꾸기 전이 더 나은 거 같은데....? 왜 디테일을 죽이는 방향으로 편집이 이루어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