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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독후감(2)

EBS광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6.11 21: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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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공유덕이 향한 목적지는 압록강입니다. 명나라는 반란군이 압록강으로 진입하고 있으니 이를 요격해서 진압을 막아달라고 요청합니다. 조선군은 즉시 요격을 준비합니다. 문제는 조선에 도움을 요청한 동맹국이 명나라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시점에서는 후금도 어엿한 조선의 동맹국입니다. 공유덕에게 군량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담은 후금의 국서가 조선에 보내집니다.

 

조선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습니다. 명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유덕군을 요격한다면 이건 후금에 대한 적대행위기가 됩니다. 그렇다고 후금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유덕군을 지원하게 되면 이건 그야말로 300년 동맹인 명나라에 대한 배신 행위입니다. 명나라가 간만히 있지 않을겁니다. 그렇다고 양쪽의 요청을 모두 거절하는 것도 길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조 정권은 친명배금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후금과의 군사적인 대결이나 모험을 섣불리 벌이는 것은 철저하게 회피를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가 명청교체기라는 것입니다. 조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조선 외부에서의 힘의 교체가 한반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던 시점이었습니다. 이괄의 난 이후에는 어렵게 잡은 권력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외교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새로이 제시하기가 근본적으로 곤란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임스 에드워드 호어(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전 평양 주재대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에게 중립이란 아주 위태로운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중립은 당사국인 그 나라에게만 달린 문제라기보다는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국가들에게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국가들이 잘난 듯이 날뛸 때면 그냥 계속 날뛰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 의해 지배되기 전의 한국도 많은 부분에서 독립적이고 중립을 지키길 바랐습니다. 서양, 중국을 포함한 어떤 세력의 개입도 원하지 않았었죠. 그렇지만 패권국들은 침략을 했고, 서양은 한국을 개방시켰다고 말하지만, 한국은 개방을 원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작은 국가들은 그런 취급을 많이 받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도록 강요를 받기 일쑤입니다.”

 

칼 아이켄베리(스텐퍼드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특정한 지역에 중간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간국은 당연히 전쟁에 휘말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해서 전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공격적인 주변 국가와, 약탈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중립 정책을 내세워 싸우지 않겠다는 국가가 있다면 이를 악용하는 약탈자들이 존재합니다. 야생의 정글에 사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슴은 호랑이에게 싸우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물러서지 않고 공격할 것입니다.”

 

중립이 가능하려면 강대국이 약소국의 중립을 용인해주어야 합니다. 양다리나 눈치 보기 차원의 중립은 오히려 약소국을 위기로 몰아넣을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벨기에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당시 벨기에는 독일 입장에서 보면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한 가장 좋은 공격 루트였고,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반대로 독일을 공격하기 위한 최상의 루트였습니다. 또한 영국 입장에서도 벨기에가 적대국 손에 넘어가면 본토가 위협 받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한반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지옥이었습니다. 때문에 벨기에는 1830년 독립하자마자 중립을 선포하고 어느 쪽 동맹에도 가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하지만 주변국들은 벨기에의 중립을 존중해줄 마음 같은건 없었고 그 사실은 19171차 세계대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조선으로서는 결코 오지 않기를 바랐던 순간이 기어코 오고야 말았고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나라냐? 후금이냐? 결국 조선은 명나라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누가 승자가 되는지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신생 국가인 후금이 조만간 명나라를 대체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참으로 애처로운 사실은 조선군까지 동원해서 요격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공유덕의 수군이 후금으로 귀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명나라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등주의 수군함대와 홍이포 등의 최신 화기들이 통째로 후금에게 굴러들어간 후로 힘의 균형은 확살히 후금 쪽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조선이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강화도 피난도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후금에게 수군이 생겼으니까요. 후금은 명을 치기 전에 뒤탈이 없도록 먼저 몽골을 완전히 멸망시킵니다. 홍타이지는 황제가 되고자 제위를 준비했고 이 황제 즉위식에 조선의 사신인 나덕헌과 이확이 참석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황제 즉위식에 참여해서 절을 하라고 하는 요구를 거부하고 저항하다가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죠. 그때 명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국가의 대원칙이고 그 대원칙은 형장에 파견된 이확이나 나덕헌 같은 외교관이 개인적으로 어기거나 달리 행동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의 생각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국가 운영의 대원칙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절하지 않겠다고 하는 고집을 부렸던 것입니다. 후금()이 보기엔 인조 정권은 명분론의 입장에 서서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죠. 결국 두 사람은 절망적인 국서를 받아오게 됩니다. 홍타이지는 작심한 듯 그 동안 조선의 행동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비난했고 공유덕 군에게 총격을 가한 일을 거론하며 조선을 협박합니다. 홍타이지는 인조에게 왕자를 인질로 보내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쳐들어가겠다며 양자택일을 요구합니다.

 

참람하게도 황제를 칭한 오랑캐의 국서를 그대로 받아온 나덕헌과 이확을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황제를 칭한 오랑캐의 국서를 그냥 받아왔다는 것은 상대방의 황제 즉위를 수동적으로 용납한 것이며 두 사람을 살려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냉정해져야 할 순간에 이런 식으로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보고싶은 현실만 보는 눈뜬장님이 되버린 겁니다. 신라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었던 정확한 눈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삼성(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한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이 이분법을 통해서 보는 것만이 진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역사는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려가 초기에 그토록 야만시했던 거란은 건국 초기부터 한인들, 중국 문명에 익숙한 한인들을 많이 포용해서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었어요. 그들은 한국보다 더 일찍 자신들만의 문자를 창안하고, 그 문자를 이용해 시 창작 문화도 꽃피웠습니다. 또한 거란 초기 지배자들은 중국 사회보다도 더 혁신적인 정치 사회적인 모델을 개발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것이 거란을 강대국으로 만든 요인이었죠.

 

후금도 그렇습니다. 조선 위정자들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에 기초하면 굉장히 야만적인 사회지만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후금은 스스로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정치 사회적인 모델을 창안해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강력한 군사력으로만 강대국이 된 것이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할 수 있는 그 저변의 혁신이 있었던 것이죠.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은 다른 사회들을 야만시할 뿐 아니라 그 사회들이 내면적으로 얼마나 성숙하고,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폄하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내면에 축척되어 가는 힘의 기초, 나아가 들이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냩잡아보게 되는 거죠.

 

외부에 대한 섣부른 평가도 문제지만 스스로에 대한 오만한 평가를 내릴 수도 있어 문제입니다. 다른 집단을 그저 무시하면서 그들에 대한 군사적인 대비도 게을리 하게 됩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 1636년 청군 진영에 파견되어 그들을 살피고 온 윤휘의 보고를 보면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청나라에 대해 얼마나 어이없을 정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오랑캐의 성품은 몹시 탐욕스러운데 어찌 된 일인지 피난민의 물건을 일절 약탈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대오는 아주 잘 정돈되어 있고, 전마는 멀리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괴이하고 흉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바라볼 때 항상 모든 일이 끝난 다음 그 사실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후 벌어진 역사의 진행을 너무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병자호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나라는 조만간 명나라를 정복하고 천하를 통일할 정도였으니 압도적으로 강할 것이고 조선군은 당연히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죠. 하지만 당시 시점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명나라와 청나라의 대결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청나라가 공세를 펴고 있었지만 산해관은 물론이거니와 영원성조차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자성의 난으로 명나라가 먼저 망하지 않았다면 제풀에 꼬꾸라지는 쪽은 청나라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실제로 예일대 피터 퍼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연이은 경제난으로 인해 겉으로는 강력해 보이는 청나라가 오히려 위기에 빠져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공격도 절대로 장기전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명나라에게 배후를 공격 당해 그 동안 쌓아올린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테니까요. 조선입장에서 보자면 이 전쟁에서 꼭 이기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항복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청나라는 명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조선을 공격한다는 계획을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마치 고려시대의 거란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당시 조선이 그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애초부터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 무너진 방어체제를 재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던 시기였습니다. 1619년 사르후 전투로 1만이 넘던 병력을 모두 잃었고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을 거치면서 군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도 있었습니다. 정묘호란으로 또 다시 군사력은 악화되고 1636년 서북면의 총병력은 도병마사가 주둔한 안주의 수천 병력이 전부인 상태로까지 악화됩니다. 결론적으로 청나라와 맞대결을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인조와 그의 신하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명분론에 입각한 흥분한 감정만을 앞세워 청나라와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말로만 전생불사를 외치던 인조는 곧장 강화도 천도를 준비합니다. 물에 약한 유목민의 특성만 믿고 섬으로 도망칠 생각에만 골몰해 있던 것입니다. 그래도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있었던 일부 척화파 대신들이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대사간 윤황과 부제학 정온은 툭하면 강화도로 도망갈 궁리를 하는 인조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먼저 윤황은 인조에게 강화도로 들어가려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요구합니다. 정온의 주장은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는 도원수를 의주로 보내 압록강을 방어하고, 결사대를 뽑아 의주를 수비하는 한편 인조는 직접 개성으로 북상하여 군대를 격려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왕실과 공신들을 호위하느라 한양에 배치된 정예병들을 최전선에 보내 전쟁을 대비하자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척화파 대신들이 이러한 주장을 펴자 놀랍게도 대표적인 주화파였던 최명길이 이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후금 혹은 청과의 관계에서도 일관되게 외교적 해결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최명길이 전쟁을 목전에 두고도 인조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태도를 보이자 차라리 적극적으로 싸울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하지만 인조의 대답은 정온이나 최명길의 주장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우선 인조는 자신과 공신들을 호위하고 있는 정예병을 전선으로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송유진의 난이나 이몽학의 난 같은 반란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불안해하던 인조는 자신이나 공신들의 호위병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인조의 대답은 결국 그대들이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라는 식으로 상황을 호도하거나 연소한 대간들이 군사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함부로 입을 놀린다며 화를 내는게 전부였습니다.

 

인조의 이런 안일함과는 정반대로 홍타이지는 목숨을 걸고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합니다. 최소한의 방어부대만 남겨두고 청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병력을 동원합니다. 새로 복속된 몽골의 기마군단도 대거 동원하고 귀순한 공유덕과 경중명을 비롯한 한족 출신들도 참가시켰습니다. 이로써 만주족 7, 몽골족 3, 한족 2망 등 도합 12만 대군이 동원됩니다. 정예 병력을 따로 선발하여 상인으로 위장시킨 후 전쟁 직전에 조선으로 침투시킵니다. 청나라 군대가 한양을 공격할 때 성내에서 호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정도로 철저히 준비를 마친 홍타이지는 압록강 물이 얼자 예고한 대로 군대를 움직입니다. 청군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였고 임경업이 지키는 백마산성에는 위협구만 한 번 날리고는 곧바로 남하했습니다. 최소한의 근거지를 확보하기 위해 곽산과 정주 등만 점령한 후 어떠한 산성이나 요새도 공략하지 않고 오직 남쪽을 향해 달렸습니다.

 

결국 강을 건넌 지 5일 만에 청군의 선봉대는 이미 개성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비정상적인 속도전은 단지 청나라 군대가 강해서만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청나라는 많은 것을 감당해야합니다. 청나라도 조선만큼이나, 아니 조선보다도 더 절박한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청나라가 사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을 때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전쟁이 벌어질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고 인조는 도원수 김자점에게 2만 병사를 주어 적을 막도록 했습니다. 126일 대규모 청군의 내습을 알리는 봉화가 의주에서 올라왔지만 김자점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김자점의 대응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낸 부하 군관이 이미 적병이 평양을 지나고 있다고 보고하자 오히려 화를 내며 군관을 베려고 했습니다. 거듭해서 동일한 보고가 올라오고나서야 부랴부랴 한양에 보고를 올립니다. 청나라가 쳐들어왔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시점은 이미 적군이 황해도를 지나던 1213일이었습니다.

 

영의정 김류는 지금 당장 강화도로 들어가야 한다며 인조를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인조는 청나라 군대의 속도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조금 더 상황을 파악하자며 주저했습니다. 결국 이 주저가 전쟁의 양상을 또 한번 결정짓습니다. 다음날인 1214일 적병이 이미 개성을 지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입니다. 인조는 그제야 종묘의 신주를 수습하고 강화도로 향했지만 김포 방면으로 밀고 내려온 청나라의 선봉대가 강화도로 가는 길을 차단해 버렸습니다. 애초부터 한양을 사수한다는 계획 따위는 없었던 만큼 한양 성곽을 두고 청나라 군대와 싸우는 것은 불가능 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최명길은 자신이 청군의 진영으로 가서 강화교섭을 명분으로 시간을 끌테니 그 사이에 남한산성으로 피하라고 건의를 합니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인조는 건의를 받아들였고 최명길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이 하루의 말미 덕에 조선 정부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부터 벌어진 일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납니다. 처음으로 되돌아가봅시다. 조선은 과연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광해군 체제가 유지되었다면 무사했을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강대국과 강대국의 충돌이 치열해질수록 약소국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양자택일을 강요합니다. 사생결단의 시기가 오면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는 강대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런 강요는 강대국이 민주적이냐 독재적이냐 하는 것과도 무관합니다. 그리스 철학의 발상지였던 아테네도 국가의 이익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행동했습니다. 약소국이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찌됐든 힘과 무기를 갖추는 것입니다. 중립을 이루어낸 스위스를 예로 들며 이삼성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2차 세계대전을 예로 들자면 벨기에, 체코, 헝가리, 폴란드 같은 경우는 독일의 팽창주의 침략 전쟁의 전략적인 루트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설사 중립을 원해도 지켜지기가 어려운 측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소국의 중립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서 스위스의 경우는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스위스가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1815년 파리 조약을 통해서 영세 중립국으로서 일찍부터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다는 점이 있고 또 일관성 있게 그 전통을 이어왔다는 것이 일단은 중요한 요소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위스가 국제 조약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중립을 지켜낼 만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 수단을 갖추기 위해 꾸준히 일관성 있게 노력했고, 또 중립이라는 외교적인 대원칙을 지키기 위한 굳건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것입니다. 스위스는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22만 명의 군대가 국경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침략 주체가 되는 히틀러의 나치스 정권이 등장하는 1993년부터 스위스는 자국의 국경 방어에 더욱 대규모로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 자기 방어력을 키운 것입니다.

 

이러한 최소한의 군사적 방어력이라는 기반 위에, 2차 대전 중 나치스 공군뿐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전투기들도 스위스의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등 일관성 있는 중립 정책을 지켰기 때문에 지금껏 스위스가 중립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립을 선택하거나 동맹을 선택하거나 하는 것은 하나의 옵션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을 지켜낼 수 있는 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보통 강대국에 대해 자주성을 지킬 만한 자기방어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면 강대국과 대결한다는 것이 가능한 발상이냐며 오히려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반도가 전쟁을 걱정해야하는 순간이 특정 강대국이 패권을 확립한 이후보다 오히려 두 개의 강대국이 대립하는 패권교체기일 때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이렇게 두 강대국이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상황은 약소국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비교적 적은 전력으로도 얼마든지 국제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거란전쟁 이후의 고려를 보면 당시 고려의 군사력은 결코 거란에 대해 공세적인 작전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거란이 함부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힘으로 증명했기에 거란과 송 사이에 자주적으로 외교관계를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이 광해군 시절 정도의 군사력만 서북면에 배치하고 있었어도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며 명나라의 반격을 두려워하던 홍타이지가 쉽게 조선 정벌을 결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광해군에 비해 인조가 비난 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중립을 유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서북면의 군사력을 약화시켜서 적의 침입을 용이하게 해준 일일 것입니다. 조선이 병자혼의 비극을 막지 못한 이유는 결국 중립의 부재때문이 아니라 무기의 부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병자호란의 비극으로부터 우리가 배워야할 진정한 교훈 역시 중립의 중요성이 아니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의 중요성입니다. 그리고 이 교훈은 당연하게도 400년 전 조선에만 유효한 교훈은 아닐 것입니다.

 

간간히 뉴스를 챙겨볼 때 마다 국제정세는 다시 혼란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싫어도 알게됩니다. 러시아의 수장을 그저 미친 전쟁광으로 취급하며 눈을 감아버리면 당장은 편하겠죠. 중국이 한국의 문화를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을 그저 개가 짓는 것 쯤으로 여기고 내버려두는 것도 참으로 편안한 일입니다. 한국의 오랜 동맹국인 미국의 요구를 들어 사드를 배치 해야할 것인가 수출 최대국 인 중국의 눈치를 보며 그만 두어야 할 것인가 양자택일의 순간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이 평화가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제 정확한 눈을 가져야합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제겐 그런 정확한 눈은 없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라고 하면 그저 웃긴 짤방이 올라오는 곳, 황사의 나라, 짝퉁의 나라, 싸구려의 나라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네이버에 중국이라는 탭이 따로 생성되고(지금은 없어졌습니다.) TV에서는 온통 중국어학원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중국의 상승세가 지속되더니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미국과 무역전쟁도 불사하는 강대국으로 우뚝 솟아있었습니다. 떠오르는 신흥 강국 후금과 전통의 강국 명나라의 충돌이 다시금 재현되는 기분입니다. 어느편에 서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먼저 눈을 가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2년전 정말 우연한 기회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백종원이 중국으로 사업을 넓힐 때 초창기를 잠깐 함께했으나 나중에 독립하여 사업을 차린 사람이라고 합니다.(사업을 말아먹게 된 썰은 너무나도 재밌었습니다.) 그 분을 통해 듣게 된 중국 상하이의 모습은 정말 상상도 되지 않는 최첨단 도시였습니다. 막연하게 알던 싸구려의 나라 중국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인조 조정의 조선인들의 청나라에 대한 편견을 욕할 처지가 못되는 신세였습니다. 당시에도 반중감정이 달아오르던 시절이라 합석해있던 인원들이 그래봤자 짱깨 아닙니까?’하는 어리석은 발언을 했다가 뭘모르는건 오히려 너희들이라며 중국에 대해 조금은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차분하고 조목조목 현실을 짚어주며 하나하나 반박해주며 우리들의 편견을 박살내주시니 모두가 할말을 잃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내심 저는 끝났네. 우크라이나 GG쳐야지 뭐 어쩌겠어하는 단순한 생각 밖에 가지지 못했습니다. ‘정확한 눈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많이 읽어보고 생각해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평화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제일지 모를 격정의 시기가 반드시 다시 올 것입니다. 그런 시기가 왔을 때 우리 모두가 정확한 눈으로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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