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은 책은 '소련의 붕괴를 예측한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엠마뉘엘 토드가 저술한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다.

유럽과 미국의 학계, 정계에서 논란의 아이콘이 된 엠마뉘엘 토드는 독특한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자처하면서도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에 대해 탐탁지 않아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트랜스젠더리즘'이라는 다소 악의적인 용어를 쓰며 비하하기도 했다. 이는 슬라보예 지적 역시 어느정도 공유하는 성향이다.(사실 유럽 정계에서도 비슷한 색채를 지닌 정당들이 있다. 그리스의 공산당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구좌파'이며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68혁명을 거치며 완성된 신좌파와 완전한 대립관계라고 요약할수는 없다. 정치판에서야 저놈 아니면 그놈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이념이나 성향이 편의적으로 분류되지만 학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토드는 LGBT에 대해 적대적이지만 여성인권 증진과 무슬림, 흑인 등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에게 매우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토드가 LGBT에 적대적인 이유중에서는 서방 국가들이 LGBT 인권 외교를 고집하면서 보수적인 아랍 국가들의 문화를 무시하는것에도 있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보자. 책의 제목은 분명 도발적이다. 핵심 주제와 중심은 분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지만 토드는 그 이전부터 일관된 생각을 견지해왔다. 다음은 그의 주장들을 간추린 것이다.

-미국과 서유럽은 우크라이나를 무장시켰다. 이는 사실상의 나토 확대이며 푸틴과 러시아는 그런 '지정학적 위협'에 대응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는 국가로 존재한적이 없다. 우크라이나의 영토는 언제나 분열되어 있었으며, 하나의 국가로 성립한적 또한 없다.

-친EU파는 네오나치다. 그들은 러시아를 증오하기 때문에 서슴없이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와 손을 잡았다.(토드가 말하는 네오나치란 아조프 여단과 극우 정치세력 프라빅 섹토르를 말한다)

-러시아의 여성 인권은 매우 높다. 러시아는 남녀 부부간 나이차이가 거의 나지 않으며, 대학 진학률도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 반면에 중국은 봉건적 유교 사상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 인권이 낮다. 또 미국과 서유럽의 여성인권 역시 러시아보다 형편없다.

-미국이 자랑하는 항공모함은 실제 전쟁에서 효과가 없으며, 러시아가 보유한 초음속 대함미사일의 사냥감에 불과하다. 또 전쟁은 첨단 무기의 보유 유무가 아니라 간단한 원리를 가진 병기를 대량 생산하는 쪽이 승리한다.

이 주장들만 봐도 토드가 아주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에는 온갖 사상, 이념, 분석이 혼재되어 있으며 파벌적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장 중 몇가지는 그럴듯 하지만 몇가지는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서방측이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세력에 대해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꿨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아조프 여단은 2022년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 이전에는 서구 구 언론의 주적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다. 그랬던 서구 언론들이 러시아의 침공 이후로 180도 태도를 바꾼 것이다. 물론 아조프 여단 스스로 나치를 추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지만, 아무리 극단적인 사람이라도 스스로 그것을 밝히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전쟁이 점차 격화되면서, 심지어 아조프 여단이 아닌 일반 우크라이나 병사들까지 몸에 새긴 하켄크로이츠나 슈바르트존네 같은 나치의 상징들을 자랑하고 다닌다.(이는 국내 언론에도 몇번이나 포착되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 중 다소 황당한 주장도 있다. 가령 러시아 여성은 대학교 진학율이 높으니 러시아의 여성 인권은 높다는 부분이다. 중동에 대해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학교 진학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 그렇다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인권 강국이 되는것은 아니지 않은가?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엠마뉘엘 토드가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날카로운 안목이 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러시아의 T-90M 같은 최신예 전차와 극초음속 미사일, 4세대와 4.5세대 전투기보다는 몇백달러짜리 자폭 드론이 더 많은 전차를 부수고 더 많은 적병을 살해했다.

러시아가 초음속 대함 미사일을 가지고 있으니 미국의 항공모함이 별 것 아니라는 건 당혹스러운 주장이지만, 수가 적은 최첨단 무기보다는 수가 많은 B급 장비들이 전장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많이 동원 된 전차는 T-72다. T-90M 전차는 러시아의 제1근위전차군이 궤멸된 이후로 전선에서 대규모로 돌아다니지 않고 있다. 그런가하면 러시아는 놀라운 포탄 생산력을 이용해 하루에만 1만발 이상의 포격을 퍼붓고 있기도 하다.

다만 저자인 토드 역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토를 정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우크라이나의 땅은 엄청나게 넓으며, 최대 50만명 규모로 예상되는 러시아 침공군으로써는 그 넓은 지역의 치안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영토 욕심을 부리다가는 자칫 중일전쟁 당시 수백만 군대를 동원하고도 점령지를 유지하는데 애를 먹은 일본제국의 전철을 밟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러시아보다 훨씬 암울하다. 우크라이나의 인구 20% 가량이 해외로 유출되었으며, 최전선에는 폐결핵을 앓는 50대 병사가 소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다.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러시아 포병대에 의해 우크라이나의 많은 도시들이 타격을 입었고, 우크라이나에게는 그 모든 지역을 복구할 돈이 없다.

명장이라 불리던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잘루즈니는 젤렌스키와의 정쟁으로 해임당했고, 새로운 총사령관 자리는 시르스키가 채웠다. 한편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며, 탈영병은 늘어나고 있다. 누가 전쟁의 승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시민인 나로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민 개개인이 국가를 위해 참혹한 피해를 입는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