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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진화하는 언어> 외 2편 완독

안녕안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5.25 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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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언어>

 

언어란 무엇인가? 수많은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탐구한 주제이며 그 탐구의 수단이 되는 것. 우로보로스적 운명을 지닌 것. <진화하는 언어>는 그 뱀이 지나간 자리를 살피며 이 운명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언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말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말 없는 짐승들에게도 발성 기관은 존재한다. 특정한 발성 패턴으로 정보를 교환한다는 점에서 소리를 내는 모든 동물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압도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고도화된 언어를 가진다. 왜일까? <진화하는 언어>는 이야기한다. 다른 동물들의 언어는 종 내부에 자리 잡은 생물학적 습성이지만, 인간의 언어는 오직 문화적 산물일 따름이라고. 갓 태어난 아기 사슴이 어미의 자궁에서 나와 양수가 채 마르기도 전에 흙바닥 위에서 혼자 일어나 걷고 뛰는 반면, 인간은 일어서는 데에만 몇 달이 걸린다. 동물들은 꽃봉우리를 맺고 태어나 그 꽃을 피워내는데, 갓 태어난 인간이 품은 것이라고는 씨앗 뿐이다.

 

<진화하는 언어>는 언어에 대한 기존 학설들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인간의 언어가 문화적 산물이라는 여러 증거들을 제시한다. 언어를 구문 단위로 인지, 습득, 활용하는 인간의 청킹 능력, 이 능력을 토대로 다양화와 단순화를 반복해온 문법의 역사, 문화의 진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DAN의 진화 속도.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에서 발생하는 언어의 무한한 변용들. 저자가 보여주는 여러 연구들은 생물학적 언어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다만 인간이 오로지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태어나는 종임을 보여준다. 그 씨앗이 피울 수 있는 꽃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있지 않고, 문화를 자양분 삼아 인간의 언어라는 꽃을 피운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말, 인간 종이 품은 가능성의 씨앗이 피워낸 꽃은 대체 무엇인가? 그 꽃을 피워낸 자양분인 인간의 문화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 소통의 근원이 복잡한 상황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즉흥적 연극이었다고 가정한다면, 그러니까 언어의 기원을 감히 우연이라고 가정한다면, 모든 것이 말이 된다. 우연히 벌어진 서로 간의 이해, 그 순간성이 축적되어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 안에서 언어는 즉흥성과 관례화를 빠르게 반복하며 진화한다. 그 순간의 이해를 위해 말을 만들어내는 즉흥성과 그 방식이 하나의 문법으로 자리매김하는 관례화의 연속. 문화의 축적과 전승, 그렇게 쌓인 비명시적 가치들을 토대로 다시 이어지는 즉흥 게임. 그리하여 <진화하는 언어>는 인간 언어의 본질을 제스처 게임이라 선언한다. 인류의 문화사는 제스처 게임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리라. 그리고 삶은 문화 안에 있다. 그렇다면 만약 자기 삶에서 순간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그러니까 제스처 게임에 실패하고 있다면..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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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눈>

 

역사라고 하면 기분 좋은 사건들은 당최 떠오르질 않는다. 내 머릿 속에 역사라는 공간은, 인간의 악의와 추악함, 전쟁과 질병들의 안개로 뿌옇게 가득 차 있다. 평화롭고 풍요로웠다 전해지는 찰나의 시대적 그림만이 그 공간 한구석에 쳐박힌 채 빛을 밝히며 조용히 내 관심을 끌 뿐이다. 예술이라고 다를쏘냐. 예술의 역사 역시 예술적 성취와 박해, 탈출, 복권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는 격언은 옳다. 우리는 예술의 역사에서 승리한 것들의 흐름을 볼 뿐이다. 예술에서만큼 패배자를 가차 없이 잊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과거의 예술은 살아남은 예술이고 그 외에 것들은 절대로 볼 수 없다. 늦게나마 예술사에 편입된 자들도 곧 승리자로 여겨질 따름이다.

 

그래서 예술사에는 항상 성취만이 존재한다. 국소적 성취들이 쌓여 혁명을 일으키고 예술사의 굽이침을 만든다. <화가의 눈>은 역사의 굽이침을 일으켰던 유럽의 화가들과 그들이 시도하고 성취해낸 것들을 소개한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보았을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화가의 눈은 독창적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어느 한 개인이 가진 그 독창적인 1인칭의 시점이, 현재를 살아가는 불특정다수의 독자에게 공유될 수 있을까? 저자는 똑똑하게도 풍경화를 그렸던 화가들을 선정했다. 그들이 보았던 풍경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지금 우리의 눈에 그림을 그린다. 같은 풍경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들이 그린 그림을 통해 그들의 시선을 재구성해낼 수 있다.

 

<화가의 눈>은 과거의 화가들이 보았던 풍경을 공유하며, 그들의 눈이 그려낸 화폭의 구성과 형식, 기법을 간략하지만 명확하게 해설해낸다. 잠시 생각해보면 풍경화를 해설한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그러나 화가들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을 그린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더욱이 카메라의 발명 이후 화가들은 형상을 해체하고 형식을 환원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흐물거리고 맹탕하게 허물어져버린 형상들을 보며 이게 뭐야? 라는 불만을 내뱉는다. 깊은 감상을 원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에게 해설은 필요한 법이다.

 

이런 점에서 <화가의 눈>은 다가가기 쉬운 큐레이팅과 도슨트적 구성을 취하고, 덕분에 기분 좋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방대한 예술사의 강물 속에서 살이 꽉 찬 대어 몇 마리를 낚아 브런치 요리를 내어준 느낌이랄까? 가볍게 읽기 좋다. 으스대기 좋은 역사, 문화, 지리적 지식을 얻기에도 충분하다. 프리드리히의 유명한 그림 <안개 위의 방랑자> 속 풍경이, 서로 다른 장소의 이미지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가상의 절벽임을 그 화폭만 보고 어떻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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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수백 년 전 뿌려진 해체의 씨앗은 추상주의라는 꽃을 피우고, 그 열매는 순수한 감정과 생각의 반향을 일으킨다. 구상주의 시대는 줄 수 없었던 경험들이다. 현대 회화의 뿌리는 환원주의다. 환원주의는 또 다른 줄기를 하나 더 가진다. 과학. 과학은 물질 세계를 관찰 가능한 요소로 분해해 나가며, 현상의 토대를 이루는 물질적 지점을 찾아간다. 이 지점이 세계에 대한 기본 원리로 환원되어 다시 세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는 환원주의를 매개로 이 두 줄기를 엮어낸다.

 

현대 회화를 볼 때 구상 시대 회화보다도 더 순수하고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의 감상이 극도로 개인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감상자들은 어떻게 해체된 형상으로부터 내용을 인식할 수 있는가그림이 구상적 정보를 더 많이 내포할수록 뇌는 상향식 인지 처리로 그림을 인식한다. 그림이 만들어내는 정보의 강물이 절벽 위를 거슬러 올라가 호수를 만든다. 그 호수는 모나리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모나리자>를 보면 다른 무엇도 아닌 그 모나리자를 보게 된다. 다른 무엇은 없다. 반면 추상 정보로 구성된 그림은 하향식 인지 처리를 유도한다. 네모난 콧수염을 가진 남자, 누군가는 이 남자를 히틀러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이 남자를 찰리 채플린으로 본다. 추상주의는 감상의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 뿌리에는 환원주의가 있었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는 환원주의가 현대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전히 추상 미술을 토대로 한 현대 회화 일반이 대중 일반에게 완전히 어필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나는 봐도 모르겠는데 치덕치덕 물감만 발라 놓은 게 왜 500억이냐는 투정을 작품만으로 해소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추상주의 작품의 성공을 자랑스럽게 외치는 저자에게 썩 손을 들어주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현대는 분명 환원을 기점으로 형성되었고 우리 일상에도 추상 이미지는 녹아 들어있다. 과학 문물로 둘러 쌓인 세계에서 일어난 시각적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할까? 결국 우리는 그 공을 인정해주어야만 한다. 이러나 저러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더욱이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다면 말이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는 뇌과학 책으로도, 추상주의 교양서로도 쉽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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