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4년, 프랑스 혁명은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그 외 왕족, 귀족, 온갖 기득권층이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았다.
수만명이 죽어나갔지만, 자코뱅파의 리더가 된 로베스피에르는 절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후대 사람들은 이 시기를 '공포정치'라 부르며 로베스피에르를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취급을 하지만, 당시에는 그를 혁명의 마지막 보루로 여긴 이도 많았다.
그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생활을 했고, 뇌물도 통하지 않았다. 혁명 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혁명 세력 내에도 적폐가 있다고 외치며 공안위원회를 만들어 내부 숙청을 감행한다.
한때 혁명을 이끌었던 당통과 그의 추종자들까지 단두대에 올라 인도적인 죽음을 맞았다. 당통의 죽음은 국민공회 의원들까지 공포에 떨게 했다. '민중의 적'이 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국민공회 연단에 오른 로베스피에르는 장장 2시간 동안 연설을 했다. 그는 의원 중에도 배신자가 있다는 첩보를 받았다며, 곧 대대적인 숙청이 있을 것이라 선언했다.
공회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의원들은 당하기 전에 로베스피에르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회의가 시작되자 의원 하나가 일어나 로베스피에르의 체포를 건의했고, 의원 다수가 동의했다. 로베스피에르는 그 자리에서 곧장 체포된다. 하지만 여전히 실권은 로베스피에르가 쥐고 있었고, 그는 곧 풀려난다.
노동자와 시민이 주축이 된 자치기구 '파리코뮌'은 여전히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하고 있었고, 이들이 지지하는 한 로베스피에르는 여전히 최고 권력자였다. 반란 소식을 들은 노동자와 시민들은 저녁이 되자 로베스피에르가 머물던 파리 시청사로 몰려들었다.
민중의 영웅인 그가 발코니로 나와 성난 민중에게 반역자를 처단하라고 말했다면, 민중은 그대로 국민공회로 쳐들어가 반란을 일으킨 의원들을 체포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갈 곳을 잃은 시위대는 조금씩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자정이 됐을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비가 쏟아지자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비가 그치고 새벽이 되어서야 로베스피에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시청밖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가 왜 일찍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습하고 더웠던 날씨가 평소 좋지 않았던 그의 건강 상태를 악화시켰을 것이라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아무튼 그는 제때 나타나지 않았고, 비는 그의 마지막 기회를 앗아갔다.
혼자가 된 로베스피에르는 파리코뮌에 보내는 호소문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반대파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호소문의 서명란에는 'Ro'라는 끝까지 쓰이지않은 그의 이름과 핏자국이 남았다.
이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아 후에 프랑스 1대 총리가 되는 탈레랑은 그날 밤의 사건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비는 반혁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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