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서 다카하시 루미코 여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거다. 왕년에 여러 메가히트작들을 만들면서 일본 만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루미코 여사의 작품을 즐겨왔으니까. 하지만 최근 인터넷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루미코 여사의 작품들이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자신이 아는 작품들만 보고 또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안타까워서 간단한 정리글을 작성해 본다. 퍼가는건 자유이니 이 글을 계기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루미코 여사의 만화세계에 대해 잘 알고 그 이야기들을 경험하고 공유해볼 수 있길 바란다.

작품들의 소개는 장편, 부정기 연재 중편, 단편, 미발매 연재작 이 순서이다.

1. 장편

루미코 여사의 장편들은 메종일각을 제외하면 모두 소년 선데이에서 연재되었다.

1) 시끌별 녀석들 (우루세이 야츠라, うる星やつら): 1978~1987 연재, 총 34권

루미코 여사의 첫 장편이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세상의 모든 불운을 다 짊어진 듯한 쓰레기 소년 모로보시 아타루가 지구에 침략한 외계인 소녀 라무에 맞서 얼떨결에 지구를 지키게 되고 이에 라무가 아타루 집에 눌러앉게 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룬 러브코미디 만화이다. 루미코 여사의 개그센스와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인한 정신없는 스토리전개가 특징으로 이후로도 꾸준히 나오는 루미코 여사식 코미디의 기반이 된 작품이다. 루미코 여사의 이름을 날리게 된 기념작으로 여주인공인 라무는 당시 일본 오타쿠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었다고 한다. 국내에는 예전에 정발됬었는데 번역도 질나쁘고 오래전에 절판되어 지금은 이북 말고는 구하기 매우 힘들다. 신장판 정발이 예고되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참고로 만화의 이름은 '시끄러운 녀석들(우루사이 야츠라, うるさいやつら)에서 중간부분을 별(星, せい)로 바꾼 말장난이다.

2) 도레미 하우스(메종일각, めぞん一刻): 1980~1987 연재, 총 15권

루미코 여사의 두번째 장편으로 소년 선데이가 아닌 빅 코믹에서 시끌별 녀석들과 동시연재된 작품이다. 처음에는 월간연재였는데 나중에 잡지가 주간발매로 바뀌면서 루미코 여사는 동시에 두 주간연재를 했어야 한다는 후문이 있다. 그래서 연재는 시끌별 녀석들보다 나중에 시작했는데 끝나는 거는 보다 일찍 끝났다.

만화의 이름에서 '메종'은 프랑스어로 집을 의미하는데 이 때문에 만화 이름의 뜻은 '일각관'이 된다.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일각관이라는 하숙집에서 살고 있는 청년 고다이 유사쿠가 하숙집에 처음 부임해온 여자 관리인 오토나시 쿄코에게 반하게 되고 이에 서로 엮이게 되면서 진전되는 러브스토리이다. 시끌별 녀석들이 코미디 쪽에 중점을 뒀다면 메종일각은 두 남녀 사이의 러브스토리,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두 남녀가 서로 부대끼면서 각자의 상처를 보듬아주고 성장함으로써 마침내 이어지게 되는 스토리에 보다 중점을 줬다고 보면 된다. 이 작품도 시끌별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만화계, 특히 러브코미디물에 큰 영향을 줬다. 이것도 예전에 정발이 됬었지만 제목부터 이상하게 바꿔놓고 번역도 안좋은데다 오래전에 절판되어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2018년에 이북이 나온 상태... 였는데.

2019년 말에 드디어 번역 싹 갈아엎고 재정발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번역 정상이니 이 버전으로 모으도록 하자 2020년 11월 기준 15권까지 모두 정발되었다.

참고로 루미코 여사의 장편작들 중에서 유일하게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는 현실적인 드라마를 보여주는 만화이다. 스토리의 전개도 옴니버스 방식이 아닌 제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구성이다.

3) 란마 1/2(らんま½): 1987~1996 연재, 총 38권

루미코 여사의 세번째 장편이다. 시끌별 녀석들에서 시작된 루미코 여사식 러브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끌별 녀석들 때의 중구난방했던 소재를 '격투'와 '물에 빠지면 변신함'이라는 소재들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여기에 각종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투입하여 결과적으로 루미코 여사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만화계에서의TS물과 하렘물의 시초가 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하기도 한다. 이 작품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TV에서 방영을 해 줬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지만 현재 만화는 절판상태로 이북이나 중고로만 구할 수 있었다.

2019년 말에 메종일각과 같이 재정발이 시작되었다!! 다만 총 20권의 재편집판이고(내용삭제는 없으니 걱정 ㄴㄴ) 번역이 좀 미묘하다는 평이 있다. 2021년 4월 기준 20권까지 모두 정발되었다.

4) 이누야샤(犬夜叉): 1996~2008 연재, 총 56권

루미코 여사의 네번째 장편이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면 평범한 여학생이던 소녀 카고메가 전생의 인연 때문에 과거의 전국시대로 이동하게 되고 거기서 이누야샤라는 반요 남자를 만나서 둘이서 전생의 인연으로 인해 발생한 일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기존의 루미코 만화들과는 다르게 러브코미디적 요소보다는 모험활극 요소에 비중을 둔 작품이다. 이 만화도 역시 크게 성공했지만 뒤로 갈수록 늘어지는 전개와 완급조절 실패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루미코 여사의 만화로 투니버스에서 더빙을 해 줘서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현재 기존 단행본은 슬슬 절판하고 신장판을 정발중인데 가격이 창렬에 검열까지.... 기존판도 번역 등등 문제는 없으니 싸게 보고 싶으면 이북을 보도록 하자.

5) 경계의 린네(境界のRINNE, Circle of Reincarnation): 2008~2017 연재, 총 40권 발매

루미코 여사의 다섯번째 장편으로 최신 완결작이다. 어떤 사연으로 유령이 보이게 된 소녀 마미야 사쿠라가 사신이자 인간이기도 한 소년 로쿠도 린네를 만나고 같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내용의 러브코미디물로 예전 시끌별 녀석들과 란마 1/2에서의 옴니버스 스토리로 회귀하였다. 하지만 전작들과는 다르게 잔잔하고 시니컬한 스토리 전개가 그 특징이고 이 때문인지 다른 루미코 여사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국내에서도 단행본과 이북 모두 정발 중이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일본과 비교해봐서 정발이 느리다는 것이 악재였다. 2021년 10월에 드디어 정발이 끝났다 정말 길었다.....

6) MAO(마오, マオ): 2019~연재중, 현재 10권(일본), 9권(한국) 발매

루미코 여사님의 여섯번째 장편작으로 최신 연재작. 먼 옛날 최악의 고독(蠱毒)인 뵤우키에게 저주받아서 뵤우키를 쫓아 떠돌아다니는 음양사 소년 마오와 마오에게 요괴(?)라고 불린 평범한 중학교 3학년 소녀 나노카의 다이쇼 시대 모험만화이다. 이누야샤와 인어 시리즈의 섞은 분위기의 진지한 만화로 떡밥을 심화시켜 나가면서 스토리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추후 전개를 기대해 보자.

한국에서는 2020년 11월달부터 정발이 시작되었다. 단행본뿐만 아니라 연재본도 이북으로 매주 정발되고 있으니 이북 이용 공지를 참조해서 다들 재미있게 감상하도록 하자.

2. 부정기 연재 중편

1) 인어 시리즈: 총 3권 (인어의 숲, 인어의 상처, 야차의 눈동자)

2) 1파운드의 복음: 총 4권

루미코 여사의 두번째 비정기 연재 중편이다. 인어시리즈와는 다르게 밝은 분위기의 러브코미디로 감량을 못해서 항상 하위권인 복싱선수와 주변 수도원의 수녀가 엮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메종일각과 마찬가지로 판타지적 요소가 전혀 없는 현실적인 배경의 만화로 메종일각에서 코미디 요소가 좀 더 강화된 만화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인어시리즈와는 다르게 이건 총 4권으로 이누야샤보다 먼저 완결이 났다. 국내에서는 예전에 3권까지는 정발이 나왔는데 절판되고 4권은 정발 자체가 안되서 번역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지만... 2019년 현재 드디어 4권까지 재번역이 되어서 재정발되었다!! 다들 어서 가서 구매하도록 하자.

3. 단편집

1) 루믹 월드(RUMIC WORLD)

루미코 여사의 여러 단편들을 모아둔 작품집으로 루미코 여사의 데뷔작인 '제멋대로인 녀석들'이 이 만화의 맨 처음에 포함되어 있다. 코미디만화부터 비극적인 만화 그리고 공포만화까지 루미코 여사가 그린 다양한 주제의 만화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루미코 여사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도 하나 끼여있다.

보면 루미코 여사의 장편만화들의 프로토타입이 좀 보인다. '제멋대로인 녀석들'은 시끌별 녀석들의 프로토타입 만화이고 에피소드 중에는 이누야샤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보이는 과거로 타임슬립하는 만화도 있다.

이 단편집은 우리나라에 정식 발매된 적은 없고 해적판으로 3권이 나온 적 있다. 그마저도 실물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스캔본만 볼 수 있는 상태.

2) 1 or W

루미코 여사의 또 다른 단편. 위의 단편집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의, 그리고 보다 일상생활에 가까운 소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역시 이 만화도 국내에서는 해적판으로만 나왔었는데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몇몇 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구하기 힘들 듯 하다. 역시 스캔본으로 볼 수밖에...

3) 다카하시 루미코 극장(P의 비극, 전무의 개, 붉은 꽃다발, 운명의 새)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루미코 여사의 단편집. 가장 큰 특징은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에 있을 법한 일상생활들을 그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다. 초현실적 요소가 있는 에피소드들이 몇몇 있으나 어디까지나 양념일 뿐이고 주제는 일상생활에서 벌어질 법한 소재들이다. 그 때문인지 코믹스러운 분위기의 에피소드들도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씁쓸한 요소들이 곳곳에 끼여있고 아예 대놓고 우울한 에피소드들도 여럿 있다. 국내에도 정식 정발이 되었는데 앞부분 책들은 품절되었다가 최근에 아래의 '거울이 왔다'와 더불어 세트로 재발매가 되었으니 구할 기회가 있을 때 빨리 구하자.

2019년 9월에 일본에서 다카하시 루미코 극장 최신 단편집으로 "마녀와 디너"가 발매되었다. 국내에도 2020년 12월에 정발되었으니 어서 구매하자.

4) 거울이 왔다

가장 최근에 나온 루미코 여사의 단편집. 위의 다카하시 루미코 극장에 비하면 보다 판타지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단편들 위주로 모여있다. 맨 끝에 아다치 미츠루와 함께 그린 루미코 여사의 자전적인 만화 'My sweet sunday'가 수록되어 있다. 가장 최근에 정발됐으니 구하기는 쉽다.

4. 단행본 미수록 단편

1) 케모코비루의 일기(총 11화)

루미코 여사가 만화가 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코믹하게 그린 단편으로 루미코 여사의 어시 생활을 했던 마키코, 쿠니코의 만화가 같이 포함되어 있다. 잡지연재만 되었고 단행본으로 나온 적이 없었으나 최근 어느 능력있는 루믹갤러의 노력으로 번역되어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케모코비루의 일기 포함 각종 미발매 단편들의 번역링크는 이쪽을 참고하자.

단편 번역 링크

2) 문제(MOON大)의 애완동물 왕(총 4화)

란마가 연재될 쯤에 연재된 작품으로 초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남주인공 집에 우주에서 온 거대토끼가 갑툭튀하여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을 그린 가벼운 분위기의 코미디 만화이다. 현재 루미코 여사의 인터뷰 잡지에 수록된 적이 있으나 만화 단행본에 수록된 적은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스캔본 번역으로 볼 수 밖에 없다.

3) 천년의 무심(총 2화)

2017년 루미코 여사 단행본 총 판매부수 2억부 발매 기념으로 소년 선데이에서 연재됬던 만화. 전체적인 분위기는 인어 시리즈+이누야샤에 가깝다. 다만 내용전개를 볼때 2화만에 끝날 내용이 아닌걸 억지로 쑤셔넣은 느낌이 드는 걸 볼 때 예전에 생각해뒀던 장편만화 소재를 하나 이용해서 그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이게 MAO의 프로토타입이었다.

번외: 루믹 중단편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

어느 친절한 루믹갤러가 보다 자세히 정리해준 자료가 있으니 이 링크를 참고하자.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umic&no=25520

5. 애니메이션 오리지날

1) 반요 야샤히메(1기 24화, 2기 24화로 전 48화)

2020년 위 장편에서 소개한 이누야샤의 애니메이션 후속작으로 루미코 여사는 메인 캐릭터 디자인 및 초반 줄거리 감수만 하고 나머지는 선라이즈가 자체 제작한 작품이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 3명의 여주인공 그러니까 셋쇼마루와 이누야샤의 딸들의 설정으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정작 까보니 좋지 않은 작화 + 쓸데없이 넓고 심각한 설정 대비 부실한 스토리전개로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2기에서 나아질 걸 기대한 사람도 있지만.... 다시보니 1기가 선녀였다!! 수습하지도 못할 스토리를 무한대로 싸지르는 바람에 수습도 제대로 못하고 아무도 이해못하는 스토리로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하다가 마지막에 억지 해피엔딩으로 끝. 보는건 개인의 자유지만 이런건 감안하고 보도록 하자.

선라이즈 조실부모한 분들은 이제 반다이로 합병되어 이름도 사라진다니 자업자득이다. 빨리 망각 속으로 사라지길 기원한다.

1)-1 반요 야샤히메 코믹스 (시이나 타카시 연재, 현재 일본 1권 발매)

위에서 선라이즈가 이누야샤 프랜차이즈를 조지는 것을 보다 못한 루미코 여사와 같은 잡지의 중견 만화 작가 시이나 타카시(GS미카미 극락대작전, 절대가련 칠드런의 작가)가 자원해서 연재하고 있는 또다른 반요 야샤히메 프랜차이즈이다. 연재 전에 트위터에서 대놓고 애니메이션을 디스하면서 패기있게 등장했는데 현재까지는 큰소리에 걸맞게 훨씬 더 나은 캐릭터 설정 및 심리묘사, 그리고 매끄러운 스토리 전개로 호평을 받고 있다. 앞으로의 연재도 계속 기대해 보자.

정말 야샤히메 세계관을 알고 싶으면 애니메이션은 완전 비추고 차라리 이쪽으로 입문하는걸 추천한다. 현재 국내에는 미정발이지만 갤러리에서 번역중이니 쉽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