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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 카락 바른 생존자들의 증언.

하히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6.18 21: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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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산맥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또 있었다. 스크라피의 황당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는 않았지만 거기다 대놓고 반대의사를 표명하지도 않았던 이들. 바로 카락 바른에서 살아나온 종사들이었다. 그들의 발언차례가 되었을 즈음에는 대전당의 상부 회랑들이 몰려든 난장이들로 북적거릴 정도였다. 모두가 그들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웅드린 앙코르는 쪼개졌소.” 새하얗게 샌 수염을 가진 연사가 방청객들을 향해 말했다. 옛 산맥들을 하나로 이어주던 거대한 지하교통망이 무너졌노라고. “그로비 놈들이 차지했지. 쥐인간들은 터널 사이 무너진 틈마다 새어 들어와 둥지를 틀었소. 카락 블라그와 카락 이즈릴 사이를 전령이 오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오. 지하대로는 빼앗겼소. 지하 깊은 곳에서 사악한 것들이 무수히 기어올라 왔소이다.”


“전 그렇게 수염 기른 난장이는 아니올씨다.” 또 다른 바른 주민이 자신의 차례가 오자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몰려든 고블린 놈들과 오크의 숫자는 제 눈으로 보기에도 거의 파도나 다름없었어요. 북쪽과 동쪽에서 놈들이 무수히 밀려들었습니다. 어둠의 땅이 마치 제 뱃속에 있던 모든 고블린, 오크, 트롤들을 다 토해낸 것만 같았습니다. 거기다 더 야만적인 것들도 많았죠. 놈들 모두가 우리 난장이들의 전당을 제 놈들 거처로 삼고자 했어요. 우리 금을 차지하려 들었단 말입니다.”


“용들이 돌아왔소. 불꽃과 공포를 흩뿌렸지.” 얼마 뒤 세 번째 연사가 말했다. 이따금씩 조롱 섞인 외침과 기침소리가 들려오는 것 빼고는 전당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엘프가 놈들을 데려왔었지. 놈들이 바다 너머로 도망쳤을 때도 그 비늘 돋은 짐승들은 내내 이 땅에 남아있었소. 다들 들어서 알고 있지 않소. 야생으로 흩어진 놈들은 어두운 동굴 속에 몸을 누인 채 잠들어있었지. 화산의 용암과 지진이 용들을 깨워버린 게요. 이제 놈들이 배고자 하는 것은 우리 보석과 황금이요, 놈들의 배를 채우고 있는 것은 타 죽은 우리 동포들이외다. 그뿐이겠소. 놈들이 처음부터 엘프 놈들의 친족이었다는 사실을 다들 잊지 마시오. 이제 용들은 우리에게 복수하길 원하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엘프 놈들을 살육한 죄밖에 없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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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어의 오른 손에는 거의 그 자신만한 크기의 거대한 룬도끼가 들려있었다. 도끼날이 시퍼런 빛을 흩뿌렸다. 날에 박힌 룬문자들에서는 한 눈에 보기에도 흉흉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느데, 이는 죽음과 파멸의 상징이었다. 망치를 단단히 쥔 근위병들이 뒤따라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살기로 가득 찬 슬레이어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으니, 모두가 안전한 거리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군중들의 수군거림은 난장이가 들고 온 다른 물건 때문이기도 했다. 슬레이어의 반대편 손에는 트롤의 머리가 들려있었다. 잘려나간 머리채를 한 번 휘두르자 트롤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러갔다.


몰려든 인파 때문에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는 슬레이어의 진로에서 차마 비켜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가빅은 어느새 이 흉맹한 전사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회색 자갈빛을 띤 슬레이어의 눈초리가 가빅을 훑고 지나갔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옅은 미소를 띠운 채 어깨를 으쓱하는 것뿐이었다. 걸음을 멈춘 슬레이어의 거친 목소리가 전당을 타고 울려 퍼졌다.


“돌 트롤을 찾았소이다.” 슬레이어의 선언이었다. “북쪽 숲에 세 마리가 더 있소. 서쪽에는 강 트롤 두어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소이다. 다음 차례는 그놈들이오.”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릭가 드문드문 터져 나왔다. 당당히 앞으로 나서지도 못한 채 군중 속에 몸을 숨긴 겁쟁이들의 소행이었다. 가빅은 지금 이 현장에 그의 아버지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 것에 감사해 했다. 만약 저 당돌한 주장을 들었더라면 아버지는 그때부터 끝도 없이 트롤에 대해 중얼거리며 앞으로 닥쳐올 더 큰 환난의 증거로 삼았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북쪽으로 가줄 수도 있소.” 슬레이어가 거대한 도끼를 어깨 위에 들쳐맸다. 그제야 코끝으로 훅 끼쳐오는 트롤의 악취와 함께 가빅은 슬레이어의 가슴을 수놓고 있는 문신들 중 일부가 튄 지 얼마되지 않은 트롤의 핏자국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전사는 살육을 벌이고서 곧장 달려온 것이었다!


“어... 정확히 어디서 이 트롤을 사냥하신게요?” 발치까지 굴러온 머리통을 바라보며 가빅이 읊조렸다.


“당신네들 농장 꼭대기에 있는 벌통들 근처에서. 바람에 실려 온 놈의 냄새를 좇았지. 남쪽 가도에서부터 곧장 추적에 나선 거요.”


“허면 도대체 뭣 때문에 곧바로 우리 홀드로 달려온 거요?” 옥좌 아래쪽 도열해있던 신료들 사이에서 물음이 터져 나왔다. 그 때쯤 가빅은 이 트롤이 바로 아버지와 딸 할도라를 습격했다던 트롤이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슬레이어가 옥좌 아래로 가까이 접근하자 질문을 던진 종사가 위협적인 자세로 앞을 막아섰다. “옛 산맥에도 당신 같은 치들이 사냥할 거리는 넘치지 않나?”


“많지. 얼스투카르 폐하. 허나 제가 지금 쫓고 있는 것은 특별한 야수입니다.” 몸을 돌리는 슬레이어의 코 끝에 걸린 사슬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짤랑거렸다. “카락 바른에서부터 놈을 쫓아오던 참에 산맥에서 놓치고 말았소. 머리 둘 달린 트롤이외다. 그리 흔한 종은 아니지.”


“동쪽에서 왔단 말인가?” 몸을 일으킨 얼스투카르 왕이 자신의 뺨을 쓸어내렸다. “어쩌면 그대가 본 것을 우리에게 말해줄 수도 있겠군. 이제 그쪽은 우리 레인저들도 함부로 나아가지 못하는 험지가 되어버렸으니. 카락 바른에서 살아나온 다른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다 했는데, 그대도 보았는가.”


“머리통 둘 달린 트롤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폐하.” 슬레이어가 답했다. “카라그 드론 위를 지나는 길에서 바른쪽 사람들과 헤어진 뒤로는 누구도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오크도, 와이번도, 거인들도 제 도끼를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백은 된다고 들었는데...” 자신이 무엇을 하는 중이었는지도 잊은 채 가빅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동시에 온 사방의 시선이 그를 향해 집중되는 것을 느낀 가빅은 경솔히 입을 연 것을 금세 후회했다. “내 딸이 그러기를... 바른 쪽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아직도 이쪽으로 오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나다고 했소. 딸아이는 나더러 정찰대를 보내 사람들을 돕자고까지 얘기했단 말이오. 헌데 오크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한테서 그 사람들을 지킨단 말이오.?”


“오크는 없었소.” 슬레이어가 말을 이었다. “그래봤자 나도 난장이 하나에 불과외다. 오크들은 분명 황야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겠지.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낼 수 있을 거요. 카락 바른에서만 수만은 되는 놈들을 보았으니, 이제는 바른을 아예 자기네들 요새로 쓰고 있소.”


“수만...” 가빅은 웃음을 터뜨렸다. “셈이 약한 걸 보니 안타깝구려 친구여.”


몸을 돌린 슬레이어의 차가운 시선이 가빅을 파고들었다. 가빅은 또다시 경솔하게 입을 놀린 것을 후회했다.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시오, 친구. 당신네들의 트롤을 잡아 죽인 다음에 난 다시 카락 바른으로 돌아갈 거요. 그림니르의 형제들이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소. 곧 전투가 있을 거외다. 맹세로 맺어진 우리 형제들은 다함께 나아가 카락 바른에서 최후를 맞을 작정이오.”


몸을 돌린 슬레이어는 쿵쿵거리는 걸음걸이로 전당을 떠나갔다. 가빅은 우두커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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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이 점차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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