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U.G. 크리슈나무르티 - "잃어버린 자서전"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05.17 07:21:30
조회 1227 추천 2 댓글 1
														

[ UG ]
사람들은 저를 해탈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해탈이란 단어는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저의 상태를 설명할 마땅한 단어가 없습니다. 저는 해탈이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평생동안 깨달음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깨달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하는 물음은 제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원전 6세기의 부처를 비웃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로 인해 영화를 누리는 착취자들입니다. 인간의 외부에 힘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두려움에 의해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신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저는 깨달아야 할 자아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깨달음입니다. 그것은 강렬한 일격이었습니다. 마치 벼락에 맞은 듯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자아의 각성이라는 한곳에 투자했는데 갑자기 찾을 자아도, 깨달을 자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말을 내뱉겠죠. '빌어먹을, 내가 이제껏 무슨 짓을 한 거지.' 폭발이 일어납니다.


갖가지의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것을 겪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제가 말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 한 조각을 살짝 맛보게 하고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다시는 이것을 원하지 않게 되도록 말입니다. 여러분이 찾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신화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해탈이 아닙니다.


글쎄요. 무어라고 부를지.... 해탈이나, 자유. '모크샤', 해방. 이런 단어들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단어들은 저마다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죠. 이것은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일어나는 것이죠. 그리고 왜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는지, 저는 모릅니다.


[ Q ] 그것이 당신에게 일어난 건가요?


[ UG ] 저에게 그것이 일어났습니다.


[ Q ] 언제였습니까?


[ UG ]
마흔 아홉 살 때였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나 실체를 찾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기울이죠. 그러나 바로 그 노력이 우리를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습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상태에 항상 머무르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상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의 결과로 획득하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거기에는 원인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쨋든 찾아다니는 일은 끝이 났습니다


[ Q ]
하지만 그것이 찾아다닌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군요. 당신은 철학을 공부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사람들과 관련을 갖기도 했는데요


[ UG ]
찾아다니는 것은 우리를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찾아다녀서 찾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 Q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이 일어난 것이군요. 찾아다녀서가 아니라.


[ UG ]
찾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요. 그 말이 적당하군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이미 있는 것'이 스스로 표출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우리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상태에 있습니다. 이 자연스러운 상태가 스스로의 방식으로 표출되어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노력입니다.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은 언제나 반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심오하고 경건한 것으로 여기는 모든 것들은 의식에 해독을 끼칩니다. 여러분은 아마 (웃음) 이 해독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렇지만 여러분이 성스럽다고 여기는 것, 심오하고 명상적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다 의식에 해독을 끼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은총이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은총이라면 '누구의 은총' 하는 식으로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택받지 않아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도 그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가능했다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것은 제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데 제가 주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 Q ] 그러나 저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느끼고 있고요.


[ UG ]
아니죠. 그것은 느끼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알고 모르고의 문제도 아니죠. 결코 그것을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에 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죠. 그 일에 관한 의식도 없습니다. 글쎄요.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저는 한번도 다른 사람과 제가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Q ]처음부터, 기억나는 한 처음부터 그랬던 건가요.

UG:아니죠,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찾아다녔죠.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난 다른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추구했죠. 그러니,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군요. 저의 배경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해야 할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사람들의 웃음소리)


[ Q ] 나쉬케타처럼 호기심 때문인데요. 당신에게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는지가 몹시 궁금합니다.


[ UG ] 글쎄요. 아주 긴 이야기라서, 짧게 이야기 할 수가 없군요.


[ Q ] 긴 이야기라도 듣고 싶군요.


[ UG ]
글쎄요. 저의 인생 전체를 모두 이야기해야 합니다. 아마 굉장히 오래 걸릴 거예요. 저의 인생이 한 점으로 모아졌고, 그리고 멈추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개인사는 없죠.


저의 전기를 쓰려는 두 명의 전기작가가 있죠. 서로 다르게 접근을 하는데. 한 명은 제가 해 온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하던 영적인 수행법, 받아 온 교육, 그리고 그 밖의 모든 배경에 관심이 있죠. 저를 그곳에 묶어 두려는 겁니다. 지금 저의 모습은 그런 모든 것들에 불구하고 생겨난 것인데도 말이죠. (웃음) 다른 전기작가도 '불구하고' 생겨난 지금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어요. 왜냐하면 책 한 권을 쓸거리가 없기 때문이죠. (웃음) 그들은 책을 만들어 내는 데에 더 흥미가 있습니다. 편집자들도 그런 일에 관심을 기울이죠. 세상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제가 있는 상태의 원인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났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은 거겠죠. 우리는 우리가 처음에 서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군요. 여전히 '어떻게'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저의 개인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은 누가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개인사는 유일무이한 것이죠.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자신의 방식대로 특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교육, 환경, 배경 그 모든 것들이 저마다 다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르죠.


[ Q ]
저는 세상사람들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별을 보고, 태양을 보고, 달을 봅니다. 그저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당신을 모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죠. 저는 나쉬케타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 UG ] 그 질문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야마 다르마라자가 필요하겠는데요.


[ Q ] 저를 위해 야마 다르마라자가 되어 주시죠.


[ UG ]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글쎄요. 어디에서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어디에서 끝나는지는 알겠는데.
(웃음) 제가 살아온 모든 이야기를 다 해야겠는데요.


[ Q ] 듣고 싶습니다.


[ UG ] 생각이 나지 않아요.


[ Q ] 격려가 필요한가요.


[ UG ]
저는 격려 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지도 않죠. 호기심을 채워 드리기 위해 제 인생의 거짓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야겠군요.

(그는 1918년 7월 9일 남부 인도에서 태어났다. 중상류 브라만이었던 그의 성은 우팔루리. 그의 이름은 우팔루리 고팔라 크리슈나무르티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외조부모가 마술리파탐 부근의 작은 마을 구디바다에서 그를 키웠다.)


저는 매우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는 매우 박식한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블라바츠키 (신지학회의 창시자) 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코트나 그밖에 신지학회의 이대 삼대의 인물들과도 알고 있었죠. 그 사람들은 모두 우리 집을 방문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뛰어난 변호사였고, 학식도 풍부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그 분은 매우 정통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뒤섞여 있는 듯한 인물이었습니다. 한쪽은 전통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었고, 다른 쪽은 신지학과 그 밖의 것들에 흥미를 갖는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그 사이의 조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UG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 말을 종종 인용하곤 한다. 그것은 그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의 외조부는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UG의 양육과 교육에 전념하기 위해서 변호사일을 그만두었다. 그의 조부모와 그들의 친구들은 UG가 이미 그의 전생에서 깨달음에 아주 가까이 다가선 인간, 요가 브라슈타이라, yoga bhrashta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저를 위해 종교적인 환경을 만드는 일과 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을 고용했습니다. 신지학회며 그 밖의 사람들이었죠. 매일 아침 이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우파니샤드, 판차다시, 니시카르미야 싯디 등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의 주석과 주석의 주석까지 말이죠. 새벽 네 시에서 여섯 시까지 읽는 겁니다. 다섯 살 혹은 여섯? 일곱? 그쯤 되는 꼬마가 이 모든 허튼 소리를 들어야 했죠. 하도 많이 들어서 일곱 살쯤에는 거의 모든 경전을 따라 외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라마크리슈나 제자들이나 그 밖의 많은 성자들이 우리 집을 다녀갔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성자들이 우리 집을 한번쯤은 다녀갔을 겁니다. 그야말로 성자들을 위해 열려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 이미 저는 그들 모두가 위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믿고 말하는 어떤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삶은 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저의 탐색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명상을 하곤 했습니다.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저는 그 분을 헐뜯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분은 따로 마련된 명상실에서 한두 시간씩 명상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두 살 먹은 아기가 어떤 이유에선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다가와서 그 아기를 마구 때리는 겁니다. 매일 두 시간씩 명상을 하는 그 사람이 말입니다. 아기는 거의 자지러졌습니다. 저는 할아버지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마치 상처처럼 저의 의식 깊숙한 곳에 심어졌습니다. '명상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 우스꽝스럽다. 그들의 생활은 얄팍하고 공허하다. 그들은 아주 근사하게 말하고, 무슨 일이던지 아름답게 표현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생활까지 스며들지는 못한 것 같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었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부처나 예수, 그 밖의 위대한 스승들이 말한 것이 정말 세상에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모크샤 해탈, 대자유에 대해 말하지만 그런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나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이런 친구들은 도무지 쓸모가 없고 세상 어딘가에 그 모든 것을 구현한 현자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찾아내고 말겠다."


그리고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쉬바난다 사라스와티라는 힌두교 구도승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찾아가곤 했습니다. 열 네 살에서 스무 살 사이였죠. 세세한 일은 건너뛰기로 하죠. 여러 가지의 수행을 했고 계율을 지켰습니다. 어렸지만 저는 해탈이라는 것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해탈을 이루고 싶었죠. 다른 사람들처럼 위선적으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많은 것을 공부했습니다. 저는 책에 나와 있는 모든 종류의 체험을 했습니다. 사마디, 슈퍼 사마디, 니르비칼파 사마디,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그리고 저는 우리가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생각이 그 체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것은 해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같은 인간이었으니까요. 그저 기계적인 작용이 일어난 것뿐이죠. 저는 명상이란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섹스가 저에게 커다란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젊은 소년이었으니까요. 그것은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었습니다. 인간의 육체에 깃든 욕망이었죠. 저는 왜 소위 구도자들이 섹스를 부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억압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섹스도 역시 우주의 한 부분 아닙니까? 다른 것을 얻기 위해서라고요? 하지만 저에게는 성적 욕망이 해탈보다 더욱 생생하고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리얼리티였죠. 저는 신과 여신들에 대해 상상하다가 성적인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성적 욕망은 저의 안에 있는 것이죠. 죄책감이란 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일어날 때는 뜻대로 조정할 수가 없죠. 명상도 학문도, 수행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소금이나 고춧가루나 향신료에 입도 대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쉬바난다가 문을 잠그고 숨어서 망고 피클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기 존재를 온통 부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도 망고 피클을 먹고 싶다는 욕망을 완전히 조절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도 역시 가련한 위선자였죠. 그 사람을 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 Q ] 열 네 살에서 스물 사이에 커다란 성적 욕망을 느꼈다고 하셨는데, 그때 결혼하신 겁니까?


[ UG ]
아닙니다. 그렇게 서두르지는 않았어요. 저는 성적충동 자체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 전체의 과정을 이해하고 싶었죠. 어째서 자동적으로 성적인 기분에 빠져드는 걸까요? 저는 섹스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섹스에 대한 갖가지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저의 물음이었지요. 저의 명상이었습니다. 물구나무를 서지도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영상들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영화를 본 일도 없었습니다. 포스터나 야한 그림을 본 적도 없었죠. 아무래도 그것들은 바깥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안에 있는 것이었죠. 외부의 세상은 자극적입니다. 자극은 외부로부터 들어오죠.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자극이 있습니다. 안으로부터 나오는 자극. 저에게는 이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저는 외부의 모든 자극을 차단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올라오는 자극은 어떻게 차단해야 할까요?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적인 경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성적인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죠. 이런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섹스를 위해 여자를 찾아다닌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저절로 일들이 벌어지도록 놓아두었습니다. 결혼보다는 보다 금욕적인, 수도승을 꿈꾸었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결혼이야기가 나오자 저는 그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적인 충동을 만족시키는 것이 문제라면 결혼도 나쁠 것 없었죠. 사회란 그래서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왜 굳이 누군가를 찾아가서 섹스를 하겠습니까. 결혼생활에서 섹스란 자연스러운 것일텐데요.


[ UG ]
스물 한 살 때 저는 세상의 모든 스승들-부처, 라마크리슈나, 그리고 많은 깨달은 이들이 모두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남들까지 속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그런 스승들이 말하고 묘사하는 그런 상태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저와는, 제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말합니다. "화내지 말라' 그러나 저는 항상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저의 내면은 난폭한 성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거짓입니다. 제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든 것은 다 거짓입니다. 거짓이므로 그것을 따르는 저를 거짓된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저는 거짓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 사람들은 무욕을 이야기하죠.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겁니다. 저에게 욕망은 진실 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들이죠. 그러니, 어디선가 무언지 잘못된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자신을 바꿀 생각은 없었습니다. 무욕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저 자신을 거짓된 것으로 만들기는 싫었습니다. 저의 욕망은 저에게는 생생한 현실이었죠. 저는 그런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사람들 틈에서 자랐습니다. 모두가 거짓이었습니다. 실존적 구토라고 할까요. (그때는 물론 이런 용어를 몰랐습니다.)

저는 성스럽다는, 신성하다는 모든 것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저의 세계 속에 숨어들어 모든 것을 다 부정했습니다. "슬로카스도, 종교도, 수행도 그만두자. 그런 것들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여기에 있는 것은 보다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나는 짐승이고, 괴물이다. 나는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무욕, 비폭력, 그런 것들은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 것은 모두 거짓이다. 거짓일 뿐 아니라 나를 거짓된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모든 일을 끝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는 어떤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든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는 제가 무신론자이며 모든 일에 회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가 말했습니다. " 마드라스 근처 티루반나말라이에 어떤 사람이 있어. 라마나 마하리쉬라고 하는데, 우리 한번 같이 가보자구. 이 사람이야말로 힌두 전통의 살아 있는 구현이야."

저는 어떤 성자도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보면 나머지는 보나마나 한 것 아닙니까. 저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스승의 발치에 앉아 무언가를 배우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두 똑같은 소리만 합니다. "하던 수행을 더 열심히 계속하면 얻을 것이다." 제가 얻은 것은 더 많은 체험들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체험이 지속적으로 필요해졌죠. 하지만 세상에 지속되는 것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성자는 모두 거짓된 거야. 그들은 오직 책에 있는 것만 이야기할 뿐이지. 그거라면 직접 읽는 게 낫지. 수행을 더 열심히 계속하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아. 체험도 싫어. 그들은 자기의 체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나는 체험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 나에게 종교적인 체험은 성적인 체험이나 다른 체험과 똑같아. 종교적인 경험이라고 다른 경험들과 다를 것은 없지. 나는 브라만을 경험하거나 실체를 경험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어. 진리를 경험하고 싶지도 않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아. 더 이상 같은 수행을 계속할 생각도 없네. 나는 이미 충분히 했어. 수학문제를 풀려면 계속해서 문제에 매달려야 하지. 결국 풀어내는데, 답이 문제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그 모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첫눈에 답을 찾아내는 것이 더 쉬울 텐데"

그렇지만 내키지 않아 하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저는 라마나 마하리쉬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끌고 갔죠. 한번만 가보면 무언가 일어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폴 브런튼의 인도기행이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책에서 마하리쉬와 관계되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찾아가 보기로 했죠. 그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저는 그가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잡지를 읽고, 야채를 다듬고, 이런 저런 것을 가지고 노는 저 사람이 어떻게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거기에 앉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저는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도 저를 바라보았죠. '그의 현존 속에서 그대는 침묵을 느낄 것이다. 그대의 질문은 사라지고 그의 바라봄은 그대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것은 이야기 속에서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죠. 그곳에 앉아 있는 제 안에는 무수히 많은 질문이 오락가락 했습니다. 모두 어리석은 질문이었죠. 두어 시간이 지나도 질문이 사라지지 않자 저는 몇 가지 질문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저는 해탈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죠. 그러나 저는 그에게 해탈했는지를 묻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이 갖고 계신 것을 저에게 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죠. 그 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있다가 다시 물었죠.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그것을 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 분이 말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줄 수 있죠. 하지만 당신이 받을 수 있을까요?" 맙소사, 처음으로 이 사람은 무언가 제가 받을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자신이 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자신이 줄 수 있는데 제가 그것을 받을 수 있겠는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것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나라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칠 년간이나 사다나(Sadhana)를 해 왔으니까, 만약 내가 받지 못한다면 누가 받을 수 있겠는가. 그래요 그 때 저의 에고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저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곁에 오래 있지도 않았고, 그의 책을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더 물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때는 자유롭고, 어떤 때는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습니까" 그가 말하길 "자유롭거나 전혀 자유롭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지요." 그밖에도 기억나지 않는 질문들을 했습니다. 그는 색다른 방식으로 대답했습니다. 그곳으로 이르는 계단이란 없다는 이야기도 했죠. 그러나 저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무시했습니다. 질문부터 저와 상관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대답은 저의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던진 한마디. '당신이 그것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건방진가, 그것이 저의 느낌이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그것을 받을 수 없단 말인가, 그것이 뭐기에, 무얼 가지고 있다고' 저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의문이었죠. 의문은 번져 갔습니다. "붓다나 예수, 그런 사람들은 어떤 경지에 있는 걸까? 마하리쉬도 그런 경지에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나하고 다를 게 없어. 같은 사람이고. 나하고 어떻게 다른 거지? 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말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누구라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어. 무엇이 있는 거지? 나와 아주 다를 수는 없지. 그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그는 세상을 독특한 눈으로 보고 있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하기도 하지만, 나하고는 어떻게 다른 거지? 무엇이 있는 거야? 그 경지는 뭐지?" 이것이 저의 근본적인 질문이 되었습니다. 갈수록 의문은 심해졌죠. 저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내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그런 경지를 전해 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저마다 자기의 경지 속에서 살아가는 거죠. 저는 이 망망대해에 나침반도, 배도, 널빤지도 없이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 있는 경지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확인해 봐야만 했죠. 그러치 않으면 계속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 Q ] 준다, 받는다 하는 이 이야기를 저는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 UG ]
마하리쉬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대답했는지 제가 말할 수는 없죠. 하지만 그 대답은 저의 의문을 구체화시켜 주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저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다면 저는 다른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여러분 안에 다 갖추어져 있는데요. 우리가 함께 산니디 25번 가에 있을 때 제게 산니디 25번 가가 어디인지를 물으면 무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미 와 있다고 할 수 밖예요. 나는 그곳에 있노라고 대답하지는 않겠죠. 당신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을 뿐이니까요.
(UG는 그 이후로 라마나 마하리쉬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철학시험 공부할 때 말고는 종교적인 책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진정한 구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종교적인 배경은 저의 안에 있었으니까 저는 새로운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했고, 동양과 서양의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신비주의, 현대 과학, 몇 년에 걸쳐 인간이 쌓아 온 지식을 배웠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탐험을 시작한 것이죠. 저의 물음은 '그 경지는 무엇일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물음은 나름의 강렬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저의 탐험은 계속되었죠. 그러나 결국 그런 지식들은 저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심리학은 저의 석사학위 전공중의 하나입니다. 그때는 불운하게도 심리학이 교과과정에 들어 있었죠. 제가 심리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소박한 이유에서입니다. 에고라는 것이 저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죠. 에고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양 심리학자들의 글을 읽었죠. 어느 날 저는 교수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에고라는 것에 대해 항상 이야기하는데요. 에고란 것이 어떤 것인지 교수님 자신이 분명하게 알고 계십니까? 프로이드며, 융, 아들러의 책을 읽었고 그들이 내려놓은 정의에 대해서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님 스스로가 에고에 대해 무언가 알고 계십니까?" 교수님은 말했습니다. "그런 불편한 질문은 하지 말게. (웃음). 위험한 질문이군. 시험에 통과하고 싶으면 이 글을 받아 적고, 요약해서 답안지에 옮겨 쓰도록 해. 그러면 학위가 나올 꺼야." 저는 학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에고를 찾아내는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의 외조부가 돌아가시자 그는 학위를 마치지 않고 마드라스 대학을 그만두었다. 1943년 그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신지학회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외할아버지로부터 많은 돈과 함께 신지학회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도 상속받은 셈이었습니다. 5,6만 달러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돈이었고 저는 이런 저런 일들을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신지학회의 강연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흡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얻은 정보였고, 저는 그것을 전달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꽤 훌륭한 연설자였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만, 당시에는 일류의 연설자였죠. 어디에서나 강연을 했습니다. 많은 대학에서 강연을 했죠. "이것은 진정한 나의 삶이 아니야. 누구나 머리만 있으면 정보를 모아서 사람들에게 떠들어 댈 수 있지. 내가 무얼 하는 거지? 왜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이것이 나의 생계수단인 것도 아니잖아. 생계수단이라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밥벌이를 하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하지만 역시 이 일에는 무언가 나의 흥미를 끄는 점이 있어."
그럴 즈음,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940년대 말엽이고, UG는 얼마 후 신지학회를 떠난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그의 새로운....

추천 비추천

2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71 유지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수인(mudra)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1.13 157 0
70 유지의 처음 2가지 질문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10 162 0
66 Q: "How to promote this?"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2.19 145 0
65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의문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2.17 224 1
64 유지 크리슈나무르티의 탐구, 은산철벽 [1]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2.17 358 2
61 여기도 갤이 있네 [3] 사다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1.30 141 1
60 process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1.23 91 0
59 Rigpa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12 121 0
58 물은 언제나 순수한 것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0.12 135 0
52 The 5 pranas (The Pranic Body)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2.07 98 0
51 U.G. with coffee and hands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26 142 0
50 미국 대통령 취임식 시 낭독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26 91 0
43 I found myself praying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1.08 76 0
41 상악골 [1]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23 555 0
40 초기불교 선정의 출처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21 149 0
37 Mantra of Supreme Light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21 79 0
35 Rumi and Thomas [1]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20 118 0
31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들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09 111 1
24 Kabbalah, tree of life.. [1]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04 178 1
23 유지는 평생 책한권 쓰고 그 인세마저도 포기하지않았음? [1] ㅁㄴㅇㅁㅇ(59.10) 20.11.10 208 0
20 유지가 부랑자 생활을 했는데 당연히 누구나 그렇게 되는건 아니겠죠? [1] ㅇㅇ(175.206) 20.10.01 210 1
17 무엇인지 인식하고 있다면 '나'라는 것이 남아 있는 것이죠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7.05 149 1
11 유지아재처럼 자연상태가 되면 행성으로 육화하나요? [1] ㅇㅇ(118.235) 20.03.09 206 2
9 생각을 바라보는 게 가능할까요?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1.25 225 2
8 여러분들은 [1]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1.13 205 2
6 "깨달음은 없다"의 서문 다른 번역과 원문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1.09 407 1
5 The State Of Wonder, Not Knowing State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10.03 220 1
4 [영상] 길은 없지만 가야 할 길, 그 길을 밝히는 진정한 성자 [4]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17 306 2
3 U.G. 크리슈나무르티 - "잃어버린 자서전" (3)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17 358 1
2 U.G. 크리슈나무르티 - "잃어버린 자서전" (2)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17 381 1
U.G. 크리슈나무르티 - "잃어버린 자서전" [1] 혼자일어설용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9.05.17 1227 2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