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노르망디에서 독일 기갑부대와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은 7월 초 이후로 독일 기갑교도사단의 판터들과 조우한 이후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갑자기 미군 고위 지휘관들의 태도가 일변했다. 더 강력한 주포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전선 후방에 130대의 M4A1(76mm)이 배치돼 있었고, 미국 제2 기갑 사단과 제3 기갑 사단이 이를 각각 52대씩 수령했다. 나머지는 독립전차대대에 배치되었다.
<출전>
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Books 2008) 166p
군대든 사람이든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는 거 같습니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불필요한 희생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습니다. '갑자기 판터가 나타났는데 어쩌라고' 이런 식이라 서방 연합군 정보부가 "독일 기갑사단은 판터 1개 대대 대략 80대 정도 씩은 보유하고 있음"이라고 1944년 2월부터 줄기차게 경고했던 것도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는 미군 수뇌부죠.
(전략) 1944년 2월 22일 서방 연합군 정보부 정보노트 47번에 독일 기갑 사단의 편제 변화에 관한 완벽한 정보가 기록돼 있었다.
하지만 미군 고위 지휘관 중 그 누구도 이 보고서가 예견하고 있는 장래의 충격에 대해 어떠한 인식도 가지지 않았고, 맥네어, 브래들리, 아이젠하워 같은 미군 고위 지휘관 모두가 D-Day 전까지는 이 보고서를 무시했다.
<출전>
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Books 2008) 97p
그리고 7월 말 생로 방면을 향한 미군의 돌파가 있기 전까지 영연방군은 2류 기갑부대로─몇 개의 독일 중전차 대대를 포함해─독일 7개 기갑사단을 상대했고, 미군은 2개만을 상대했습니다. 왕립기갑군단의 전차병들은 개죽음을 강요당했고, 노르망디에서만 영연방군은 1,530대의 전차를 완전손실했습니다(대전차 자주포 손실 미포함). 이 중 태반이 셔먼이었고, 격파된 셔먼의 82%가 판터를 비롯한 독일 전차와 PAK40 같은 대전차포에 의해 격파되었습니다.
1944년 6~8월 영국군은 프랑스에서 약 1,530대의 전차를 완전손실했다. 반면, 미군은 약 875대를 완전손실했다. (주: 미군의 경우는 셔먼만 언급됨. 그 외 경전차와 대전차 자주포의 완전손실 추정치는 450대 이상)
<출전>
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Books 2008) 168p
미군보다는 선진적인 기갑교리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거머리 영감의 기갑전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손발 안 맞는 2류 영연방군 기갑부대는 노르망디를 자신들의 전차 잔해로 도배하면서 점진적으로 독일군을 압박했죠. (사실 원수 계급장을 달고 있는 먼트거머리 영감이 기갑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기갑전의 기술적인 이해도는 야전군 사령관, 군단장, 기갑 사단장들 선에서 얘기돼야 할 사안이니까요. 영연방군 야전부대 최고사령관이라 최종책임자로서 비판당하는 것이죠.)
게다가 영국 제21 집단군에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 약 300대가 배치된 파이어플라이는 판터 킬러나 티거 킬러로써는 이렇다 할 전과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만만한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를 잡는 데 크게 활약했죠. 파이어플라이가 영국군의 '언플'대로 그렇게 훌륭한 전차였다면 노르망디에서 독일 기갑 및 대전차 부대에게 영국군이 전차를 1,530대나 완파당했겠습니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3923072&page=1
그리고 예전에 니클라스 세테를링 영감의 저서를 바탕으로 언급한 왕립기갑군단 1944년 후반기 보고서에 8월 전차 완전손실 중 완파판정이 늦어진 일부 손실이 9월로 이월됐을 거라고 세테를링 영감 본인이 추정했다고 했는데, 잘로가 영감의 저서와 교차검증한 결과 사실이었습니다.
영연방군이 한 달에 500대가 넘는 전차를 갈아먹을 때, 노르망디에서 총 1,350여대의 전차와 대전차 자주포를 갈아먹은 미군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영연방군은 미군의 3배가 넘는 독일 기갑전력을 상대했기에 변명의 여지라도 있습니다.
영연방군이 대전차 자주포 포함 약 1,600대, 미군이 대전차 자주포 포함 약 1,350대의 기갑차량을 노르망디 전투에서 잃고, 자신들이 판터 킬러라 여겼던 셔먼(76)과 파이어플라이는 정작 만만한 4호 전차와 3호 돌격포를 잡는 데 크게 활약했죠. 압도적인 스펙으로 홈그라운드에서 활개치던 판터의 절반 정도는 독일군이 연료 부족과 견인 수단 부족으로 유기 및 자폭시켰습니다.
서방 연합군이 노르망디 전투 중 격파한 판터는 300~350대 정도로 추정되는데, 노르망디 전투에 참가한 판터의 수는 655대입니다. 이나마 완파로 추정되는 300~350대 중 절반 가까이가 독일군이 팔레즈 포위환 내부에다 유기하고 간 것들입니다. 서방 연합군 기갑부대가 엄청난 항공지원을 받으며 죽을둥살둥 전차 및 대전차 자주포 3,000대 가량을 완전손실하면서 처리한 판터가 200대도 채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판터 대략 300대 정도는 에릭 르페브르와 니클라스 세테를링이 각각 자신의 저서에서 추정했다시피 독일 본토와 기타 후방 지구 정비시설로 운반돼 수리 중이라 전선에서 이미 이탈한 상태였습니다. 서방 연합군 기갑부대에게 있어 노르망디 전투는 만신창이의 승리였고, 자화자찬하는 먼트거머리 영감은 최고책임자 중 하나로서 비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한 달에 기갑차량 1,000대씩 완전손실하고도 승리했다고 하는 게 개인적인 견지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1944년 2월부터 서방 연합군 정보부가 여러 차례 경고했고, 실제로 미군이 7월부터 맛만 보다 이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판터 쇼크는 예정된 재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대책없이 벌지 전투까지 버텼던 미군 수뇌부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영연방군이 판터를 주력으로 장비한 7개 독일 기갑사단 상대로 전차만 1,530대 갈아먹는 모습을 보고도 그닥 전훈을 얻은 게 없으니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애국적인 전차병들 수만 늘어갔을 수밖에요.
<참고 문헌>
Steven Zaloga, Armored Thunderbolt (Stackpole Books 2008)
Thomas L. Jentz, Germanys Panther Tank: The Quest for Combat Supremacy (Schiffer Publishing 1995)
Niklas Zetterling, Normandy 1944: German Military Organization, Combat Power and Organizational Effectiveness (J. J. Fedorowicz Publishing 2000)
Thomas L. Jentz, Panzertruppen 2: The Complete Guide to the Creation & Combat Employment of Germany's Tank Force ¥ 1943-1945 (Schiffer Publishing 2000)
Eric Lefèvre, Panzers in Normandy: Then and Now (After the Battle Magazine 1996)
Stephen Hart, Sherman Firefly vs Tiger: Normandy 1944 (Osprey Publishing 2007)
http://panzerkatz.egloos.com/339922 - 원링크 (이글루스 망함), 장갑묘 2012/11/3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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