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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와 노는 이야기 -1앱에서 작성

사월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4.23 10: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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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04.23 00:17

### 후배와 노는 이야기

 후배 녀석이 갑자기 부르기에 가 봤더니 이런 상황이었다. 좁은 밀실에 사춘기 남녀가 한 쌍. 나갈 곳은 한 군데 뿐인데 후배는 가느다란 팔로 서가를 막고 나를 가로막는 중. 

 묘하게 달아오른 숨결과 여자애 특유의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하다.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후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배. 제 섹스파트너가 되지 않으실래요?”
 
 입에 뭐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진짜로 뿜을 뻔 했거든. 묻고 싶은 건 얼마든지 있지만 우선은 거절부터 해 두기로 한다. 

 “미쳤니?”

 후배는 싱긋, 미소지었다. 

 “저는 정상이에요, 선배. 여자애가 편할 때 불러내서 아무데나 무책임하게 박아대도 된다고 하는데 흥분되지 않으세요?”

 고개를 끄덕인다. 흥분되기야 하지. 녀석은 거의 완벽하게 내 취향에 가까웠다. 단정하게 땋은 머리카락이나 길고 가느다랗지만 건강하고 낭창한 팔다리, 작지만 볼륨감 있는 가슴, 고양이를 닮은 날렵한 얼굴…… 솔직히 반해도 이상할 건 없을 정도다. 하지만. 

 “혹시 저번에 차인 거 때문에 이러는 거야?”

 녀석은 시선을 피했다.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말했잖아. 나 여친 있다고.”

 이번엔 후배가 한숨을 내쉴 차례였다. 포기하고 돌아가 주려나 싶지만, 녀석은 나를 한 번 더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니까 섹스파트너라고 했잖아요. 여자친구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할게요. 선배가 편할 때 아무렇게나 불러내서 그 소중한 사람한테는 못 하는 짓을 잔뜩 하다 내치면 돼요. 제발…… 선배는 제가 그렇게 싫어요?”

 싫지 않다. 전혀 싫지 않다.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녀석과 먼저 만났다면 분명 한눈에 반해버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랑은 외모와 조건을 보고 만드는 감정이 아니다. 쌓인 관계와 시간 속에 생기는 감정이지. 

 나는 후배의 눈을 피하며 사과했다. 

 “미안.”

 긴 설명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여자친구에게 미안해 질 수 있는 짓이었다.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큼 감정을 쏟을 수 없었다. 

 후배는 오열했고,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어야 했다. 가련한 모습.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여친이 있어서 차이고, 이번에는 몸만이라도 요구하다 한 번 더 차인 여자애. 
 안쓰럽지만 위로하지 않는다. 단지 지켜본다. 그게 내 의무거든. 

 “가질 수 없다면-.”

 후배가 간신히 눈물을 멈춘 것과 뭔가 위험한 대사가 들린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

 “하하하하.”
 “……괜찮니?”
 “네. 머리가 맑아졌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계획이 떠오르더라고요. 막고 있어서 죄송했어요, 선배. 그리고……”

 후배의 치마 주머니에서 커터칼이 튀어나왔다. 도색 안 된 일자형의 단순한 평범해 보이는 칼이지만 내가 꽤 찾아 헤매던 물건이었다. 며칠 전에 잃어버린 내 칼!

 찌이익. 후배는 그걸로 자기 옷 앞섬을 찢어버렸다. 아직 미묘한 미안함과 여자친구에 대한 의리, 앞으로 얘를 어떻게 보나 뭐 그런 생각들로 가득하던 나를 단숨에 현실로 끌어들이는 동작이다. 
 후배는 그대로 나를 덮쳤다. 

 “잠깐, 무슨-“
 “저항하면 비명을 지를 거예요. 가만 있어요.”
 “미친 소리 하지 마 어딜 봐도 네가-.”

 후배가 브래지어 앞도 잘라내서 입을 다문다. 후배는 내 커터칼로 자기 옷을 찢었다. 내 위에 올라타고 있다고 한들 덮쳐져서 몸싸움 중에 이렇게 됐다고 하면 당연히 내 잘못으로 몰리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나라도 진지한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뭘 하려는 거야.”
 “기정사실을 만들려고요. 바지 벗으세요.”
 “싫어. 하지 마.”
 “안돼요. 지금 상황은 이해하시죠? 선배는 벗어날 수 없어요.”

 힘은 내가 세다. 저쪽이 커터칼을 들고 있긴 하지만 제압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 힘을 쓸 수 없다면 혓바닥을 놀려야 했다. 

 “소리질러 봐. 제대로 확인해 보면 네가 날 덮친 게 명확해질걸?”
 “혀를 잘 놀리시네요. 하지만…… 음…… 응…… 츄우…… 하아.”

 나보다는 후배 쪽이 혓바닥을 잘 썼다.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입술 위쪽을 건드려지는 정도로도 기분이 좋았다. 
 
 “도박수를 던지는건 상관없지만 선배, 저 거짓말 잘 해요. 선배한테 덮쳐진 연기 현실적으로 잘 할 자신 있어요. ‘도, 도와주세요 선생님! 선배가 저를 끌고 들어오더니 갑자기 덮쳤어요!’ 어때요? 사실적이죠?”
 “……”

 연기가 일품이었다. 명백한 증거를 따지기 전에 정황증거를 만들어 버릴 정도는 됐다. 반면 나는 어른들이랑 말만 하면 버벅대기 일쑤였다. 교사들과 사이가 그렇게 좋지도 않았고. 평소의 평판 차이라는 건가. 

 일단 승복한다. 힘은 쓸 수 없고 논리도 소용없다면 남은 건 감정에 호소였다. 

 “하지 마. 부탁이야.”
 “여자친구가 그렇게 소중해요?”
 “그래.”

 정말로 좋아한다. 확실히 말해, 생긴 것도 성격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순한 얼굴을 하고 어디까지나 착하기만 한 녀석이다. 제대로 거절하는 법도 몰라서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뭐든 맞춰주던 아이였다. 

 하지만 함께 지내며 사랑에 빠졌다. ‘취향’이나 ‘다름’은 쌓인 관계와 시간 속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후배는 잠시 슬픈 눈빛을 보내지만 이내 다시 미소 지었다.  

 “음…… 죄송하지만 안돼요. 명백한 증거가 필요하거든요.”

 바지가 벗겨진다. 저항했다간 빼도박도 못할 테니 나는 가만 있어야 했다. 당연히 내 물건은 풀죽어 있었지만…… 후배는 개의치 않았다. 이런 상황인데도 귀여운 여자애의 벗은 몸을 보며 몇 번 애무당하면 금새 서 버리는 게 남자였다. 

 “미안해요, 선배. 이런 수단까지 쓰긴 싫었는데…… 읏……”

 후배는 그대로 내 위에 올라탔다. 무척 기분 좋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

 “이제 녹음까지 끝났어요. 선배가 저와의 약속을 어긴다면 선배의 인생은 끝장나는 거예요.”
 “……”

 후배는 내가 자신을 덮쳤다는 증거를 만들었다. 몸 안에 유전자를 받았고, 내가 덮친 듯 연기하게 만들어서 목소리를 녹음했다. 벗어날 수 없는 증거가 생긴 셈이었다. 무엇을 요구당해도 소년원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받아들여야만 했다. 

 “원하는 게 뭐야.”
 
 녀석은 미소지었다. 

 “선배와 섹스프렌드가 되는 거요.”
 “그만둬. 그냥 헤어질게. 너랑…… 너랑 사귀는 관계면 되잖아.”
 
 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은 녀석은 한 번 더 내게 미소지었다. 이번에는 좀 더 악랄한 미소였다. 

 “헤어지지 마요. 어차피 몸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런 가식적인 관계는 필요 없어요. 여자친구랑 계속 사귀세요. 대신, 저랑 일주일에 한 번은 관계를 가져요. 원한다면 더 많이 하셔도 되고.”
 “…… 미쳤군.”
 “죄송해요, 선배. 저도 정말로 이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런 식으로는…… 그런데…… 제가 무슨 소리를 해도 의미 없겠죠. 저 같은 거랑 해서 전혀 기분 안 좋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부탁 드릴게요.”
 
 녀석은 미소지으며 옷을 추슬렀다. 찢어진 상의를 대충 팔로 가리고 돌아가려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그냥 놔 둘 수는 없었다. 

 “그대로 갈 거야?”
 “돌아가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가려고요. 걱정 마세요. 들키지는 않게……”

 내키지 않지만 목도리를 던져줬다. 내가 의심받는 건 둘째치고 누구 시선을 받게 되면 문제였다. 후배는 내 목도리를 두르고 조심스레 앞을 가린 다음 문을 나섰다, 가 돌아왔다.  

 “커터칼은 돌려드릴게요. 아끼시는 거죠?”

 분명 아끼는 물건이었다.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이나 그런 건 없었지만 쓰기 편해서 일부러 찾아 다니며 구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후배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필요 없어. 가능하면 얼굴 보이지 마.”
 “…… 역시 미움 받네요. 이런 일 해 놓고 안 그럴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 이런 짓을 했으니 그럭저럭 좋았던 관계도 다 끝장난 거지. 꺼져줘. 제발.”

 후배는 씁쓸하게 웃으며 떠났다. 

#

 […… …… 야! 듣고 있어?]
 […… 어, 어! 미안. 잠깐 딴생각 했어.]

 수화기 너머 여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죄책감에 하나도 집중할 수 없었다. 후배에게 덮쳐진 뒤로는 계속 이 모양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말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게 괴로웠다. 

 벌써 일주일. 잠시 뒤에 나는 공원에서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 거기서 다시 한 번 관계를 맺겠지. 여자친구는 걱정스러운지 신음을 내뱉었다. 

 [으으음…… 괜찮아? 요즘 상태 좀 안 좋아 보이더라.]
 [……미안해. 티났어?]
 [나한테도 말 못할 이야기야?]
 [……응.]
 [정말이지. 서로 비밀 같은 거 없자고 했으면서 그러기야?]
 [미안.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어. 그래도 사정이……]
 [됐어. 서로 알만큼 알고 지냈으니까 네가 뭐 일부러 숨기는 거 아닌 건 알아. 그래도 얼른 얘기해 주면 좋겠다. 많이 힘들면 나한테 얘기해. 누나 좋다는 게 뭐야?]
 [생일 좀 빠르다고 또 누나 소리 한다.]
 [열흘 먼저 태어난 건 누나 아니니? 흥. 재미없어.]
 [알겠어. 미안해.]
 [응. 상황 좀 나아지면 다시 전화해 줘. 아니면, 도움이 필요할 때.]
 [……응.]
 [꼭.]
 
 대답할 수 없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해 달라고? 어떻게? 네 남자친구가 후배한테 협박당해서 강간했다는 증거를 잡혔습니다? 
 대답도, 위로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듣는다면 오히려 안 좋아지겠지. 사랑한다는 말로 통화를 끊고 멍하니 나갈 채비를 했다. 

 머리는 엉망진창으로 놔두고 옷도 아무거나 걸쳐 입는다. 그 녀석을 만나는 데 굳이 차려입고 싶지는 않았다. 약속 장소는 공원. 이 겨울, 이 밤에 사람은 없을 테니 크게 조심할 필요는 없겟지.

 가서, 하고, 오자. 감정 없는 행위지만 그럼에도 죄책감이 느껴졌다. 



-------------------------


이번엔 찍싸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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