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 경, 아프리카에 위치한 그리스인들의 식민도시 키레네에서 ‘키레네 학파’ 라는 쾌락주의 학파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1세기 뒤, 대수학자 피타고라스의 고향인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 역시 ‘에피쿠로스 학파’라는 또 다른 쾌락주의 학파를 창시하였다. 이 두 학파는 모두 쾌락주의적인 경향을 띄고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키레네 학파는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을 중시하는 반면, 에피쿠로스 학파는 ‘절제하는 쾌락’을 중시하였다. 에피쿠로스가 말하길, 인간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쾌락을 누리면서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쾌락이란 단순한 방종과 방탕이 아닌(물론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이니 만큼 방종과 방탕에 의한 쾌락 역시 긍정하였으나, 그러한 방식으로 쾌락을 추구할 경우 얻는 쾌락보다 얻는 고통이 더 크다고 보았다) ‘고통의 부재’라고 말했다.

반면 이들과 대척점에 있던 스토아 학파는 완전히 절제하는 삶, 그리고 금욕적인 삶을 중시했다. 좌우로 기둥이 배열되어있는 긴 복도에 모여 토론하던 철학자들의 학파인 스토아 학파는 훗날 스피노자 등으로 이어지는 합리주의 철학의 뿌리가 되며, 현대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반면, 에피쿠로스 학파는 그저 사람들이 유독 무절제한 사람이나 소위 말하는 ‘욜로족’들을 보고 “저 사람은 에피쿠로스주의자야.” 라고 가끔씩 언급할 뿐인 처지가 되었으니, 절제하는 쾌락을 주장했던 에피쿠로스의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양립되는 두 철학 사조의 탄생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당시 알려져 있던 세상을 모두 지배하고 있던 아케메네스 황조의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였다. 명분은 그리스에 대한 페르시아의 억압이었으나, 이집트, 페르시아, 인더스 강 유역을 모두 정복한 뒤 그가 시행한 정책들을 보면 꼭 그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외국인들을 ‘이어족(바르바로이)’라고 부르며 멸시했던 그리스인들과 달리, 알렉산드로스는 동방의 문화에 심취했다. 그는 동방과 서방을 융합시켜 새로운 제국을 창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의 첫 부인은 그리스의 귀족 여인이 아닌 페르시아인 태수의 딸이었던 록산나였고, 자기 휘하의 장군들과 병사들에게도 페르시아인들과의 결혼을 종용하였고, 집단 결혼식까지 개최하였다. 또한 그는 동방 영토 각지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였고, 이 도시들은 동방에 서방의 문화를 전파하는 주요 요충지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그리스 신들보다 훨씬 더 위대한 업적을 세웠던 탓이었을까? 그들의 시샘 때문인지,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33살의 생일을 맞이하지 못하고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열병으로 사망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열병으로 인해 실언이 나왔는지, 후계자를 정해달라는 장군들의 말에 그는 그저 ‘가장 강한 자’라는 마지막 한숨만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장군들은 그가 이룬 업적들을 갈기갈기 찢어 나눠가졌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세계 시민주의를 추구하며 동방과 서방의 융합을 부르짖었건만 그가 죽고 난 뒤 군림한 자들은 동방인은 열등하며 서방인들이 우수하다고 생각했다. 자연히 그들의 전쟁에 동방인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수많은 그리스의 젊은이들이 기회를 찾아 동방으로 왔고, 그 곳에서 창에 꿰뚫려 죽어갔다.

그리고 국가를 지킬 젊은 남성들이 없어진 그리스는 이내 로마에게 정복당했고, 동방 그리스 영토들도 마찬가지로 거듭된 내전으로 인해 쇠약해져 로마에게 편입되고 말았다.

그 시기에,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100년 사이에, 지금의 터키 서부 트랄레스라는 지역에 세이킬로스라는 남자가 살았다. 그는 왕도 아니었고, 장군도 아니었고, 철학자나 수학자, 공학자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그가 남긴 4행의 짧은 음악 때문이다.

<그대여,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그대 결코 슬퍼하지 말라

삶이란 찰나와도 같기에

시간이 곧 그것을 앗아갈테니.>

‘에우테르페’라는, 세이킬로스의 아내일지, 어머니일지, 아니면 단순한 뮤즈(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예술의 여신들)들 중 한명의 이름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세이킬로스는 한 망자의 무덤 앞에 이 비석을 세웠다. 비석 앞에는 이런 말이 적혀져 있었다. <나는 비석이요, 우상이다. 세이킬로스가 영원한 기억의 상징으로 나를 여기에 세웠다.>

상상해보라. 2300년 전 한 남자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들어낸 음악이, 지금까지 완전하게 보존되었다니,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뭉클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이킬로스의 비문에 적힌 노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비문을 적은 세이킬로스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처음에 저 가사가 ‘욜로’에 관한 가사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어차피 죽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즐거운 일만 경험하고, 하고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해치우고, 고통 받지 말자는, 그런 의미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니, 그것보다는 스피노자가 지구멸망 전에 심을 한 그루의 사과나무와 비슷한 의미인 것 같았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삶은 오직 한 번뿐이다. 세이킬로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소년 세이킬로스는 욜로족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제우스 신도, 데메테르 여신도 아니기에 짧디 짧은 삶을 살아가며,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즐기다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의 의미를 바뀌었으리라.

‘빛난다’는 것은 방탕과 방종이 아니다. ‘빛난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대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라는 것은, 그대가 살아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는 세이킬로스의 후회인지, 다짐인지,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만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도 못하고 그저 쾌락만을 좇으면서 살아간다면, ‘결국 슬퍼하게’되지 않을까? 살아가는 동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면, 죽기 직전에도 ‘결코 슬퍼하지 않을’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죽는다. 인간의 삶은 찰나와도 같다. 하지만 인간은 필멸일지언정 ‘사실’은 불멸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갔다는 ‘사실’은 불멸이다. 그렇기에 필멸자인 인간은 불멸의 사실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이 세이킬로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다. 그대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그대여,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 하라. 그러면 그대 빛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