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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작문>내가 벨레가르란 말이다, 그래-그래 (2)

ㅋㅊㅋㅎ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2.24 17:19:19
조회 836 추천 26 댓글 6
														

1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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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레가르 - 퀵




카자도르 썬더혼은 눈을 꿈벅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소란스러운 전장을 둘러보았다.
본인을 빼면 주변의 누구도 놈의 헛소리를 듣지 못한것 같았다. 용병이나 측근들은 다른 쥐들을 상대하느라 바빠보였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래서, 네가 벨레가르란 말이냐?”

퀵 헤드테이커의 흉물스러운 얼굴에 화색이 번졌다.
“그래-그래! 이제야 알아듣는군! 나요, 아이언해머라고!”

쥐인간을 내려다보던 카자도르가 푸근하게 미소지었다.
감격에 젖은 쥐인간은 썬더혼의 두꺼운 몸통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우정의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오십 킬로그램짜리 쇠망치였다.
정수리를 강타당한 쥐인간은 껴안을 듯한 자세 그대로 혼절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눈을 뒤집고 뒤로 넘어간 퀵 헤드테이커를, 레드가드들이 그대로 안아든 채 기를 쓰고 도주했다. 단련된 주력이 사라진 자리는 머릿수로 메울 수 없었다. 먼저 도주하지 못한 노예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포위를 뚫으려 애쓰던 레드가드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전투는 일방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사방에서 다고라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맹렬히 싸우던 카자도르는, 잠시 눈을 감고 그 소리를 음미했다.

놈들로서는 처참한 패배였다.
퀵 헤드테이커가 전장에 나선 이래, 모르스 클랜이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규모의 대패.




------------------------------





며칠 전.




‘대체 어째서? 왜?’


수십 일 전부터 같은 명령이 그를 닦달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대체 왜 그러느냐?
카락 아줄을 공격해라, 퀵 헤드테이커.

네가 직접 선전포고를 했다면서, 시간을 끌 이유가 있나?]


‘하지만 난 퀵 헤드테이커가 아니란 말이다.’

물론 퀵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이상, 놈의 상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놈의 의무에서도. 아이언해머의 생애가 여덟 봉우리의 탈환이라는 주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드워프 동족을 침공하라는 명령은 맨정신으로 따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워로드가 일부러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자, 그나우드웰이라는 작자는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 당황을 표현하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사절을 보냈다.

출병하지 않으면 총애가 흔들릴거라 꽥꽥대는 스무 번째 쥐새끼 전령에게, 벨레가르는 손에 잡힌 아무 두개골을 뽑아 던져 침묵시켰다. 예전에 동족에게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작자는 또 누구길래, 몇 번이고 내 어전에 행패부릴 놈을 보낸다더냐?”

기절한 전령을 끌고 나가던 스카 블러드테일은, 여태껏처럼 어떻게든 설명하는 대신, 며칠 새 움푹 들어간 눈으로 퀵을 마주보았다.
대답을 요구하려던 벨레가르-퀵은 말을 삼켰다. 부관은 한계에 도달한 듯 했다.
“...됐다.”



귀한 고기. 더 많은 지원. 생명의 묘약의 비법 일부 등등.
모든 종류의 회유가 실패한 뒤, 퀵의 상관은 기어이 직설적인 협박을 던졌다.

[공격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내 사절은 보낸 족족 때려죽였군.
전보다 겁은 더 많아졌고, 자제력은 더 떨어졌고...
몹시 아꼈던 네게 이런 말까지 하게될 줄 몰랐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겠구나.
혹시 교체당하고 싶느냐?]


“교체. 교체라.”
어쩔 수 없다는 듯 벨레가르는 출병했다.
대단히 비효율적인 행군을 유도하면서.
“이미 교체된지 오래지. 이 산맥의 진정한 왕으로 말이야.”

같은 길을 빙빙 돌던 노예들은 발톱이 분질러져 비명을 질렀다. 고기 수레는 거친 길을 지나다 바퀴가 망가졌다. 워프 캐논은 진창에 빠져 분질러졌다. 화기반의 펌프와 노예병들의 목재 창대는 수맥을 지나던 중 습기에 썩어 못 쓰게 되었다.
그에게 무슨 짓이냐며 악을 쓰던 한 그레이시어는,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실종되었다. 적어도 벨레가르-퀵은 그렇게 주장했다. 물론 시체가 발견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등에 선명히 남은 발자국도.

그 모든 행태를 옆에서 목격하며, 스카 블러드테일은 자신도 미쳐서 헛것을 보는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벨레가르는 실실거리며 상황을 낙관했다.
그의 군대엔 공성 병기도, 저주받을 놈의 마법사도, 싸울 기운도 없었다. 패전할 것이 분명했다. 그나우드웰이라는 놈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허나 벨레가르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투항해 썬더혼에게 상황을 밝히고, 드워프의 사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여태껏 신뢰와 성실로 살아왔기에 알 수 없었도다. 배신이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이었던가.
적의 심장을 찌르라는게 이런 의미였군요. 토그림 이 음험한 늙은이같으니...
제길, 이쯤 했으면 이젠 돌아가게 해주겠지?’



아니었다.

“하이 킹에게 들었겠지. 안 그렇소? 이제 이쯤 되면 빚을 갚았다 치고-”
“그럼 그렇다고 믿고 죽어라, 이 정신나간 것아!”

벨레가르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승리를 거저 받은 카자도르는, 그 은혜를 망치로 갚았다.
두개골에 새겨진 금보다 배신에 떨리는 심장이 더 고통스러웠다.
다고라키의 몸에 갇힌 군주는 분노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모든 클랜의 군주가 내 유배에 동의했다고 했다. 내 실각에 동의하겠다고 했어.
놈도 마찬가지었겠지! 내 판단력이 흐려진게 분명하군, 내가 그 협잡꾼들을 믿다니!
배신자! 이 배신자들! 동족이고 뭐고 전부 쳐죽여버려야 했다!”

“...라이벌 클랜들 말씀이신가요? 네, 당연히 퀵님을 두려워하고 견제하겠죠...”
진이 다 빠져버린 스카가 중얼거렸다. 주인에게 발병한 신종 정신병은 차도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벨레가르의 귀에는 스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로 등장한 사절의 음산한 킬킬거림도.





“퀵 헤드테이커. 그나우드웰이 나-최후통첩을 보냈다.”
쩔그렁거리는 금속음과 함께 나타난 워로드가 퀵의 면전으로 걸어왔다.
“이제 내가 멍청이-놈을 대신할거야. 카자도르를 향한 네 지옥같은 행군에 대해선 모두 전해들었다. 최악이었어. 대체 모두가 너를 경계-경외한 이유가 뭘까?”

퀵의 것보다 비싸고 무거워보이는 판금 갑주, 스카에 맞먹을 만큼 거대한 덩치. 퀵보다 두 배는 어린 듯 싱싱한 털과, 그 젊음에서 뿜어져나오는 자신감.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한창 중얼거리던 벨레가르는 그럼에도 놈을 돌아보지 않았다. 일말의 위기감도 없는 듯 했다. 스케이븐으로서는 금치산자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레드가드들의 눈동자가 새 워로드와 퀵 사이를 바삐 오갔다. 예전같으면 퀵이 두려워서라도 줄타기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시던 워로드는, 수명이 다 된 검처럼 맛이 간지 오래였다. 종전의 전투에서 혼절한 퀵을 지키다 치른 희생으로 족했다. 놈들은 이미 충분히 명예를 지켰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줄은 갈아타면 그만이다. 레드가드들은 얼마든지 스케이븐의 법칙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오직 스카만이 으르렁거리며 새 군주를 경계했다. 날카로움을 잃었을지언정 퀵은 아직 그의 주인이니까.

“그나우드웰이 준 기회를 제발로 걷어차다니. 멍청한 새끼. 한 달이 넘게 아이언픽에 묶여있었다지. 나라면 하룻밤만에 모든 드워프 왕들을 죽일 수 있을 거다...”
퀵의 모가지가 홱 돌아 워로드를 향했다.
패기넘치는 젊은 워로드는 움찔했다. 어둠속에 명멸하는 헤드테이커의 안구에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뭉글거리며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시뻘건 살기가.

“정말이냐?”
“뭐가?”
“정말로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이다. 네놈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대금을 치르겠다. 대가로 무엇을 바라느냐? 모든 드워프-다위 왕의 목을 칠 수 있다고? 하룻밤만의 일이 아니어도 좋다. 방법이 뭐냐?”

워로드는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곤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으르렁거렸다.
언젠가 대금을 치른다고? 양심없는 새끼. 에신 클랜한테도 그렇게 말해 보-”
“가능하느냐고 물었다. 카라크 아줄, 카라크 카드린, 카라즈 아락! 어떻게 수천년을 존속해 온 요새들을 깨부술 것이냐고 여덟 봉우리의 군주가 물었다!”

당연히 해본 소리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했다간 한판 붙을 태세였으니까. 퀵은 어느새 무기를 뽑아들고 있었다.
워로드는 자신이 질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다칠지도 모를 위험을 회피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을 뿐.

워로드는 한 발 물러나며 말꼬리를 잡았다.

“그래, 맞아. 여덟 봉우리... 벨레가르는 왜 빼놓고 말하지? 벨레가르는 네 몫이다 이거냐?”

벨레가르-퀵은 우뚝 멈췄다.
그리곤 픽 웃었다. 웃음소리는 점점 커지며 한참을 이어졌다.
그것은 쥐의 웃음소리같지 않았다. 그 웃음에 담긴 모종의 감정은, 실내의 공기를 한없이 무거운 무언가로 바꾸어놓았다.
워로드도, 레드가드도 그 무게에 불편한 듯 몸을 달싹거렸다.

마침내 예고 없이 웃음이 멈추었다. 그리고 음울하고 낮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벨레가르는 이제 없지 않느냐.”
“...벨레가르가 왜 없는데?”
“왜 없냐니?”

내가 여기에 있으니까. 당연한 소리를.
실각당한 군주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가려다, 도중에 멈추었다.
앞에 선 다고라키의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 때문에.

눈을 마주친 두 스케이븐은 서로의 눈에서 의구심을 읽었다.

벨레가르-퀵의 숨통이 떨렸다.
“...벨레가르가 살아있다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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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워로드가 뿜어내는 압박감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엔지니어는 찍찍거리며 망원경을 넘겼다. 그리고 그것을 퀵이 받아들자마자 도망쳤다.
신참 워로드는 으르렁거렸다. “눈이 있으면 직접 봐라. 저 쪽이다.”

정신없이 망원경에 눈알을 박는 퀵을, 사지가 묶인 레드가드들은 불안한 듯 노려보았다. 한 때 무시무시한 위명을 떨쳤던 퀵의 경호대는 이제 모두 초라한 몰골로 새로운 워로드의 군대에게 억류되어 있었다.
스톰버민들은 퀵이 자살을 꿈꾸는것인지 의심했다. 자신을 대체한다는 정적 앞에서 저항할 병력마저 순순히 내놓는다면, 최후는 뻔한 것이 아닌가.
재갈만 없었다면, 두 워로드 모두에게 애원하거나 욕이라도 퍼부었을 것이다. 순순히 퀵이 뒈질 때 순장당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물론 신참 워로드도 레드가드가 탐났다. 하지만 놈들을 제 밑으로 받아들이기엔 위험부담이 컸다. 그나우드웰이 직접 퀵처럼 유별난 놈들이라고 경고한 바 있었다. 언제고 주인의 복수라는 낯선 논리로 새 주인의 등을 찌를지 모른다고.

무기 반납. 모든 기존 군대의 무장 해제. 맨몸으로 등을 보이며 걸을 것. 퀵과 새 워로드가 함께 이곳까지 나오는 조건 중 하나였다.

벨레가르의 요새가 보이는 곳까지 나오는 건, 신참 워로드의 눈에는 쓸데없는 위험부담이었다.

‘그러니 나도 얻는게 있어야지.’
워로드는 불편한 듯 어깨를 움츠리며 퀵을 돌아보았다.
놈은 홀린 듯 여덟봉우리 카라크를 관찰하고 있었다.
적에 대한 놈의 집착이 얼만큼인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겁 없는 멍청이이라더니, 소문이 틀린 것 하나 없군.’

물론 드워프 군대는 무서워도, 무기도 사병도 없는 미친놈은 두렵지 않았다.
젊은 워로드는 속으로 자신의 계략을 칭찬하고,
퀵을 상대하기 위해 필요할지 모른다며 선뜻 대군을 내어준 그나우드웰을 비웃었다.

그리고 본래 퀵의 것이었던 무시무시한 둔기를 꺼냈다.
그리고 경쟁자의 뒤로 다가갔다. 서서히.



스케이븐의 귀는 민감하다. 워로드쯤 되면 등 뒤의 숨죽인 발자국 소리 정도는 분별할 수 있다.
배신이나 기습을 감지해야만 그 직급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귀 옆에 대고 용이 울부짖은들, 지금의 벨레가르에겐 들릴 리 없었다.
저 멀리, 성벽 위에 그가 있었으니까.
벨레가르 아이언해머.

그는 이 시간, 이 날짜에 항상 성벽을 순찰한다. 그것이 벨레가르 자신의 일과였다.
왕관과 투구. 여덟 봉우리의 정당한 군주의 당당한 풍채.
한없는 분노와 근심이 담긴 저 눈. 자신의 눈이었다.

처음 그를 발견했을 땐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스스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심. 그리고 공포.
자신이 정말로 벨레가르가 아니라면? 토그림의 서한도 상상의 산물이었다면?
스스로가 그저 정신병을 앓는 퀵 헤드테이커에 불과하다면?
쥐의 가죽 속에서 보낸 수십번의 낮과 밤은 그를 불안정하고 나약하게 만들었다. 내면의 왕을 잃어버리고 한순간 작디작은 쥐새끼가 된 그는, 하마터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눈앞의 절벽에 몸을 던질 뻔했다.

망원경 렌즈 속의 벨레가르가 뒷다리를 들어올리기 전까진 그랬다.
어색한 몸짓으로 짧은 발을 들어올린 그는, 허공을 몇 번 걷어차다가 좌절섞인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망루에서 내려와 내실로 향했다.
그 순간, 절벽 끝으로 향하던 벨레가르-퀵의 발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멈추었다.

드워프일 적에 보았다면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케이븐의 몸뚱이에 갖혀있는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뒷발로 귀를 긁으려는 동작이었다.

벨레가르였던 자신은 퀵 헤드테이커의 안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벨레가르의 몸뚱이엔 드워프 아닌 것이 들어있었다.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몸을 바꾼거라고? 날 쥐의 몸에 넣기만 한게 아니라, 서로 바꾸었다고?’
벨레가르-퀵은 전율했다. 카자도르의 망치와는 비할 수 없이 강렬한 충격이었다.
‘그 다고라키에게 내 모든 것을 주었다고?’

사지를 얼리던 의문과 두려움은, 어느새 용암같은 분노로 바뀌어있었다.
퀵의 눈알 위에 돋은 실핏줄에 벨레가르의 분노가 흘렀다.


내 자리를? 내 금고를? 내 군대와 유산을?
내 원한의 서와, 나의 도끼와, 내 가신들과 노르그림링의 충의를?

내 아내와 아이를?
놈에게?


“어떻게 머리 수집가에게!”


날벼락같은 포효가 굴을 뒤흔들었다.
퀵의 뒤통수를 겨냥하던 워로드는 고막을 부여잡고 넘어졌다.

기절할 뻔했던 워로드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퀵의 상태를 살폈다.
망원경을 바닥에 던져 깨부순 놈은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었다.
성대가 터진 듯 입가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바닥을 더듬거리던 워로드의 손이 다시 드워프 끌을 집었다.
지금껏 놈을 살려온 예감이,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워로드는 비틀거리며 급히 일어섰다. 라이벌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죽이기 위해.




‘이자들이 진정 미친 것인가?’

도저히 동족이, 토그림이 이런 짓을 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이건 저 지독한 엘기나 카오스 괴물들의 꿈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발상이었다.
다른 왕들이 벨레가르에게 증오를 표현하곤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유예된 부채에 대한 당연한 권리 주장이었다. 토그림이 그의 앞에서 단념을 촉구하고 조롱을 입에 담곤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나름대로의 공정함의 발로였다. 서로 입장이 바뀌었다면 벨레가르 또한 같은 태도를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벨레가르는 언제고 최소한의 존중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채무자였다.
그렇게 믿었다. 여태까지는.

“너희는 이제 내 동족이 아니다.”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말이었다. 벨레가르였던 것은 무의식 속에 그 말을 곱씹었다.
분노에 사로잡힌 존재에게, 그 말은 몹시 마음에 들었다.

겁을 집어먹은 워로드가 으르렁거렸다.
“무슨 말이야, 이 미친-돌은 놈아?”

“말 그대로다. 군대가 필요해.
안그룬드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내 원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안그룬드도 마찬가지로.”

'정신나간 늙은 새끼 같으니.'

두려움을 이겨내려 애쓰면서, 젊은 워로드는 드워프 끌을 한껏 들어올렸다.
그러나 첫 일격은 빗나갔다. 드워프 끌이 쥐의 몸뚱이에서 다위의 영을 긁어내는 일은 없었다.
손이 떨렸던 탓만은 아니었다. 상대는 이미 그 공격을 읽고 있었다.

젊은 워로드는 박치기에 들이받혀 나뒹굴었다. 그리곤 부러진 안와골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놈에겐 편히 고통을 곱씹을 여유가 없었다.
여덟 봉우리의 왕은 쓰러진 다고라키의 주둥이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그리고 윗턱과 아래턱을 붙잡았다.


“그러니 부득이하게 네 것을 빌리겠다.”


생살이 터지고 가죽이 찢어지는 자극적인 소리에, 모든 스케이븐이 소음을 멈추었다.
열에 서넛은 발작증세가 있기 마련인 슬레이브들조차도 완전히 얼어붙었다.

벨레가르-퀵은 두 갈래로 찢어진 다고라키를 구릉 아래로 내던졌다.
지도자를 잃어버린 군대 위로 군주가 쏟아졌다.

쥐의 가죽과 피를 뒤집어 쓴 분노는, 덜덜 떠는 쥐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필요하지. 필요하고말고. 아주 많은 군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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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벨레가르




“전하, 미친 짓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위대한 군주 벨레가르 아이언해머는 노망이 든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원로들의 소견으로는 그랬다. 그나마도 예의를 따져 순화된 표현이었다. 귀신이 들렸다고 했다간 왕비와 원한을 논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다만 왕비도 신하들이 바삐 양위를 논의하는 것을 말리진 않았다. 왕에게 제정신을 되찾을 시간을 주고 싶은 것은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러기엔 여덟 봉우리는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언제고 전란에 휩쓸려 멸족할지 모르는 살얼음판같은 땅.

그러나 퀵-벨레가르는 얌전히 절차를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다.

“이거-일 허락해달라, 저거-일 지시해달라. 안 물어보면 아무것도 못하는 돌덩이같은 놈들. 스카만도 못해. 심지어 등이랑 뒤통수도 못 긁잖아!”

왕은 툴툴거리며 온몸을 긁고, 뒷다리로 뒤통수를 긁으려 애쓰다가, 가슴께를 간지럽히는 수염에 으르렁대며 한 뭉텅이를 뽑아버렸다.
무기와 갑옷을 가져오던 시종들은 왕을 따라서 수염을 뽑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자살 욕구 이상으로 참혹한 감정이었다.

“심심해-지겨워. 싸우러 갈거야. 나는 기둥-도시 밖에서 뭐라도 죽인다!”

드워프를 공격했다간 자신이 벨레가르가 아님을 들킬지도 몰랐다. 그러나 죽기살기로 벨레가르를 흉내내는 삶 또한 몹시 견디기 힘들었다. 모두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업무와 전통을 강요했다. 군주가 전면에 나서는 전투는 당연히 왕의 일과에 없었다. 어떤 신하인들 퇴행한 군주가 선봉을 맡겠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퀵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전장에 나서지 않으면 자신이 무뎌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안했다. 갑자기 드워프의 몸이 되었으니 그럴 만 했다.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불안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물론 전투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테고.
결국 근질근질함을 참지 못한 퀵은 출병을 선언했다.

“물론 동족과는 싸우지 않는다. 퀴... 아니, 나는 책임감 있는 군주니까.”
쥐-놈들은 안돼. 그나우드웰이랑 싸운다고? 둔해빠진 드워프-놈들 데리고?
“그럼 녹색-놈들 뿐이군. 스카스닉 머리 가져온다. 그래-그래!”

“통촉하여 주십시오, 제발!”
“판단이 흐려지셨습니다! 군주께 필요한건 전쟁이 아니라 요양입니다!”
“젠장, 쉴만큼 쉬었어. 그리고 퀵은 절대로 틀린 판단을 하지 않아!”

한 순간, 노스카의 얼음바람이 기둥의 도시에 불어닥친 듯 했다.
한번 구축된 정적은 한참동안 깨어지지 않았다.
보름달처럼 동그래진 사방의 눈알들을 보며 퀵은 진땀을 흘렸다.
“아니, 잠깐. 아니-아냐! 내 말은, 내가 퀵이라는게 아니고, 그러니까-”

대체 뭐라고 수습해야하지. 이를 딱딱 떨던 퀵은 황급히 머리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멍청한 벨레가르에게 조언을 구할 트로피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럼 대체 누구한테 물어봐야돼? 새 트로피라도 만들어야 하나?
정서불안에 시달리던 퀵의 눈이 신하들을 죽 흝었다.


“전하-!”
그 의미를 모르는 신하들을, 그리고 퀵을 곤경에서 구해낸 것은,
대전으로 득달같이 달려온 정찰병이었다.
“모든 다고라키들이 산맥에서 물러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여태 간악한 다고라키들이 한 것이 무엇이었던가. 악질적인 소모전으로 산맥의 모든 다위를 멸종시키려 하지 않았나.
수십년간 살육에 시달린 그들은 누구보다 뼈저리게 그것을 실감했다. 따라서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윽고 쏟아져들어온 광부들이 그 증언을 뒷받침했다. 곧이어 엔지니어들이 멀어지는 진동을 보고했다. 뒤따라온 레인저들이 굴 밖으로 나와 떠나는 대군을 목격했다고 외쳤다.

"퀵 헤드테이커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맥 밖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여덟 봉우리에서 쥐인간이 사라졌다. 아무 예고도 없이.
기쁨이 폭약처럼 번졌다. 온 사방에 환희와 통곡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단 한명만이 차분했다.
정확히는, 그 혼자만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여덟 봉우리를 떠난다고? 왜?”
어쩔 줄 몰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퀵-벨레가르는 중얼거렸다 .
“그나우드웰이... 화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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