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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viii 텅 빈 옥좌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05 15: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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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viii 텅 빈 옥좌



당신의 궁정에 마침내 고요함이 내린다. 더 이상 지연될 일도, 방해될 일도 없다. 관중도 침묵에 잠긴다. 오직 무의 아득한 울림이, 그리고 깨어나서 워프의 정원에 몰려들기 시작한 사이크뉴에인들의 웅웅거림 뿐.


심오하기까지 한 고요함이다. 은하계는 정렬된다. 모든 것과 모든 순간, 모든 무한한 각도와 헤아릴 수 없는 평면들이 하나의 사이킥 프랙탈 지점으로 접혀 모여든다. 당신의 궁정은 당신의 기함을 둘러싸고, 그 기함은 무를 둘러싸고, 그 무는 필연의 도시를 둘러싸고, 그 필연의 도시는 당신의 영역을 둘러싸고, 당신의 영역은 테라를 둘러싸고, 그 테라는 태양계를 둘러싸고, 그 태양계는 은하계 전체를 둘러싸고, 그 은하계 전체는 워프를 둘러싼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역순으로 서로를 둘러싼다. 마치 하나의 상자 안에 다른 상자가 들어 있듯, 당신의 궁정과 이 순간을 중심으로 하여 정렬된다.


당신은 저 너머 어둠 속의 오래된 넷을 힐끗 바라본다. 한 놈이 나른한 손길로 얼굴에 묻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이크뉴에인을 털어낸다.


그들이 승인한다. 저들은 당신의 아비가 결코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당신을 인정한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은 다시 혈광을 불러낸다. 소용돌이치는 혈광이 발톱에 엉긴다. 당신은 심중에서 그 형체를 다듬는다. 붉은 실처럼 뻗친 빛의 줄기가 당신을 휘감아 우로보로스의 고리를 만든다. 당신은 혈광의 매듭을 짓고 비틀어 여덟 개의 가시 돋친 대못을 뽑아낸다. 당신은 그 형상이 빛나도록 만든다.


혼돈의 왕관이다. 당신이 쓰게 될 왕관만큼 훌륭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장엄하다.


당신은 아비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기 위해 몸을 돌린다.


옥좌는 텅 비어 있다. 당신의 아비가 흘린 피로 얼룩져 있지만, 비어 있다.


다음 순간, 당신의 늑골을 고통이 꿰뚫는다. 당신은 비틀대며 왕관을 떨어뜨린다. 왕관은 검은 바닥에 장례식의 조종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튕긴다. 그대로 왕관이 딸그랑대며 구르다가 멈춘다.


아비는 당신의 뒤에 버텨선 채다. 마치 차크람처럼, 세 번째 오각성을 손에 움켜쥔 형상이다. 그 칼날이 방금 당신을 관통했고, 이제 그 날 위로 흐르는 피는 아비의 것만이 아니다.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당신의 아비는 살점이 다 벗겨진 망가진 팔로 그 인장을 휘두른다. 아비의 클로는 프로콘술의 창을 움켜쥔 채다. 본디 장창이었을 그 창이 아비의 손에 쥐어지니 단창에 불과하다.


당신의 아비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라. 잠시의 유예 동안, 아비는 다시 당신에 대적할 정도의 힘을 회복하지 않았던가.


아비가 당신을 향해 오각성을 휘두른다. 당신은 옆걸음질로 피한다. 당신의 아비는 느리고 서툴다. 왜 이러는 것일까? 왜 그냥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당신은 이미 두 번이나 아비를 꺾지 않았던가. 당신의 아비는 당신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아야만 한다.


당신의 아비는 차갑게 식은 강철 가치를 세 번째로 휘두른다. 당신은 발톱으로 일격을 받아낸다. 인장단의 마력이 다 소모된 오각성은 얼음이 부서지듯 산산이 쪼개진다.


당신의 아비는 부서진 조각을 옆으로 던진다. 비틀거리며 불안정한 자세임에도, 아비는 당신의 주위를 선회한다. 아비가 제 왼손에 창을 던져 받는다. 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역시 날카롭다. 아비의 눈은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격렬한 피로가 느껴지는 시선이다. 안광이 거의 닳아버린 채다. 그 불길은 거의 남지 않았다.


아비가 당신을 향해 돌진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 동작이다. 당신이 몸을 돌린 순간 창날이 당신의 굴절 역장 생성기를 파헤친다. 불꽃이 솟구친다. 당신은 마울을 휘둘러 막아내지만, 반대편에 있던 아비의 클로가 그대로 당신을 찌른다. 이제 벼락이 흐르지는 않지만, 당신의 육을 파헤친 클로가 피를 탐한다.


이것이 아비가 취한 최후의 형상일까? 덱에 남겨진 혐오스러운 카드처럼, 사라지기를 거부하며 당신의 장엄한 승리를 더럽히는 망령과도 같은 약탈자일까? 당신이 옥좌를 떠난 대신에 제공한 보상을 거부하며 떠나기를 거부하는, 복수하는 영혼일까?


정말이지 당신의 아비답다. 당신의 아비는 절대 당신이 당신 자신이 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제 그림자로 당신을 덮고, 빛을 가리고, 당신의 모든 것과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에 얼룩을 남긴다. 당신의 자격을 논하고, 영예를 더럽히고, 복종을 강요한다. 당신이 모든 힘을 쥐었음에도, 어떻게든,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아비는 여전히 저기 있다. 피투성이가 된 손톱으로 매달린 채, 모든 것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려 들며 당신의 삶을 지배하려 든다. 당신은 당신의 아비처럼 기나긴 삶을 살아온 존재라면 계승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잊기 쉬우리라 생각한다. 당신의 아비는 낡은 것이 새 것에게 어떻게 길을 터 줘야 하는지, 모두를 위해 건강한 재생의 순환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잊었으리라. 당신의 아비는 3만 년 동안 그 자연스러운 순환을 멈췄고, 그 죄업이 쌓은 구역질 나는 정체는 모두가 지켜볼 수 있음이니.


오직 당신의 아비만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 당신의 아비는 거기에 대해서는 눈이 먼 꼴이니. 당신의 아비는 과거에, 그리고 과거의 방식에 매달려 있다. 놓으시오, 아비여. 놓으란 말이오. 그것들은 이미 죽은 것이니. 당신의 아비는 죽어버린 옛것들의 매장을 거부한다. 어떻게 그 위에 엉긴 구더기 덩어리들을 보지 못한단 말인가? 어떻게 당신의 아비는 오직 당신의 의지로 끌어낼, 너무도 오래 지체되었으나 새로이 맥동하는 시작을 보지 못한단 말인가?


실로 불쾌한 저항이다. 당신의 아비는 이 저항으로 당신을 조롱하고 있다. 당신의 자비를, 당신의 고귀한 승리를, 당신의 훌륭한 성취를, 당신의 정통성을, 당신의 자비로운 관대함을 조롱하고 있다. 당신의 아비는, 당신의 날 중의 날을 망치기 위해, 가능한 한 곤란하고 억척스럽게 구는 중이다.


실로 이기적이다. 실로 고집스럽고 악의에 차 있다. 늘 그랬듯이 타인의 필요와 갈망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권위나 중요성이 모두 종말로 가는 지금조차 만물의 중심에 자신이 서 있는 것처럼 군다. 패배의 순간 속에서도, 당신의 아비는 당신의 승리를 망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당신의 아비가 다시 클로를 휘두른다. 당신은 쉬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몸을 옮긴다. 당신을 놓친 아비는 비틀대며 균형을 잡으려 버둥댄다.


저런 눈빛이라니. 피로에 지쳐 빛을 잃은 눈이라니. 오, 당신은 이제야 알아차린다. 당ㅅ니은 그 눈에서 그 눈빛의 진실을 본다. 당신의 아비는 스스로가 패했음을 안다. 그럼에도 아비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아비는 항복을 거부하고 있다. 이 한심하고 멈추지 않는 노력은 단순히 당신의 즉위를 망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당신의 아비는, 당신에게 살해되기를 바란다.


당신의 아비는 지금 당신을 화나게 하려 하는 중이다. 당신을 자극해 분노하게 하려 한다. 당신이 당신의 아비에게 종말을 선사하는 꼴을 바란다. 당신의 제안과 왕관을 받아들이느니, 죽고자 하는 것이다.


죽음이, 당신의 아비가 당신을 상대로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승리다.


당신의 아비는 또 다른 방향으로 당신에게 이른다. 피거품이 엉긴 허파로 헐떡이는 끔찍한 소리가 당신에게 닿는다. 스스로의 움직임이나 의도를 숨길 힘도, 의지도 없다. 당신의 아비가 세 차례의 연격을 가한다. 창, 클로, 그리고 다시 창이다. 당신은 아비의 공격을 막아낸다. 한 번의 공격이 상처를 남기지만, 몇 초 만에 아문다. 하지만 따끔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당신의 아비는 지금 당신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당신을 최대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아비는 당신의 격노를 원한다. 아비는 당신의 자비가 아니라 잔인함을 원한다.


당신의 아비는 진정 죽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아비가 서투른 공격을 날린다. 당신은 창을 빗겨내고 클로를 막아낸다. 되찔러오는 창에서 몸을 돌려 피해낸 당신은 다시 날아드는 발톱을 받아낸다. 그리고 당신은 창날을 붙들고 옆으로 비튼다.


다음 순간, 당신은 마울로 아비를 후려쳐 바닥에 쓰러뜨린다.


아비는 옆으로 누운 채 가쁜 숨을 몰아쉰다. 혈향이, 아일렘의 향취가, 새어 나온 세월희 흐름이 느껴진다. 아비는 창을 떨어뜨린다. 일어나려 비틀거리다 다시 쓰러져 팔꿈치로 땅을 디딘다. 몇 번 더 숨을 몰아쉬고 다시 일어나려 하지만, 아비의 다리는 아비를 떠받치지 못한다.


그리고 당신은 아비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아비가 이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만들 것이다. 아비가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도록 만들 것이다. 왕관. 옥좌. 오직 당신에게 복종하는 삶. 죽음은 너무도 쉬운 탈출구이며, 너무도 자비로운 해방일 뿐이다. 아비가 당신에게 저지른 일에 비긴다면 말이다.


당신의 아비는 너무도 오랫동안 쓰러져 있다. 그 시간이면 당신이 아비를 여섯 번, 일곱 번은 더 죽일 수 있었으리라. 당신의 흉갑에서 한 번 혈광이 터지는 것만으로도 아비를 소멸시킬 수 있었으리라. 알랑거리던 머저리 헤타이론보다도 더 철저하게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않는다. 당신은 인내하며 아비의 주위를 돈다. 아비의 육신을 지탱하는 것은 팔 뿐이고, 그 호흡은 너무 거칠어 거의 헐떡임에 가깝다. 모든 힘을 거의 다 소진한 상태에 가깝다. 당신의 아비가 다시 일어나려 하고, 다시 실패한다.


“이해가 안 되시오, 아비여?”


당신이 묻는다.


“나는 당신이 여기 온 순간 바로 죽일 수도 있었소. 당신이 살고자 했기에 싸워 줬을 뿐이지.”


당신의 아비는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아비의 피비린내가 풍기는 너덜너덜한 생각 속에서, 아비가 보는 진실을 그대로 읽는다. 당신은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아비를 즉시 죽여버리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믿는 것일까? 아비는 너무도 현혹되어 있다. 당신은 그저 권위에 대한 당신의 지혜를 보이고자 했을 뿐이다. 은혜, 절제, 연민의 자질이야말로 당신의 통치를 정의할 것이며, 당신이 아비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공정한 군주가 될 것임을 증명하는 자질이리라. 힘은 아무것도 아니다. 살인은 군인의 일이거나,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의 무뚝뚝한 답변일 뿐이다. 자비와 공정이야말로 덕망 있는 왕의 도구이거늘.


하지만 여전히, 당신의 아비는 당신의 인간적인 부분이 자신을 죽이고 싶지 않아 했노라고 주장한다. 그 더듬대고 희미해지는 생각이 아직도 그렇게 판단한다. 마치, 신들이 지시한 바를 수행하고 싶지 않아 했다는 것처럼.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지 않소, 아비여, 더 이상은 말이오. 그것이 이 저주받아 마땅한 전쟁의 목적이었소.”


아비가 한숨을 내쉰다. 아비는 당신이 정녕 그렇게 믿는다면,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생각한다.


아비가 고개를 숙인다.


아비에게 다가간 당신은 몸을 웅크리고, 아비가 앉았어야 할 옥좌로 다시 그 몸뚱이를 들어 올린다.


아비가 당신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아비의 손이 슬그머니 움직인다. 그리고 당신이 만든 왕관을 휘두른다.


핏빛 가시가 당신의 얼굴을 뚫고 해골을 쪼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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