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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대회]실장인 단편선-2 빛바랜 흔적들(하편)

Rettooth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8.30 02:46:09
조회 1195 추천 24 댓글 4
														

버림받은 시점에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은 밤. 배고픔과 외로움만이 곁에 남고 모든것이 떠났다.


추위를 떨쳐보고자 얼굴을 비벼본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이 무감각해진 얼굴을 연신 비벼봐도 딱히 다를 것 없이 춥다. 꼬마가 해주던 쓰담쓰담의 따스함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맴돌다 그마저도 사치라는듯 찬바람 한줌에 멀리 옅어져간다.


처절한 생존극과 괴로운 아픔이 돌아왔다. 주변에서는 누구든 자신을 죽이려 들고 자신은 공원 어딘가 구석에 박혀 숨만 쉬고있다. 진흙과 먼지로 뒤덮여서 이것이 옷인지 걸래인지 모를 것에 생명의 가능성을 맡겨야만 한다. 이상하다. 분명 태어났을 때의 공원 그대로인데 심히 멀게 다가와진다. 뭐랄까 가슴이 통째로 도려내진 느낌이다.


처음엔 똥노예라며 원망했다. 중간에는 주인사마라며 그리워했다. 그리고 끝에와서야 깨닫는다.


세레브는 죽었음을


냄새나는 운치굴이 아닌 따스한 집이었음을, 음식물 쓰래기가 아닌 맛있는 사료였음을을 당연한 권리가 아닌 배려와 선의였음을, 가르침을 준 팔의 이빨자국이 아려온다. 시키는대로 하지 못하는 똥노예가 아닌 멍청한 분충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해주던 주인이 자신을 위해 밤늦게까지 손가락을 찔려가며 노력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이 비루한 생명체는 답지도 않은 세레브에 미쳐 그것을 부정했다.


모든것을 얻어서 눈이 멀었다가 모든것을 잃음으로서 깨어났다. 허나 너무 늦은 뒤였다.


깨어있는 몸이라 자부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워 수치심의 파도가 자실장을 덮친다. 우물 안 개구리의 한심함을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흉한 꼴이었을까. 주인님에겐 얼마나 분충같은 모습이었을까. 후회가 후회를 물고 늘어지는 꼬리물기의 연속 남는것은 깊이를 알수없는 자기혐오.


이제 그녀에겐 이름조차 없어졌다. 개념이는 버려졌고 세레브는 죽었다. 이제 그녀는 무엇이라 불려야 하는가? 그토록 싫어했던 이름이 지금은 너무도 그리워 미치겠다. 아직까지도 곁을 맴도는 유일한 이름


분충


"와타시가 분충이라서 그런테치? 나쁜 아이라서 그런 테치?"


아무리 울고 외쳐도 우물속에 같힌 개구리의 푸념따위 아무도 관심없다. 유일한 관심은 선의가 아닌 철저히 악의로 똘똘 뭉친 게슴츠레한 녹색의 욕망 덩어리들이 전부. 벗겨진 발 한쪽이 붉게 시려온다. 아프다.


"착한아이인 테치 아타시 착한아이로 있는 테치 더이상 나쁜짓 안하는 테치

때쓰지도 않고 귀찮게도 않고 말도 잘 따르는 테치.


두눈이 저려온다. 고개를 들기 어렵다. 몸에 힘이 빠진다.


"기다리라고 한 테치 착한아이는 말 잘 듣는 테치 그러니까"


목이 매여온다. 눈가가 시려오면서 몸에 열이 돈다. 따스함이란게 이리도 기분나쁠 수도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테끕테끕... 그러니까. 테끕..."


억지로라도 입을 막고 잠을 청한다. 소리가 세어나가 위치를 들킨다면 힘없는 자실장의 운명은 정해져있다. 참아야 한다. 가만히 조용히 참는거다.


"아타치를 미워하지 말아주시는 테치"


그 뒤로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기억나는건 살고싶다는 간절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언제 끝날지 모를 후회였다. 살아남는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때까지 살아남는다. 만약 만나게 된다면 그땐 잘못했다고 빌어보자. 그것만이 중요했다.


꿈을 꾸었다. 따뜻한 하우스에서 친절한 주인과 함께 보내는 행복한 나날들. 다시는 찾지 못할 꿈을 꾸기를 몇날밤을 반복한 탓이었을까. 꿈은 곧 집착이 되어 밖으로 뿜어져 나와 실의 모양새로 작은 몸뚱아리를 서서히 감싸안는다. 언젠가 그 꿈이 현실이 말거라는 암시라도 된다는 양 천천히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얼어가는 몸을 덮어간다.


이것이 그녀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한 기회인지 단순히 희망고문에 빠지게 만드는 행복회로의 연장선인지는 알 수 없다. 그걸 결정하는건 언제나 그녀에게 달렸다는건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고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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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실래?"

"흙탕물처럼 생긴 거에요."

"아니 됬다."


자판기에서 뽑은 싸구려 커피를 홀짝이면 녀석도 편의점 우유를 홀짝인다. 내가 코를 훌쩍이면 녀석은 발을 탁탁 두들긴다. 내가 턱을 괴면 녀석이 꽃밭을 응시한다. 아무말도 없고 특별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지금 난 이 멩한 놈 옆에 가만히 앉아 똑같이 멩 하게 앉아있다. 이는 우연의 산물따위는 아니다. 어렴풋이 내가 바래서 일어난 일에 가깝다.


슥 눈치를 살핀다. 불편하거나 상처받은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전생과는 달리 이름값을 너무 잘해서 알 수가 없다. 이야기속 분충과 이놈이 동일실장이란 사실이 썩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거야? 다른녀석들이 괴롭혀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던게"

"주먹을 함부로 휘두르면 나쁜아이에요."

"먹을걸 거부한것도"

"땅에 떨어진걸 주워먹는 것도 분충이에요."

"머리카락은"

"긴머리는 관리때문에 귀찮게 만드는 거에요"


나머지 부분부터 하나한 깔끔히 정리해보자 이제야 이놈이 이해가 된다. 돌멩이가 돌처럼 굴던 이유를.


"여기 가만히 있는건 주인이 있으라고 시켜서인거고"


시간이 약이라 하던가. 사건과 혼자만의 끝없는 시간은분충이던 녀석을 양충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실재로도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 분충교화시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비슷한 흐름으로 서툴지만 자연치유가 된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엉성하게 이루어진 것인만큼 부작용도 큰 듯 하다. 양충을 넘어 아예 해탈해 버렸다. 얼마나 지속됬을지 모를 자책과 후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적당히 꺼내줄 뭔가가 필요하건만 이놈에게는 필요할 때 꺼내줄 뭔가가 없었던 거다. 결과는 뭐 개념 밥말어먹은 개념이가 망부석 돌멩이로 변해버렸다. 북극에서 남극으로 건너가 버린 꼴


전형적인 분충의 몰락 스토리, 거기에 실장인이라는 반전이 가미된 것 뿐인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였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실장석의 이야기에 인간인 내가 얻을 교훈따윈 없다만 한가지는 알겠다.


"크게 다를건 없네"

"?"


단순히 다가가면 그냥 더럽고 많고 시쓰럽고 잘 죽는 벌래들일 뿐이지만 자세히 보다보면 이것들이 좀 강도가 심해서 그렇지 실장석 이란 족속들은 생각해보면 많이 무례한 어린이와 비슷한 존재들이다.


"사람들도 그런 실수정도는 하게되더라. 내 어릴적도 그래. 하고싶은 건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고.

tv에 나온 슈퍼로봇 하나에 빠져서 얼마나 난동을 피웠던지."


사람보다 더 오만하고 더 순수한 묘한 생물, 관대하게 생각하면 그냥 갓난애기. 세상 물정 뭣모르고 자기 맘대로 날뛰는 아기들인 것이다. 아무리 덩치가 커진다 한들 영원히 아기인 상태에 머무는 들짐승들. 그렇기에 애호파라는 사람들이 생기고 집회가 열리는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눈에는 그저 싹수가 좀 노랄뿐인 어린이들로 보여질 터이니 사람과 다를게 뭐냐 하는 것이다.


"마마 닝겐이 세레브상이랑 앉아있는 테치"

"역시 끼리끼리 논다고 똑같이 병신처럼 굳어있는 데스

자들은 열심히 운치싸지 않으면 커서 저렇게 되는 데스요"


... 저런면모는 좀 안닮았음면 좋겠다.


겉모습만 사람같은 줄 알았더니만 생각보다 더 복잡한 녀석이다. 실자석이란 족속들은 자기가 불리하거나 슬퍼지면 행복회로를 돌리며 별에 별 망상을 떠들어대거나 위석이 못버터고 파킨하는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해와서인지. 이녀석의 이야기가 이질적이면서도 다가가기 어려운 주제로 만들어 주는 듯 하다.


이럴땐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들어야할 이야기는 모두 들었다. 확실히 예상한대로 이야기를 듣는것에 지루한 감은 없었다. 그럭저럭 재밌게 들었고 즐겼다. 남는건 이제 자리를 뜨는것 뿐. 그런데 그걸 못하겠다. 머리는 땡하고 울리듯 붕 뜨는 느낌이다. 뭔가 생각한것과는 다른 경험에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조용함만 유지하는게 내가 할수있는 한계였다.


지금까지 그저 '히히 재밌당' 거리며 단순무식하게 듣기만 듣던 이 멍청이는 20년 넘게 살아놓고서 그제서야 직접 탐구하는 것과 옆에서 관찰하는 것은 그 무게감이 아예 다른 영역이었음을 그제서야 알게된 것이다. 무언가를 파고든다는 건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꽤나 어려운 작업이었음을 말이다.


뭐 박차고 그냥 가버려도 되지만 내가 그럴 뻔뻔함이나 깡을 지녔을 그릇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결책을 제시해줄 만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더욱 남감할 뿐이다.


"결론은 그정도 실수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는거야. 너무 자책하지 마 힘들잖아"

"...."


그저 전형적인 위로, 이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것은 없었다.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지금만큼은 목구멍에서 맴도는 것들을 입술을 꾹 깨물어 참아내어서 오로지 침묵만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뭔가 도울수 있을것처럼 말한 것과는 달리 너무도 허술하고 허무한 결말이다. 끝까지 갈게 아니면 결국 실패만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게 나란 인간이다. 항상 저질러 놓고 후회하는 사람. 시작이야 궁금해서, 해보고 싶어서 등 변명만 다양했지 언제나 그 끝은 후회뿐이다.


당연한 일이다. 나부터가 괴로운 과거에서 벗어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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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나오는 길, 소화제 뚜껑을 까다 들이삼킨다.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로 바로 2병째로 돌입한다.


녀석에게 거짓말을 했다.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속풀이 한번 시원하게 해보라고 생각에도 없는 말들로 살살 꼬드기는 짓거리를 했다. 정작 내 문제도 똑바로 마주보지 못하면서 호기심에 미쳐 남에게 책임지지 못할 말을 너무 쉽게 해버린데에 뭣모르는 바보의 미안함만 커져간다.


재밌는 썰풀이를 기대하고 즐거움을 얻어보려던 남자에게 남은건 책임없는 쾌락이 가져다준 죄책감만이 맴돌고 있었다. 역시 내 주제를 알아야 했던걸까. 쓸데없이 호기심만 왕성하지 정작 마무리는 항상 이딴식이라 참 피곤한 성격의 남자였다. 언제는 안그랬냐는 듯이 찾아오는 찝찝함. 마치 시험지 체점을 하며 맞을거라 생각했는데 확인하면 틀리는 그런 느낌이다. 참 재수없다. 괜시리 내가 나쁜놈이 된듯 가슴팍은 계속 쿡쿡 쑤셔대고 무겁다.


왜 이렇게 찌질하게 구느냐고 머리가 묻는다. 그냥 용기있게 뭔가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단지 그뿐이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줄 알았지"


바로 3병째 까준다. 어릴땐 속병걸린다고 이 맛있는걸 금지당한것과 별개로 지금은 속병 안걸릴려고 들이킨다.


조금 특이한 변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쉽게 다가갈 수 있었건만 알고보니 그냥 사람과 다를바가 없는 아니 어쩌면 더한 괴로움에 찌든 불쌍한 녀석이였다. 아직도 후회하고 괴로워하는 나와 다를것 없는 변종. 보면 다른 실장석놈들과 비교하면 좋은방향으로 변종이긴 해도 그게 중요한건 아니다.


나 자신도 저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픈 기억쯤은 있다. 첫사랑은 내 멍청함 때문에 허무하게 떠났고 간절히 원했던 보상은 다른 누군가에게로 돌아갔으며 꿈꾸던 미래는 미련이 되어 사람을 괴롭힌다. 결국 나이먹고 하는짓이라고는 지원서 투척에 알바만 전전하는 챗바퀴같은 삶. 간혹 일이 잘된다 한들 실패에 찌든 나머지 마지막에 와서 자칫 모든걸 망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어버버 하다 망치기 쉽상인 인간이 되버렸다.


좋은 경험이라고 해봤자 저기 눈앞에 보이는 길 한복판에 놓인 싸구려 뽑기기계에서 단 한방에 1등상품이 나왔다는 것 정도? 동전 좀 빌려달라 그리 때를써서 겨우 얻어낸 유일한 성공이였다. 그래봤자 세월속에 쌓인 상처들을 고작 1000원짜리 행운따위로 대신한다는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라는건 개인적일수록 감정의 영역에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된다. 때문에 어쭙잖게 수습하는건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큰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건 배워서 아는게 아니다. 눈치없는 인간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본능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그래서 잘 알고있었을 터였다. 나라는 인간은 반드시 후회할 거라는 것을 하다하다 거짓말까지 해가며 내 그릇에 담아내지도 못할 일에 발을 담궜다면 더더욱.


난 도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드르르륵 덜컹)

"아 팽이"


꽝이다. 엄지와 검지를 말아 획 팽이의 꼭지를 돌린다. 또 꽝. 어릴때와는 다른 크기의 힘이 들어가니 돌다못해 아예 튕겨나가버린다.


"에이씨 뭐하나 되는게 ㅈ도 없어"


애꿎은 발길질에 뽑기기계만 덜컹거린다. 그래도 바뀜 없이 곧 멈춘다. 오로지 욱신거리는 발과 고통에 몸부림 치는 남자의 후회만이 그랬다. 이거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이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못함에 열불이 차오른다.


어릴적 어른들이 말했다. 복권도 긁어야 결과가 나온다고. 그래서 하나 둘 긁어보기를 수십년. 그간 꽝짜리 기억만 차곡차곡 쌓이고 추억이란 이름의 쓰레기와 후회만 남기기만 했지 나아진건 없었다. 가끔씩 쌍욕이나 매를 벌기도 했었기에 뭐 하나 제데로 풀린 것 없이 내 인생의 벽은 온통 더러움만 가득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 벽을 마주친거다. 과거에 빠져 아무런 변화도 이루지 못하는 제자리 걸음을 걷는 모습을. 그래서 그랬다. 평소에 하던대로 도망쳤다.


돌멩이에게 아주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어설프지만 책임도 졌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자리에서부터 도망쳤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다. 어쩌다 찍힌 마침표따위 내가 인정하기 싫다. 하고싶은 말이야 차고 넘칠 정도다. 괜시리 긴장된다던가 생각이 없다거나 벙어리가 되는 별것아닌 이유들 따위에 무너질 정도로 약해빠진 인간은 아니라 생각한다.


오직 한가지. 나에겐 자격이 없었다.


'가서 사과하는건 어때' 라던가 '주인이 널 생각해서 포스터도 붙여놨어' 라던가 하는 위로들 단지 그 말을 하는 인간이란게 제 인생도 똑바로 책임지지 못하면서 남 인생에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건 영 옳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사과를 할거라면 순진한 녀석에게 불편한 이야기나 시켜놓고 사과할 용기도 없는 놈이 무슨 자격으로 사과를 하네 마네 떠들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나에겐 조언일지라도 남에게 훈수가 되어 받아들여지면 그건 그것대로 마음아프다.


또 그런 변명으로 도망치기 바쁜거겠지. 옛날 그사람 앞에서도 그랬듯이. 실패가 두려워 아무런 책임없이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과거에 묶인다.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후회들을 새로운 뭔가로 덛붙혀 저 멀리 파묻어 버리려는 얄팍한 속임수. 건물 벽면에 붙은 전단지들처럼 그저 덧대기만 하다보면 언젠가 세월속에 파뭍혀 사라질 거라는 어린이같은 발상. 불행히도 난 그것조차 어설퍼 오히려 새로운 후회만 남기는 용두사미의 악순환에 같혀있었다.


저녀석과의 만남과 이야기도 그저 이 악순환의 사례중 하나. 지루하고 별것없는 삶속에 뭔라도 덮어보려는 것일 뿐 관찰이고 탐구고 뭐고간에 그냥 허울좋은 포장지에 불과하다. 어디까지나 내 응어리 한번 풀어보고자 저지른 일. 누군가에겐 단순한 썰풀이의 광경일 지라도 누군가에겐 자신의 멍청함을 되세김질하기 딱 좋은 상황으로 다가온다.


호기심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구경만 하는 사람이 아닌 무언가 해내보이는 사람이고 싶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이겨내보고 싶었다.


그저 꽝뿐인 인생에 당첨된 복권 한장 장식해보고 싶은 한 사람의 욕망이였다.


"병신 지 혼자 일키워놓고 이지랄 떠는것도 지겹네"


내일을 마지막으로 계획한 안식일도 끝이다. 다시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지원서를 쓰고, 알바를 다니고, 잠을 자고, 어느것 하나 내 힘으로 해내보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걸음을 걷는 그 시간들로 돌아가게 된다. 이번에도 내 인생의 벽에는 다시한번 실패라는 흔적이 남을 것이다.


또다시 헛짓거리를 저질렀음에 머리만 실컷 울린다.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 이젠 이게 성격인건지. 미련인건지. 집착인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유일하게 알겠는건 개인적인 욕심때문에 뭣모르는 녀석에게 못할짓만 골라 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하긴 이런식으로 사니까 하고싶은 것도 당당하게 도전도 못해보고 알바따위에나 시달리는 거지 참 나답다."


내일은 또 어째야 하나? 어른들에게 공원청소로 끌려갈려나? 내일 녀석을 또 보게되면 어째야 되나? 뭘 어떻게 해야하지? 그 다음은?


난 도데체 뭘 해낼수 있는거지?


"닝겐상"

"어우 놀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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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뒤쪽으로 실장석 한마리가 데스데스거리며 빼꼼 튀어나왔다. 마침 빈병을 집어지던 시점이라 잘못하면 녀석 머리에 구멍이 날 뻔한걸 급히 잡아낸다. 자기가 죽을 뻔 했다는걸 았았는지 한박자 늦게 녀석이 얼굴을 가린다.


"야야 걱정마 학대파는 아니니까"

"뎃 그 부탁이 있는 데스"

"뭔데 나 탁아는 안받아 책임못져"

"그게 아닌데스 푸드를 좀 나눠주시는 데스"


손에 든 비닐봉지를 말하는건가? 소화제밖에 없는데


"야 나랑 얘기좀 하자 그럼 나눠줄게"

"무슨 말인 데스? 혹시 ㅎ"

"발의 자같은 소리하면 발에 밟혀요."

"데...."


역시 실장석 방심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다른 때였다면 싸커킥이 국룰이겠지만.... 이놈이라면 혹시 가능할수도? 본능적인 학대욕구가 올라오지만 지금은 확인해야만 하는게 있어 일단 참는다.


"너 내가 안무섭냐. 괜히 나섰다가 밟혀죽고 터져죽으면 어쩌려고"

"무서운데스 마마의 마마도 닝겐에게 슬픈일을 당했던 데스"

"근데 왜"

"그래도 할땐 해야한다 배운 데스. 지금처럼 푸드가 없어 자들을

굶겨야만 할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해보는 데스"


꽤나 당돌한 놈이다. 아까 흑발드립만 안했어도 양충이라고 칭찬해 줬을텐데. 내가 독심술사는 아니지만 저 땡그란 눈에서 맛있는거 얻어먹어보자고 내뱉는 식의 거짓은 없어 보인다.


"그러다 죽으면"

"각오한 데스. 그정도 각오도 없이 어려운 일을 어찌 해내는 데스까"


놀랐다. 이놈 이거 영물인가?


"하긴 요즘것들은 너무 대충대충 편하게 하려고 하니 요즘 세데들이 욕을 먹는 데스. 저기저 옆박스 박참피네는"

"그만 그만 딱 거기까지만 해"


가르침의 본질이 흐려지기 전에 얼른 훼붓거리는 혓바닥을 가로막는다. 진짜 이것들은 조금만 풀어줘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니까. 기껏 잘 쌓은 스토리를 이런식으로 깨부수다니. 그래도 일단은 다행이다. 자존심이 확 상하긴 해도 괜찮다. 최소한 확신정도는 생길 수 있었다.


살다살다 저런 들짐승에게 도움을 받는 날이 오다니. 매일같이 해충이라 욕보이던 내가 더 하찮아 보일 줄은 몰랐다. 역시 인생이란 어찌될 지 모르는거다.


녀석에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아까의 편의점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휴가 끝물이라 저축해둔 돈도 다 떨어져서 지갑이 팔랑거려도 난 사람이다. 가오가 있지 녀석보다 더 못난 모습을 보일수는 없다.


"뭐인데스? 닝겐상 그냥 도망친 데스? 와타시를 속인 데스까!"

(딸랑딸랑)

"아니고요, 엿다 이거나 먹고가라"

"데에엣"


편의점 초밥세트 하나 사다가 던져줬다. 사람 입장에선 진짜에 비하면 저급이라 시큰둥해도 저쪽은 눈꺼풀도 없는 주제에 적족의 눈이 아까보다 더 커지는게 보인다.


"이정도는 해내야 사람소리는 들을 것 같아서"

"뎃? 뭔진 몰라도 잘먹는 데스!"


우다다다 소리에 멀어져가는 실장석, 저 짧다구리한 덩어리에서 저정도의 속력이 나올줄은 몰랐다. 엄청 기뻤나보다. 저렇게까지 격한 반응은 예상 못했는데, 확실히 내 생각되로 되는건 거의 없는게 정상인거 같다. 이리 튀어도 저리 튀어도 결국 세상은 돌아간다. 내가 어떻게 두려워 한다고 해서 인생 흘러가는게 멈춰주는건 아니다.


해야할 땐 해야한다. 맞는 소리다. 그 맞는 소리를 피해왔기에 지금까지 이 엿같은 악순환이 끊이질 않았던 거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 하듯이 내가 만든 이야기는 내가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게 미안함이든 죄책감이든 뭐든간에 자연스레 거쳐야만 했던 차례가 온거다. 


경험상 주제도 모르고 피하지 않았기에 상처만 입었다는걸 알고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피하려고만 했기에 그녀도 놓치고 꿈도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있다.


"딱 한번만 더 질러보자"


이 각오가 진심으로 내가 마음을 다잡아서 생기는건지 저기서 데스거리며 뛰어가는 놈에대한 굴욕감에서 나온지는 잘 모르겠지만 별 상관없는 이야기로 보였다.


남은 소화제를 입에 털어넣고 다시 길을 걷는다. 소화제를 그렇게 부었어도 답답합은 가실 생각이 없다. 당연하다 먹어서 체한게 아니라 마음이 체한거니까. 아무것도 변한게 없는 상황으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썩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라 생각된다.


아마도 내 발걸음이 아까부터 집에서 점점 멀어지기로 결심한듯 보였기 때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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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반쯤 잠기며 공원을 주황빛으로 물들인다. 마치 벽에서 녀석을 처음 보았을때와 같은 풍경이였다. 다른 놈들은 피곤함에 슬슬 하우스로 돌아간 덕에 어울리지 않는 조용함이 참 이질적이다.


두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화단을 덮는다. 한 그림자가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림자쪽으로 다가가 그 옆에 다다른다. 잠시뒤 두 그림자 모두 우두커니 앉은 자세로 변해있었다.


"계속 여기 있을꺼야?"

"무슨 상관이에요."

"내일 마지막이다. 내가 이 공원에 오는것도"


진작 했어야 할 말들을 이제서야 목구멍 밖으로 슬슬 모습을 선보인다. 옆에서는 아직도 멩하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래도 자주 왔다갔다한 사이인데 좀 짜구만.


"나도 이야기 들어줬는데 너도 들어주면 안될까?"


예상했다시피 여전히 대답은 없지만 괜찮다. 불안해하지 마라 그냥 밀고 나가는거다. 괜한 걱정은 또 후회를 부를게 뻔하니까.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건 이제 질린다. 그저 해보고 싶은 말 모두 내뱉어보기로 한다. 한번 도와주기로 약속했으면 피하지 말고 제데로 도와줘보는거다. 그게 제안이 될지 훈수가 될지 걱정마라 내 알바 아니다.


솔직해지자 이 아이는 나와 비슷하다. 아마 이렇게까지 심란해하는 것도 그래서일거다. 저 아이에게 하고자 하는 말들이 곧 내가 나에게 하고 싶어도 도망치느라 듣지 못했던 말들 이었기에 각오없는 나로서 그런 자해를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도망쳤던 거다.


이젠 괜찮다. 조언이 훈수가 되는 실패가 일어나더라도 상관없다. 최소한의 각오정도는 쓰래기통의 그녀석에게 배워뒀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렇더라 나라는 사람이"


"알바같을걸 해도 항상 실수투성이라 욕은 오지게 먹고다녀, 학교성적도 거기서 거기라 부모님께 잔소리도

자주 들었고 그래도 나름 뭔가 해보려고 이래저래 해보는데, 나만 그런건지 원래 그런건지 꼭 뭔가 해보려고 할때마다

엎어지고 후회스런 기억만 쌓여가더라."


"옛날에 좋아하던 얘가 하나 있었다? 착하고 그래서 나는 내 마음한번 전해주고파 장난도 좀 치고 그랬지

난 문제 없다 생각했는데 어느센가 그애한테 난 다시는 보기싫은 머저리가 되있더라고."


그녀가 울고 그녀의 친구들이 마지막까지 나에게 저주를 퍼붓던 모습을 기억한다.


"아직도 후회해. 짖굳게 군것도 그렇긴 한데 무엇보다 미안하다. 그 말 한마디를 못한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


집으로 가는 골목길 남들 몰래 울며 달리던 나를 기억한다.


"이게 사람이 한번 무너지고 나니까 이게 다시 움직이기가 너무 무섭더라.

더 다가가면 또 상처일까봐. 날 더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날 묶어버려."


미안함을 품고만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걸 그때 깨달았다.


"만약 그날가서 그냥 딱 미안하다 말했다면 결과가 어찌됬던간에 조금이나마 털어낼 수 있었을텐데 그걸 못해서

아직도 난 거기서 한발자국도 못움직이고 있어. 난 그아이에게 아직도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남은거야."


그녀를 볼 용기가 없었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미움받는건 싫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더 바보같은 짓이었다.


"이런것들이 세월의 흔적이 되서 하나 둘 쌓여가니까 아무리 다른 뭔가로 덮고 덮어도 그자리에 그대로 붙어있어

마치 오래된 벽의 착색된 포스터들처럼


안타깝게도 이를 대신 청소해줄 청소차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무서워. 또 이랬다가 저러면 어쩌나 싶어서 해야할 떼 못하고 멈춰버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그 기억이

바래져도 그 흔적만큼은 끝까지 내개 남아 괴롭게 만들어."


내가 만약에 정말 만약에라도 꾹 참아보고 나아갔다면 뭐가 달라졌지 않았을까.


"한번이라도 딱 한번이라도 용기있게 눈한번 감고 질러봤다면 어땠을까? 확실한건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되는건 없더라"


상대가 오기를 바라는게 아니라 내가 나아가봤다면 더 나은 사람으로 기억되진 않았을까.


"넌 어떻게 생각해?"

"그런거 몰라요."

"넌 후회하는 일 없어?"

"....."


없을수가 없다. 너와 난 비슷한 입장이니까.


"그럼 다행이다. 난 너가 나처럼 후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쓸데없는 오지랖인 거에요."

"맞아 우산과 리본처럼"


그 말을 끝으로 굽었던 다리를 피고 툭툭 털어낸다. 아침과는 달리 몸이 굳거나 하는 것 없이 쉬이 떠나간다. 이 자리에서 내가 할수있는 건 모두 끝냈다. 이제 나머진 오롯이 저녀석의 몫이다.


정답이냐 오답이냐는 확인 할 필요도 없다. 후회할 생각도 없다. 그저 내가 하고픈 모든걸 쏟아내었다. 이거면 된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뚜렷한 해방감. 겁먹지 말고 진작에 이럴걸 인생의 전부를 손해본 기분이였다.


"그래도 넌 좋겠다. 상대방이 널 기다긴다는걸 알수라도 있으니까, 들분충 하나 찾겠다고

손수 포스터까지 그려붙힌 주인이 몇이나 되겠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녀석이 받은 충격의 크기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 온몸으로 보여진다. 이제야 좀 돌멩이에서 살아있는 생물다운 모습을 보였다. 자세한 주소까지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포스터는 청소차의 손짓에 사라진지 오래다. 내 기억력이 그리 좋은것도 아니고. 그래도 지금이라면 이정도만 전해줘도 될 것이다.


마침표는 찍어졌다. 다시는 없을만큼 아주 선명하게


"난 가볼게 미친놈 혼잣말 들어줘서 고맙다."


내 휴가는 어느덧 마지막 결승선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


"데갸아아악"

"하얀 악마들의 강림인 데스 다들 튀는 데스"

"마마! 아타치를 살리는 테갸악!"

"자는 또 낳으면 되는 데스! 다리씨는 달리는 데스"


변함없이 예정대로 청소는 시작되었다. 예상보다 너무 깔끔하게. 미리 예고를 받아서인지 크게 놀라진 않았다. 청소담당이 하얀 악마들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동물단체라더니 아예 정 반대성향의 사람들을 끌고와 주시니 기가 막힌다.


보통 구제작업을 받으면 거대 우지챠나 우더기, 마라실장 같은 변종들은 전리품 또는 연관업체들 간의 특별한 루트를 통해 거래가 되기에 전부는 아니더라도 따로 포획 후 수거하는데 이번에는 느낌이 다르다. 뭐랄까 보물상자를 열어보기도 전에 무작정 때려부수는 느낌 안에 뭐가 들었든 상관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도망치던 마라실장의 마라가 마/라가 됬을때 쯤 알았다. 이번에도 그 영감탱이가 또 일을 저질렀다고. 분위기를 보니 완전 싹쓸이를 하려는거 같은데 이러면 녀석도 꽤나 위험하다. 가뜩이나 움직이지 않는 녀석인데 반항이라도 했다간 끝이다. 구해야 한다.


지금의 난 녀석을 구하기 위한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처절한 사투와 공원의 파괴자를 향한 피튀기는 액숀판타지 눈물터지는 희생의 신파극은 지랄이고 그냥 앉아있다. 어디서? 벤치에서. 누구랑? 돌멩이랑 함께 실장석들 내장터지는 소리를 감상하며. 그냥 그렇게 있었다.


"너왜 안죽었냐"

"뭔 헛소리에요."

"아니 스크 처음이랑 중간에서 나온 그 음흉한 분위기는 뭐였는데"

"?아까부터 닝겐 머리가 운치같다는 거에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무리 구제반이 실장석을 조지는게 일이라더라도 저것까지는 범위 외라서 못 건들인다나 뭐라나. 평소 하는짓 보면 산사람도 때려죽일것 같은데... 역시 무적의 촉법실장이다. 그런 께름직한 일은 돈좀 많이 들여서 전문 처리업자에게나 맞겨야 가능한 일이라더라. 한마디로 불법에 손대라는 것인데 그 영감이 벌래잡는다고 인생을 가지고 도박하는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였다.


아니 그래도 저 난리통에 주인 기다리겠답시고 우두커니 있던 놈이 어떻게 움직인건가 의문이 든다. 공격이라도 받았던건가 의심된다. 어디 상처라도 난게 아닐까?


"독라굴 노예도 죽을거 같으면 냅다 뛰는거에요"

"아...."


그냥 내가 바보다 바보


"이 짐들은 다 뭐야."

"주변 이웃들에게 좀 빌렸어요. 보아하니 앞으로도 저분들이 쓸 일은 없어보이는 거에요."

"와타시의 보존식이!!! 이 마라같은 변종분충! 당장 와타시의 식량을 내놓는데스!

우지랑 엄지는 다 뒤져서 먹을게 없는 데겍!......."


이웃과 동족들이 처참히 썰려나가도 아무런 감흥도 없이 딴집에서 빌려온(?) 보존식을 팝콘삼아 지긋이 구경하고 있는 녀석. 투분을 하든 옷을 훔쳐가든 그냥 굳어만 있길레 별 생각 없나 했더니 생각보다 쌓인게 많았던 모양이다.


물론 나도 할게 없어 같이 앉아 조용히 학살쇼를 관람하고만 있다. 저기 멀리서 똥노예에 남편상에 죽기직전의 상황에서 제발 나좀 더 죽여달라고 노래를 부르는 놈들에게 동정심을 품는 사람은 적어도 인간계에는 없을거다.


청소작업은 길게도 이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장석들의 비명소리와 파열음, 공원의 블록과 화단이 으깨지는 소리들이 쉬지 않고 울려퍼져오던 끝에 조용한 공터에서 비누칠하는 뒷처리 담당들의 모습만이 눈앞에 남게 되었다. 우리 둘은 뭐가그리 아쉬운지 그 자리에서 계속 앉아 한참을 구경했다.


슬 마무리작업도 끝을 보일즈음. 옆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가 돌아간다. 녀석이 먹던 보존식을 꾸러미에 쑤셔넣고 일어나는 녀석의 뒷모습이 너무도 어색하다. 처음에 앉은뱅이인가 싶었는데 너무 꼿꼿이 서있는게 더 어색할 거라곤 생각 못해봤다.


"이제 어디로갈 생각인데 그래"

"몰라요."


짐꾸러미를 다시 들춰매고 조용히 그저 그렇게 멀어져만 가는 녀석이다. 하긴 우리사이가 그냥 지나가다 만난 사이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반응인건가.


그래도 또 사람 호기심을 자극하는게 참 못된 녀석이다. 한번 늘어져볼까 했지만 그놈의 쫄보같은 성격에 나또한 조용히 앉아만 있는다. 전에 쓰레기통 실장석에게 받은 각오의 효과어제로 피시식 식어버린듯 하다.


도데체 어디로 간다는 걸까. 또 한참을 끙끙거려야 하나 싶었지만 감사하게도 의문은 오래가지 않는다. 긴 설명따윈 필요없었다. 공원 입구쯤 녀석이 툭 던져온 작별인사 그 한 문장만으로도 모든걸 이해하는데 충분했으니 말이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가요."

"정답이야."


xx공원이라 적힌 팻말 밑의 결승선 너머로 녀석이 사라진다. 이렇게 나의 휴가도 결승선을 통과해 종막을 맞이한다.


-----------------------------------


때는 휴가가 끝난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시점. 컴퓨터 알림에 뜬 문자를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xx컴퍼니에 대한 면접결과 불합격임을 알려드립니다.)


예상한 대로다. 성공할 거라는 기대감은 사실 별로 없었기에 큰 후회도 없었다.


휴가가 끝나자마자 근처에 새로운 알바자리를 찾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겪기 전엔 몰랐는데 한달간의 휴일이 총알처럼 지나간것과 비교해 하루하루가 느려터진 거북이처럼 흘러만갔다. 자신이 이러한 시간대를 버텼다는게 신기하면서 자랑스럽다. 그래도 여기에 계속 있다간 정신이 나갈게 뻔하니 얼른 탈출해야만 했다.


메세치 창을 덮고 다시한번 집 책상앞에 앉아 새로운 이력서를 쓴다. 이번에는 oo물류.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다 생각했던 회사에 지원서를 써보내기로 했다. 어떻게 써야 잘썼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는 시간이 괴롭긴 해도 상관없다. 이래나 저래나 그냥 해보는 거니까. 언젠간 알바자리에서 벗어나 큰물에서 놀기를 희망하면서 한글자씩 정성들여 써내본다.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이 촌동네도 바뀌는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만 있겠는가.


이제 이곳 어디에서도 그녀석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건물벽은 물론이고 완전 갈아엎어진 공원 한복판에서 노인들 춤사위가 펼쳐치고 있었다. 최근 주변에서 슬 몰려든 실장들도 독라노예들이 미친데스를 시전했다가 다시한번 구제당했다. 얼마 있지않아 남은 공원구조도 바꾼다는데 그땐 정말 그날의 기억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 되는것이다.


그 뒤로 녀석을 본 적이 없다. 지금쯤 밥은 먹고 다니는지 사과는 제데로 전했는지 내가 알 길은 없었다. 우리의 인연은 딱 거기까지가 어울린다.


"고마워요."


어렴풋이 들려온 이 말 한마디에 내 작은 인생의 벽보에 소소한 흔적이 새겨진다. 아마 이번 것은 전처럼 부정적인 흔적만은 아닐것이다. 확실히 조금이기는 하지만 뭔가를 해내는데에 거부감이 없어졌다고 해야하나. 근본이 쫄보라 겁없는 성격이 된건 아니지만 전과 비교해 뭔가 나도 모르는 뭔가가 달라진 기분이다.


"나야 고맙지 이녀석아"


나에게 있어 그녀석은 특이한 성격의 변종이자, 상처입은 어린이이며 조금이나마 내가 달라질 수 있는 기회를 준 은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 그 기억들이 바래져도 그 꼬질꼬질한 푸른 점박이 만은 어떻게든 살아남을게 분명하니까. 바보같이 저버리는 걸 걱정할 건 없다.


그녀석에게 난 어떤 사람으로 남게 된걸까. 참견많은 아저씨? 머리가 운치같은 사람? 뭐 나쁜사람만은 아니길 빈다.


정답이든 아니었든 짧지만 즐거운 휴가였다.


-끝-




---------------------------------------

어후 4편이랑 동시작업 하니까 빡세 레후;;;;;

뭔가 참피대횐데 참피는 뒷전이고 휴먼 드라마가 된 레후

대회 기간이 길어질것 같으니 4화는 천천히 하고

공주와 거진가 뭔가 5화는 스크가 아닌 만화로 여유롭게 만드는 레후

그래야 퀄리티 있게 다가가는 레후 맘급하니 전개 어색해지는게 너무 싫은 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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