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정보] 돌로 쌓은 성곽의 역사 : 한국 2천년 vs 인도 4천년

lemie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1.13 10:13:07
조회 4876 추천 51 댓글 10
														

조선 축성술은 후진적인가? 1부  : 메쌓기(Dry Stone)

조선 축성술은 후진적인가? 2부  : 세계의 메쌓기 사례



아래 글을 보기 전에 1~2부를 보시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메쌓기 성곽이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온 원인, 그리고 그 영향을 이해하는데 왜 하필 인도가 참조 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그것은 인도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매우 오래된 메쌓기 방식의 성곽 건축의 전통을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오랜 석축 성곽의 역사와, 그 변화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왜 우리 조상들이 석축성곽을 유지해왔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이번 글은 Jean Deloche의 "Études sur les fortifications de l'Inde"(인도의 요새화에 대한 연구)의 내용들을 핵심으로 해서 다른 자료들로 조금씩 보완해서, 인도의 석조요새의 메쌓기 전통에 초점을 두고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고대 인도, 4000년 전 메쌓기로 성벽을 쌓다.


 한국 역사의 기원전 37년(또는 서기 3년)부터 확인할 수 있는 2천년의 메쌓기 성벽에 대해 그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한다면, 인도에서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a66434aa2527b4458fff5b4ffa5acfe96ab650c51f61b093cf95db2a6d4c09a44205e892da4e381ad0518a88ea422b23b4


 기원 이전의 요새 유적은 인도에 그다지 남아있지 않으며 정보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성벽과 진흙벽돌로 만들어진 성벽, 석축 성벽이 모두 존재했습니다. 석재가 부족한 충적평야에서는 벽돌, 통나무와 침목으로 보강된 두꺼운 토성이 건축되었습니다. 


 돌이 풍부한 지역은 더 얇은 두께의 돌로 쌓인 성벽이 건설되었습니다. 이는 중국과 한국의 축성의 역사를 다르게 만든 원인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주로 동쪽의 충적평야에서 성장한 중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토성(土城)을 건설해왔던 데 반해서, 산지가 많은 한반도 지형에서는 돌로 쌓은 석성(石城)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죠.

 토성 위주였던 중국에도 산악지대가 있는 중국 산동성에 춘추전국 시대 제나라의 메쌓기식 성곽인 제나라 장성의 유적이 남아있는 것이나 중국 사천성에 남송시절 건설된 석축 성곽인 운정석성(雲頂石城)이 발견되었던 것은 지리적 요인이 주는 영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전에 인도의 메쌓기식 성곽이 건축되었을까요?



a14008ad0826b44caaff5d79ce5aeed82149c6160ef97b778b1f0aa4845498987203142722630d620b50d224e530c45afbce72547efa165af4f69f5d2754d8f16a2c776ede18d96c7cf47d78a0901159a3d7375ffd0c59e8a49913470fa5f8e22d7ea8c7e60c0c310f29b44931ec2c981236

---인더스 문명의 돌라비라 유적의 석벽, 진흙모르타르를 사용했다.---


 기원전 2600년에서 1900년의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적인 돌라비라 유적의 요새 성벽은 돌로 쌓여져 있고, 그 사이는 진흙 모르타르를 사용하였습니다. 완전한 메쌓기는 아니지만 석회 모르타르의 사용 없이 돌로 쌓았다는 점에서 인도의 석축 성곽의 메쌓기 기원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a14008ad0a3678946fb5d1a71fd9257d57656fae9df08e01b4f0a9d6da5bc2ad04b305f7c6ff8a5eac19b784f7531a263ee4e226d66730a7b72b2f46fa4ba3ac78ee

---마가다 왕국의 전설적인 지배자 Jarasandha의 응접실(Jarasandh ki baithak)이라 현지인에게 불리는 메쌓기식 석축 구조물. ---


 기원전 6세기 경 마가다 왕국의 수도이자 왕들의 도시라고 불렸던 라자그리하(Rajagriha)의 유적들은 메쌓기 식으로 돌을 쌓은 요새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유적은 라지기르(Rajgir)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대제국 마우리아의 성곽 유적도 남아있습니다.

 


a14008ad0a36782cbd7f5d59f691163c752e0317274faf391e382916bb9e001851d09427306cc6eee32ecf3a52bf2ec352f41d0ee6857df5

---기원전 3세기에 건설된 인도 라지기르(Rajgir)의 메쌓기식 성벽 유적---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제국이 라지기르(Rajgir)를 점령한 이후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성벽은 메쌓기 방식으로 돌로 지어졌으며 우리의 치성과 마찬가지로 성벽에 돌출된 구조물이 존재합니다. 인도 고대 성곽 유적들에는 원형 또는 사각형의 이러한 치성 구조물이 발견됩니다.


 간혹 고구려가 최초로 치성(雉城)을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서기 22년 건설된 국내성으로 추정되는 길림성 집안의 집안현성의 14개소의 치성을 한국 최초의 치성이라고 할 때 국내성의 석축 성벽의 치성 건조 시기는 3-4세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보다 적어도 6세기 전에 인도에서 치성이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인도가 최초가 아닌 건 마찬가지입니다.



a76e10ad0932782a936b5a72e75ccee5ca55dd25b8e2d282dbb652f2118aca194d223e897566ccbb452e75e4f97a00d01d111550baea7c5863427b2fa9566e75b613c56875572ccf8e0a65ee8fd77a94

---고대 이집트의 Buhen 요새의 치성 구조물, 기원전 130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64년 아스완댐 건설로 물에 잠겨버렸다.---


 기원전 19세기에 이집트의 파라오 세누스레트 3세에 의해 건설된 고대 요새 Askut를 비롯한 고대 이집트 요새들에서나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의 니네베 성벽을 묘사한 조각에서 성벽에서 돌출된 탑들이 존재하므로, 치성의 개념은 인류 역사에서 엄청나게 오래 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a15f00aa3c2a782a847b5b5dda5cc8d124310fef9414bf4390b9a1421f96ed86268a161e6d2e3a7f698b02b7448587cb3e15b0a7367d3b6b917614acd725444d45f5270c9ef1085683144af7172f5d4b3e8fcf83117fc6d8f117a63356a67bad7f79b31533145e55124c1be861063a2b1953499a3252

---인도 산치 대탑의 공성전, 석가모니의 유골을 차지하려 쿠시나가라를 포위한 부족들을 묘사한다.---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 시기에 최초로 건축된 산치 대탑에는 당시 인도 성곽을 추정하게 하는 조각들이 남아있습니다. 높이는 문헌자료에 따르면 6~12m 로 추정되며 성벽은 아마도 표면이 돌이나 진흙벽돌로 쌓여지고 내부는 흙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a14834ab1136b360a2330f61565ae3cd21aa457ebd3052174969dfb96294efd122f00141c715546c71e7b7fdfe669352bc0a82b95e2c6f00c0be02

---아프리카 말리의 Djenne 대 모스크, 진흙벽돌로 쌓고 그 위에 진흙 모르타르를 발랐다.---


 벽돌들은 초기 산치 대탑이 건설된 방식처럼 석회가 아닌 진흙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접착되었을 수 있습니다. 벽돌이나 돌 사이의 줄이 묘사된 경우와 그냥 한덩어리로 묘사되는 경우 둘 다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 경우는 그 겉에 진흙을 바르고 말린 결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렇게 점토를 성형한 후 말려서 제작하는 진흙벽돌과 진흙 모르타르는 건조기후의 국가들에서 나타납니다.



a15f00aa3c2a782a847b5b5dda5cc8d124310fef951182428d9c6d0e3a06ec9ab6a5007c72e5f50dc1c65997bc80f4c5c43a7398b0f00ad1491feee85d8610a22ca79c7633aafc79411b8dd46057310f

---인도 산치 대탑의 불화 조각에 묘사된 인도 성벽의 여장과 목조 구조물---


 성벽이나 성벽에서 돌출된 탑들은 인도식 여장(女牆)과 목재 구조물로 수비군을 보호하는데, 이는 북송대 성곽 위의 목재구조물인 전붕(戰棚)과 유사합니다. 아마도 고려, 조선시대의 성곽에 있었다는 성랑(城廊)이나 궁가(弓家)도 이와 유사한 목재 구조물로 추정됩니다.  


 고대 인도의 공성전, 특히 공성무기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특히 공성장비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위 영상에 나오는  영화 바후발리 시리즈의 바후발리는 자이나교 신화 속의 최초의 티르탕카라(깨달은 자) 리샤바나타의 아들입니다. 자이나교 전승에는 인도 최초의 투석기가 묘사되는데 아마도 이런 상상의 결과물일지도 모릅니다.


 기원전 5세기 초의 하리얀카 왕조의 아자타샤트루는 자이나교의 전승에 따르면 인도 최초의 투석기인 마하실란칸타카(mahashilakantaka)를 발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실존했던 건지, 신화 속의 은유에 불과한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a1480caa1b22b44e96ff5a4bf85dd3cd09a7148b5b554572408bc9a0e6509687ed9735cb9bbf931c5029ecc644271539cc20b4d1ef572afca71e9954e4c026300b88dea93c6969f75a34

---야자수잎에 산스크리트어로 작성된 아르타샤스트라 사본, 1905년에 최초로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경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마우리아 제국 시절의 통치, 경제, 군사전략에 대한 책 아르타샤스트라(Arthashastra)에는 공성전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공성전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는 같은 시기 그리스나 로마에서 볼 수 있는 공성탑이나 투석기는 전혀 묘사되지 않습니다. 다만 전투용 코끼리의 훈련방법 중에 요새나 도시를 공격하는 방법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어떤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a15f00aa3c2a782d825f5b56e791aeee529cc9cfef075cf56fe9fc9757b5ee452e31b9896ab2ea4eee3435d358

---산치 대탑의 공성전 묘사 조각----


 산치 대탑에서 묘사되는 공성전에서는 공격자들은 코끼리나 전차 외에는 별도의 공성무기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고대 인도는 공성탑이나 투석기와 같은 공성무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다양한 공성병기를 운용한 바 있는 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326년 인도를 침공해 접촉이 발생했지만,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인도에서 투석기와 같이 대형 공성장비의 운용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인지, 고대 이후 중세에 접어들기 전까지, 인도, 특히 남인도의 힌두교 요새들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오랜기간 메쌓기 방식의 석축 전통을 유지했습니다. 남인도에 있는 6~11세기의 비교적 잘 보존된 요새들은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고전시대 인도의 큰 변화 없는 메쌓기 성벽



0cb4d829e9d7b45b96ff5a43ce5ac9c89933bfb9fac87a2eb7177295eafa06b76672d29c33177028a8126fa4fc6a52338d5b9504f1cb596acfbfaf2758b128f857df0e51a50bec0233dabea497fb5bd765

---Aihole 요새의 언덕 위에 사원을 둘러싼 석벽, 7~9세기 경 건설된것으로 추정된다.---- 


 7~10세기 유적들이 남겨져 있는 Aihole 유적은 6세기부터 12세기까지 중부와 남부 인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한 찰루키아 왕조의 6세기 초기의 성장 시점에 최초로 문헌에 등장합니다.


 Aihole는 원래 돌로 쌓여진 성벽들로 보호되어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요새 유적은 대략 4.5m 높이의 성벽의 흔적들로서, 성벽의 33m 마다 우리의 치성과 가까운 돌로 쌓여진 돌출되어있는 탑으로 보강되어 있습니다.

 Aihole의 요새는 6~9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돌의 크기가 크고, 가공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고대 인도 석축성벽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0cb4d829e9d7b45b96ff5a6cee5dc0ec0e30b3adcac693566dabf518cdfda15dd897cd8a3c16837cc4

---Aihole의 메쌓기 방식으로 지어진 석축 탑---


  Aihole의 이러한 탑,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북쪽, 동쪽의 성문은 이렇게 대형 석재를 다듬어서 메쌓기 방식으로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쌓여져 있습니다. 탑의 너비는 4m이며 5m 정도 돌출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규격화된 성돌은 아니지만, 이보다 후기의 조선 한양 도성의 초기 성돌보다 직사각형으로 잘 가공되어 있어서, 인도 불교 및 힌두교 사원의 오랜 석조건축의 역량을 보여줍니다. 이런 성돌의 가공은 한국의 경우 조선 후기에 한양도성이나 수원 화성에서 제한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a14008ad0a3678a46fbbd7b81f91a8c7748d43ae86870c6fa021be3fd4427dd565baec4b92e340ddf7306119728d09ec7e8f97883e66a7d423ba7de2ec1f8c

---인도 Badami 요새의 6-8세기 메쌓기씩 탑과 성벽의 일부---


 찰루키아 왕조의 수도였던 Badami의 성벽 또한 이러한 특징들을 잘 보여줍니다. 마치 잉카 문명의 메쌓기 방식처럼 매우 섬세하게 가공된 성돌들이 거의 틈새가 보이지 않게 쌓여져 있습니다. 모든 성벽이 이렇게 섬세하게 가공되어있지는 않지만 자연석으로 막돌쌓기를 한 6~7세기 성벽들도 잘 가공된 8~9세기 성벽들보다는 못하더라도 튼튼하게 축조되었습니다.


 6세기부터 11세기 까지의 고전시기 찰루키아 왕조의 석조요새들은 메쌓기 방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요새들은 고대 인도의 메쌓기식 성곽의 건축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여장들은 모두 사라졌는데, 이는 한국의 메쌓기식 석조 성곽들과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돌로 쌓은 너비가 좁은 여장은 메쌓기의 구조적 불안정성 때문에 당연히 빠르게 무너지거나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에서 벽돌과 석회를 사용해서 여장을 쌓기 이전까지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벽돌과 석회로 쌓은 여장들 조차도 메쌓기로 쌓인 성벽에는 고정되지 못하므로 한반도 성곽 유적 대부분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고대 이후 인도는 중세까지 성곽의 건축기술이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습니다. 석축 성곽의 경우 , 메쌓기 방식도 변화가 없이 지속되었는데 이러한 요인은 아마도 공성기술의 발전이 더뎠기 때문이라고도 추정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렇게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인도에서 건축자재로서 석회의 사용은 오랜기간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3500~2500년 전의 인더스 문명 이전 시기에 회반죽을 사용한 흔적이 라자스탄의 유적에서 발견되었지만, 석회 모르타르의 사용은 인도에서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a76e10ac301eb366aaff5d79c25ddef4af27221701774947817ab96b6a8581bb2c6d9cc89cee1eed7ef7821faca33c0f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석회로 바른 벽에 그려져 있다.---


 고대-중세 인도에서 건축자재로서의 석회 모르타르는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서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석회는 주로 회반죽으로서 벽에 바르는 용도로 사용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고대 역사와도 유사합니다. 삼국시대에 석회는 주로 회반죽으로 벽에 바르는 용도로 사용되어 무덤이나, 담장을 바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즉 인도에서 메쌓기가 석축 성곽의 방식으로 유지된 것은 고대로부터 건축기술에 석회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외부의 자극이나 교류가 없을 때 군사기술 뿐만 아니라 건축기술도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은 이슬람의 등장과 함께 점차 변화하게 됩니다.




이슬람의 등장과 델리 술탄국, 석회 모르타르를 전파하다.



a0513cab0716b44caa32355156f32533c2a43829fc4359f4278dc626497790a13e48a79b07026e0498cbfe929c9fb0ff69fd4a3feb774df28cb9fbceda6ef3bbd43ffdb2

---이븐 카심이 정복한 Debal로 추정되기도 하는 Banbhore 요새의 북쪽 탑, 메쌓기 방식으로 잡석들을 막돌쌓기 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기 712년경 우마이야 왕조의 무하마드 이븐 카심이 신드 왕국(현재 파키스탄 지역)을 공격했을 때 무슬림들의 기록에 따르면 이븐 카심은 500명이 작동시키는 거대한 투석기(Manjanik, 아마도 인력식 트레뷰셋)를 설치해서 데발(현재의 파키스탄 카라치 근방의 고대항구)을 공격해 함락시켰습니다.

 이후 아스칼란다(현재의 파키스탄 Uch)에서 인도인들의 맹렬한 저항과 함께 그들이 성벽 위에 투석기(아마도 작은)를 설치했다는 매우 드문 무슬림들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슬람의 침공은 오랜 기간 정체되었던 인도의 공성전을 크게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이슬람의 본격적 침공으로 인한 전쟁은 12세기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군사적 위협과 자극의 면에서만이 아니라, 문화와 기술의 전파로도 인도의 성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시대 인도의 공성전에 델리 술탄국은 커다란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게 됩니다.

 기존의 공성무기가 잘 발전되지 않았던 인도 아대륙에 델리 술탄국은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한 공성무기와 공성전술을 사용하면서 공격적인 정복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a05708ad253ab371be33335e9c02f87db11671b7fee761e2baa916a30fb0e70ae247178c0bd64b2ee21d71

----좌측의 무게추식 투석기 트레뷰셋(Trebuchet)과 우측의 견인식 투석기 망고넬(Mangonel)---


 델리 술탄국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한 공성무기는 투석기였습니다. Manjaniq 또는 Arrada라고 불렸는데, Manjaniq와 Maghrabi라고 부르는 경우는 아마도 무게추식 투석기의 아랍어 표현으로 보이고 그보다 더 작아서 요새 내에서 방어용으로도 사용되었다는 Arrada의 경우 견인식 투석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둘 다 크기만 다를 뿐 견인식 투석기일 수도 있습니다.


 13-14세기 수피 학자였던 하산 야민 웃딘 쿠스라우가 쓴 Khaza'in ul-Futuh(승리의 보물)에는 Manjaniq에서 발사된 강력한 탄환은 때로 요새의 벽에 돌파구를 만들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Manjniq의 여러 종류 중 대형의 경우는 무게추를 사용하거나 무게추와 견인식을 동시에 사용한 것일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견인식 투석기는 벽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대인공격이나, 성벽의 목재구조물을 파손할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에 묘사되는 1304년 당대 최대 투석기 Warwolf가 발사하는 화염구, 인도는 투석기는 없었어도, 기원전부터 가연성 무기를 공성용으로 사용했습니다.---


 투석기는 석환 뿐만 아니라 다양한 투사체를 사용했는데, 그리스의 불과 같은 인화성 물체도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투석기의 도입과 전파는 공성전 뿐만 아니라 수성전에서도 사용이 확대되었을 것입니다. 쿠스라우는 그의 저작에서 요새 바깥의 Maghrabis가 요새 안쪽의 Miradas와 석환을 서로에게 쏴대는 장면을 문학적으로 묘사합니다. 


 대형 공성탑은 존재했지만 일반적이지 않으며, 무굴 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포나 화기의 사용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공성무기의 발전은 축성기술의 변화를 야기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당시 이들이 영향을 받았을 레반트의 석조요새 건축 기술은 당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투르크계 델리 술탄 왕조의 북인도 장악은 공성무기 뿐만 아니라 인도의 석축 성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7ce95cc23d58e0762e3311559a27f0b1a44cf73c569804bf41beb4c99e070a81149612735c40f7a55581c56683a9fd1fc3fffcb4b040be9a976b56c4ed94bb40d54b89913feb71e58de1f99d8dd71a7277eaed6ba5623af2e2da6bbb2c92930d4b4c59051b589584bf15859020786aef5c55f40cfcd03f8f8925ce50214da377edae60a7b943695212

---14세기 건설된 델리 술탄 왕조의 Tughlaqabad 요새의 석벽. 면석(Face Stone)만이 아니라 내부를 구성하는 뒤채움 잡석들도 모르타르와 섞여서 채워져 있어 면석이 떨어져나간 이후에도 성벽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13세기 북인도에서는 석조건물이 대규모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석회 모르타르의 활용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석조 아치와 돔 구조 건물들이 증가하는 현상은 인도의 이슬람 전파와 술탄 왕조들의 등장으로 이루어졌죠.


 당연하게도, 이는 요새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모르타르를 사용한 석축 요새가 인도에서 그 영역을 빠르게 팽창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고대 로마가 유럽에 끼친 영향처럼 말입니다.


 가장 직접적 영향을 받은 것은 델리 술탄국이나, 데칸 고원에 위치한 무슬림 술탄국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힌두교도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슬람 국가들이 사용하는 공성무기에 바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북부 및 서부 인도에서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슬람의 침입을 오랜 기간 저지해온 라지푸트인들에게서도 무슬림의 영향은 강하게 드러납니다. 라자스탄에 건설된 강력한 석조 구릉요새들에서 힌두 특유의 메쌓기식 성벽의 흔적과 모르타르를 사용한 성벽이 동시에 확인됩니다.



a6400caa2232b557b6323c6d9a2cfcb6ecdd60776c4a0b2a7dac9305cd4fa1d987b53383ceea1d8c58d6232222c07c3686d74a242d1ec9e44e4202741200bc615c7420e048d48d27ce10948abc799e0c8c

-----인도 라자스탄의 Jaisalmer 구릉요새의 메쌓기식 성벽----


 전설에 따르면 1156년 쌓여졌다고 이야기되는 Jaislamer 요새는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노란색 사암과 석회암으로 정교하게 건축되었습니다. 이 색깔로 인해서 황금요새라고도 불립니다. 이후에 지어진 요새의 궁전이나 성문에는 무굴 양식이 사용되었으나, 요새의 성벽 자체는 메쌓기 방식의 구조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라지푸트인들의 구릉 요새들에서는 이슬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이 드러납니다.



0abcd734eadc782a944b5a56feeea8c0439a331b79f5e48eee480fd2a3ccbffc0ef00a1d29d30849d6598fa1110d8970

---Gagron 요새의 성벽---


  Gagron요새는 12세기에 건설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423년 라자스탄 남쪽에 위치한 말와 술탄국에 의해 점령당할 때 이 요새를 지키던 라지푸트인들은 죽을 때까지 싸웠으며, 성 안의 라지푸트인 여성들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분신자살하는 관습인 자우하르(Jauhar)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 요새 성벽의 일부에는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은 성벽이 일부 남아있지만 대부분의 성벽은 위의 사진에서 보여지듯이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건설되었습니다.



a14008ad0a36782d93635a4be65dcef9ee1022061c91bf9726cb2174d89b2b6b7cc7b69921441a13e2c167e8d125d07b4217e37f40268316dd1d2889fb7a92d6e1b2abfcaec482760029

---Kumbhalgarh 요새의 성벽----


 15세기 지어진 쿰발가르 요새는 라자스탄 남서쪽에 위치한 구자라트 술탄국의 공격을 받았지만 격퇴해냈고, 한때는 무굴 제국에 의해 점령되었지만 탈환에 성공했습니다. 성벽은 석회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매우 두껍고 견고하게 지어졌고, 두터운 무슬림 스타일의 뾰족 한 여장과 다수의 세밀하게 제작된 총안을 보여줍니다.  


 모르타르를 사용한 석조요새의 건축은 이슬람의 정복, 그리고 화약무기의 전래와 함께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문명권의 접촉과 정복, 군사적 위협, 기술의 발전이 축성기술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인도 아대륙 전체가 전통적인 메쌓기식 축성방식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도를 중요하게 지목해야할 대상이라고 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북인도에서 이슬람 국가들이 성장하고 인도 중앙으로 확장하던 와중에도, 데칸고원과 남인도의 힌두 국가들은 전통적인 메쌓기식 축성방식을 고수했습니다.


힌두 스타일의 메쌓기 요새들에 대한 소개는 4부에 이어집니다.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51

고정닉 9

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58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3892722 공지 신고게 。° ૮₍°´ᯅ`°₎ა °。 [7] 제4제국순두부장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4.15 14736 13
3716707 공지 다중계정 갱차자 식별코드 리스트 。° ૮₍°´ᯅ`°₎ა °。 제4제국순두부장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1.25 21407 116
3764489 공지 근데 임시금지 조항 레퍼 포함은 된다고 하니까 눈치껏 행동좀 [2] KC-46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1.06 2193 12
3545695 공지 공지 20240402 토오오오오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27 16789 191
3492862 공지 임시공지 ( AI 이미지 관련 ) CA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27 18395 226
3478731 공지 임시 금지 목록 토오오오오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20 13413 213
2923975 공지 군갤 고정글 모음 군갤공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9.26 20899 209
1860311 공지 천안함은 명백한 북괴 소행입니다 [59] SSM700KA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6.07 101148 2203
3920697 일반 625 때 해안포격 로켓탄 이름이 뭐였지 가져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32 14 2
3920696 일반 우뽕 러뽕 거르고 하르키우 지금 먹힐 확률높은거임? ㅇㅇ(49.246) 11:32 21 0
3920695 일반 IRST를 EOTS로 개발하는 기술이 많이 어려움? [숲튽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31 7 0
3920694 일반 풍산은 유도포탄 기술이 제대로 있었는지 의심스럽던데 [1] ㅇㅇ(1.250) 11:27 57 0
3920693 📺뉴스 5세대 이상 '하이급' 전투기 늘리자"…미래戰 전략 공개한 軍 [4] SSM700KA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27 95 7
3920692 일반 P-8 언제들어오노 ㅇㅇ(124.111) 11:25 10 0
3920691 일반 625로 초토화된 한국도 선진국으로 성장했는데 우크라라고 발전못하란법있나 [10] 존잘꽃미남박영훈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24 144 0
3920690 일반 ㄱㅇㄱ) 캠핑장비란 뭘까 [3] 코쿄콬코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22 60 0
3920687 일반 활공포탄은 그래서 뒤진 거냐??? [2] 너의투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5 95 0
3920686 일반 6.25도 제대로 파보면 미군은 억울하긴 함 [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11 211 3
3920685 일반 평택 한미친선한마음축제 잘 아는 군붕이없어? [2] ㅇㅇ(14.63) 11:11 33 0
3920683 일반 현무퍼거 점마는 왜 반유동으로 오노 [7] Heavy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129 1
3920681 일반 Kf21도 언젠간 여드름 땔수 있어? [2] 콥카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9 134 0
3920679 💥우크 러시아군의 하르키우 초반 공세에 대한 평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161 2
3920678 일반 Rch155 k9a2 비교하면 일장일단 아님? ㅇㅅ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8 50 0
3920676 일반 눈찌르기, 부랄치기가 최고의 실전 기술인듯 [5] Heavy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6 69 0
3920669 일반 아니... 왜 페어번 격투술을 실베에 가져가지? [4] Crack08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2 114 2
3920667 ❗정보 M1A2 SEP v2의 조준경의 열상 [2] 민주당찢는재매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1 107 1
3920665 일반 담주 주말에 평택에서 한미 친선축제하던대 [4] ㅇㅇ(14.63) 10:58 58 0
3920664 일반 독일 RCH155 vs K-9 어느게더 좋은거냐? [6] ㅇㅇ(121.183) 10:56 162 0
3920663 일반 우러전에서 하인드랑 호컴중에 뭐가더 활약함? [2] 킹판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54 42 0
3920662 일반 보라매 랜딩기어는 무장창 간섭안하려고 옆으로 뺀거 ㅇㅇ(121.183) 10:52 73 1
3920661 일반 군갤에 추천하는 밀리터리 소설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49 114 3
3920660 일반 질문)무반동총 용도에 대한 질문임 [1] ㅇㅇ(58.29) 10:48 50 0
3920658 💥우크 러시아 군이 박물관에 있던 Object 502TB를 복원해 우크라로 투입 [1] KC-46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46 195 4
3920656 일반 기계병사 만들어서 써먹자 [1] 인내김아완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45 63 0
3920653 일반 나 청성훈련소 출신인데 [6] 웹연갤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42 96 0
3920652 일반 우리나라 유도포탄 질문 있음. [3] ㅇㅇ(110.14) 10:41 65 0
3920650 일반 하르키우 공격은 그냥 러시아의 허세에 불과함 ㅇㅇ(118.221) 10:40 89 1
3920649 일반 내가 여러군데서 CPR 배워서 진짜로 써먹은 적 한번 있긴 함. [5] nuclearpi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40 636 16
3920648 일반 그래도 보리밥...사랑하시죠?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40 110 0
3920646 일반 미중항모 함교비교 [9] ㅇㅇ976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33 177 3
3920643 일반 그나저나 이제 군대도 이런 화장실 없지??? [4] Yankeecandl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30 158 0
3920642 일반 그리고 국군 625 전사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지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29 104 0
3920641 일반 자위대 주적이 누구임? [11] ㅇㅇ(121.143) 10:29 169 0
3920640 일반 혹시 한국이랑 중국이 축구하면 어디 응원하세요? [4] 인내김아완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27 171 3
3920639 일반 M8로 T-34-85 '격파할 수'는 있음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25 96 1
3920638 일반 사단 삭제 수준의 패전과 말기 중요 고지전을 벌였던 두 사단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24 101 1
3920636 일반 러시아군 공세상황 [2] 기술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7 1106 11
3920635 일반 용문산 파로호전투는 축소됐는데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6 961 18
3920634 일반 유도포탄이 자주포의 쓰임새를 더해주는거 같긴하다 [4] 파르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5 105 1
3920633 일반 최근 배타고 탈북한 사람 인터뷰 봤는데 [7] <0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2 291 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