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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야스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11.04 00: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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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는 삼국시대에 한자(漢字) 등 중국 문물 수입과 함께 도입되었으며 한민족식 복성도 사용하였다.[2] 고구려 또한 고구려식 성씨를 사용했을 것이지만 중국 사서나 삼국사기에서는 중국식 단성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경우 한민족식 성씨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에 고구려인의 성씨가 복성으로 표현되었고 신라의 이사부 등도 이질부례지간기 등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을 보아 중국 사서와 그것을 인용한 삼국사기에서는 한국의 성씨를 표현할 때 한민족식 복성보다는 중국식 단성 성씨로 표현을 바꾸어 기록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일본의 五왕들 또한 중국 기록에서는 단성으로 표현된다. 신라(+가야)는 금석문 등을 통해 볼 때 삼국시대 초기에는 부족명이나 지명에서 따온 토착식 성씨를 사용하였으나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삼국시대 후기로 갈수록 중국식 단성을 사용하게 되며 토착식 성씨는 거의 없어지게 된다. 백제 또한 중국측 기록에서는 단성으로 나타나지만 일본서기 등에서는 발음 그대로 한자로 표현하여 복성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많다.

이후 남북국시대로 들어서면서 발해든 신라든 토착식 복성 기록은 거의 쇠퇴한다.[3]

그러나 후삼국시대의 인명을 보면 신라나 발해 귀족층을 제외하고는 고려, 후백제 귀족 및 유력 호족층이라도 아예 성씨가 없는 고유명이 훨씬 많았다. 즉 남북국시대까지 성씨는 소수 귀족의 전유물이었으며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토착문화가 강해 성씨 없이 이름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부터 본격적인 한국 성씨의 역사가 시작된다. 본관이 처음으로 도입되고 중국식의 한 글자로 된 단성이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본관 + 단성'의 형태가 주류가 됐다. 특히 1055년 고려 문종 9년에도 아직 성씨가 없는 귀족층이 많았는데 성씨 사용을 추진하기 위해 성씨가 없는 사람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는 봉미제도(封彌制度)가 시행되었다. 봉미제도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모든 귀족층들은 중국 성씨를 빌려다가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족보가 오래될수록 권위가 높아지는 시대였고 그 권위가 과거 합격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사서 등 옛 서적에 존재하는 중국 성씨와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중국 인물들을 가져다 족보를 만들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성씨는 가문의 권위나 역사를 늘리기 위해 실제로 자신들 조상과 혈연이나 관련이 없는 중국 성씨를 빌려다가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족보에 존재하는 중국 인물들이 중국 측 기록에는 전혀 등장한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고려시대 때는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에서의 공격과 합병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고려인은 거란족과 여진족과는 차별성을 두어야 했고 봉미제도까지 시행이 되니 중국에는 기록이 전혀 없는 가공의 인물을 이용하거나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족보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또한 고려 왕조에서 복성을 가진 자들은 거란식 복성 같다며 중국식 성씨를 하사하는 경우도 많았다.[4] 조선시대에는 모화사상으로 인해 혈연이 없는 중국 성씨를 조상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한국인 90%가 가짜 성·가짜 족보?...몰랐던 성씨 이야기 특히 고려시대 때는 거란과의 긴장적 대립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거란과 여진에 편입되지 않을 차별화된 성씨가 필요하게 되었고 한민족 토착 대가세족들은 중국식 성씨를 빌려와 족보를 제작하면서 출신 또한 거란과 여진과는 다르게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제작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이러한 기록들이 족보에선 보이나 실제 중국의 기록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출처] 또한 조선 중기부터 양민들이 중국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족보 위조로 양인층에게도 성씨가 확대하기 시작했으며 위조된 족보를 미화하였다. 1764년 중인이었던 김경희가 거짓 중국 인물들을 족보로 위조 판매하다가 발각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15세기 초를 기준하여 한국의 성씨가 총망라된 『세종실록지리지』소재 성자(姓子)를 당대(唐代)의 ‘군망표’ 소재 성자와 대비해 보면, 전자는 대부분 중국의 유명 성자를 모방한 것이며, 후자에 없는 것은 박씨 등 16성(···············)에 불과하다. 그나마 군망표에 없는 성자도 박씨를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모두 정초(鄭樵)의 『통지략』(通志略) 씨족지에 나타나 있다. 중국 역대에 걸쳐 성씨를 취득한 연원 32가지를 열거하면서 (國)·(邑)·(鄕) 등 지명을 성자로 한 것이 가장 많고, 명(名)·자(字)로 한 것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고 하였다. 박·석·김씨와 같은 신라의 종성은 원래 신라에서 출자한 것이며, 후삼국시대 이래 호족들의 한자성씨화 과정에서 스스로 성씨를 호칭해 놓고 보니 우연히 중국의 성자와 동일한 것도 많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본격적인 중국식 성씨의 보급시기를 고려 초로 잡고 있다. 그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비로소 중국식 성씨제도를 전국에 반포함으로써 사람들은 모두 성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그는 성씨의 보급과정을 설명하면서 크게 ① 고려 초 사성(賜姓) 이전의 성씨(삼국 및 가야의 왕실), ② 중국에서 동래(東來)한 성, ③ 고려 초 사성 등 셋으로 나누면서, ①과 ②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③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그의 주장에 대하여 확실한 근거자료는 아직 찾지 못하였지만, 940년(태조 23)경을 전후하여 전국 군현에 성씨가 분정되었던 것이며, 이는 다음의 사실이 뒷받침해 준다.
  1. 왕건은 즉위 이래 개국관료·개국공신 및 귀순호족들에 대한 사성을 광범위하게 실시하였다. 둘째, 신라의 왕가 3성(박, 석, 김)과 6부의 성씨(이, 최, 정, 손, 배, 설), 그리고 한씨, 마씨, 전씨 등 기타 유래 성씨처럼 고려 건국 이전에 성립한 기존의 한성과 중국에서 도래한 외래성을 제외하면 나머지 각 성의 시작은 대부분 고려 초기로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2. 고려사』 태조세가에 등장하는 인물을 분석해 보면 태조 23년을 전후하여 그 이전에는 고유명이 주류를 이루다가 그 이후부터는 한식성명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광종을 거쳐 성종대(982∼997)와 현종대(1010∼1031)로 내려오게 되면 고유명을 가진 인물이 관료 계층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성종(10세기 말) 이후가 되면 지방군현의 양민층에게까지 성씨가 수용되고 있었다.

고려 초에 확립된 성씨 체계는 15세기 초까지 끊임없이 분관·분파 등을 통해 성의 분화와 발전이 계속되었던 것이며, 조선왕조의 성립과 함께 성씨체계도 다시 정비되었는데 그것이 15세기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중국식 성씨의 수용 및 보급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첫째 왕실과 중앙귀족층에게 수용된 시기는 삼국 말기부터 남북국 말기까지이며, 둘째 지배층 일반에게 중국식 성씨가 보급되어 성과 본관체계가 확립된 시기는 고려 초기이며, 셋째 양민층에게 확대된 시기는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다.

중국식 성씨가 대규모로 보급된 뒤에도 무성층으로 남아 있던 공사노비, 화척(禾尺), 향·소·부곡민, 역·진민 등 천민층은 10세기 이래 조선시대까지 개별적인 신분해방과 신분상승으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성씨를 획득해 갔지만 그들에게 성씨가 획기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조선 후기였다. 최하층인 이들은 조선 후기 300년간에 걸쳐 점차적인 신분해방과 함께 새로이 성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그 이전에도 성씨가 있던 양인이 죄를 짓거나 몰락해 노비가 되거나 부모중 한쪽이 양인이어서 이어줄 성씨가 있던 경우 천민이라도 성씨를 쓰는 경우가 있었고 특히 공노비의 경우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당시 사회계층을 크게 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나눌 때, 양반층은 일찍이 군현토성에서 귀족과 관인을 배출한 사족(士族) 가문이며, 중인층은 각 관청과 군현의 서리·기술직을 맡은 이족(吏族)으로 양반의 서얼 출신 또한 여기에 해당된다. 상민층은 고려 이래 관인을 내지 못한 일반 농민층으로서 성종(姓種)상 백성성·촌성·향·소·부곡성 출신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는 공명첩을 가진 관리가 팔도를 돌면서 군량을 바친 자나 군공을 세운 자에게 공명첩을 발부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가 재정이 탕진되었고, 당쟁의 폐로 국가 기강이 문란하였으며, 또 흉년이 자주 들어서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니 조정에서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명예직을 주고 그 대가로 많은 재정을 확보하였다. 1677년(숙종 3) 기근을 당하여 가설첩을 만들어 진휼청에서 매매했다. 가설첩의 매매로 얻은 돈으로 영남 지방의 기민들을 구제했으며 영조 시대에 공명첩의 이름으로 여러 번 발행하여 돈을 얻어 백성을 구제하였고, 순조 시대에도 이조정랑 김재찬(金在瓚)의 적극적인 주장에 따라 공명첩을 발행하였다. 이것은 사회가 극도로 혼란되었을 때에 매관매직을 합리적으로 조장했다. 물론 이때 공명첩은 부가 있는 양민들에게나 해당되며 노비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성종7년(1476년)에 완성된 『경국대전』에는 각종 노비의 가치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여기선 15-16세기 초 장년노비 한사람의 가격은 저화 4000장이었다고 한다. '저화20장=면포1필'로 환산할 경우, 노비 가격은 면포 200필에 해당한다. 노비는 소보다 값어치가 낮았다. 노비들은 가축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전란에도 동원되지 않았고 당연히 양반은 커녕 양민되기도 불가능한데 공명첩은 쳐다볼 수도 없었다.

특히 1894년 고종 때의 갑오개혁을 계기로 종래의 신분·계급이 타파되며 인구의 거의 전부가 성씨를 가지게 되었고, 1909년 새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부터는 누구나가 다 성과 본을 갖게끔 법제화되었다. 오늘날의 희성·벽관 가운데는 당시 경찰이 호구조사를 하고 호적담당 서기가 호적을 일일이 손으로 기재하다가 한자의 획(劃)을 잘못 적은 데서 비롯된 것도 적지 않다.

어쨌든 이 당시 무성인이 이때를 기하여 새 성을 갖게 되자 갖가지 희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성이 없는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을 따라 호적담당 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주기도 하였는가 하면, 노비의 경우는 상전의 성을 따르기도 하였다. 또 주위에 많은 김·이·박 등 대성을 모방하여 성을 정함으로써 종전의 대성 명문들은 그 수가 더욱 늘어갔다. 가령 전주에서 출생한 사람은 이씨, 경주지방 출신은 김씨나 최씨 하는 식으로 출신지의 대성이나 문벌을 본떠서 자기 성으로 정한 경우가 많았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전근대시대 귀족 혹은 유력계층의 성씨 독점→근대화 확립 후 일반 평민들의 작성(作姓)을 거쳐서 성씨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상술한 한국식 성씨를 정하는 방법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한국의 성씨가 만들어진 배경에서 기인하는데, 대개 아래로부터의 시민 혁명이 일어나 구체제가 청산되었거나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근대화가 진행되며 만들어진 다른 나라들의 성씨와는 다르게 조선의 상민들은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인 전근대시대부터 조세를 피하고 군역을 면하기 위해서 족보를 사거나 위조했다. 당연히 신분제가 존속하는 중에 새로운 성씨를 만들어봤자 전혀 이득이 없었기에 다른 양반의 성씨를 빌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 특히 보편적인 양반 성씨가 아닌 벽성을 빌리거나 창성했다간 상민 출신인 티가 팍팍 났기 때문에 더더욱 대성으로 몰리게 되었다. 갑오개혁 이후에도 법적인 신분제는 없어졌어도 신분제의 관습은 바로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찬가지였다. 민적법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노비와 천민 계급까지 모두 성을 갖게 되었는데, 노비의 경우에는 주인의 성씨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6]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이 추진되었다. 그 이전에도 경우에 따라 일본식으로 성명을 고치는 사람은 있었을 테지만 창씨개명은 이를 전 조선인에게 '권장'하는 것을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강제였다. 그러나 한민족에게는 성이란 일생토록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관념이 철저했기에 친일/반일을 막론하고 반발이 심했다. 그때 각 씨족 문중은 회의를 열어 창씨를 하면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어떻게든 고유의 성이나 본관의 흔적을 남기려고 무척 애를 썼다. 가령 이가(李家)·김본(金本)·배정(裵井)·오산(吳山)·장전(張田) 하는 식으로 본성을 표시하였는가 하면, 남양(南陽)·수원(水原)·경산(京山)·광산(光山) 하는 식으로 본관을 그대로 성으로 쓰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시조전설이나 연고지를 상징화하여 성으로 쓴 일도 많았다. 가령, 파평 윤씨의 경우 평소(平沼, 히라누마)라 하였는가 하면, 한산 이씨는 본관에다 목은(牧隱)의 자손임을 강조하여 목산(牧山, 마키야마)이라 하였고, 청주 한씨는 청주의 고호인 서원(西原, 니시하라)[7]을 그대로 성으로 썼다. 남씨, 오씨, 류씨 등은 이미 일본에도 미나미, 구레, 야나기 씨로 있던 성씨라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도 불이익 없이 넘어갔다. 이러한 일본인식 창씨는 입부혼인(入夫婚姻)·서양자(婿養子) 제도와 함께 1939년 말부터 실시되었다. 하지만 일제가 패망한 뒤 미군정의 조선성명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이 1946년 10월 23일 법령 제122호로 공포되며 일제하의 창씨개명으로 인한 일본식 씨명은 그 효력을 잃었다.

한편, 성자에 의한 한국 성의 수는 성씨관계 문헌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성씨 관계자료인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모두 250여 개의 성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이미 소멸된 망성이 포함되어 있다.

1486년(성종 17)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세종 이후에 귀화한 성과 『세종실록』 지리지 소재 성씨(망성 포함)를 수록한 결과 277성이나 되었다.

영조 때 이의현(李宜顯)이 편찬한 『도곡총설 陶谷叢說』에는 298성이 나오는 데 비하여 고종 때 발간한 『증보문헌비고』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고문헌에 있는 모든 성을 거의 망라하였기 때문에 무려 496성이나 수록되었는데, 여기에는 한성화 이전의 고유명자(固有名字)와 이미 소멸된 역대의 망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걸쳐 후대까지 존속된 성수는 15세기 지리지 소재 성수대로 대략 250성 내외였다. 그러한 사실은 1930년대 국세조사 때 250성, 1980년대 국세조사 때 250성 안팎으로 나타나는 데서 확인된다.

성세(姓勢)와 본관수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김·이·박씨 등과 같이 대성일수록 본관수가 많았다. 이의현은 『도곡집』의 「도곡총설」에서 한국의 성 298성을 그 성세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① 저성(著姓): 李·金·朴·鄭·尹·崔·柳·洪·申·權·趙·韓(12성).[8]

② 그 다음 저성: 吳·姜·沈·安·許·張·閔·任·南·徐·具·成·宋·兪·元·黃(16성).[9]

③ 그 다음 다음 저성: 曺·林·呂·梁·禹·羅·孫·盧·魚·睦·蔡·辛·丁·裵·孟·郭·卞·邊·愼·慶·白·全·康·嚴·高(25성).🔟

④ 희성(稀姓): 田·玄·文·尙·河·蘇·池·奇·陳·庾·琴·吉·延·朱·周·廉·潘·房·方·孔·偰·王·劉·秦·卓·咸·楊·薛·奉·太·馬·表·殷·余·卜·芮·牟·魯·玉·丘·宣 (41성).[11]

⑤ 그 다음 희성: 都·蔣·陸·魏·車·邢·韋·唐·仇·邕·明·莊·葉(섭)·皮·甘·鞠·承·公·石(19성).[12]

⑥ 벽성(僻姓): 印·昔·龔·杜·智·甄·於·晉·伍·拓·夜·賓·門·于·秋·桓·胡·雙·伊·榮·思·邵·貢·史·異·陶·龐·溫·陰·龍·諸·夫·景·强·扈·錢·桂·簡(38성).[13]

⑦ 귀성(貴姓): 段·彭·范·千·片·葛·頓·乃·間·路·平·馮·翁·童·鍾·酆·宗·江·蒙·董·陽·章·桑·萇·程·荊·耿·敬·寗·京·荀·井·原·袁·萬·班·員·堅·騫·燕·時·傅·瞿·嵇·米·艾·梅·雷·柴·聶·包·何·和·賀·花·華·賈·夏·麻·牛·僧·俊·曲·栢·翟·畢·谷·弓·種·邦·凉·良·芳·卿·刑·永·乘·登·昇·勝·信·順·侯·藩·端·鮮·芊·牙·水·彌·吾·珠·斧·甫·部·素·附·凡·固·台·才·對·標·肖·那·瓜·化·壽·祐·價·尋·森·占·汎·克·郁·翌·宅·直·則·澤·綠·赫·冊·濯·骨·燭·律·物·別·實·弼·合·乜·鴌·揚(136성).[14]

⑧ 복성(復姓): 南宮·皇甫·鮮于·石抹·扶餘·獨孤·令狐·東方·西門·司馬·司空(11성).[15]

이상 298성에는 『세종실록』 지리지 소재 250여 성과 『동국여지승람』 270여 성 및 그 뒤 귀화성이 모두 합산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이미 소멸된 망성이 많이 포함되었다. 성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늘고 줄게 마련이어서 옛날에 있던 성이 뒤에 소멸되기도 하고 과거에 없던 성이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15세기 이래 현재까지 한국의 성수는 대략 250성 내외가 되었는데, 송나라 소사(邵思)의 『성해姓解』에 의하면 한자성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2,568성이나 되며[16], 한국의 성에 해당되는 일본의 씨(氏)는 그 종류가 10만에 가깝다 하니, 중일 양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성종은 많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250여 성 가운데 김·이·박·최·정씨 등 5대성이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면 같은 성씨여도 파가 다양하게 존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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