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대전 현충원.

전날부터 내리는 비로 공기는 차고 무겁습니다.

연식이 오래된 그랜져 한 대가 미끄러지며 들어서더니,

중년 남성 셋이 어두운 사복 차림으로 내립니다.

서현두 소장과 그의 참모 두명입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동네 아저씨들로 보일 겁니다.

현역 시절의 그 화려한 성판도, 의전도 없습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그 시절보다도 결연합니다.

이내 젖은 묘비 앞에 멈춰섭니다.

'육군 중사 조재진의 묘.'

'볼음도에서 전사.'

약속이라도 한 듯 숨 소리마저 가라앉습니다.

서 소장은 무릎을 꿇으며 국화꽃 한 다발을 내려놓습니다.

빗물이나 진흙 따위는 개의치 않습니다.

참모들도 따라 고개를 숙입니다.

공기가 더 무거워집니다.

함박도 전투 당시 해병대 지휘관으로서

어떻게 하면 이 젊은이를 살릴 수 있었을까

단 하루도 복기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휴대전화 진동음이 정적을 깹니다.

외동딸이 건 전화입니다.

철 지난 전화기 너머로 원망이 한가득 밀려옵니다.

자세히 말할 수 없는 갑작스런 '출장' 때문입니다.

"다녀올게."

서 소장이 품 속에 휴대전화 넣으며 일어섭니다.

문득 조재진 중사와 딸이 동갑이라는 걸 깨닫자,

방명록을 작성하던 거친 손이 잠시 멈춥니다.

새로이 깎은 돌격머리에 찬 공기가 스칩니다.

사내들은 다시 장대비 속으로 사라집니다.

빗방울인지 눈물 방울인지 반쯤 젖은 방명록 위

필체가 오늘따라 더 단단해보입니다.

'조재진을 죽인 레드팀을 죽인다.

처음부터 그 생각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