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내일 출근 안하는 김에 쓰는 석대원에 대한 단상

태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8.26 02:30:52
조회 1322 추천 20 댓글 8

무협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내러티브 내에서의 주인공의 역할은 지대하다.

이는 소위 무협 소설이라는 작품들이 대부분 취하고 있는 배경의 특징과 연관이 깊다.

이들이 배경으로 취하고 있는 강호는 비록 현실을 기반으로 한 '있음직한 세계'이기는 하나 본질적으로는 허구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수백 년 전을 그 시점으로 삼기 때문에 고풍스럽고, 일정한 틀이 잡혀 있기에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문제는 강호가 과거의 겉모습 중 일부만을 빌려 왔기 때문에 실제 인간들이 살아 숨쉬던 모습을 그리기 힘들다는 점이다.

아무리 무협소설이 발전하고 씬이 확장되더라도, <장길산>에서의 눈 앞으로 밀려오던 것 같은 묘사가 무협의 틀 안에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 차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문제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인지, 한국의 현대 무협은 대체로 임팩트와 연출에 힘쓰며 이야기의 진행을 주인공에게 맡기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경향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무협의 장르적 쾌감은 눈 앞에 살아 움직이는 과거인들의 땀내 나는 모습이 아닌, 등장 캐릭터들의 강력한 힘과 그 힘을 빌린 통쾌하고 비장한 상황 전개에 있기 때문이다.

<쟁선계>의 석대원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강력함은 수없이 많은 고수가 날뛰는 작중에서 한 손에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통쾌함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 이제 <쟁선계>에서, 주인공 석대원의 매력과 비중은 연재 재개 이후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승한 필력에 비례하듯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고수들에 의해 가려지고 있다. <쟁선계>의 등장인물을 살펴보자면, 가장 클래시컬한 주인공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바로 석대문이다. 석대문이야말로 높은 무공과 호탕한 기개, 시련의 극복 등을 갖춘 진정한 주인공의 모습을 갖지 않았는가.

석대원의 처지가 저렇게 된 이유는 대략 세 가지 정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재일의 개인적인 성향이 대체로 이러하다.

이재일은 <묘왕동주>에서도 주인공의 아이덴티티를 흐트러뜨렸던 전적이 있다. 이전 단편들인 <문지기> 나 <삼휘도..>를 보더라도 이재일의 이야기 창작 성향은 '훌륭한 한 인물이 성장하여 적을 무찌르고 뜻을 이루는 과정'을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여주는 것과 이미 등을 돌린 상태임을 매우 쉽게 알 수 있다. 언젠가 가볍게 쓴 적이 있는데 이재일의 성향은 군상극에 가까운 것 같다.

둘째, 석대원은 주체적인 주인공이 아니다.

무릇 주인공이라는 것은 서술하는 시점이 누구냐, 어떤 이야기를 그리느냐와 관계 없이 극의 큰 줄기를 휘어잡고 이끌어가야 할 임무를 띤다. <셜록 홈즈>에서의 셜록 홈즈가 그렇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당테스가 그렇다. <셜록 홈즈> 장편 중 하나인 '바스커빌 가의 개'에서는 이야기 중반에 홈즈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부재(不在) 상태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다른 등장인물들과 비교를 불허한다. 이는 극중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가 명실상부하게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석대원 만큼이나 처절한 행보를 이어가던 심연호가, 노독행이, 주인공답지 않았던 적은 없다. 

석대원의 경우는 어떤가? 비각에 대한 복수와 강호 말살 예방이 온전히 그의 뜻인가? 그것을 위한 움직임 중 그가 스스로 주도했던 것이 있는가? 심하게 말하자면, 그는 운리학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잔혹한 수레바퀴 속에 끼여 강제로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또, 주인공이 뜻을 이루기 위해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석대원의 경우는 남에게 자신의 힘을 의탁하고 있다. 그는 비각과 싸우기 위해 무양문에 의존했다. 작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 에피소드인 금부도 원정에서는 아예 석대원의 신분으로 움직이지조차 못한다. 기세좋게 집에 다녀와야겠다며 나선 군조와의 싸움은 어떤가? 때맞춰 나타난 석대문이 아니었다면 목숨과 인간성 둘 중 하나는 잃었을 것이 확실하다. 심지어 그는 한로가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버겁다. 현재 작품의 절정 부분인 태원 격돌은 무려 적의 가짜 편지를 보고 속아 그 행보를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의 멋과 힘은 퇴색하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멋이 부각되고 있다. 주변 캐릭터에 주인공이 함몰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게도 단운룡이 떠오른다.

셋째,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부족하다.

석대원은 황약사나 소연신처럼 다재다능하지 못하다. 홍칠공처럼 의 하나만을 보는 남자다움을 갖고 있지 않다. 곽정처럼 대쪽같고 줏대있는 모습을 보이지도 못한다. 진화 이후의 진산월처럼 날카롭고 시크하지도 않다. 양과처럼 재기발랄하고 열정이 넘치지도 않는다. 영호충과 같이 긍정적이고 호쾌하지도 못하다. 하다못해 양판소의 주인공들처럼 전대 고수들을 코웃음 한 번에 날려버릴 정도의 힘도 갖고 있지 않다.

그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비극적인 배경과 무지막지한 무공, 거대한 체구와 약간의 넉살, 이에 홀린 여자들에 불과하다.

(물론 캐릭터의 매력이라는 것은 가장 개인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므로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

 

이재일은 일부러 주인공이 학대당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앞을 다투는 세상'에서 남들과 함께 어깨를 견주지만, 막상 왜 남들과 앞을 다투는지는 알 수 없는 운명. 자신은 알지도 못했던 남들의 욕심에 휘말려 엉겁결에 부모를 잃고 살인의 길에 들어선 석대원이 아닌가. 그 끝에 평화가 오기를.

 

 

 

 

졸려서 더이상 못쓰겠음

금요일 빨리와라 얍

추천 비추천

2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공지 한국 무협 작가 50인의 신무협 111선. - by 아해 [152] Di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1.07.28 264477 148
429264 요즘 문피아에 현월문 보는 사람 있냐? 이거 완전 괜찮은데? [11] 무갤러(183.98) 05.02 309 14
429242 무협세계 경지 정리해준다 [9] ㅇㅇ(211.234) 04.30 517 7
429240 과아야 [3] 소용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30 181 7
429195 나보다 무협지에 미친새끼 있냐 [14] 무갤러(211.183) 04.28 468 6
429153 김용에게 빠지면서 모든 무협이 재미없어 졌다. [4] 무갤러(121.130) 04.26 254 5
429049 무협지 읽는 사람 필독 [4] ㅇㅇ(211.234) 04.19 615 8
428875 와 딸피들 게시판이라 그런가 글리젠 왜이럼? [33] ㅇㅇ(121.163) 04.04 709 10
428791 학사신공 선계편 진짜 개좆같다.. [17] ㅇㅇ(222.237) 03.28 1117 10
428732 한중월야 이새끼 [8] 무갤러(172.226) 03.24 700 8
428659 정구 작가 소식 공유함 [7] 무갤러(175.200) 03.18 418 9
428606 중국애들이 똥까시 존나 좋아하더라... 매번 나오는듯 [12] ㅇㅇ(211.36) 03.14 1917 10
428302 손흥민 이강인 싸웠다는데 [4] 무갤러(220.127) 02.14 1226 19
428240 화산귀환이 역겨운 이유 [13] 무갤러(220.120) 02.08 2836 49
428204 주관적인 천룡팔부-사조삼부곡 무공 순위 [6] 澕澕(118.216) 02.05 1020 11
428192 삼국지의 인물 [4] ㅇㅇ(211.234) 02.04 845 20
427913 거유 젖가슴 모자근친 근친상간 애니 [14] ■x(195.206) 01.07 2929 25
427679 범인수선전 1화 번역 [10] 하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20 1003 16
427590 [스포] 범인수선전 79화 영화 스샷 및 링크 [9] 무갤러(121.160) 23.12.09 1589 8
427356 여기 4050틀딱 쉰내나는 배불뚝이 븅아저씨들 ㅈㄴ많누 [10] ㅇㅇ(110.8) 23.11.16 1473 32
427089 요즘 무협은 못보겠다는 틀딱들 보면 [25] 무갤러(58.140) 23.10.18 3818 58
426871 학신 절대타경 선역 시강지 초초수련 보는게 눈꼴시려우면 [24] ㅇㅇ(84.17) 23.09.26 1029 15
426675 선협, 선협 거리는데 ㅋㅋㅋㅋ [28] 용대운 JR.(220.83) 23.09.06 3192 21
426618 천마는 무공을 복사한다 진짜 미쳤네 [13] 무갤러(119.192) 23.08.30 5012 17
426564 군림천하 독파하고 느낀점..txt [7] 로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8.25 1840 11
426160 군림천하 9권째 보고있는데 [12] ㅇㅇ(114.201) 23.07.21 1652 12
426079 신조협려 양과에 대한 팩트 [25] ㅇㅇ(210.113) 23.07.14 2039 21
425610 쟁선계 개인적인 후기 [18] ㅇㅇ(122.36) 23.06.03 3439 32
425303 한국무협이 처 망한 이유. [61] ㅇㅇ(110.11) 23.05.07 9346 70
425230 요즘 무협들 순위권 특징. 카카오&네이버 [14] ㅇㅇ(110.11) 23.05.03 6543 57
425185 '벽력암전' 추천. [11] ㅇㅇ(110.11) 23.04.30 3185 12
425183 화산귀환,광마회귀 이거 뭐임? [65] ㅇㅇ(211.107) 23.04.30 7248 54
425167 '자객전서' 추천. [6] ㅇㅇ(110.11) 23.04.29 1762 10
425112 무협 20년차 생각나는 뽕 차오르는 명장면 추려본다 [16] ㅇㅇ(110.11) 23.04.25 6444 18
425018 '서문반점' 추천. [12] ㅇㅇ(110.11) 23.04.17 2321 12
424773 전생검신 논평 ... 장문 [6] 5555(211.40) 23.03.30 1380 7
424327 중생촉산무새 왜 싸우게 된건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알려줌 [90] ㅇㅇ(221.153) 23.02.27 3593 51
423549 걍 무협, 선협갤로 이주해라 [5] ㅇㅇ(59.19) 23.01.17 6139 28
422953 중국 선협 소설 리스트 시리즈+카카오+문피아 [15] 몬발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2.25 10240 12
421755 학신 작가 신작 떴네. [15] ㅇㅇ(121.170) 22.11.13 6436 21
421616 스포) 학사신공 한립을 높게 쳐주지못하는 이유 [27] ㅇㅇ(39.114) 22.11.09 5536 46
421479 망해가는 객잔 [9] ㅇㅇ(106.245) 22.11.05 4245 66
421383 촉산 중생 하도 싸워대길래 궁금해서 기원을 알아봤다 [6] ㅇㅇ(221.153) 22.11.03 2617 20
421358 내 독서인생 그까이꺼.. [23] 몬발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1.02 2383 14
421293 중국선협소설 중국판타지소설과 한국인 여부 [24] 몬발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10.30 3515 18
420865 카카오페이지 1억뷰 이상인 소설 [16] ㅇㅇ(14.44) 22.10.19 12386 25
420863 (학사신공 짤린 부분) 몬X켜 무알못이 나대길래 올린다. [2] ㅇㅇ(14.44) 22.10.19 1622 8
420719 갤에 딱 입장을 하니 오늘도 중생무새 시바련의 글이 도배되어 있구나. [3] ㅇㅇ(210.99) 22.10.15 545 6
420664 스포)광마회귀 읽고 주화입마 씨게왔다... [10] ㅇㅇ(175.122) 22.10.14 6505 38
420639 수정본, 마지막이다. 따가운 질책 환영한다. [14] ㅇㅇ(118.33) 22.10.13 1623 11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