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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상플]그대와 함께1

그냥조력자(58.29) 2014.08.27 19:20:10
조회 1003 추천 11 댓글 5

그대와 함께1





고급스러운 검은색 이브닝드레스가 아름다운 몸의 곡선을 타고 물 흐르듯 아래로 떨어진다. 우아하게 틀어 올린 머리 아래로 희고 가느다란 목이 예쁜 얼굴을 받치고 있다. 드레스 사이로 보이는 길고 늘씬한 팔다리. 이 모든 것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고 완벽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음-“


주중원은 흐뭇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서있는 태공실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고급스런 깜장이라... 태공실, 아주 맘에 들어!”


태공실은 그의 칭찬에 발개진 뺨을 두 손으로 가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근데 등이 너무 파인 것 같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너, 기억이 잘 안 나나본데 일 년 전에 호두까기 아줌마가 너한테 들어왔을 땐 이거보다 더, 훨~씬 더 많이 파인 거 입고도 여기저기 막 돌아다니고 그랬어. 등이 아예 훤히, 다! 확!”


주중원의 할퀴는 듯한 손짓에 태공실은 당황하며 얼른 그의 팔짱을 꼈다.


“아, 그땐 내가 원해서 입은 게 아니잖아요. 사장님도 아시면서...”


하지만 주중원은 자신의 팔에 매달리는 그녀를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지금 입은 거 불평하지 말란 소리야. 루이 장 앞에서는 잘만 입어놓고선... 그리고 너, 태공실! 지속적으로 날 꼬실 의무, 까먹지 마! 지금 옷차림, 난 아주 맘에 든단 말야... 손가락 하나로도... 쉽게... 벗길 수도 있을 것 같고......”


마지막 말은 거의 입속에서 웅얼거렸기 때문에 태공실에겐 잘 들리지 않았다.


“네? 뭐라구요? 손이 뭐요?”

“아, 아니야 아무 것도. 가자! 초대에 늦겠어.”


태공실의 팔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주중원이 미소 지었다. 그의 얼굴을 보며 그녀도 따라 미소 지었다.


............


화려하게 꾸며진 방. 그 한 가운데 어린아이 하나가 우두커니 서있다. 천사같이 귀여운 얼굴을 가진 아이였지만 표정만큼은 대리석조각처럼 감정 한 오라기 묻어있지 않아 차갑기 그지없었다. 아이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화려하고 넓은 방도 아이를 닮은 듯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아이가 한기를 느끼는지 안고 있던 곰 인형을 더욱 꼭 껴안았다. 그렇지만 시선은 오로지 창문 밖을 향한 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조용히 문이 열리며 중년의 남자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를 보러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이에게 곧바로 다가서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서성거리기만 했다. 아이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입술은 무언가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며 떨리고 있었지만 남자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망설이다 이윽고 입을 열어 아이를 불렀다. 메마른 목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성진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아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순간 가슴이 서늘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갈 시간이다.”


아이가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와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미약한 온기가 손 안에 잡혔다. 아이의 손을 잡은 남자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린 순간을 제외하곤 다시 남자를 쳐다보는 일도 없다.


‘성진아, 아직도 이 아빠가 그렇게 미운 거냐...’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언제던가.


‘석 달이 넘었군...’


이제는 아이의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다. 천사 같은 얼굴, 종달새 같은 웃음소리를 가진 아이였는데... 끊임없이 재잘거리던 그 목소리가 미치도록 그립다!


‘당신 떠난 지 벌써 석 달이 지났어... 그곳은 어때? 편안한가? 아무래도 당신 가있는 그곳이 이승이고, 내가 있는 이곳이 저승인가 봐. 안 그래? 후우...... 나는 대체 이 지옥 같은 길을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지? 대답 좀 해줘, 응? 여보......’


............


화려한 옷차림의 많은 사람들,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아름다운 꽃장식.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파티장 입구에서 태공실이 주중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래. 여기가 지금 그런 곳이지. 왜, 긴장돼?”


태공실에 대한 염려가 주중원의 말끝에 묻어났다.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너보다 예쁘고 잘난 사람 없으니까. 자신감을 가져. 누가 뭐래도 넌 나의, ‘주군의 태양’이니까. 태공실, Fighting!”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을 외치는 이 남자. 태공실은 그런 주중원을 보며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좀 떨리긴 하다. 물론 전에도 이런 자리에 나서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때는 100억짜리 레이더로 그의 옆에 섰을 때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약혼녀!


약혼할 때를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손가락에 낀 반지에 눈길이 갔다. 타오르는 태양처럼 붉게 빛나는 루비를 가운데에 두고 뻗어나가는 태양빛을 표현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루비 주위에 두른, 정말 하늘에 떠있는 태양 같은 아름다운 반지였다. 태공실을 상징하는 거라면서 주중원이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준 약혼반지다.


주중원은 태공실에게 청혼을 하기 전, 이미 모든 결혼 준비를 다 끝낸 상태였다. 처음에 청혼을 받고 기쁘게 승낙하고 나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 생각해도 머리를 가로젓게 된다. 그녀는 그저 약혼이나 먼저 해두고 결혼은 시간을 좀 두려고 했었는데... 아직 마치지 못한 공부도 있고, 그 사람도 상하이 진출 문제로 많이 바쁘니 당연 그렇게 되려니 했다. 헌데...


“난 결혼하고서 상하이 갈 거야. 내 아내랑 같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가 선언하듯 내뱉은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다 정리가 되었다. 그의 기습공격에 당황한 그녀가 주성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주성란에게서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얼마 전에 한 약혼식. 곧바로 결혼을 할 거라 가족들과 가까운 친척 어른들만 모시고 비밀리에 조용히 약혼식을 올렸다. 그래도 신문 경제면에 기사 한 줄이 나가기는 했지만.


그러니까 지금 그녀는 그, 주중원의 약혼녀로서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귀신들과 엮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과도 엮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도 태양처럼 환한 너를 처음 보게 되면 다들 깜짝 놀란다. 너만 놀라고 긴장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너도 긴장하지 말고, 심호흡 하고. 무심한 듯 대담하게. 알았지?’


영혼을 보면 무서워 움츠러들고 긴장하던 그녀에게 유진우가 했던 말이다. 자신에게 참 많은 도움을 준 사람, 생명의 은인...


‘그래, 이젠 귀신도 무섭지 않은데 여기 있는 산 사람들 정도야... 까짓 거!’


태공실은 어깨를 활짝 펴고 등을 꼿꼿이 세웠다. 그의 옆에 당당히 설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나의 주군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주중원의 팔짱을 끼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요!”


그런 태공실을 보고 주중원이 활짝 웃었다.


“역시, 내가 아주 눈이 부셔 죽어요!”


............


주중원과 태공실이 파티장 입구에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술렁거림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둘은 주위의 소란스러움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꽂히듯 박혀 떨어지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주 사장님!”

“박 사장님.”


세진그룹의 사장인 박서현이 주중원을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창립 기념 파티, 준비 잘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덕분에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인사가 오고간 후 그녀가 곧바로 태공실에게 눈을 돌렸다.


“이분은......”


박서현이 눈을 빛내며 태공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눈은 어서 빨리 태공실을 소개시켜 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지금 이 파티장 안의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는 최고의 가십거리였으니까.


‘참 나, 이렇게나 노골적이라니...’


태공실이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려는 순간,


“아, 소개해 드리죠. 제 약혼녀입니다.”


주중원이 태공실의 어깨를 부드러우면서도 힘있게 감싸 안으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공실이 그의 옆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긍지와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소개하는 것이 크나큰 자랑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가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의 미소가 태양처럼 빛났다. 그래! 난 태양이니까!


“안녕하세요, 태공실이라고 합니다.”


태공실이 시선을 돌리고 박서현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의 태도에 박서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분명 그녀는...’


그래, 분명 그녀는 예전에 킹덤의 직원이었던 여자다. 자신이 주중원 사장과 결혼을 발표하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먼발치서 주 사장을 바라보던 음침한 여자... 어쩐지 이상하게 걸리더라니... 박서현은 태공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결혼 얘기 계속 이어가자 했을 때, 그가 사업상의 일로 깔끔하게 끝내자며 거절한 게 결국 이 여자 때문이었단 거네. 주 사장에게 걸린 첫사랑의 저주, 이 여자가 풀어낸 건가?’


그러자 예전에 킹덤 사장실 앞에서 그가 자신을 밀어내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자신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도 못하게 했지. 넘어지더라도 자길 붙잡지 말고 딴 거 잡으라고 했던 거... 하, 별 게 다 떠오르네. 창피하게...’


그런데 지금 이 남자, 태공실이라는 여자를 아주 꼬옥 붙잡고 있다. 자신에게서 한시도 떨어뜨릴 수 없다는 듯이.


‘게임 끝이군.’


그녀는 영리하고 사업수완이 좋은 여자였다. 이미 끝난 일에 집착하거나 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 주의다. 이내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내밀어진 태공실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태공실씨. 박서현입니다.”

“네. 저도요.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니 오히려 영광입니다. 킹덤의 주군을 사로잡은 이가 누군가 궁금했는데, 굉장한 미인이시네요.”

“과찬이십니다. 박 사장님이야말로 이렇게 젊고 아름다우신데 세진이라는 큰 그룹을 이끌고 계시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별 말씀을...”

“잠깐, 인사는 이쯤 하시죠. 저쪽에 인사드릴 분이 계셔서.”


주중원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의 시선이 파티장 중앙에서 여러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있는 한 사람에게 가 닿았다.


“어머, 왕 회장님...”


태공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고 주중원과 같이 그녀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 회장의 곁에는 젊은 아가씨가 다소곳하게 그녀를 따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주 사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주중원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으음? 태양까지!”

“저 아직 기억하고 계시네요! 건강하시죠?”

“그래요, 그래. 다시 보니 반갑네. 소식은 들었어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박서현은 내심 놀랐다. 태공실이 어떻게 왕 회장 같은 거물을 알고 있단 말인가? 역시 그녀에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역시 괜히 주 사장의 약혼녀가 아니었어.’


뭐, 괜찮다. 이런 인맥은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나쁠 것 없으니까.


“안녕하세요...”

“어? 아가씨는...... 선...영씨? 맞죠? 선영씨!”

“아! 기억하시네요. 다시 만나게 돼서 기뻐요.”


왕 회장의 죽은 손자 지우가 사랑했던 아가씨. 그녀는 달라져 있었다. 예쁘게 차려입어서가 아니었다. 내면의 무언가가 더욱 성숙해져 그녀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지난 일 년간 그녀에게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려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만나게 돼서 다행이에요......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고맙다뇨, 그런 말 말아요. 그나저나 이렇게 밝고 예쁜 모습 보니 참 좋네요.”


왕 회장이 선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은 내가 이 아이의 후견인이 됐지. 우리 지우가 내게 예쁜 손녀를 보내준 것 같네...”


선영의 손을 쓰다듬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왕 회장을 보니 그녀도 이제는 예전의 상처를 딛고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았다.


“주 사장님, 여기서 보는군요!”


갑작스런 인사말에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쪽으로 쏠렸다.


“이 사장님.”


자이언트몰의 이재석 사장이었다. 주중원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재석도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요즘엔 바빠서 같이 골프도 못치고, 좀 서운합니다.”

“그러게요. 상하이 가기 전까지 시간 내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보다시피 결혼이 코앞이라서.”


주중원이 태공실을 보며 말을 맺었다.


“태양!”


이재석이 주중원의 손을 놓고 태공실 앞으로 한 발 다가왔다.


“킹덤 나왔다는 소식 듣고 우리 자이언트몰로 스카우트 하려고 했더니 말도 없이 사라져서 아쉬웠는데, 일 년 뒤에 갑자기 나타나 주 사장과 결혼이라...... 이거야말로 진짜 아쉬운데요...”

“네... 그러니까 그게... 어맛!”


태공실이 뭐라 대답을 하려고 하자 갑자기 주중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자신 쪽으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쪽은 내 꺼라고 그때 분명히 말했을 텐데! 일 년 전 일이라 그런가? 다시 얘기해줘야 합니까?”


사자가 으르렁대듯 날을 세워 말하는 그를 보자 이재석이 한 발 물러섰다.


“하하, 이거 결혼축하 인사 한 번 더 했다간 신부 드레스 끝자락도 못 보겠군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청첩장 제일 먼저 보낼 테니 완전히 내 꺼 되는 거 꼭 오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꼭!”

“네. 가죠. 알겠습니다. 하하하”


이재석이 웃음을 터뜨리자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왕 회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주 사장에게 역시 태양은 ‘특별한 직원’이 맞군 그래. 미안하게 됐네. 그것도 못 알아보고 내가 영혼결혼식 시키려고 했으니...”

“회장님, 이제 그 얘긴 그만하셔도......”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태공실을 중심으로 환하고 따뜻한 기류가 흘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박서현이 이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알겠어. 그동안 어떤 집안의 여자인지, 뭐하는 여자인지 소문만 무성했었는데, 이젠 확실해졌어.’


파티장 안의 다른 이들도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을 것이다. 돈, 권력, 미모를 떠나 오로지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것. 그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을!


‘별명이 태양... 이랬나? 훗, 잘 어울리네.’


박서현 그녀도 저 따뜻한 햇살을 같이 쬐고 싶어졌다. 이 살벌하고 외로운 세계에서 뭔가 위로가 될 만한 것이 그녀에게도 필요했다. 주중원 사장이 그녀를 꼭 잡고 놓지 않는 것이 왠지 이해가 된다.


‘파트너인 주 사장과 더 친해져야겠군. 후우- 그나저나 남자 태양은 어디 없나? 날도 추운데...’


............


그때였다.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의 검은 그림자가 파티장 안으로 들어온 것은. 박서현은 갑자기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은!’


파티장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 그녀는 자신이 파티의 주최자로 손님을 맞아야 한다는 것도 잊고 태공실과 주중원이 있는 쪽으로 피신하듯 몸을 옮겼다. 박서현이 다가오자 주중원과 태공실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이쪽이 분위기가 좋군요. 저도 좀 끼어들어볼까요?”


하지만 말만 그렇게 던져놓았지 박서현은 새로 입장한 손님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상한 행동이 주중원의 날카로운 감각에 걸리지 않을 리가 없다.


“대단히 중요한 손님이신 것 같은데... 계속 주시하기만 하는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 그래보였나요? 역시 예리하시네요...”


주중원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붉어졌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그 손님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태공실도 의아한 마음이 들어 그녀가 주시하는 손님을 눈으로 쫓기 시작했다. 이윽고 박서현이 한숨과 함께 손님을 쫓던 시선을 거두고 주중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새로 들어오신 분, 주 사장님도 아실 거예요. 건익그룹의 회장님이시죠.”

“아...... 차태석 회장! 네, 알죠.”

“맞아요. 음... 그러니까 주 사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 세진그룹의 세진시멘트가 중국에 진출해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죠. 그런데 넓은 중국 땅을 누비고 다니려면 물류 쪽이 확실히 받쳐주지 않으면 안 돼요. 그것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은데 이걸 확실히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 차 회장님이거든요. 물류 쪽의 거물이시라... 그래서 사업파트너 제의를 하고 싶은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사업 쪽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아주 곤란한 문제가. 그것 때문에 일을 추진할 수가 없어서요.”

“어떤 일 이길래...?”

“차 회장님, 석 달 전에 아내분을 잃으셨어요. 교통사고였다는군요. 차 회장님이 직접 운전해서 가다가 그만... 부부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슬픈 일이죠... 지금은 뭐 어찌어찌 정신을 가다듬고 회사경영을 하고는 계시지만 큰 충격으로 새로운 사업구상이니 하는 쪽은 신경도 못쓰더군요. 하긴 신경 쓸 겨를이 없긴 할 거예요. 아들 때문에라도.”

“아들?”

“저기 보이시죠? 차 회장님 옆에 있는 꼬마.”

“이런 파티에 저런 어린애를...”

“사고 당시 저 애도 같이 타고 있었대요. 근데 엄마는 죽고 아빠와 아이만 살아남은 거예요. 애 이름이 뭐였더라...? 암튼, 똑똑하고 예쁜 아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 사고로 실어증까지 걸리고... 딱하게 됐죠. 차 회장님도 그 일 이후로 아들을 곁에서 한시도 떼어놓질 못해요. 어디든 데리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불안한가 봐요, 아들까지 잃게 될까봐. 참 안됐어요, 정말...”


주중원은 박서현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그가 저 아이 정도 되었을 무렵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짠한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태공실을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의 옆에 없었다. 태공실은 박서현의 얘기를 옆에서 듣다가 말고 그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보았기 때문이다. 싸늘한 어둠을 몸에 두르고 끊임없이 피를 흘리며 아이의 옆에 서 있는 여자를.


............


그녀는 분명 큰 사고를 당해 죽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상하게 꺾이고 뒤틀린 몸 위로 쉬지 않고 흐르는 붉은 피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런 끔찍한 모습의 귀신은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은데도 지금 태공실은 그 귀신에게로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다. 귀신이 먼저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녀가 제 발로 귀신에게로 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미쳤냐는 경고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그 소리를 외면하고 귀신에게 다가가고 있는 이유는 바로 피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귀신의 한없이 슬픈 눈 때문이었다. 먼발치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 슬픔이 태공실로 하여금 먼저 귀신을 찾아가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보통 귀신이 저런 상태면 태공실을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신의 한을 풀려고 하소연하거나 몸을 뺏으려들거나 할 텐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아이의 옆에 붙어서 피눈물을 흘리며 아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안녕.”


태공실이 아이의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작은 소리로 인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사에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의 옆에 있던 귀신과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차태석 회장이 고개를 돌려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섬뜩하면서도 기묘했다. 이승과 저승의 사람이 동시에 자길 바라보다니.


“무슨 일이시죠?”


차태석 회장이 태공실에게 물었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태공실이 일어났다.


“아, 네...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해서... 놀라게 했다면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아들이 지금 몸이 좋지 않아 제가 신경이 좀 예민해져 있다 보니...”

“어머, 그래요? 음... 어디가 아픈 걸까? 열이 나는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태공실이 다시 몸을 굽혀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아이 옆의 귀신이 태공실을 바라보며 무언가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검지를 세우고 코에 가져다 대며 입술을 열어 뭐라 말을 한 것이다. 마치 따라해 보라는 듯이. 태공실이 그 모습을 보다가 귀신이 하는 대로 따라해 보았다. 검지를 세워 아이의 코를 살짝 두드리며 인사를 한 것이다.


“안녕, 작은 별.”


순간, 아이가 태공실을 향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눈에 초점이 잡히는가 싶더니 태공실을 올려다보는 그 큰 눈에 금방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아닌가! 곧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넘쳐 뺨을 타고 바닥으로 후드득 후드득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태공실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곧이어 일어났다. 태공실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이 아이가 태공실의 품으로 갑자기 뛰어들어 그녀를 꼭 껴안은 것이다!


깜짝 놀란 것은 태공실 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아버지인 차태석 회장은 태공실 보다 더 놀라고 당황했다.


“성진아, 왜 그러니! 성진아!!!”


이름을 부르며 아들을 떼어내려 했지만 아이는 떨어지기는커녕 태공실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며 팔로 그녀의 목을 힘껏 감아 조일 뿐이었다. 이제 태공실은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워낙 그녀의 목을 세차게 껴안았기 때문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태공실!”


주중원이 달려와 아이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힘을 주어 아이의 팔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차태석 회장이 아들의 몸을 끌어당겨서 안았기 때문에 마침내 태공실은 아이에게서 벗어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으앙---!!!”


아이가 아버지의 품에서 발버둥 치며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파티장 안을 짜랑하게 울리며 뒤흔들어놓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음악이 잦아들었다. 자연스레 시선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태공실은 가쁜 숨을 내쉬며 주중원에게 안겨 꼬마를 바라보았다. 곧바로 차태석 회장이 울며 몸부림치는 아들을 들어 안고 급하게 출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의 모습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만은 오랫동안 파티장안에 메아리쳤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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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113287 ☆줕이 꺼진 지 2984일☆ [1] 썸머페스티벌(222.235) 21.12.04 583 0
113286 오늘은, 좀비 같아 [1] 썸머페스티벌(121.176) 21.12.03 555 0
113285 ☆줕이 꺼진 지 2983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2.03 370 0
113284 ☆줕이 꺼진 지 2982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2.02 370 0
113283 주군과 태양의 표정 변화 ~ 14화 썸머페스티벌(121.176) 21.12.01 464 0
113282 ☆줕이 꺼진 지 2981일☆ [1] 썸머페스티벌(222.235) 21.12.01 505 0
113281 사장님은 내가 이렇게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죠?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30 368 0
113280 ☆줕이 꺼진 지 2980일☆ [1]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30 489 0
113279 그런데 내가 제일 아끼는 볼펜은 왜 가져갔을까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29 344 0
113278 ☆줕이 꺼진 지 2979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9 293 0
113277 ☆줕이 꺼진 지 2978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8 294 0
113276 네 옆에 있는 그림도 엄청 비싼 거야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27 262 0
113275 ☆줕이 꺼진 지 2977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7 224 0
113274 ☆줕이 꺼진 지 2976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6 161 0
113273 주군과 태양의 표정 변화 ~ 13화 [2]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25 263 0
113272 ☆줕이 꺼진 지 2975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5 143 0
113271 ☆줕이 꺼진 지 2974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4 144 0
113269 ☆줕이 꺼진 지 2973일☆ [1]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3 153 0
113268 주군 깼어? [1]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22 165 0
113267 ☆줕이 꺼진 지 2972일☆ [1]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2 151 0
113266 거기 아가씨 나랑 한 잔 할까?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1 146 0
113265 ☆줕이 꺼진 지 2971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1 123 0
113264 ☆줕이 꺼진 지 2970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20 122 0
113263 주군과 태양의 표정 변화 ~ 12화 [2]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19 219 0
113262 ☆줕이 꺼진 지 2969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9 123 0
113261 ☆줕이 꺼진 지 2968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8 123 0
113260 주군과 태양의 표정 변화 ~ 11화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17 199 1
113259 ☆줕이 꺼진 지 2967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7 120 0
113258 근데 방금 되게 찌릿하지 않았어요?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16 137 1
113257 ☆줕이 꺼진 지 2966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6 129 0
113256 지금 데이트 중이야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15 140 0
113255 ☆줕이 꺼진 지 2965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5 121 0
113254 ☆줕이 꺼진 지 2964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4 121 0
113253 그래서 사장님한테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13 134 2
113252 ☆줕이 꺼진 지 2963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3 113 0
113251 어잿밤, 좋았어요 [1]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12 155 1
113250 ☆줕이 꺼진 지 2962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2 120 0
113249 태공실 너 8시에 약속 있다고 했지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11 133 0
113248 ☆줕이 꺼진 지 2961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1 123 0
113247 주군과 태양의 표정 변화 ~ 10화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10 233 1
113246 ☆줕이 꺼진 지 2960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10 129 0
113245 주군과 태양의 표정 변화 ~ 9화 [2]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09 221 1
113244 ☆줕이 꺼진 지 2959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09 156 0
113243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나를 위해 용기를 내보겠대요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08 147 1
113242 ☆줕이 꺼진 지 2958일☆ [1]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08 142 0
113241 아우- 왈왈왈왈왈왈왈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07 133 1
113240 ☆줕이 꺼진 지 2957일☆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07 126 0
113239 ☆줕이 꺼진 지 2956일☆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06 122 0
113238 그건 내 스킨이야 [1] 썸머페스티벌(121.176) 21.11.05 165 1
113234 ☆줕이 꺼진 지 2955일☆ [2] 썸머페스티벌(222.235) 21.11.05 15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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