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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 5.29. 제 5부(2)

l헤실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10.19 13:42:23
조회 468 추천 7 댓글 5



13




파란 하늘이 밝은 태양과 어우러져 상쾌한 날씨를 만드는 어느 오후. 청춘의 상징이자 로망인 한국대 캠퍼스에서, 뭇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싱그러운 영혼이 콧노래를 부르며 곧 있으면 자신을 데리러 올 어느 중년의 신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는 같은 학년 학생들보다 많았지만, 옅은 화장에 전공서적을 옆구리에 끼고서 방긋방긋 미소를 흘리고 있는 공실은 그런대로 대학생이라는 신분과 잘 어울렸다.


김실장님이 왜 만나자고 하셨을까?


공실은 발끝으로 콕콕.. 땅을 찍으며 생각했다.




"태양!"


"김실장님!"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에요. 저도 금방 왔어요."


"다행이네요. 얼른 타요, 태양."


"고맙습니다."




공실은 귀도가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자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귀도는 공실이 들어가자 문을 닫고 다시 운전석으로 가볍게 뛰어왔다. 공실은 귀도가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켤 때 까지 기다렸다가 차가 출발하자 바로 질문을 했다.




"김실장님. 저희 어디로 가는 거에요?"


"주군이 부탁하신 게 있어서, 지금 그리고 가는 중이에요."


"주중원씨가요?"


"네, 태양."


"음.."


"왜요?"


"아니요.. 그 사람, 오늘 많이 바쁜가요?"


"네.. 아 뭐.. 네. 주군은 항상 일이 많으시죠."




주중원씨. 그러고 보니 오늘은 연락이 한 통 없네. 많이 바쁜가?


공실이 섭섭한 듯 인상을 쓰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귀도는 웃으며 공실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태양. 받아요. 공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귀도에게서 상자를 받았다.




"이게 뭐에요?"


"열어봐요."


"어? 이건..!? 주중원씨.."


"맞아요. 바로 알아보네요. 태양. 주군이 난독증을 앓고 있을 때 썼던 녹음기에요. 그러고 보니, 내가 아플 때 태양이 대신해서 녹음한 적이 있죠?"


"네. 그런데 이걸 왜.."


"우리가 갈 곳은.. 아주 멀어요, 태양. 그동안 심심할 테니 듣고 있어요. 그걸.. 선물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냥 주군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자구요."


"네.."




공실은 녹음기에 둘러져 있는 이어폰을 반대로 돌려 귀에 꽂고 전원을 켰다. 처음 이 녹음기를 봤을 때가 떠오르면서 공실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그 때는.. 내 마음을 나도 잘 몰랐는데, 어느새 사장님이 내 남자가 되어있네.하하. 이젠 글을 잘 읽긴 하지만, 일중독에 까칠한 건 여전해... 바빠도 연락은 좀 주지. 걱정되게- 연락이 없는 중원이 살짝 미웠지만 공실은 중원이 없는 순간마저 중원의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녹음된 내용을 확인하던 공실은 2개만 남아있고, 옛날에 있었던 파일들이 전부 삭제된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업무]




"히히. 뭐야 이거.. 내가 옛날에 녹음했던 거잖아. 이걸 남겨놨네.. 일이랑 관련된 내용밖에 없어서 지루할 텐데, 나중에 통통 튀는 거로 하나 녹음해줄까?"




귀도는 거울에 비치는 공실의 얼굴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공실은 웃으며 나머지 녹음된 파일을 재생시켰다.




-... ... .... .  .


어라? 왜 아무 말도..




약간의 텀이 있는 [태공실] 파일에서 곧 중원의 목소리가 들렸고, 드문드문 귀도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 ... ....태양. 태공실. 그래 태양. 무슨 말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몰라서 텀이 생겨버렸어. 이해해줘. 아 아..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김실장님?


-네 주군. 그런데 도중에 저한테 질문하시면, 이런 것도 다 녹음됩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내가 뭐 녹음을 할 일이 있었어야죠.


-그럼요. 맨날 듣기만 하셨죠. 힘드십니까?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세요. 그동안, 섭섭하셨어요? 제가 다~ 사과드렸잖아요.


-그냥 한 번 해본 소립니다. 이제 긴장 풀리셨으면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녹음 하나 하는 것 가지고 긴장은... 덕분에, 풀렸어요. 나가보세요.


-네 주군.




문이 닫히고 귀도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녹음 하나 하는데.. 주중원씨 참 곱게 컸구나. 김실장님이 고생이 많으셨겠다. 공실은 운전석에 앉아서 열심히 운전을 하고 있는 귀도를 연민을 가득 담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아..아. 태양. 이제 나 혼자야. 다시 시작할게. 일단, 제일 중요한 말부터 할게. 태공실. 네가 이 녹음된 내용을 듣고 있을 때면, 나는 아마...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있을 거야. 제일 빠른 시간에 갈 테니, 조금 있으면 도착했을 지도 모르겠네.




공실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라구? 어디?! 공실은 한 쪽 이어폰을 빼고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귀도를 불렀다.




"김실장님! 주중원씨 미국..!!!"


"그냥 끝까지 들어 주세요. 태양. 태양이 녹음된 내용을 다 듣고 정해진 장소에 도착했을 때 자세한 설명을 하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미안해요."


"하.."




공실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계속해서 선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중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제발.. 주중원씨 제발..!




-..한국에 남아있는 내 태양은 많이 놀랐겠지? 말도 없이 미국행이라니, 화를 내려나?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만 보이는 태공실이라서, 짐작도 못하겠어. 어차피 2주 뒤에 갈 미국을 좀 일찍 가는 거야.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이렇게 훌쩍 가는 건, 미안해. 태공실. 네 얼굴 보면 가기 싫어질 것 같아서 그냥 갔다고 하면.. 기분이 조금은 풀리겠어? 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고, 진심이야. 태양이 없는 미국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


"거질말쟁이."


-거짓말 아니야. 지금 날 못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 주중원이야. 누구 무서워서 거짓말하는, 그런 찌질한 성격은 절대 못되는 사람이라고!! ..그래도 이걸 듣고 있을 태공실 얼굴을 생각하는 건, 조금 무섭네. 빨리 갔다 올게. 쓸데없이 내 걱정하지 말고, 나 없는 동안 건강 잘 챙겨. 태양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내꺼야. 내꺼에 흠집 하나라도 냈다가는, 합의고 뭐고 없어. 바로 고소장 신청 할 테니, 알아서 잘 간수해.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확인할거야.


"칫. 주중원씨가 무슨 수로 확인 할 건데? 웃겨."


-어? 태공실. 방금 나 비웃었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인할거야. 뭐.. 상상은 자유지만 뻔하지 않나? 뜨거운 밤만 보내면 되는.. 하. 미친놈. 너한테 단단히 미쳐서 벌써부터 돌아갈 생각이나 하고 있네. 하여튼 옆에 있든 없든, 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한다니까.




풉. 공실은 중원의 목소리와 함께 중원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표정과 몸짓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아오 진짜.. 주중원씰 누가 말려. 딱 갔다 오기만 해봐 아주. 요물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생각과 다르게 공실은 입가에 다시 옅은 미소를 흘렸다. 그래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은, 사업상 갔다고 하지만 정확히 언제 돌아오는지, 무슨 일인지 하는 것이었는데, 중원이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나중에 귀도에게 들어야 할 일이었다.




-태양. 그래도 태공실은.. 웃고 있을 것 같아. 태공실은, 지금까지 나한테 화를 낸 적이 별로 없으니까. 저번에도 그랬던 것 처럼, 이번에도 넘어가줘. 그렇게 해줄래? 태공실. 태공실.. 태양... ... .... .. .   ...나는 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너의 정신이 됐든, 마음이 됐든, 신체가 됐든. 어디 하나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내 세상을 비춰줘. 그래야 나도 계속, 너의 세상에서, 우리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중원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마치 굉장히 하기 힘든 말을 겨우겨우 내뱉는 것 처럼, 물기어린 중원의 목소리가 공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보고싶다. 태공실. 니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너에게 든든한 무언가가 되어줄, 그 무언갈 찾으러 가는 거야. 넌 375일이나 걸렸지만, 나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주군이니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거야. 걱정하지마. 겁먹지도 말고. 우리 태공실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캔디는 아니지만, 씩씩하니까 참고 기다릴 수 있지? .... .. .... .  . ... .. 태양. ...태공실. . ..사랑해.. 사랑해. . .. .사랑해.




중원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녹음된 내용이 끝이 났다. 어느새 공실의 두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공실의 흐느낌에 놀란 귀도는 속도를 올려 한적한 길가로 차를 세운 다음, 공실이 편하게 울 수 있도록 공실이 편하게 울 수 있도록 혼자 남겨 둔 채 자리를 비켜주었다. 귀도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공실은 귀도가 나가자마자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 흐느낌은, 차 안의 구석구석을 지나 다시 공실에게로 향했지만, 공실은 그저 울었다. 그 때, 중원과 헤어진 그 병원에서처럼. 기약 없는 기다림. 이번엔 공실의 차례였다.




"태양."


"..음...?"


"정신이 들어요?"


"아.. 김실장님."


"마셔요. 태양."


"고맙습니다.."




퉁퉁 부은 얼굴로 눈을 뜬 공실은 창문 너머로 귀도가 건네주는 시원한 캔 음료를 받아들고는 차에서 내렸다. 공실이 울고 나서 쓰러지듯 잠들기 전에 봤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바닷가 근처의 아담하고 깔끔한 집이 보였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음료의 시원함과 머리카락을 흩으러놓는 바닷바람이 공실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공실은 정신을 차리고 처음 본 이 곳의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낯선 곳에 벌써 정이 든 것 같아.




"이 곳이.. 태양 마음에 드나 보군요."


"네. 여기.. 이상하게 정이 가요."


"하하 참.. 그러기도 쉽지 안을 텐데. 주군과 태양은 아무리 봐도, 인연이 맞나 봐요."


"네? 왜.."


"맞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을 단번에 좋아할 리 없어요."




귀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공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집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작았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오니 내부 공간이 생각보다 넓었다. 사람이 살지는 않았지만, 사비를 들여 관리를 철저히 했는지 마당의 풀 한포기 조차 홑으로 자라지 않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귀도와 공실은 집의 마루 위에 앉아 조용히 풍경을 즐겼다. 이제 공실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 귀도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공실을 불렀다. 태양. 네? 이제는.. 말을 해도 될 것 같은데, 듣겠어요? 네. 부탁드려요 김실장님. 귀도는 천천히 마당의 한 쪽에 설치되어 있는 그네를 바라보았다. 눈은 바람에 흔들리는 그네를 향해 있었지만, 귀도는 다른 어떤 것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공실은 묵묵히 기다렸다.




"태양."


"네."


"...이 곳은, 사모님이 살아생전에 주군과 함께 하셨던.. 처음이자 마지막 공간이에요."


"..사모님..이요? 사모.. 그럼 주중원씨의..?"


"맞아요. 주군의 친어머니 되시는 분이죠. 나도 직접 뵌 적은 없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분이시라고 들었어요."


"그럼 여긴, 주중원씨의.."


"..태양을 만나기 전에, 주군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


"훗날 그 행복이 상처가 되긴 했지만.. 주군한텐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에요. 이곳."




순식간에 주위의 모든 것이 중원이 되어 공실에게로 다가왔다. 이상하게 정이 가던 그 마음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느낌들이 공실에게 큰 위로가 되어 기약 없는 기다림도 씩씩하게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공실에게는 그러했다.







5.29.






*읽어주는, 댓글설리, 갯추설리 갤러들 무한 감쟈!

**ㅋㅋㅋㅋㅋ너무 오래 전이라 나도 수정하고 재업하면서 새롭게 읽고 있음ㅋㅋㅋㅋㅋ

***이제 1/3정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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