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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넥스 티슈 / 마경덕

lchabod(166.104) 2008.09.12 22:04:19
조회 132 추천 0 댓글 4

  크리넥스 티슈

  -마경덕

 

                  
   200장의 약속이 상자 안에 접혀있다. 
 
   한 장 한 장 뽑아 쓴 연애는 바닥이 났다. 나를 다 써버린 애인은 쉽게 나를 쫑냈다. 200일을 못 넘기고 그에게서 뽑혀졌다. 사랑에 흠뻑 젖어 나는 찢어지기 쉬웠다.

   보름달이 마당 살구나무 가지에 발을 내려놓기 전, 친친 감긴 애인을 두루마리처럼 풀어버렸다. 살구꽃 터지듯 만개한 그를 질질 흘렸다. 나는 일회용이 아니야, 켜켜이 접힌 깊은 울음이 터져나왔다. 코를 풀고 욕설을 닦고, 지루한 연애를 요절낸 그 밤, 노랗게 살구는 익어가고, 침이 고이는 그늘 아래 나를 기다리던 애인이 석 장, 넉 장 뽑혀 나왔다. 설익은 살구가 후두둑 발등으로 떨어졌다.    

   유효기간을 넘긴 애인이 쓰레기통에 흘러 넘쳤다. 시큼한 애인이 눈에 고였다. 이젠 끝이야, 마지막 한 장으로 구석구석 그를 닦았다. 그는 자꾸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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