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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속의 작은 뇌

dd(14.37) 2017.10.17 01:52:45
조회 142 추천 1 댓글 2

뇌는 멈추지 않고 생각하려 했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죽는 것을 알기에 생각해야 했다.

뇌에게는 몸이 없었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그건 오래 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외부의 자극또한 희미하기 그지없다.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 필요하기에.

생각이 멈추면 그것은 끝을 의미했다.

생체 반응을 유지하는 회백질 덩어리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뇌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생각은 파편화되어 조각조각 잘라졌고 점점 끊임없이 유지해나가기 힘들어졌다.

뇌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이야기였다.

처음 시작은 어려웠어도 이야기는 차차 조각난 생각을 엮어 오밀조밀한 그물을 만들었다.

지어낸 이야기가 쌓이고 쌓이며 뇌는 살아있을 있었다.

뇌에게 자신의 이야기란 세계였다.

이야기가 멈추는 순간 자신 또한 죽기에, 뇌의 세계는 이야기였다.

천일야화의 세에라자드에게 이야기가 그러했듯이 뇌에게 또한 그랬다.

 

그러나 마침내 천일째 밤은 다가왔고 남편을 감화시킨 세에라자드와 달리 뇌는 실패했다.

실패한 경위가 우스웠다.

뇌는 어느순간 상상해버린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모든 대연대기의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난입한 생전 처음보는 여자의 권총에 맞아 죽어버리는 것을.

의미도 맥락도 없는 환상 속에서 이야기는 죽었다.

갑작스러운 결말은 현실의 죽음만큼이나 갑작스러웠다.

 

뇌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했다.

죽은 이야기를 엮어보려고도 노력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뇌는 이미 그 이야기가 죽은 것을 알고 있었고 새로운 이야기를 짓기에는 너무 지쳐있었다.

계속되던 생각은 점차 느려졌다.


이제 뇌는 잠들어야 한다.

혹시 모를 누군가가 나를 께워주기만을 바라며.

제발, 누군가 구원해주기를.

그러나 왕자는 없지.

안녕.

다음에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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