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일은 미/영/프/소 4개국에게 영토가 분할 점령당하고 폴란드와 소련에게는 후포메른, 동프로이센, 슐레지엔 등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구 동방영토를 상실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프랑스 또한 실패하긴 했지만 자를란트를 독일에서 떼어내 합병하려는 시도 또한 존재하였습니다. 여기에 독일에게 이를 가는 전쟁 피해국이자 그 보상으로 독일의 영토 일부를 자국으로 합병하려는 시도를 한 나라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였습니다. 이번 글에선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네덜란드의 독일 영토 합병 계획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1. 합병의 배경

본디 네덜란드는 19세기 이후 유럽 국가들 간에 벌어진 대규모 전쟁에서 한 발짝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일례로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쑥대밭이 된 밑의 벨기에와 달리 네덜란드는 중립을 유지하며 평화 상태를 이어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네덜란드 또한 제 2차 세계 대전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프랑스 침공을 위한 통로 확보(림뷔르흐 주의 마스트리흐트 회랑) 및 대서양 방벽 구축 계획의 일환으로 나치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한 겁니다.

종전 이후 네덜란드는 승전국의 일원이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전 국토가 쑥대밭으로 전락했습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나치 반대파이 홀로코스트로 인해 사망하였고 독일군의 대규모 전시물자 징발로 인한 기근으로 인해 수십만 명이 굶주립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많은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죠.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사망한 네덜란드인은 약 21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은 2.36%로 서유럽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치였습니다. 때문에 자국을 무참히 짓밟은 독일에 대한 네덜란드의 증오심은 프랑스나 소련 몫지 않았습니다.

1945년 10월 네덜란드는 독일에게 전쟁 피해 배상금으로 약 250억 굴덴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이 돈을 지불할 여력 자체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독일의 기반 시설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독일을 분할 점령한 주요 4개국이 독일은 완전한 농업 국가로 만들어 버리려 했기에 배상금을 받을 길은 더욱 요원해졌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이거였죠. ‘배상금을 돈으로 받지 못하면 차라리 땅으로 받겠다‘

여기서 잠시 얘기를 돌려보죠. 제 1차 세계 대전과 베르사유 조약으로 완전히 전쟁을 일으킬 여력을 상실했다고 간주한 연합국은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한 독일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로 다시 전쟁을 일으킨 것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결국 연합국은 하나의 독일이 존재하면 다시 전쟁을 일으킬 지도 모르니 아예 전쟁을 일으킬 국력 자체를 가지지 못하도록 독일을 여러 개로 쪼개버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죠.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독일의 분할 점령은 확정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동/서독으로 나뉘게 된 실제 실행된 분할 점령안 이외에도 처칠 안, 루스벨트 안, 모건소 안 등 여러 가지 계획이 존재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독일은 완전한 농업 국가로 만들 계획이니 현물 형태로 배상금을 받는 것은 글러먹은 상태이고 결국 주변의 피해국들에겐 독일 영토 일부를 떼어주기로 계획하였습니다. 주변국에게 영토를 떼어주게 되면 독일의 국력은 약화될 것이고 이렇게 해서 영토를 얻은 주변국의 국력은 강해질 것이니 이들이 독일을 견제하면 독일은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이런 소리입니다.

- 여러 가지 독일 분할 점령안 -

2. 합병 시도의 구체화

1945년 5월 해방 직후부터 이미 네덜란드에서는 독일의 영토 일부를 합병하고 그 곳에 거주하는 모든 독일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나 책자가 나돌기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여론뿐만 아니라 외무 장관 반 클러펀스(Eelco Nicolaas van Kleffens)를 비롯한 정부 고위층 일부 또한 네덜란드의 영토 확장에 찬성하는 의견이었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영토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선 각기 의견이 달랐습니다. 국경 지역 몇 곳만 합병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엘베 강 너머 함부르크까지 합병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죠.

네덜란드의 영토 확장에 찬성하는 이들은 자체적으로 몇몇 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945년 6월 19일 헤이그에서 네덜란드의 영토 확장에 관한 조사 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7월 12일 이 위원회는 영토 확장 연구회(Studiegroep Gebiedsuitbreiding)와 실제 행동 위원회(Comité van Actie)의 두 개 단체로 나뉘었습니다. 7월 18일 실제 행동 위원회는 ‘네덜란드 영토 확장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8월 25일에는 외무 장관 반 클레펜스가 ’합병 문제 연구에 관한 국정 위원회’를 설립, 1946년 5월 합병 문제에 관한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영토 확장 연구회가 다수 단체를 설립하여 영토 확장 문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 단체로부터 연구 결과를 받으면 국정 위원회는 연구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영토 합병 문제에 관한 최종 의견을 내눈 방식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영토 확장 위원회는 책자 배포나 강연을 통해 연구회의 결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주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단체가 합병 문제에 관하여 자기들만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에 대핸 논쟁일 일기도 하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