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누구에게나 부모와 가정은 곧 자신을 지탱해주는 세상이다

나에게 전부인 그 작은 세상이 흔들리고 위태롭다는것이 어린 마음에 어떤 흉터를 남기는지. 비교적 편하게 자란 당신들은 상상도 못할것이다

여섯살때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다 나라는 못난 졸작을 아버지한테 떠맡기듯 팽개쳐두고 그렇게 훌쩍 어디론가 떠나버린것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엄마는 돌아오지않았고 내가 아홉살이 되던 해에는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아직 열살도 채 되지않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감당하기 버거운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것을 원인으로 나는 점점 내적으로 고립되어갔다. 나를 낳아준이에게조차 버림받은 나라서 다른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온전하게 서기를 바랄 용기는 있을리가없었다  

그렇게 나는 또래들과는 다른 경험과 다른 사고와 다른 감정을 가진 아웃사이더. '이상한놈'으로 스스로를 규정해갔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성장해오면서 또래들이 으레 가지는 경험적이고 물질적인 관심사보다는 추상적이고 거시적인쪽으로 내 관심사과 사고는 자연스레 옮겨갔다

어쩌면 내 추상적인곳으로의 관심사는. 실재하는 세계에서의 스스로를 감당하고 지탱해 낼 정신적 여유와 성숙의 부족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건 분명히 도피였다

원하지 않는 결혼의 결과로 졸작하나 남기고 떠나버린 아내를 원망하며 나의 아버지는 매일 알콜에 절어 살았다

불편한 다리탓에 변변찮은 직업 하나 가지지 못하고 매일같이 동네 양아치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고 아무데나 드러누워 자고있는 아버지를 볼때마다 내 사춘기는 눈물없이 오열하였다

그래도 아버지를 한번이라도 원망해본적은 없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는존재지만 나에겐 유일한 가족이자 나와 평생 한배를 탄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이미 추상적인 사고에 고립된 나에게는 TV스타 연예인이나 드라마 혹은 외모, 축구따위에 관심있는 또래들을 이해할수도 없었고 어울릴수도없었다 그들은 나와는 너무도 다른경험을 공유한 다른세계 사람들이었다.

쓰러지기 직전인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17세의 어린 나이로 험하기로 소문난 택배상하차장을 찾았다. 일손이 모자란 탓에 어린나이임에도 이것저것 가려뽑진 않았다.

택배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사람들은 거칠었다. 번 돈보다 잃은것이 더 많은 택배 상하차장에서의 날들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악몽으로 남아있다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