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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시키고 사과한 나라

ㅁㅁ(59.1) 2021.01.15 13:57:37
조회 1343 추천 52 댓글 5



조선만큼 합병지배국에 '적극' 협조하고,
'저항'이 적었던 나라도 존재하지 않고,
독립할 때도 조선만큼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나라도 없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국가들은 독립할 때 다 독립전쟁하면서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십만이 독립전쟁으로 죽음으로써 독립함.


조선만큼 평화적으로 합병되고, 평화적으로 독립한 나라는 지구상에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인다.
기껏해야 수십만의 도시국가들이나 그럴까.
조선처럼 수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들 중에서는 안보임.

 


오픈백과 위키사전에서 찾아봐도.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들 독립전쟁한거 다 나오는데,
조선만 없다. 하나도 안나옴.

일한합방 조약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평화적으로 체결......

 


이씨조선때의 양반과 관리의 착취

 

이조를 방문했었던 외국인들의 공통적인 평가는 양반이나 관리의 착취가 너무 심하고 이것은 관습적으로 용인되었다는것

예상은 하였지만 실제로는 횔씬 심각했다

양반은 놀고먹으며 생업에 종사를 하지 않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려니 그 밑의 계층을 착취할수밖에 없고

애시당초 충효와 지배이념을 위해서 유교탈레반 나라가 된것이 이조다보니까

윗사람에 대한 예의와 복종만 있지,,아랫사람이 항거할만한 무엇도 없음

그냥 아랫사람은 당하기만 해야 함

노예와 다를게 없지.

일본이 국제법적으로도 돌려줄 필요가 없는 조선왕실의궤등 1,200점을
한국과의 선린우호를 위해서 돌려줬어도 한국인들은 고마워하기는 커녕
더욱더 악랄하게 반일책동한다


독립국가에 배상과 돈을 받지도 않은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독립하면 독립금을 내는게 맞는것이지만 일본은 그런돈 조차 받지않았다.

 

오스트리아와 조선을 비교해보자. 조선은 피해하나 없이 평화적으로 합병되었다. 그리고 일본에 독립하고

일본에 단 한푼의 돈도 내지 않고 평화적으로 독립했다

 


 

일본이 조선에 해준것

 

1. 조선을 독립시켜주었다.

중국의 속국에서 해방 시켰다

그리고 영은문을 폐지

독립문을 세운다

조선을 바로잡아주었다.
 
2. 조선의 신분제를 없애주었다.

조선은 아주 오랫동안 노예제도를 유지해온 기묘하고 잔혹한 나라였다. 이것은 너무나도 많은 이권이 걸려있어 사실상 스스로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것을 해준 것이 일본이었다.

일본이 조선의 신분제를 해체해준 이벤트. 명목상 사라진 것은 합병 이전이었지만 합병 이후 철저한 중립적 판단과 감독으로 모든 인간을 "동일시"해주었다. 차별하지 않았다. 

 

1909년. 조선의 양반, 관료, 유생들의 비율은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일부에서 말하는 "조선말, 후한말에 신분제가 사실상 해체"는 일부 지역에서만 있었던 것으로, 쉽게 말해 단일사례의 일종이다. 즉 전체의5% 미만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던 조선반도의 민들은, 일본의 통치와 함께 100%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게 되었다. 말하자면, 5% 대한제국에서 100% 대일본제국이라는 것. 합법적인 근대적 법률의 적용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었다.

 

4. 조선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었다.

95%의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상위 5%조차도 잘 씻지도 않던 조선. 일본에에 합병되자, 달라졌습니다. 각종 이권을 다팔아먹고 지들만 먹고 살던 조선왕족들은 뒷전으로 물러났습니다. 대일본제국은 일본열도에서 수많은 자본과 인력을 데려와 조선인들을 훈련시키고, 서로 아끼며 성장을 동반하였습니다.

철저하게 근대화, 산업화가 되어가는 과정. 그때까지 역사의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위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일부에서 말하는 "모든 혜택은 일본인이 쓰려고 한것이다!"라는 것은 어떤 근거도 없는 의미없는 선동적 메아리이자 날조 문구이다.

 

인구수가 36년만에 천만명 수준이 늘었습니다.
수명이 20대에서 40대로 늘어났습니다.
20대에 죽는다는 것의 의미, 알고 있습니까? 행복을 찾을 기회도 없이, 가난하게 병에 걸려서, 못 먹어서 죽어버리는 불쌍한 사람들.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제수준이 필요한 법입니다.
경제성장은 세계 평균을 항상 높게 상회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인들은 이때, 씻지 않던 이들이 씻게 됐고, 배우지 못하던 이들이 배우게 됐고, 일하지 못하던 이들이 일하게 됐고, 죽었어야 할 이들이 살게 됐습니다. 먹지 못할 이들이 먹게 됐고, 노예로 살던 이들이 인간으로 살게 됐다.


초등학교 취학률. 조선시대의 서당격으로 보면 될 것. 일본 치하에서 조선반도의 서당과 보통학교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20년대부터는, 열등한 서당보다는 보통학교 위주로 늘어났다. 일간에서는, 보통학교가 일본의 소학교와 다르다면서 트집을 잡는데, 열등한 조선민들과 교육받고 근대화된 일본민들이 억지로 함께 다닌다고 해도, 괜한 차별과 열등감 폭발만이 일어나서, 괜히 분란만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는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생각한 일본의 배려였다.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보통학교에서 가르쳤던 것. 사람을 사랑하고, 생물을 사랑하고, 인내를 갖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조선인들은 이때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인들은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배워야만 했다. 이후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일본어와 조선어는 둘 다 선택과목이 됐다.

 

 경성제국대학. 지금의 서울대학교의 본신. 일본이 한국에 세운 고퀄리티의 대학. 조선어 관련 학과도 있었다. 일부는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고등교육을 못받게 했느니 어쨌느니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날조이다. 조선반도에는 고등교육을 받을 만한 학력을 가진 자가 적어, 고등교육기관 자체가 별로 필요없었던 것 뿐이다.  조선반도에 살던 이들도 교육에 열정이 진정으로 있는 이들은, 내지로 가고 미국으로 가서 유학했다.

 

조선의 문화를 아껴주었다.


일본이 조선의 문화를 파괴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실제로는 조선보다도 훨씬 상냥하게 아껴주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현재 자랑하는 석굴암, 한글 등으로 남아있다.
일본이 조선이 관심도 안준 석굴암을 보존시키기 위해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조선의 문화를 보존시켜주었다. 석굴암은 지금,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한국정부의 공식 번역본 보기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zb_10308029_002&tabid=k&mTree=0&inResult=0&indextype=1 

 

일한 합방에 대해 기뻐하는 조선민들과 서양 열강들을 바라보며 한 지식인이 느낀 것. "주변국"이란 것은 곧 망해가는 청에 한해서이고, 이는 그 지식인의 국적과도 관계있는 것

 


 

선교사 알렌의 글...


조선 사절단은 1등석 5장만 가지고 있었지만 나머지 5명은 2,3등 선실에 모여 식사도 같이 하면서 지냈는 데,
어찌나 더러운지 그들이 풍기는 악취를 참을 수 없었다. …
두 사람의 조선인 강진희는 지분거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이상재도 더러운 사람인 데,

이 두 사람은 그들의 객실에서 박공사와 함께 식사했다. …

박공사는 사절단 일행 중 가장 나약하고 바보 천치같은 인물이었다.

조선 정부가 정식으로 임명한 번역관 이채연은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다.

참찬관 이완용과 서기관 이하영은 그래도 전반적으로 조선 사절단의 나쁜 인상을 상쇄, 보충해 주고 있다. …

그들의 몸에서 계속 고리타분한 똥냄새가 풍기고 있었고,

그들은 선실에서 끊임 없이 줄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담배 냄새에다 목욕하지 않은 고린 체취, 똥 냄새, 오줌 지린 내,

고약한 냄새가 나는 조선 음식 등이 섞여 온통 선실 안은 악취로 가득했다.(1887. 12. 26)

 


19세기말에도 저모양이었고 주미전권공사위치에 있는 사람도 저정도였으니 일반백성들은 어땠을지 상상에 맡김..

처음에는 애국자이었던 사람들도

 


나중에 외국에 갔다오고 친일파가 되고 매국노가 된 이유중에는 너무나 뒤떨어진 조선의 문물상태에 절망한 이유도 굉장히 큰 이유를 차지한다.

즉.조선은 안되. 이런 생각까지 오게 한거지..

틀린 생각 아니었다고 본다. 

 

애국심보다 합리주의가 더중요하다

 

한일합병은 불법이 아니다..영국학자 결론

 

 

영의 학자들「일한병합불법론」지지하지 않고<H2 style="COLOR: rgb(241,11,0)"> 한국 주장 무너진다</H2><U>http://toron.pepper.jp/jp/20cf/heigou/sankei.html</U>  ←(※링크 끊어져)
【서울 26일=쿠로다 카츠히로 】

일한의 역사 인식 문제로 큰 쟁점이 되어 있다

일한병합조약 (1910년)에 대해

합법이다 나 불법이었는지의 문제를 둘러싸고,

이번에미 하버드 대로 열린 국제 학술 회의에서 제삼자의 영국의 학자등에서
합법론 하지만 강하게 나와
국제 무대에서 불법론을 확정 시키려고 했다

한국측의 계획은 실패에 끝났다.


 회의 참가자에 의하면,

합법론 (은)는 국제법 전문의 J・크로포드영켐브리지대교수들로부터 나와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나라에 도착해

주변의 나라가 국제적 질서의 관점으로부터 그 나라를

수중에 넣는다고 하는 것은 당시 자주 있던 것으로,

일한병합조약은 국제법상은 불법인 것은 아니었던


(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측이 불법론의 근거가 한데 합치고 있다

강제성의 문제에 붙어도

「강제당했기 때문에 불법과 말하는 논의는

제1차 세계 대전(1914-18해) 이후의 것으로

당시로서는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


(이)라고 주장했다.

이 학술 회의는미 하버드대아시아・센터 주최로 16−17 일개 쉬었지만,
한국 정부 산하의 국제 교류 재단이 재정적으로 지원해 한국의 학자의 주도로 준비되었다.
지금까지 하와이와 도쿄에서 2회의 토론회를 열어, 이번은 한·일·미외 영국독일의 학자도 더해
말하자면 결론을 내는 종합 학술 회의였다.

 일본에서는 우미노 후쿠쥬・메이지대학 교수나 사사가와기승・국제기독교대교수, 하라다환・히로시마 여자대교수들
다섯 명이 참가했지만, 우미노 교수의「부당하지만합법」 론이나 사사가와 교수의 불법론 등 견해가 나뉘었다.

한국측은「조약에 국왕의 서명이 없는 」일등을 이유로

불법론을 주도하고 있는이 야스시진(이태진)・ 서울대교수 초전원이

불법론으로, 회의를 리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의 하라다 교수병합조약에 앞서 일본이 외교권을 장악 해
한국을 보호국으로 한 일한 보호 조약(1905년)에 대해서,
황제(국왕)의 일기등 한국측 자료의「일성록」나「승정원일기」 등을 분석해,

고종 황제는 조약에 찬성해, 비판적이었던 대신들의 의견을

각하 하고 있던 사실
을 소개해 주목받았다.

병합조약에 국왕의 서명이나 비준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도,

국제법상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로 하는 견해가

영국의 학자들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일한병합조약에 대해서는 한국이나 북한에서는 지금, 상집요에 불법론이 나와 사죄나
보상 요구의 근거로 되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때도 격렬하게 대립했지만,합법・ 불법의 결론은 내지 않고「지금 무효 」
(이)라는 표현으로 국교 정상화(1965년)에 도달한 경위가 있다. 


 

 

2001년 일한합병이 합병조약임이 국제학회에서 드러났다.

 

 

 

캠브리지대학(케임브리지대학) 국제법 전문가인 제임스 크로포드 교수가 당시에 문제될게 없는 조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순종은 매우 합방조약을 환영하고 있다.

 

출처: http://www.scribd.com/doc/122704180/A-NEW-LOOK-AT-THE-ANNEXATION-OF-KOREA#download

 

무엇보다 그당시에는 전쟁과 무력에 의해 미개국을 정복해, 식민지로 하는 행위는 당시의 국제법에 의해 합법이었다. 합법적 행위에 대해서 사죄나 보상금의 지불은 필요없다. 서양 국가의 주장은 심플하고 명쾌하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에게 기술원조, 배상, 사과, 경제발전, 기금, 세계에 유례가없고 이례가 없는, 유럽과 미국도 한적이 없는, 식민지나 합병국, 병합국 따위에게 근대화시켜주고, 사과와 배상을 한것이다.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게 200년간 착취하고 노예처럼 다스리며, 학살을 했어도 배상과 사과를 한적이 없다. 일본은 조선을 1등식민으로 만드려고했고, 50년간 통치한 대만보다 더 대우가 높았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 영국의 학자등으로부터의 강한 반론이 있어서, 한국의 주장은 무너졌다 즉 1910년 일본은 합법적으로 한국을 병합한것이 국제적으로 증명 한 것이다.

 

 

'조선은 '단 한사람의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에서 일본의 지배력을 강화시킨 결정적인 사건인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당시 동학교주 손병희와, 5만 동학군을 이끌던 이용구, 그리고 송병준이 일본을 지원할 것을 결의하고, 만주 전선으로 군수품을 운반하는데 11만명, 경의선 철도 건설을위해 15만의 조선인이 봉사하였고...러시아 군의 동정을 살피는 데에 50명을 투입. 이과정에서 4, 5백명의 사상자를 냄....(조선은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러일전쟁이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1905년 9월 5일 일본과 러시아간에 포츠머스 조약이 맺어지면서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권이 국제적으로 인정되었음...(손병희가 이용구를 제적한 것은 을사조약이 맺어진 다음 해인 1906년 11월)

일제시대에 간간히 요인암살 등의 '의거'가 있었지만, 그것은 극소수에 그쳤고, 조선의 언론(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에서조차 테러로 규정. 그저 민폐만 그치는 식으로 '인식'.... 또한 그 정도로 독립이 될 것이면 차라리 먹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대부분은 체제에 순응하고, 경찰, 교육, 행정 등의 공직에도 재직... 동경제대에 가고자 하면 갈수 있고, 일본인과 결혼을 하고자 하면 결혼할 수 있었고, 군인이 되고 싶다면 군인이 되고, 경찰이 되고 싶다면 경찰도 되던 일제시대... 해방 직전 조선총독부와 그 관련 기관에서 일한 조선인 수만 해도 17만여명...(해전사재인식)

'한일 합방 당시의 종로거리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사를 하고 먹고 마시는 '일상'을 잃지 않았다.' (최린) 라고 회고...

불교계, 기독교, 천주교.. 너나할 것 없이 모조리 친일.. 불교계에선 비행기를 만들어 헌상했다던가? 기독교에서는 교회 종까지 떼 줬고, 대부분이 신사참배를 하여 일제의 정책에 순종했고,,,. 기독교에서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신사참배 반대했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 날조... 신사참배를 반대한 곳은 부산 경남지역의 주기철 목사를 중심으로한 소수의 고신 교단 밖에 없었고... 그런데 그것 역시도 항일 정신의 발로라기 보다는 종교적 신념에 의한 행동이었을 뿐.... (예수를 배반한 기독교, 일제말기 파시즘과 한국사회)

만주에선 일제 헌병의 위세를 등에 업고 중국인을 차별했고(만보산 사건, 창씨개명 등) 또한 조선은 일본과 함께 미국에 대적해 싸운 적군이었는데...
강제로 끌고 갔다? 그것은 조선인만의 동원이 아니라, 본토의 내지인도 동일한 조건, 오히려 징병제가 실시 되기 이전의 기록으로 볼 때 총 조선인 지원자 수가 60만여명에 육박하고.... 총 2만여명의 조선인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음...<야스쿠니신사문제자료집> 조선계 일본군의 잔악성에 대해서 연합군 포로 학대에 대한 증언과 싱가폴 리콴유 수상의 회고...

심지어는 조선인의 기개를 보여주겠다며 가미카제 특공대에 지원한 17세 소년도 있을 정도...

전투에 나가는 것이 너무 가슴 벅차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특공대로 뽑혀 명예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적군함대에 돌격하여 그들을 가루내어 보여드리겠습니다.
동포들이여,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특공대가 되어 이 역사를 지켜주오
어머니 아버지 용서하세요. 저를 용서해주실 걸 믿고 씩씩하게 나가겠습니다.
<조선인 가미가제 특공대 박동훈의 육성 기록>

고종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 의해 살해 되었을 때, 이 사건을 일컬어 끔찍한 변고라 칭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를 선지자로 추앙하였다.  

<고종 명의로 '태양'에 실린 제문>


조선왕조 대부분이 일제로부터 작위를 수여받고, 땅을 하사 받았으며...
조선왕조의 후예 영친왕은 천황가의 일원으로 편입되고 황족회의에도 조선대표로 참석... 합병이후에도 고종과 순종은 천수를 누림. 심지어 유림들도 친일. 해방후 만들어진 반민특위에도 황군 출신자 포함. (오마이뉴스-이광수 체포 반민특위 위원 인터뷰) 황군으로 있으면서 해방후 광복군에 편입...- 자신은 강제 학도병으로 징병된 것이고, 남들은 전부 자발? 그럼 학도병 지원 유세라는 건 왜 했을까?- 황군출신자들이 해방직전 광복군에 들어가 독립운동했다고 구라를 까서 독립유공자가 됨.(MBC 8.15 친일파특집 다큐, 한겨레-가짜 광복군)

해방직전 국내진공을 계획하던 광복군 규모는 고작 500명 남짓.. 그 중 중국인 등을 제외한 수는 450여명에 불과. 조선인 2천만명 중 500명? 박정희를 비롯 당시 만주군 장교로 재직하던 조선인들은 해방직전까지 광복군의 존재조차 몰랐었다고 증언..... 우리가 흔히 일평생 무조건 독립운동가? 라고 알고 있던 자들도 대부분 일제 말기에는 변절했으며, 변절의혹이 다분. 3.1 운동을 계획했다던 33인 민족대표는 모조리 변절했고, 여운형(반도학도출진보), 한용운(지나사변과 불교도) 역시.. 친일을 했고, 최고의 독립운동가로 손꼽히는 김좌진 장군 역시 청산리 전투의 전과에 대한 부풀림 의혹과, 죽음에 대한 석연치 않은 의문으로 의혹이 제기된 상태. 결론은 독립운동사가 상당히 부풀려졌고 이미지 메이킹 된 게 많았다는 얘기. 자살했다고 애국자라는 건 물론이고, 일본인에게 짱돌 던졌다고 조선인의 기개를 보였니 어쩌니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다.

 

조선인들은 오히려 일본의 합병을 바라고 있었으며, 일본에 합병이 되자 환영을 했다.

 

증거로는 조선 합병후 일본이 조선에 입성하자 곳곳에서 환호하는 소리와 함께 환영축제를 벌였었지.

 

 

 
 


 

식민지는 온갖 제약과 차별이 따른다. 조선은 합병국의 지위였기 때문에 의회에 진출할 의원도 선출되었고 그 군인의 위상이 높던시기 장교들과 장군까지 배출할수 있었다. 조선 중장밑에서 일본군속들이 배치되 중국전선과 태평양전선에서 싸웠단 말이다. 홍사익 중장께 일본 대령이 경례를 하고 알겠냐?

일본이 대외적으로 식민지삼은건 없다. 대동아공영권으로 대만 조선 은 합병의 형식이고 만주국은 괴뢰국. 태평양 중국 전선은 전시 점령상태로 당시 땅파먹던 먹고 살기 힘들어 간도로 이주하던 농민들이 일제가 세워준 공장땜에 취직하고 전보다 나은 생활을 영유하지

 

땅먹힌 조선사람이 어떻게 일본 장군이 되서 일본군인들을 통솔함?? 먹혔다기보다 합병은 말그대로 합친거지

일본이 왜 조선만 식민지라고 안하고 '합병'이라고 했을까? 유일하게 합병 단어쓴 나라가 조선일텐데

중국조차 국민당 공산당과 별개로 친일괴뢰정부를 남경에 수립하지. 유럽과 아프리카는 수준차이가 심하지만 동북아는 그정도 차이가 난건 아니다

 

 


 


 

 


 

http://www.mofa.go.jp/mofaj/gaiko/oda/shiryo/jisseki/kuni/j_99/g1-03.htm

한국 현대화 프로젝트 상황

 

 

일본의 한국에의 원조액수는, 누계 약3조엔이 됩니다.

 

한국은 원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바뀝니다만, 1997년~1998년의 이야기를 합니다.

 

1997년 7월, 타이의 통화가 폭락. 동아시아.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급격한 통화하락이 발생했습니다 한국도 금융부문에서 거앤인 불량채권이 생기고, 원이 대폭락 아시아의 시장에 이변을 느낀 무디스는, 1997년 7월에, 한국의 등급을 A1로부터 A3까지 줄이고, 11월에는 또 Baa2에까지 격을 줄인 것으로, 이미 최악인 상황이었던 한국의 증권거래 시장의 상황을 더욱 악화되게 했습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각국은, 한국 구제를 위한 금융지원 패키지를 짰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국은 imf에 원조를 요청. 서울 증권 거래소는 11월7일에 4%도 하락하고, 다음날에는 하루의 주가변동으로서는, 역사상 최대의 7%의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11월24일에는 더욱 7.2% 하락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2월 하순에는, 한국은 디폴트 직전의 사태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각국의 은행에 한국의 차금 반제 기일을 연기해주었으면 싶다 라고 탄원하고, 한국을 원조했습니다. 한국의 운명의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구미의 은행과의 합의가 결정한 직후, 원의 하락이 처음으로 멈추었습니다. 이것은 시장에 큰 안도감을 주고, 한국 경제는 단숨에 호전. 세계각국은 일본의 지원을 칭찬했습니다. 일본의 열심인 한국 지원의 움직임이, 일본은 한국을 버리지 않는다 라고 하는 안심감이, 온세계에 퍼졌습니다.

 

이런 지원을 하고, 일본은 한국에 배은망덕하다 라고 말한 적이 있을 것인가?

 

이것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국민성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으로 돕는다. 이것이 일본인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의견을 인정시켜서 돕는다 이것이 한국인 일본인은 일한 우호를 위해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은혜를 갚아라 라고 요구한 것은 한번도 없습니다.

 

 

 

박물관에 있는데 이 내용은 현대 한국어랑 비교해도 문법적으로 아주 유사하며 해석이 100%가능하다.


 

실제로 현대에 사용하는 한국어문법 자체가 일제시대때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개량해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조선 서당에선 한자만을 가르쳤는지?

 


 

 

 

일제시대

이것은 병합이었고, 기업으로치면 흡수 합병이며 경제, 정치 사회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던 조선의 국가체제가 당시 험난한 제국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일본제국에 일시적으로 의탁한 것이다. 이 결단에 대해서는 후세에 좀 더 정당한 평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도 왕가의 결혼을 통해서 왕국의 병합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으로, 조선의 경우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형태의 흡수합병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왕세손과 일본공주의 결혼)

일본제국은 조선 병합후 해마다 약 1억엔이상의 적자경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반도에 그다지 지하자원도 없었을 뿐더러, 사회간접자본이 전무한 상태였고, 근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기때문이었다. 당시 1억엔이면 엄청난 자금으로 일본제국이 러일전쟁당시 발행한 국채가 2억엔 정도였던 것을보면 어느정도 거액인지 이해될 것이다. 착취된것은 일본제국이었다.

어느 제국이 식민지에다가 그만한 자금을 투자한다는 건가?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시각이다. 서양은 식민지의 근대화를 위해 그만한 투자를 한적이 없다. 그러나 일본제국은 조선을 일본의 새로운 일부라고 간주했기때문에 급진적인 근대화 사회개혁과 방대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실시한 것이다.

민족주의조차도 일본 사회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발생한 것으로 본래 한국의 것은 아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왕조에대한 충성심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지, 민족개념을 가진자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근대식 민법을 처음 도입한것도 일본에 의한 것이었고, 자본주의식의 임금 노동제도를 반도에 활성화시킨 것도 일본인들이었다. 그리고 근대식 국민 교육제도를 도입하여 천민들에게도 글을 가르친것도 일본이 아닌가? 한글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도 일본인들이고 (조선인보다 연구자료가 많았다), 조선총독부는 한글교육자료를 발간하고 있었다.

일본제국은 반도를 개혁해 비로소 근대화 사회로 변혁시킨 것이다.

일본제국이 반도에서 올바른 행동만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일제시대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일본제국이 조선인들을 비로소 근대화시킨 주역이라는 점은 변함없는 진실인 것이다.

 

 

일제가 고등교육을 안 시켜서 우민화한다고 했지만 20년대 후반부터는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해

조선에도 고등교육의 기회가 늘었다.

그리고 조선은 엄연히 법치주의가 적용되어 함부로 조선인을 억압하지 못했다.

 

 

32년 국제연맹의 리튼 조사단은 만주국 사태를 시찰하며

조선을 둘러보고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유래없은 시정이라고 극찬한바 있습니다.

오히려 일본인들은 정직하게 배급을 받았지만,

조선인들은 배급이 적다고 허위로 가족수를 부풀려서 배급을 많이 타내기도 했고,

징용에 가서 초창기에는 돈도 많이 벌어왔다.

 

구한말 조선은 동북아의 동네북.
강화도 불평등 조약이후 일본의 경제적 침탈.
미국과의 최혜국 수교.
조청상민무역장정으로 중국속국 낙인.
청상인들의 경제적 침탈.
을미사변으로 민비 참살.
아관파천이후 러시아 속국.
내정과 경제적 침탈.
임오군란이라는 군부 반란.
갑신정변이라는 급진개화파들의 쿠데타.
동학당이라는 농민 민중 봉기.
외세의 침탈뿐만 아니라 국가 내부적으로도 통치권 상실.
조선왕조는 외세를 끌어 들여 자국민을 학살.
이러던 막장 왕조가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을 맺어
통감정치가 시작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된다.
물론 혹자는 그 이전의 갑오개혁이나 을미개혁 뭐 어쩌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본이 적극 권유한 것이고 친일파 대신들과 개화파들이 주도한 것.
당시 조선의 기득권 보수 권력자들은 단발령에 반발하면서 반대상소를 올린다.
그 내용은
"단발령은 중국의 풍습이 아니며 공자의 가르침이 아니다."
흔히 최익현의 발언인
"내 머리를 자를지언정 머리칼은 자를 수 없다."
라는 의지로 개혁에 반대한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신체발모 수지부모라는 말 자체가 중국의 풍습이며 공자의 가르침이기 때문이었다.
통감부 시대에 조선은 조선을 두드리는 수많은 열강들로부터 보호받았다.
조선의 군대는 외세의 침략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국내 반란도 진압못하는 개병신 수준.
신식군대랍시고 별기군을 만들어 놨는데 그 수가 무려(?) 80명선.
열강들의 놀이터였던 조선의 별기군은 조선의 주인이 바뀔때마다 군사교관도 바뀌어서
군사용어가 중국어에서 노어로, 노어에서 일본어로 바뀜.
게다가 조선의 부패하고 무능한 위정자들은 구식군대에 지급할 쌀에 모래를 섞고 나머지를 삥땅쳤기에
군사반란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조선왕조는 반란을 막지 못해 종주국이었던 청나라에 보호요청을 하고 자국의 반란을 외세를 이용해서 진압.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조선의 신민들은 안정을 되찾고 청나라 군사와 러시아 군의 횡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일본이 조선의 주인행세를 한다.
조선왕조는 고민에 빠졌고 허울 뿐인 나라에 실세가 없다.
그래서 일본에 정식으로 합병을 요청한다.
일본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병합시대가 도래한다.
통감부의 정책을 이어 받아 미개의 땅 조선에 일대 대혁명이 일어난다.
양반 기득권이 상실되고 신분에 상관없이 조선인들도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조선시대에 천대받았던 한글이 널리 보급되고
1910년대 교육의 성과로 20년대에는 한글잡지와 한글신문이 편찬되며
문예부흥.. 그야말로 조선문학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된다.
조선에서 문학이라는거는 양반귀족들이 옆에 기생끼고 술나발 불며 시나 쓰는 수준이었던거다.
한글소설이라는게 극소수 있긴 했으나 한문문학에 비하면 천대를 받았고 야설이나 쓰는 수준이었다.
조선의 몇 안되는 개화단체였던 독립협회에서 일본의 근대화를 본받아 입헌군주제를 시행하려 했으나
대한제국 황제의 말이 곧 법이고 진리라고 못 박은 상황에서 이들 유신단체들은 지독한 탄압을 당해야만했다.
선거라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년대에 들어서 조선인에게도 지방참정권이 부여된다.
조선지방의 대표는 조선인 스스로 뽑아 지방의회를 설립한 것이다.
지방자치, 민주주의는 바로 이때 처음으로 태동했다.
전제왕권 시대였던 조선왕조에서 이러한 개혁과 변화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선이 일본과 합방한 이후 1차세계대전이 일어난다.
조선은 피해가 없다. 서구열강들의 착취도 당하지 않았고.. 외세와 싸운 적도 없다.
중국에서는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중국인들이 죽었지만 조선인은 죽지 않았다.
일본의 연속 승전으로 조선인들은 들떠있었다.
2차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도 조선은 안전했다.
조선의 안전을 위해 일본군이 대신 싸웠다.
한국인들은 조선인들이 강제징병으로 끌려갔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징병제는 44년에 시행된다.
그 이전까지는 전부 지원병제였고 조선인 황군 장교 수는 무려 200~300명에 달한다.
이들 모두 지원자들이다.
서정주의 가미가제 특공대 찬양시가 있다.
조선인 마쓰이 오장이 가미가제에 지원해 연합군을 처부수는걸 찬양한 시이다.
가미가제에 지원한 조선인도 친일파였다.
현재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는 조선인 2만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전부 황군에 자원입대한 친일파 조선인들이다.
44년 징병제가 실시되고 45년에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조선인들은 국방의 의무도 담당하지 않은채
일제시대 내내 일본의 보호만 받고 살았다.
조선총독부의 재정은 만성적자로 항상 일본국민들의 세금이 조선의 거지들을 먹여살린 것이다.
일본은 1873년부터 징병제였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조선인들을 위해 대신 나라를 지켜주고 전장에 나가 피를 흘렸다.
조선인들은 멋도 모르고 그냥 일본이 세워준 학교에서 열심히 교육을 받아 개화가 진행중이었다.
40년대에 들어 그간 우수한 일본의 교육덕택에 조선에서도 선각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조선인이 동아 신질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일본에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조선 젊은이들이 44년부터 황군에 입대한다. 그러나 45년에 전쟁이 끝나..
이들은 전쟁터에도 못나가보고 조국을 위해 피도 못흘려본채 그냥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조선은 미국에 의해 독립하고 일본군이 가지고 있던 장비를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일본이 조선에 투하한 자본.. 학교, 철도, 은행, 병원, 공장, 법원, 체신청, 항구, 다리, 도로.. 등등...
하나도 못건지고 전부 조선에 물려주었다.
일본은 이렇게 조선에 좋은 일만 한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상원조

 

1965년-1990년대의 무상원조

 

 

 

1.1969년 -> 食糧援助 (3.96 억엔)

 


2.1971년 -> 金烏(クモ)工業高等学校用暖房及び電気設備 (1.30 억엔)

 


3.1972년 -> 金烏(クモ)工業高等学校用実験設備及び教育機材 (3.94 억엔)

 


4.1973년 -> 金烏(クモ)工業高等学校用実験設備及び教育機材 (5.63 억엔)

 


5.1974년 -> ソウル大学校工科大学用基礎的実験機材 (5.00 억엔)

 


6.1975년 -> ソウル大学校工科大学用実験機材 (5.00 억엔)

 


7.1976년 -> ソウル大学校工科大学実習用実験機材 (10.00 억엔)

 


8.1977년

 


麦類研究所の実験用装置 (1.00 억엔)

 


韓国外国語大学日本語LLシステム (0.17 억엔)

 


地域社会医学センター用医療機材 (6.00 억엔)

 


9.1978년

 


地域社会医学センター用医療機材 (4.00 억엔)

 


清州大学日本語LLシステム (0.15 억엔)

 


10.1984년 -> 災害緊急援助(洪水被害) (10만 달러=0.24 억엔)

 


11.1987년 -> 災害緊急援助(台風被害) (20만 달러=0.33 억엔)

 


12.1989년 -> 災害緊急援助(洪水被害) (20만 달러=0.25 억엔)

 


13.1990년 -> 災害緊急援助(洪水被害)   (20만 달러 =0.25 억엔)

 

90년 이후에는 한국에게 무상자금협력이 없어서 적어놓지 않겠음.


출처. http://www.mofa.go.jp/mofaj/gaiko/oda/shiryo/jisseki/kuni/j_90sbefore/901-03.htm


한국 => 총합 = 47.24억엔

 


⊙ 타 아시아 국가와의 비교 ( 1990년 까지의 무상원조 )


인도네시아 => 1135.70 억엔


베트남 => 312.92 억엔


캄보디아 => 26.37 억엔


싱가폴 => 31.17 억엔


타이 => 1413.24 억엔


중국 => 631.09 억엔


필리핀 => 1170.29 억엔


브루나이 => NO


말레이시아 => 101.10 억엔


버마 => 975.94 억엔


몽고 => 56.04 억엔


라오스 => 232.14 억엔


근대에 들어와 3번이나 파탄한 한국을 구한 일본

 

 


1회째

 

이씨 조선 말기

 

당시의 조선은 전국민의 반이 놀며 사는 양반이며, 국가재정은 당연히 파탄하고 있었다.

 

민비가 호화 삼매로 조선 정부 6년분의 국가 예산을 다 써 버려

병사의 급료를 13개월간도 지불하지 않았던 그것이 원인으로 일어난 임오군란.

 

⇒ 일본의 통치에 의해 양반 계급은 소멸하고,

일본국민의 세금으로 반도의 근대화가 진행된다.

조선의 빚은 병합 후 모두 일본이 인수해 반제

 

 

2번째

 

한국 전쟁 후

 

당시의 한국은 아프리카 같은 수준의 최빈국이며, 빈사 상태였다.

 

⇒ 박정희가 일본과 한일 기본 조약을 체결해,

반도에 있어서의 일본 보유의 막대한 자산의 무상 양도(방폐),

일본으로부터 유상·무상의 자금 및 기술공여를 받아 산업을 근대화 시킨다

(한국의 산업구조가 일본을 닮아 있는 것은 이 때문에)

 


 

3번째

 

IMF 위기시

 

1997년, 한국 정부가 파산.
선진 각국은 「한국을 서포트할 필요는 없다」라고 단언.
그대로 추이하면, 한국은 북한의 생활수준에 전락한 상황이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의 궁상을 보기 힘들어서,

한국 통화원을 보증해 한국을 국가 파산으로부터 구조해 냈다.

 

 

한국이 통화 위기에 즈음하여 1997년 12월 4일에 IMF와 합의한 금융 지원은

 총액 550억 달러.

 

이 내역은

 

 
국제통화기금
 210억 달러
 
세계 은행
 100억 달러
 
아시아 개발은행
 40억 달러
 
일본
 100억 달러
 
미국
 50억 달러
 
그 외
 50억 달러
 


http://kccn.konan-u.ac.jp/keizai/asia/05/01.html

 

무려 일본에서만 100억 달러의 지원!

한국의 통화 위기 극복에는, 실은 일본의 정치력이 크게 공헌하고 있다.
상기의 지원이 발표되어도 원의 폭락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 후, 일본 정부가 신속히 자국은행으로부터

채무의 반제기간 순연의 약속을 얻어 내 구미계 은행의 동조를 끌어 내고

처음으로 그 폭락이 멈추어 있다.

요컨데,
한국 정부가 IMF에 약속한 것 만으로는 신용은 회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한국은 일본이 back로 지지하고 있다」일이 나타나고

 처음으로 한숨 돌릴 수 있었던 코트가 된다.

 

그 밖에도 2002년 일한 월드컵에서 스타디움을 만드는 자금이 없는 한국을 위해서,

7000억엔의 일본의 자금이 사용되었다든가 여러가지 있지만....

 

 

그외 700억달러의 통화스왑

http://magazine.hankyung.com/business/apps/news?popup=0&nid=01&c1=1004&nkey=2011102600830000411&mode=sub_view 

 

일조합방 전 조선은 원시농경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봉건국가였다.
일본은 그러한 봉건국가 위에 전기, 도로, 항만, 우정, 농촌개량, 철도 등 근대화를 착수하였고
조선의 생활수준은 개선되었으며 경제는 놀라운 수준으로 고도성장하였다. 

 

 

1) 기억의 저 멀리 망각되고 있던 한글을 부활시켜 문자로서 체계적으로 정비해,

2) 문명과 전혀 관계가 없었던 한반도에 근대적 의료, 사법, 행정을 억지로 도입해,

3) 무능하기만한 이씨 조선 정부의 대외채무를 인수해,

4) 농지 해방, 농업 개혁을 추진해 기아에 괴로워하는 조선 민중을 구해

5) 방치되어 있던 한반도의 문화재, 역사 유물을 자세하게 조사하고 수복해,

6) 5000년에 이르는 속국의 지위로부터 풀어내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배 한적이 없다. 일한 양국이 병합한거지 대영제국과 스코틀랜드가 합병한것처럼 일본도 이런방식으로 조선의 발전에 기여했다. 



 

 

아직도 이씨조선을 문명국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18세기말까지 전세계 문명국 가운데 유일하게 화폐경제 개념조차 없던 나라입니다.

19세기말까지 도시라는 개념,

수도라는 곳에는 상하수도 시설, 정비된 도로, 상본주의의 개념조차 없는 나라입니다.

19세기말까지 제대로 된 수치의 개념조차 없어 측량법이 전무했고, 문명국을 이루는 기초전제인
과학, 건축, 도로, 치수 등이 아프리카 보다도 열등한 나라였습니다.

(※세종시대 통신사가 일본에서 물레방아 설계도를 가져오고도 기술이 없어 못만든 것이 예)

20세기초까지 위생관념조차 없어 평균수명이 24세에 불과했던 나라입니다.

 

게다가 한국이 왜곡하는 내용이 '수탈과 피폐해지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어난 분노' 라고 했는데, 일본제국에 합병되기 이전 한성은 외국인들이 묘사할 정도로 '끔찍한 거지 도시' 지만, 총독부가 들어서고 경성으로 바뀐 이후엔 아주 말끔한 근대적 도시로 탈바꿈한다. 실제 통계청의 자료를 봐도 1920년대까지의 질병사망률과 문맹률이 감소하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수탈로 인한 열악한 환경' 에 처했다는 것인가?

 

 

한일 기본 조약 체결
3억 달러 무상 협력(1965년)
2억 달러 유상 협력(1965년)
3억 달러 이상 민간 차관(1965년)
※당시의 한국의 국가 예산은 3.5억 달러 정도

당시의 일본은 부흥중에서 가난했었지만,
이 거액의 보상금을 한국 정부에 지불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것을 국민에게 숨겼다.
한국 정부는 국민에게, 돈을 건네주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보상금을 경제발전에 사용했다.

 

그리고 더욱

그 위에, 일본은 한반도에현재가격으로,
약 17조엔의
자산을 남겼습니다.
(당시의 한국의 국가 예산의 10년분 이상)

5000교를 넘는 근대 교육기관·발전소·
상하수도·공원·병원·댐·경찰서·
도로·철도……등등의, 한반도에 남겨 온 자산이나 채권을 모두 줬다.
이것은, 세계
에도 예가 없는 굉장한 일이다.


 

 

일본으로부터의 기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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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업 한국 기업 기술원조 내용

마츠시타 전기산업아남 전기 칼라 TV,오디오 제품에

관한 기술

일본 빅터 금성사VHS 방식 VTR의 특허 및

제조 기술

일본 빅터 삼성전자VHS 방식 VTR의 특허 및

제조 기술

토시바 한국 전자TV, 오디오용 바이폴러

IC의 설계, 제조에 관한

기술 및 양자 기술자의 접수입

파견

샤프 삼성 반도체IC제조 기술

쿠보타 철공강산 산업상 하수도용, 안, 대형 밸브

의 제조 기술


히타치 정기 기아기공NC공작기의 제조 기술

고바야시 코세이쟈리아 화장품에 대한 제조 기술

얀마 디젤쌍용중공업중, 대형선박용 디젤

엔진에 관한 기술


토시바 금성 통신X선진단 장치, 초음파 진단

장치에 관한 기술


캐논 롯데 산업 고성능건식 복사기에 관한

기술


소니 현대 전자VTR의 제조 기술

히타치 조선 한국 중공업 선박용 엔진 제조에 관한

기술


일본 정당 제일 정당 정당 공장의 자동화에 관한

기술


일본 브레이키코리아베라르사 브레이크 기구에 관한 기술

상신브레이크사


TCM금성산전사 배터리식 포크리프트에 관한 기술원조

기아중공업사 포크리프트에 관한 기술원조


토카이 고무 대흥 공업방진고무에 관한 기술

오사카 기공 삼성 중공업 공작기계에 관한 기술

미츠비시 현대 자동차 엔진·트랜스미션에 관한 기술

일본 쿠라이메이트 시스템Doowon Climate Control사 자동차용 공조 기기에 관한 기술

메디 넷IMS사 면역 세포 요법 종합 지원 서비스에 관한 기술, 지적 재산권

테이토 고무 평화 산업TS공법 실시권 및 기술

닛산디젤 삼성 중공업 트럭의 국산화 기술

상도료 고려 화학 분체 도료의 제조 기술



일본측 기업 한국측 기업 기술 제휴 내용

마츠시타 전기산업 아남 전기 칼라 TV, 오디오 제품에 관한 기술

일본 빅터 금성사 VHS 방식 VTR의 특허 및 제조 기술

일본 빅터 삼성전자 VHS 방식 VTR의 특허 및 제조 기술

토시바 한국 전자 TV·오디오용 바이폴러 IC의 설계·제조에 관한 기술 및, 양기술자의 수락 파견

샤프 삼성 반도체 IC제조 기술

쿠보타 철공 강산 산업 상하수도용·중·대형 밸브의 제조 기술

고바야시 코세 쟈리아 화장품 에 관한 제조 기술

얀마·디젤 쌍용중공업 중·대형 선박용 디젤 엔진에 관한 기술

토시바 금성 통신 X선진단 장치, 초음파 진단 장치에 관한 기술

캐논 롯데 산업 고성능건식 복사기에 관한 기술

소니 현대 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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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995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조선의 휴양지들 [4] ㅇㅇ(45.63) 21.01.20 894 22
2050955 일제시대를 살았던 할머니들의 증언 [1] ㅇㅇ(45.76) 21.01.20 788 25
2050953 이승만 라인에 의한 제일대방환 사건 [2] ㅇㅇ(139.162) 21.01.20 544 21
2050620 독립운동가들 클라스...ㄷㄷㄷ [6] ㅇㅇ(167.179) 21.01.19 1021 28
2050618 김좌진의 실체 [3] ㅇㅇ(172.104) 21.01.19 1561 31
2050613 한국이 심판을 받을수밖에 없는 이유 [4] ㅇㅇ(172.104) 21.01.19 472 21
2050612 한국인들은 겉만보고는 일본인들이 순종적이라 판단하지만 [3] ㅇㅇ(139.162) 21.01.19 575 29
2050611 재업) 한국인의 공허함과 국뽕 원인 분석 [1] ㅇㅇ(45.32) 21.01.19 655 28
2050608 한국은 끝도없이 일본을 통제하고 구속시키려 한다 [3] ㅇㅇ(207.148) 21.01.19 285 21
2050588 일본, 가정폭력 역대 최대치 기록 [8] ㅇㅇ(139.162) 21.01.18 608 22
2050546 좌파, 좌익들은 알고보면 사악하다고 생각한다 [1] ㅇㅇ(211.36) 21.01.18 415 23
2050514 이태진 교수가 인조이재팬에서 털린것은 사실 [3] ㅁㅁㅁ(59.1) 21.01.18 1453 29
2050410 쌀수탈론이 보여줄 수 없는 식민지시기 변화 [1] ㅇㅇ(175.223) 21.01.18 335 18
2050203 김구의 치하포 사건은 강도살인 [3] ㅇㅇ(39.7) 21.01.16 329 21
근대화 시키고 사과한 나라 [5] ㅁㅁ(59.1) 21.01.15 1343 52
2049686 美기밀문서 “일본이 태평양 안보의 축, 자위대 현대화 도울 것” [15] ㅇㅇ(59.25) 21.01.14 459 24
2049354 똥닙 폭도들은 한결같이 마적떼였음 [5] ㅇㅇ(211.246) 21.01.13 642 23
2048351 일본이 한반도를 가지는 것을 러시아가 원할수도 있는 이유 [19] ㅇㅇ(59.25) 21.01.11 706 24
2047363 한국인은 알고보면 굉장히 정적인 사람들같다 [7] ㅇㅇ(117.111) 21.01.09 786 27
2045923 미국은 한반도를 다시 일본에 넘겨야 살아 남을 수 있음 [14] ㅇㅇ(59.25) 21.01.02 760 34
2045904 한국인의 문제점.jpg [13] ㅇㅇ(59.25) 21.01.02 1307 63
2045046 뭐? 일본이 잘 살아서 반일 한다고? 개소리하지마라! [13] ㅇㅇ(59.25) 20.12.30 937 34
2044792 일제시대때 나온 조선 여자들의 남편살해 관련 논문 [10] ㅇㅇ(117.111) 20.12.29 2434 76
2044780 재업) 삼포왜란의 추악한 진실 [3] ㅇㅇ(211.36) 20.12.29 782 41
2044619 일본에서 독립된 순간 한국의 운명이 결정되었음 [13] ㅇㅇ(59.25) 20.12.28 910 30
2043810 이완용씨를 위한 변명 [2] ㅇㅇ(175.223) 20.12.24 420 16
2041518 3.1 운동 열사들의 용맹한 법적 투쟁 [4] ㅇㅇ(117.111) 20.12.14 886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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