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다르게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다. 인간은 이 이성에 의해 양심, 개인성, 인간성, 자의식, 자유, 권리 등을 가지게 되었다
이성이 있기에 사물과 현상을 볼때 더 많은 부분들을 인지할수 있게 되었고 시간을 인지하게 되어 시간 속에 살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가지게 됨으로 인해 더 많은 권리들과 많은것들을 통제할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성을 하나의 동전에 비유하자면 윗면과 아랫면은 권리와 의무이다. 권리와 의무는 서로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으나 그 누구보다 가깝게 붙어있으며 어디를 가든 따라온다
인간이 누리고 있는 무형적인 권리들은 권리를 누릴 자격을 증명하거나 성취해서 받은게 아니라 증명할 능력이 있기에 먼저 받은것이다
권리가 먼저 주어지고, 반드시 지켜야될 의무를 지킬지 말지 결정하는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공간을 뛰어넘어 시간을 인지하는 그 능력에는 자체적으로 시간까지 넓어진 영역 속에서 지켜야 할 양심이 포함되어 있다. 시간을 인지할 정도의 지성이 있다면 구조적으로 양심도 같이 있게된다
만약 인간에게 선악간의 지식이 없었다면 따라오는 의무도 없었을것이다. 아마도 그냥 동물처럼 공간 속에서만 살았을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법인데 인간으로서 이성을 가지고도 양심을 저버린다면 동물만도 못하게 되는셈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몰랐거나 소유하지 못하는게 더 나았을것이다
인간은 시간속에서 살기 때문에 판단하고 결정하는것도, 재판하는것도, 인지하는것도 시간 속에서 해야한다. 삶도 시간속에서 살아야된다
그러나 유사인간들은 오로지 공간뿐이다
이 공간 단면의 아메바같은 인간들에게는 착한게 착한것, 좋은게 좋은것, 옳은게 옳은것, 나쁜게 나쁜것이라는 가치관이 있는데 주로 전근대인보다 현대인에게 보여지며, 남자보다 여자에게 보여지며, 유럽인보다 동아시아인들에게 보여진다
그리고 일본 목사들도 저 유사인류 그룹에 속해있다
점 하나로 봤을때는 도덕같아보여도 그것이 선으로 연결되면 악할수 있는것을 모른다
예를들어 모든 인종에게 같은 권리들을 주는것이 도덕이라고 생각하는 pc주의자들을 들 수 있다
pc 좌파들은 최종적으로 시각에 의해 보여지는 단면의 올바름을 추구하며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는 착해보이는듯한 도덕적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평등은 의무와 권리의 합치에 의해 판단되는것이지 단면 이미지에 의해 증거되는것이 아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의무가 더 무거우면 의무가 거의 없는 농부보다 불평등할수도 있는것이다. 인간은 시간속에 살기 때문에 외면이 아니라 중심으로 판단해야만 한다
만약 유색인종 구성원에게 의무를 이행할 능력이 없는데 도덕적 이유에 의해 권리를 주게된다면, 역설적이게도 시각적으로 평등해질수록 불평등해지는 구조가 완성된다. 형식적으로 평등해질수록 유색인종은 더 이득을 누리고 백인은 더 손해를 보는것이다
다른 예를 들자면 한국의 군복무를 들 수 있다. 남녀가 평등하므로 같은 권리를 누려야된다는 도덕교과서적인 이유를 내세우지만 권리는 남자만 지고 있다
이런 구조를 가진 나라에서는 시각적으로 남녀가 평등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더 착취적이고 불평등해지는 결과가 나온다. 공간 속에서 도덕적일수록 시간 속에서 사악해지는 양극단의 결과가 되는것이다
저 일본의 어리석은 목사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시간속에서 작용되는줄 모르고있다. 그냥 공간 점 하나에서 착한 행위를 하면 그게 아무 문제없는 도덕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그룹에서 어떤 일을 했을때 권리를 가진 구성원이 그에 대해 지지하거나 침묵한다면, 비록 침묵이라 할지라도 그 일이 이루어지게끔 하는 결과값은 똑같으므로 침묵은 지지와 똑같이 승인으로 취급되며 책임을 같이 져야만 한다
자신은 노재팬 선동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고 여겨도 한국이라는 그룹에 속해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룹의 그런 행위들을 통해 그룹원으로서도 유무형적인(쫌스런 자존감 충족까지 포함한) 이득을 보게 되었으므로 같은 책임을 져야만 한다
본인은 페미니즘에 관심도 없고 표독스러운 페미니스트 그룹이랑은 관련없다고 생각해도, 그 드센 여자들에 의해 불평등이 유지되고 여러 여성지원제도가 여성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면 같은 여자라는 그룹에서 권리를 가진채 속해있는 존재들도 같은 무게의 책임을 져야만 한다
공간 속에서 사는 유사인간들은 그때 그순간의 개인 감정, 느낌 등에 의해 착해보이는 1차원적 단순 도덕을 기반해서 현상을 판단하기 때문에 위 예시들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것이다. 이런 존재가 많은 사회라면 차라리 왕정제를 해서 책임에서 벗어나는게 나을것이다
일본 목사들은 한국 국가 기조에 편승하며 그에 대해 지지를 해주고 있다. 그 목사들은 그것은 일단 착해보이는 행동이므로 다소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을지라도 '착한게 착한, 좋은게 좋은' 단면 가치관에 의해 일단 무조건 좋은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자기 가치를 높이고 도덕적 허영심과 자존감을 충족시키려는 pc주의자들도 같은 심리일것이다. 권리의 평등이라는 도덕을 추구하는게 '전혀' 나쁠게 없다는것이다. 게다가 그런 단면 도덕은 쉽기까지 하다
절대적인 시간속 요소들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상대적인 공간속 이미지와 형식과 착해보이는 느낌을 기준으로 삼는 저런 아메바들이 사회의 주류가 된다면 위선자일수록, 형식에 맞을수록, 소시오패스일수록, 기억력이 없을수록 착한 인간이 될것이다. 그것의 궁극적 완성체는 한국인이라 생각한다
저 목사들은 다윗과 욥의 이야기를 보고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것이다
다윗이 부하들이랑 길을 가다 어려움에 처한 양치기들을 보고 도와준 뒤 그들의 주인 나발이라는 사람에게 우리가 이러이러하게 도와줬으니 보답을 해달라고 전했는데
나발이 무시하며 보답을 하지 않자, 다윗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그를 죽이려고 칼을 차고 갔으나 중간에 나발의 아내가 말려서 그만둔적이 있었다. 그리고 신은 다윗의 편을 들어주어 얼마 후 나발을 죽였다
'착한게 착한것, 나쁜게 나쁜것'인 저 유사인간들과 일본 목사들은 이해를 못할것이다. 왜 신은 도와달라고도 안했는데 자기멋대로 도와줘놓고 보답을 안하고 모욕을 줬다는 이유로 살해하려 한 다윗의 편을 들어줬는지 이해를 못할것이다
신이 욥이라는 사람을 테스트 하기 위해 그의 자식들과 종들을 전부 죽인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을 테스트하는데 그의 자식들과 종들을 전부 죽인일은, 효율성과 계량화에 집중된 공간 점 도덕기준을 가진 유사인간들에게는 이해할수 없는 행위이다
일본 목사들은 수학적으로 파악하기는커녕 아마 기껏해야 '전근대 시절이니까~~~' 라는 아주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유를 대며 두루뭉술 그냥 넘길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죽인다면 잘못이지만, 죄지은 사형수를 죽이는것은 잘못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노예로 삼는것은 잘못이지만, 죄지은 범죄자를 노예로 삼는것은 잘못이 아니다
사물과 현상의 판단 기준은 절대적이지만 사람은 시간 속에서 살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그 점의 판단 결과가 바뀌는것이다. 만약 어떤 행위를 저질렀을때 지식을 몰랐다면 무죄가 되겠지만 지식을 알았다면 유죄가 되는것과도 같다
그런데 유사인간들과 일본의 목사들은 단면, 공간, 점 도덕을 추구한다. 그것이 선으로 연결되면 남을 착취하고 악에 가담하는줄도 모르고 쉬운 도덕을 통해 정신적 만족감을 느끼며 일시적이고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것이다
그들이 도덕적일수록 오히려 부도덕하고, 그들이 평등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불평등해지고,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특정 도덕 담론을 지지할수록 살인자의 편에 서게 되는것이다
그들의 공간 속 초상화는 선량한 인종 평등주의자, 반성하는 목사, 남녀 평등주의자이지만 그들의 역사속 점들을 하나하나 모자이크를 찍어 시간속 초상화를 그려보면 유물론자요, 기회주의자며, 사악한 인간의 얼굴이 나온다
이들은 사물과 현상을 절대적인 기준점이 아닌 상대적이고 관계중심적인 공간속 이미지로 판단하기 때문에 쉽게 다스려지며 쉽게 종속될수 있다. 쉽게 이어지고 쉽게 종속되며 쉽게 끊어진다. 여담이지만 순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들은 남자의 순결을 중요시하지 않는데, 이는 여자들이 현대적이거나 실리적이거나 쿨해서가 아니라 여자 자체가 공간속에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간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성의 순결은 남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간 단면의 도덕은 선이 없이 점 하나만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교조적으로 사람이 그 도덕에 묶이게 된다. 규칙이라는것은 사람의 자유를 위해 있는것인데 유사인간들에게 규칙이란 사람의 통제와 구속을 위해 있다
시간속에 사는 사람은 절대적인 기준을 상대적인 환경과 요소들 속에서 판단하는데, 공간속에 사는 사람은 상대적인 기준을 절대적인 환경 속에서 판단한다. 중심축이 뒤틀려있는것이다
유사인간들에게는 좋은게 좋은것이고 나쁜게 나쁜것이라는, 입체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가치관을 가졌기에 결과를 위해 수단이 정당화 되는 경우도 많다
자유없는 정답, 자유없는 질서, 질서없는 자유, 나쁜짓을 한 대상에게는 다소 보복이 허용된다는 촌놈스러운 마인드 등등..
자유없는 질서나 질서없는 자유는 그냥 알맹이없는 공허함뿐이다. 그게 설령 완벽한 정답이라도 가치적으로 봤을때는 아무 가치도 없다. 마치 저 영혼없는 일본 목사의 눈물만큼이나 가치가 없다
한국이 일본을 자꾸 고로시 하려고 할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마치 모욕을 못참았던 다윗처럼 격노하거나 상대를 공격할줄도 알아야한다
한국이 이러저러한 문제나 말썽을 일으켰다면 그 상황 요소들을 수학적, 이성적으로 해석해야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적인 반응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저런 유치한 초등학교 도덕교과서 단면 도덕론자들은 그때 그순간의 단면 이미지에 의해 옳고그름을 판단하기 때문에 격노를 한다던지 반격을 하는 행위 자체를 옳지 않다고 여긴다
물론 점 하나로 봤을때는 고상하지 못하고 교양 떨어지는것 같고 다소 야만적인 전근대 남자같아보일수 있겠지만, 사실 그 인간본연의 행위야말로 (그것이 잘못 판단되었을지라도) 가치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자신의 우러나오는 성정대로 살았을때 옳은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일본 좌익들과 기독교 목사들은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착한게 착한' 가치관으로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은 외면시한채 그저 '우리 친하게 지내요'라고 말할뿐이다. 중심보다 형식을 중요시하며 유치한 원리의 단면 도덕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개인이 특정 단면 연출, 유치한 원리의 단면 도덕,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단면 캐릭터상에 쉽게 맞춰질수록 그 사람은 공간속에 살며 영혼없는 공허한 종자라고 생각한다
남자 페미니스트일수록 오히려 여자를 더 물건처럼 여기고, 감성 도덕 내세우며 추구하는 좌파들일수록 오히려 더 사악하고 잔인하고, pc주의자일수록 오히려 더 인종차별적인 경우가 그 예이다
사람은 기본 성정이 있고 영혼이 있고 욕심이 있는데 한쪽만 지는 군복무, 백인의 불평등, 한쪽의 일방적인 고로시 등에 아무 부당함을 못느끼고 연출 도덕틀에 딱 끼워맞출수 있다는건 그만큼 그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는것이고 공허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목사들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엄청 공허하고, 값어치 없으며, 한국 정부의 사악한 행위에 동참하고 지지하고 있는 사악한 인간들인것이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