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의외의 캐스팅이면서 정서적인 중심축이 중길을 짝사랑하는 농고 일진 영숙 역 박보영이다. 몸집도 작고 가냘픈 배우를 왜 하필 무서운 언니로 캐스팅했을까?
<거북이 달린다>에 견미리가 김윤석의 와이프로 나온다. 그때도 주위 반대가 굉장했다. 근데 내가 강력히 주장했다. 이건 취향일 수도 있는데, 시골 여자라고 우락부락한 파마머리여야 하냐. 옛날엔 예뻤는데 남자 잘못 만나서 찌들 수도 있지 않냐. 사실 <피끓는 청춘> 전에 <내 사랑 예이츠>란 영화 시나리오를 먼저 박보영한테 보여줬다. 글도 모르는 산골 무지랭이 처녀인데, 일본 명문대 출신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코미디다. 비슷한 시기에 거의 흡사한 영화가 개봉하면서 불발됐다. 박보영을 직접 만난 건 <피끓는 청춘>을 하기로 하고서였는데, 9개월 가까이 기다려준 거다.

박보영의 뭐에 그렇게 반했나?
박보영을 처음 본 게 <과속스캔들>(2008)이었다. 아들 데리고 처음 아빠 만났을 때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약간 독한 캐릭터도 잘 맞겠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30년 전 이야기를 20대 배우가 했을 때, 잘못하면 안 맞는 옷을 입은 듯이 겉돌 수 있다. 그 연기를 가장 맞게 할 수 있는 배우는 박보영밖에 없지 않을까. 믿음이 갔다.

촬영하며 가장 감동한 장면이 있다면?
새우젓신. 몸빼 입고 엄마 대폿집 일 돕다가 데이트하는 중길이랑 마주치는 장면. 그리고 후반부에 중길이 아지트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신. 낮에 엄청난 일이 있은 후잖아. 영숙은 중길이가 좋아하는 서울 전학생 소희(이세영)랑 싸우고, 중길이는 소희 편 들고 학교까지 그만두게 된다. 그럼에도 중길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중길이를 끝까지 위해준다. 거기서 박보영 연기가 정말 좋았다. 영숙이가 정말 멋있었다. 끝까지 아무 말 않잖아.

일반 멜로에서라면 남자 주인공 같은 여자 캐릭터다.
박보영한테 울지 말자고 했다. 마지막까지 멋있음을 잃지 말자.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지금 너네 또래가 미래의 형수님들이야, 그랬다. 그땐 에이,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진짜 그렇더라. <피끓는 청춘>의 주제도 결국 남자가 아무리 난리를 쳐봐야 여자 손바닥 안에 있다는 거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