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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죽 소설) 오브를 가지고 나와서 할 일 1편

qazla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9.24 18: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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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전 세계에 한 던전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잘 찾지 않는 황야 깊은 곳, 어느 종족의 발걸음도 닿지 않았던 곳에 아직 그 어떤 파티도 끝까지 도달해보지 못한 던전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던전의 최심부에는 전설적인 오브젝트, 강력한 힘을 지닌 조트의 오브가 잠들어 있다는 소문. 보물이 있는 곳에는 그것을 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소문을 들은 모험가들은 오브를 목적으로 던전에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던전 주변으로 모인 것이 모험가들 뿐은 아니었다. 이 던전으로 모여든 또 다른 부류는 사람이 있는 곳, 수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간다는 상인들이었다.

 초창기에, 상인들은 던전의 입구 근처에 천막을 치고 모험가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팔았다. 빵, 고기, 미늘갑옷이나 기본적인 무기들. 조트의 오브를 노리며 던전을 찾아오는 모험가들은 날로 늘어갔고, 그에 따라 상인들의 지갑도 점점 무거워졌다. 돈이 쌓여 가면 그 돈을 소모할 곳이 필요함은 자명하다. 상인들은 돈을 주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더 싼 값에 팔 무기들을 구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수리할 대장장이, 물약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부터 이들의 편의를 봐줄 하인들, 즐거움을 위한 광대들, 창녀들... 그리고 이들 모두가 머물 집을 만드는 목수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던전 주변에는 하나의 완전한 마을이 생겨났고, 이 마을은 점점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을의 번영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났다. 셀 수 없는 이름 있는 모험가들, 여러 국가에서 직접 고르고 골라 파견한 기사들, 대마법사들이 세운 마탑의 명석한 마법사들, 무모한 부자가 막대한 부를 투입하여 모은 최고의 용병 파티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 오브를 양한 열광은 빠르게 식어갔고, 그 열광이 가리고 있던 눈앞의 위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곳에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 이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던전을 찾지 않았다. 오직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모한 사람들, 때로는 정말로 정신 나간 사람들만이 던전을 향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던전이 이 세상의 모든 무모한 사람들을 집어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던전으로의 발길이 뚝 끊겼다.

 손님이 줄자 상인들은 재빨리 자리를 털고 다른 돈벌이를 찾아 떠났다. 상인도 없고, 모험가도 없는 마을에는 갈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 남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들어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하는 불길한 던전 근처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남아있던 이들도 보따리 하나에 가진 것을 모두 챙겨 넣고는 더 안전한 곳으로 떠나갔다. 이들조차 목적지 없는 길을 떠나가자 던전 근처는 완전한 폐허가 되었다.

 사람은 떠나가고 한때의 번영을 증명하는 거대한 저택들만 들어서 있는 폐허. 이 폐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완전히 비어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 폐허를 가끔 찾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목숨을 거는 머저리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어떠한 이유 때문에 계속해서 던전에 도전하는 모험가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은 던전 안에서 오브를 찾아 위험한 방황을 계속했지만, 가끔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던전의 입구까지 되돌아 나와 폐허에서 기력을 보충하고 다시 돌아갔다.

 신은 사연이 있는 사람을 더 총애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폐허를 이용하던 모험가들도 꽤 있었지만, 당연히 목숨의 소중함을 모르는 멍청이들은 빠르게 줄어갔다. 하지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없는 법일까, 오브를 노리는 모험가가 여섯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씨발, 이게 도대체 뭐야?”

 톰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메인 던전에서 브림스톤 핀드를 만난다면 욕설 외에 무엇을 하겠는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모닝스타를 짐 속으로 집어넣은 후, 그물을 꺼내 들었다. 그물을 던져 묶은 후 단검으로 급소를 찌르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톰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물을 겨눴을 때, 핀드 옆에 흉악한 가시가 수도 없이 돋은 튼튼한 갑옷을 걸친 악마, 헬 센티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도대체 뭐냐고!”

 톰이 그물 따위는 집어치우고 스크롤을 찾아 가방을 뒤적일 때, 모서리 너머에서 모자, 망토, 황금빛 용갑으로 온몸을 빈틈없이 가린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이 이브닝스타로 헬 센티넬을 가격하자 헬 센티넬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헬 센티넬은 손짓 한 번으로 아이언 샷을 시전 했지만, 새로 나타난 사람은 방패로 손쉽게 막아내고는 다시 한 번 이브닝스타를 휘둘렀다. 갑옷이 산산이 부서진 헬 센티넬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 사람은 이어서 옆의 브림스톤 핀드에게 덤벼들었다. 이브닝스타가 신성한 빛을 내뿜었고, 핀드는 한방에 먼지로 부스러졌다.

 “셰드륀? 그리고 너는 캐서린?”

 톰이 당황에서 묻는 사이, 셰드륀의 뒤에서 창과 가벼운 갑옷을 걸친 머포크 여성이 걸어 나왔다. 톰은 계속해서 물었다. 그 뒤로 하이엘프 한 명이 하나밖에 없는 팔에 도끼를 들고 따라 나왔다.

 “왜 셋씩이나 같이 있는 거야? 아니 그보다, 여기는 메인던전인데 어떻게 저런 빌어먹을 고위 악마들이 한 번에 둘이나 나왔는지는 알아?”

 캐서린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옆의, 낡은 보라색 모자로 가려진 얼굴 아래에서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오브를 가져왔다. 저들은 오브를 쫓아 여기까지 온 거야.”

 톰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뭐 시발? 그럼 드디어...”

 “지금은 시간이 없어. 나가서 설명해주지. 죽기 싫으면 따라 나와.”

 셰드륀은 톰의 말을 중간에 끊어놓고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펠릴리언은 망설임 없이 그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톰은 당황해서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춰서 있다가, 멀리서 악마들이 소리 높여 내뱉는 저주의 언어들이 들려오자 셰드륀을 쫓아 달려나갔다.



 마침내 던전 출구로 나왔을 때 이들 일행은 6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오브에 대한, 이유 모를 집착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던전에 남은 사람들. 그들은 그 집착심만큼이나 개성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브를 쫓아 기어 나오는 악마들을 막아내느라 6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은 황금용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과 온갖 아티팩트로 무장하고 던전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탐험하여 마침내 조트의 오브를 가지고 나온 셰드륀. 그 바로 앞에, 던전 밖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와 같은 어둠에 둘러싸여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 디스메노스의 신도로 어둠 속을 거닐며 방심한 적의 급소에 단검을 꽂아 넣는 하플링 암살자, 톰. 가장 앞서 던전을 빠져나온 캐서린은 마법과 창술 중 하나에 생명 모두를 맡기길 거부하고 둘 모두를 수련한 머포크 여성이며, 그 뒤에 바짝 붙어 나와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가만히 서서 쉬는 루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찾아내는 네크로맨서이다. 남은 두 사람 중 갈릴레이아는 베후멧에 귀의한 딮엘프로, 모든 것을 불사르는 강력한 화염을 주 무기로 삼는다. 조용히 있어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펠릴리언은 오히려 이들 중 가장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왼쪽 눈과 왼쪽 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하! 그 저주받을 것들은 여기에는 못 나오는 모양이네!”

 톰은 욕을 중얼거리더니 던전 입구 쪽으로 돌아서서 안쪽에 침을 탁, 뱉었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셰드륀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를 열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하나둘 셰드륀을 향해 모였다. 잠시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 후, 정적의 유령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용한 가운데 셰드륀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나온 손에는 조트의 오브가 쥐어져 있었다.

 구체 주변으로 탁탁거리며 타오르는 불꽃, 그리고 맑은 바다를 내려다볼 때처럼 끝없이 깊어 보이는 중심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구슬이었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어둠을 뚫고 사방으로 광채를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그대로 굳어서 오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오브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을 가진 사람들, 그들은 오브를 위해 누구보다 많은 것을 쏟아부어 온 사람들, 그들은 오브를 손에 넣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셰드륀은 무심하게 오브를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피곤해. 좀 쉬고 싶은데, 우리의 여정이 끝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간단히 파티라도 열자고. 장소는 이 주변에 넘쳐나니.”

 셰드륀은 주변을 가리켜 보였다. 던전과 그 주변의 짧은 부흥기에 쌓아올려진 저택들이 비워진 채로 남아있었다.

 그들 일행은 대충 근처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해 보이는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 저택은 던전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집이기도 했는데, 아마 사방에서 모여드는 모험가들이 모두 한 번씩 지나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장 돈도 많이 벌 수 있던 상인의 소유였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 점 때문에 6명의 모험가 모두에게 익숙한 집이기도 했다.

 이 집의 1층에는 이 마을의 부흥기, 모험가들이 쉬지 않고 던전을 찾을 때 그들 중 일부를 환송하는 데 사용하던 넓은 홀이 있었다. 물론 환송할 이름 있는 모험가가 없는 날은 상인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던 파티가 끊이지 않던 곳이기도 했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지어진 만큼 파티 장소로 사용하기에는 흠잡을 데 없었다. 또, 위층에 아직 심하게 손상되지 않아 하룻밤 묵어가기에 문제없는 방이 6개보다야 훨씬 많이 있어 그대로 그날 밤을 지내기에 적당한 곳이기도 했다.

 모험가들은 저택의 1층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사람에게 오브를 빼앗길까 봐 던전 밖에서조차 긴장하고 있지 않아도 되었으니, 모두 느긋하고 느리게 행동했다. 그들은 가방에서 더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빼내어 놓고 무기는 한쪽에 몰아두었다. 각자 오랫동안 몸에 장비하고 있던 갑옷과 장신구들을 내려놓았다. 장비를 풀어놓은 점에서도 이들의 개성이 드러났는데, 톰과 캐서린은 거의 로브만 걸칠 정도로 편안한 모습이 된 반면 셰드륀과 루시의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갑옷들을 벗어버린 이후에도 거의 옷 밖으로 드러난 곳이 없는 모습이었다.

 정리가 끝에 식탁 위에 늘어선 것은 여러 병의 암브로시아 물약과 저장식 빵, 고기, 육포, 수많은 과일과 피자, 달콤한 로열젤리 등 던전 안에서 구할 수 있고 잘 상하지 않는 음식들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름 진수성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자리에서 안주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음식들을 제치고 식탁 가운데에 올라간 이 자리의 메인메뉴는 셰드륀의 배낭이었다. 승리자의 모험담만큼 이 자리에 어울리는 식단은 없을 터이니.

 셰드륀은 식탁에 걸쳐 앉아 암브로시아 물약을 한 병 따고는 말없이 들어올렸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식탁에서 음료를 한 병 씩 집어 들어올렸다. 모두가 준비를 마치자 셰드륀이 입을 열었다.

 “모험의 끝을 축하하며, 건배.”

 단순한 문장 하나였을 뿐. 어쩌면 그동안의 여정을 대변하기에는 턱없이 짧고 부족한 문장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 자리에 모인 모두는 별 것 아닌 문장 하나에서 큰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모두는 묵묵히 손에 들고 있던 물약을 한 모금씩 마셨다.

 “그런데 셰드륀, 진의 신도가 암브로시아 물약을 마셔도 되는 거야? 그, 진의 율법은 더럽게 엄격하잖아.”

 톰이 물었다. 진의 신도가 엄격한 규율을 따른다는 것은 모든 종족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셰드륀이 가볍게 대답했다.

 “진께서는 그렇게까지 꽉 막히시진 않았다고. 자, 그런 것보다.”

 약간은 상기된 분위기 속에 셰드륀은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전리품을 꺼냈다. 맨 처음 가방에서 나온 것은 보라색의 낡아빠진 모자였다. 그 모자는 지저분할 뿐 아니라 한쪽에 구멍까지 하나 커다랗게 나 있었다. 잔뜩 기대하던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손에 들린 모자를 쳐다보았다. 캐서린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뭐야? 그냥 낡은 모자 같은데.”

 셰드륀은 모자에 난 작은 구멍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이건 그냥 모자가 아니야, 날고 긴다 하는 연금술사들이 온갖 실험을 할 때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마법들을 쏟아부은 모자라고. 난 그보다 여기 있는 이 구멍은 도대체 어떤 실험으로 생긴 것인지가 궁금해.”

 이 말을 들은 청자들의 눈이 빛났다. 비록 더 이상 던전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목숨을 걸 일은 없겠지만, 그동안 쌓아 올려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진귀한 보물에 대한 욕심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연금술사의 모자가 사람들의 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셰드륀은 가방에서 또 다른 전리품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 육각형 모양의 버클러는 워락의 거울이라는 거야. 적의 공격을 반사하는 방패는 많지만, 빛마저 반사할 정도로 강력한 반사의 힘을 가진 방패는 아마 이것밖에 없을걸. 실험을 해봤는데 네퀘잭의 변이 공격도 반사하더군.”

 “아, 나도 그 방패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어.”

 캐서린이 즐겁게 거들고 나섰다.

 “그 무엇도 반사할 수 있다는 방패.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작을 줄은 몰랐는데. 방패는 크기가 중요한데, 아쉽다.”

 잠시간 수많은 전리품, 술, 그리고 많은 음식이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진귀한 마법 도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행들은 저마다 그 장비에 감탄하기도 하고, 진작 그것을 손에 넣었다면 자신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 속의 모험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도구들은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은 물론 셰드륀이지만, 그보다 더 큰 존재감을 과시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바로 조트의 오브. 파티의 열성적인 분위기는 서서히 식어가고, 시간이 지나자 셰드륀을 제외한 모두는 언제 조트의 오브가 다시 주 이야깃거리로 떠오를까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이건 암살자의 장화야. 이름과는 다르게 정작 암살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장화인데....”

 “셰드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시가 셰드륀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그것도 다 좋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이 뭔지 너도 알잖아.”

 이 주제가 나올 때면 언제나 그렇듯 침묵이 흘렀다. 모두 아무 말도 없이 셰드륀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셰드륀은 금방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이 정도로 눈치를 주면 수정 골렘이라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요구를 그냥 묵살해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 같은 목적을 가지고 싸워온 동업자, 경쟁자로서의 정이 있었던 것일까. 셰드륀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조트의 오브를 꺼냈다.

 아마 조트의 오브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다면, 셰드륀의 손에 들린 것이 보통 구슬은 아니라고 해도 구슬 이상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목숨을 포함한 인생의 모든 것을 던져 오브를 추구해 온 사람들이다. 그들에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구슬 따위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셰드륀의 손 위에서 그들의 소원, 목적, 목숨, 인생, 노력, 그리고 때때로 신성함조차 보았다.

 셰드륀은 오브를 조심히 들어 옆에 있던 루시에게 넘겨주었다. 루시는 이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허둥대고,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오브를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그렇게 하면 오브의 소유권이 바뀔 것이라고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신없이 오브를 들여다보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아마 루시에게는 찰나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셰드륀은 루시에게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라는 손짓을 해 보였고, 이후 30분 동안 오브를 든 사람은 왜 자신의 차례만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억울함을, 나머지 사람은 시간에서 벗어난 체이브리아도스의 신도가 되돌아오길 기다리기라도 하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모두의 차례가 돌아간 후 오브는 다시 셰드륀의 품속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자리의 모두는 아직도 오브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

 셰드륀이 입을 열었다.

 “아직 시간은 많다고. 나만 떠들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캐서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다들 오랫동안 던전을 드나들면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이 있겠지만, 나부터 시작해 볼게. 이전에 뱀 굴에서 있었던 일인데 말이야...”

 바통은 셰드륀에게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넘어가고, 사람들은 이제 각자 자신이 겪었던 들려줄 만한 경험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경쟁자들한테 정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던 이야기들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여러 가지 경험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 대부분 예상했겠지만, 이들은 모두 세 번 이상 죽을 뻔한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모두 적어도 한 번씩은 셰드륀에게 구해진 적이 있었다.

 목숨을 구해준 것. 이것이 지금 서로 오브를 가지려 싸우는 것을 막고 있었다. 아무리 목숨을 내던진 이들이라도, 아니, 오히려 목숨을 내던진 이들이라서 더욱 목숨을 구해준 것은 큰 은혜이자 무거운 빚이다. 이들 중 그토록 무거운 빚을 지고 셰드륀에게 덤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지금 조용한 이유는 이것뿐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셰드륀의 실력이다. 이들 중 아무도 오브를 손에 넣지 못했다. 이는 다시 말해 그들은 조트의 렐름 가장 깊은 곳에서 오브를 가져올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고, 또 그는 그런 실력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 중 누구도 그에게 덤벼서 이길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또 다른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어찌어찌 오브를 손에 넣는다고 해도, 더 이상 명분이 없다. 오브를 든 채 망설임도 없고, 오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한가운데에 놓인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런 상황에 놓여서 살아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글쎄, 있다면 셰드륀 뿐일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파티는 긴장감이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누구도 진짜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 상황에서 진행됐다. 물론 암브로시아 물약이 들어가고 몽롱하게 취기가 오르자 전자보다는 후자의 비중이 더 커져갔다. 모두는 긴장을 풀고 늘어지기 시작했으며, 파티의 분위기는 마지막을 향해 흘러갔다.

 “하암, 졸려. 나 먼저 올라가 봐야겠어. 오랜만에 걱정 없이 푹 자보겠네.”

 캐서린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향했다. 그녀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녀가 올라가자 파티는 자연스럽게 고요하게 음식과 암브로시아 물약을 즐기는 자리로 바뀌었다. 모두는 간만에 찾아온 평화를 즐겼다. 평화는 쉽게 질린다고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곧 방 안의 분위기는 한 번 더 급변했다. 밖에서 급작스럽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요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가시고 바닥에 부딪히는 빗방울의 시원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주변에 사람 하나 없는 버려진 마을. 그 마을의 고요함 대신 빗소리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셰드륀과 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로가 쌓여서 올라가 보겠어.”

 “아, 나도 올라갈게. 간만에 푹 쉬어보겠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야?”

 그 둘이 올라가고, 나머지 셋은 그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물약을 조금씩 홀짝였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갔다. 잠시 후 펠릴리언이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나 위층으로 향했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점점 더 강해지고, 멀리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갈릴레이아는 의자 위에 늘어져 어릴 적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번개의 번뜩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빠르다. 그에 비해 천둥은 느림보다. 물론 땅 위를 달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지만, 그 정도로는 번개의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다. 그래서 항상 번개가 친 후에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번개가 친 후 천둥소리가 들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 이 간격이 길수록 번개와 천둥의 거리 차가 더 멀리 벌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번개가 친 곳이 더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이다.

 번-쩍.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꺼풀 안쪽이 환해졌다가 서서히 잦아든다. 그리고 하나, 둘, 우르르르르릉. 번개가 가깝다. 먹구름이 머리 위에 있다는 뜻일 텐데, 밖에 보이는 빗줄기는 한참은 기울어져 있는 걸 보니 구름이 어지간히 넓게 자리 잡았나 보다. 눈꺼풀 안쪽에 남은 잔상도 사라져 갈 때, 다시 한 번 번개가 내리쳤다. 눈앞이 희게 물들고, 하나, 쿠구구구구궁. 숫자 하나를 셀 간격. 아까보다 가까워졌다. 아마 구름도 멀리서 다가와, 이 집을 거쳐서 어디론가 지나가는 거겠지...

 번개가 치는 곳의 거리를 가늠하던 갈릴레이아는 어느 순간 구름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감상에 잠겨 들어갔다. 그리고 그 직후,

 “꺄아아아아악!”

 갈릴레이아가 비명을 질렀다. ‘퍽‘ 하는 소리와 동시에 강렬한 빛이 눈을 찌르고, 위층에서 열기가 아래로 뿜어져 내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관리자가 없어 피뢰침들이 다 녹슬어 뜯어져 버리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강한 폭풍에 다 휘어지고 날아가 버렸는지 번개는 정직하게 그 근처에서 가장 높은 건물, 이들이 머물고 있던 저택을 향해 내려쳤다.

 갈릴레이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더듬으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루시도 눈가를 찌푸린 채 그 뒤를 따랐다. 급하게 달려 나오느라 준비를 하고 나오지도 못해 이 둘은 굵게 쏟아지는 비를 맞고만 있어야 했다.

 루시는 뒤를 돌아 방금 나온 저택을 바라보았다. 비가 많이 와 불이 다른 건물로 번지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저택 지붕 아래에는 마르고 잘 타는 것들이 많았는지 불이 금방 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이지만, 루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던전 안에서 이것보다 훨씬 위험한 일을 몇 번이고 겪어온 사람들이니.

 아니나 다를까, 1분도 지나지 않아 펠릴리언이 문으로 뛰어나왔다. 잠시 후에는 톰이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허겁지겁 달려 나왔고, 그 뒤로 캐서린이 자기 가방을 챙겨 나오는 여유까지 보이며 저택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불길이 점점 번져나가 저택의 위쪽 절반을 태우고, 결국 빗줄기를 이기지 못해 사그라질 때까지도 셰드륀은 저택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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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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