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마다 팀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나서는 걸 보면 저 말 못 하는 방독면은 참 대단한 것 같다.
하지만 항상 나서다가 항상 겁도 같이 먹고 도망쳐오는 꼴을 보면 어린애를 볼 정도로 안 쓰러울 수준이다. 어떻게든 화염을 퍼부어 잡으려고 애를 쓰는데도 멀리서 총을 맞아버리고 우버차지를 받은 적을 보면 지레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치는 악순환의 꼴이 도저히 못 봐 줄 정도였다.

그러다가 하이타워에서의 일이었다.

"무, 무우, 무앙, 마앙!"

내게 무슨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건가, 내가 전방에서 수레를 막는 팀원들을 뒤로 한채 농사를 끝내고 여유롭게 쉬려던 찰나에 파이로는 이리쿵저리쿵 몸짓을 하며 내 앞에서 웅얼거렸다.

"정 싸우기 힘들면 이리 와서 요것들이나 지켜주렴?"

"무우?"

"돌격만 하다 폭탄 맞고 뻗어버리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 크허하하!"

"무우, 무우우우!"

저 방독면은 겁쟁이면서 딴에는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했는지 소리를 빼액 질러댔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 지금 스파이를 쉽게 막기 위해 파이로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진지하게 요청해보기로 했다.

"간단해, 그냥 시간 나면 건물들 좀 확인해주러 오라고."

파이로는 관심없다는듯 전장으로 뛰쳐나갔다.











"잠깐, 건물 좀 맡아주게나."

"야볼."

야속한 스카웃이 중형 탄약킷을 먹어치우고 달아나버렸다. 나는 우버를 발동하기 직전 여유를 부리고 있는 메딕과 헤비에게 건물을 맡기고 기지에 들르기로 했다.





1분이 채 되지 않아 신속하게 금속을 가져왔는데 일이 터졌다.

"기다리게. 건물-"

"으아아앙 야다아아아"

건물 주변에 쓰러져 있는 메딕과 비명을 지르는 헤비를 발견함과 동시에 스파이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젠장, 썩을, 빌어먹을.

"네 농사도 이젠 끝- 아으아아아!"


그 녀석이 해냈다. 불에 타 처절하게 쓰러지는 스파이 2명을 앞에 두고 파이로는 얼떨떨하게 서 있었다.
나는 달려가서 내 귀여운 농사들을 매만져 주고 파이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방독면 녀석, 마음이 바뀌었나보다.

그 날 이후부터 파이로는 기지에서 여러 도구를 이리저리 다뤄보기 시작했다. 오함마로 멍청한 스카웃의 코를 후려쳐서 딸기로 만든 게 엄청난 박장대소를 일으킨 걸 빼면 별 탈이 없었고, 어느 날부터는 이제 농사 앞에서 소방사 모자를 쓰고 오함마를 든 채 재롱을 부려댔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팀 리더인 솔저의 목소리가 매우 다급하게 들려왔다. 나를 포함해 팀원들은 귀신을 봤다는 마냥 넋을 읽고 블루팀의 그놈들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세상에. 그 애꾸눈이다. 그놈이 크리츠크리크 메딕과 무적 우버 메딕을 데려온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나는 디스펜서를 들고 도망치려고 작정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스파이가 내 디스펜서를 새핑했어!"

아아, 펑펑 끈끈하고 동그란 물체가 내 뒤로 날라오는 소리가 들렸었다. 정말 죽는구나 생각했던 찰나였다.

"무아아앙!"

저것이 미쳤나, 크리티컬이 눈앞으로 날아오는 상황에서 갑자기 블루 데모맨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점착 폭탄을 뿌리는 족족 압축 공기로 밀어내다가 기어코 그 데모맨마저 밀어내버렸다. 충격적인 반전에 멍을 때리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교란기를 떼어내는데 집중했다.

"푹."

파이로는 그것을 미처 대응할 수가 없었다.
끝난 것일까, 나는 팀원들과 함께 난장판이 된 주변을 살펴보았다. 흑인 녀석은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진 채 미동이 없는 것을 보아 죽은 것 같다.

"파이로!"

그러나 파이로를 부르는 내가 있는 자리에는 소방사 모자와 해머가 땅에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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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무앙이는 영웅짓 해봤자 노예는 노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