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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갤 문학] 4차에서 나이팅게일 소환하는 소설 2

몬스터세캔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5.30 12: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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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자신이라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행동을 하건 너무나 기초적이기에 누구도 자각하고 살아가지 않을 뿐. 어떤 행위를 취하건 그건 확고한 자아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일그러지건 숭고한건 관계없이.

 따라서 인간은 자기를 자신이라고 인식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지금 이 순간 행하는 모든 행동에 실감을 잃고 만다.

 이중인격을 지닌 사람을 예로 들 수 있다. A와 B라는 인격이 한 육체를 공유한다면 A가 행한 행동 따위, B는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실감 같은 것은 전혀 얻지 못한다. A와 B는 다른 사람이며, B는 그저 A가 행한 행동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구경할 뿐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사고가 일어나서 A만 죽어버린다면, B는 과연 앞으로 남은 삶에 제대로 된 감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일까? 아마도 힘들겠지.

 이런건 이미 인간으로서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체가 경험만을 토대로 마치 살아있는 척 연극하는 기묘한 광대놀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인격이 고작 두 개일 뿐인데도 이러한데.

 만약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격을 키워온 사람이라면, 과연 삶의 실감 따위를 얻는게 가능한 일일까.


 그렇기에 암살자는 소원한다.

 80명이나 되는 무리로 구현된 보구, 망상환상을 저버리는 소원임을 알면서도. 자기가 누구였는지조차 잊어버린 암살자는 이교도의 물건인 성배를 향해 물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80명을 하나로 합치면, 과연 '누가 남을 것인가' 하고.




 ◇




 마토 카리야는 소원을 이룬 대신 새로 생긴 두 가지의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일 전에 이루어진 치료는 성공했다.

 마토 조켄은 완전히 소멸. 카리야는 나이팅게일의 보구인 나이팅게일 프레지에 의해 치료되었다. 버서커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완전히 치료된건 아니므로 앞으로 경과를 계속 지켜봐야만 한다고 하나, 이렇게 다시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적에 다름없었다.

 그리고 버서커는 마토 저택으로 올라와, 사쿠라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다시 한 번 보구를 전개, 사쿠라 역시 치료하고 있는 모양이다.

 또한 카리야에겐 형이 있어 이것 또한 골칫거리 였으나, 현재는 행방불명. 솔직히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상대라 내심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이팅게일 프레지, 확실히 굉장한 보구로군.'


 머릿 속에 떠오른 스테이터스에서 자신의 서번트가 지닌 보구를 확인하고는 카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 은혜를 입기도 했으므로.

 허나, 만능으로만 보이는 이 보구도 사실은 문제가 컸다.

 나이팅게일 프레지에 의한 치료는 마술에 의한 것이다. 즉, 마력으로 억지 회복을 한 것에 불과하므로 제대로 된 치료가 수반되지 않으면 상태는 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카리야 역시 겉으로는 회복되었으나 내용물은 아직 엉망진창인 셈인 것이다. 물론 원래는 이만큼 회복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였기에 뛰어난 치료용 보구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쿠라의 몸에 있던 각인충도 모두 제거해준 모양이고.

 그러나 나이팅게일은 어째선가 그 이후로 보구를 쓰지 않았다. 그 이유 또한, 카리야는 짐작하고 있었다.


 '나 때문이겠지...'


 버서커 역시 마력으로 현계한 서번트다. 제대로 된 마술사도 아닌 카리야가, 몸에 기생한 각인충 마저 모두 없애 다시 평범한 일반인으로 돌아온 이상 나이팅게일의 능력은 크게 저하될게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소환된 날 밤, 보구를 연속 발동한 것이다.

 그리고 카리야가 굉장히 한심스럽게 느끼는 것은, 상당한 소모가 있었을텐데도 자신의 몸은 굉장히 멀쩡하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서 보구를 전개했을 뿐, 마스터의 마력을 가져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바보 녀석. 버서커답게 이럴 때는 마스터의 마력을 팍팍 가져가라고.'


 벌써 이런 날이 삼일이나 계속되었기에 아침부터 불평을 좀 하긴 했지만, 카리야는 자신의 서번트에게 깊은 은혜를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도 사쿠라를 치료하기 위해 고생하는 중인 것이다. 뭔가 힘이 될 방법이 없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상 지금 카리야를 괴롭히는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성배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사쿠라는 해방되었고 제대로 되었다고 하기는 미묘하지만 최고의 간호사라 불릴만한 인물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기에 사실 카리야가 싸울 이유는 이미 예전에 없어졌다. 그러나 카리야에게 나타난 령주는 야속하게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당연히 카리야의 사정 따위와는 관계없이 성배전쟁은 시작된다.

 즉, 카리야는 이제 싸워야 할 이유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여섯 마스터 조와 싸워 이기고 성배를 쟁취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말은, 즉.


 "토키오미..."


 아오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믿었던 유일한 남자, 토키오미와 검을 맞대야만 한다는 것.


 "토키오미를 만나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직은 치료 중인 단계에 있지만, 이후에는 사쿠라를 과연 토오사카 가문에 돌려보내야 할까? 카리야는 하룻밤 내내 고민한 결과, 그건 절대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토 가문 따위에 아이를 입양 시킨 인간이다. 다음에는 도대체 어디에 사쿠라를 양자로 보낼지 알 수 없다.

 가능하다면 사쿠라는 린과 아오이와 함께 지내주었으면 좋겠다만, 어차피 또 흩어져버릴 뿐이라면 사쿠라에게 너무 잔인한 짓을 하는 셈이다.

 만약 모녀가 함께 있는 광경을 그리려면, 토키오미를 이 성배전쟁 중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건 곧, 린과 사쿠라의 친아버지를 이 손으로 죽여야만 한다는 것.

 그 모순을 어째서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걸까?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각인충에 의해 토키오미를 증오하는 마음이 비대해진 카리야는 이미 그 시점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전혀 내리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치료된 지금에야 눈치챈 자기모순에, 카리야는 그만 구토감을 느꼈다.


 '사쿠라를 행복하게 만드려면, 그 친아버지를 죽여야한다. 이 모순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뿐만이 아니다. 성배전쟁을 한다는 것은 결국 토키오미 말고도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입장에 선다는 것이다.

 사쿠라를 구한다는 목표가 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지금 카리야가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건 아무런 변명도 없는 살인에 불과하다. 그것을 카리야는 과연 스스로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한 번 시작된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을까.

 목표도 의욕도 잃고 단지 의무만 남아버린 카리야에겐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이해했습니다. 그건 불안 증세로군요?"

 "뭐? 불안?"


 결국 카리야는, 자신의 서번트인 나이팅게일에게 이를 상담했다. 버서커라곤 하지만 그녀는 일단 말은 유창하게 하는 것이다. 도대체 그녀가 뭘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쿠라에게 이를 상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리하여 성배전쟁과 사쿠라의 처우 등에 대한 얘기를 꺼낸 카리야에게 나이팅게일이 꺼낸 첫마디가 저것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마스터, 당신은 저 환자... 사쿠라가 행복하기 위해선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아이를 행복으로 인도하기 위해선 그 아버지의 존재가 방해라는 것도 알고 있죠.

 환자를 위해선 아버지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없어야 한다. 그 아버지를 이 손으로 직접 죽이는게 옳은 것인가? 나는 다른 목적으로 그 아버지를 죽이려 하는게 아닌가? 애초에 살인은 옳은 것인가?

 그리고 마스터, 당신은 이것이 옳은 고민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 잘 아는구나."


 카리야는 순간 나이팅게일이 혹시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으나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버서커가 고개를 저었다.


 "틀립니다. 저는 분명 간호사입니다.

 단지, 치료에 필요하다면 뭐든 배웠기 때문에."

 "아아, 그렇다면 정신과 치료도 OK라는 얘기인가?"

 "그렇게 되겠군요.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길. 불안 증세 자체는 정신이 지극히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치료할 필요는 있지만요.

 그 점에서 보면, 과연 저를 의지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군요."


 결국 치료는 하는 거냐면서, 그래도 나이팅게일에게 얘길 꺼내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카리야였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거야?"

 "아뇨. 어떻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불안하다는 것은 즉,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입니다. '나는 사쿠라의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입장에 있지만 죽이면 안된다. 내가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제가 '사쿠라의 아버지를 죽이는 행위는 악한 행동이니 하면 안된다.' 라고 말해주면 그건 논리적으로 들어는 맞겠지만 마스터, 당신의 불안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진 않겠죠.

 그렇군요. 이렇게 생각해보시길.

 마스터, 당신의 뇌는 방입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방.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토오사카 토키오미, 라고 하는 분입니다. 그가 당신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소리칩니다.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옵니다. 마토 사쿠라입니다. 그녀가 아버지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호소합니다.

 그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당신은 방안에서 그들에게 반박하겠죠. 나는 이러이러 해서 죽여야만 한다. 나는 저러저러 해서 죽이면 안된다.

 하지만 그러지 마세요.

 그냥 그들이 소리치도록 내버려두는 겁니다.

 그들의 말에 하나하나 반박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불안감을 더 크게 키우는 것일 뿐입니다. 그건 도움이 안되요.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 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계획을 그려나가는 것이죠.

 뭘 어떻게 해야할지 차근차근 생각하는 것과, 앞으로의 일을 불안하게만 여기는 것은 크게 다르답니다."


 카리야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허름한 원룸.

 문을 열고, 토오사카 토키오미가 들어온다. 성배전쟁은 죽고 죽이는 싸움. 어떤 이유에서든, 참가한 이상 발을 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직접 나를 죽여야 한다고도.

 뒤이어 사쿠라, 린이 들어온다. 아버지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소녀들의 모습이 카리야를 눈물짓게 만든다. 사쿠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슬퍼보이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마지막으로 아오이가 들어온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리야를 그저 빤히 쳐다만 본다.

 시간 상으로는 5분 쯤 지났을까, 하지만 카리야에겐 전혀 5분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느낌이었다.

 마침내 카리야는 눈을 뜨며 말했다.


 "...아직 모르겠어."

 "당연하죠. 고작 5분이란 시간으로 결론이 내려질 정도였으면 애초에 불안하게 여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버서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였다. 이제 슬슬 사쿠라의 용태를 확인하러 가야 할 시간인 모양이었다.

 사쿠라의 간호를 방해할 순 없다며 카리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카리야도 자리에 누워 몸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혼자 있으면서 고민도 하고 싶었고.


 "하지만 그 전에."


 카리야는 조켄에게 배운 얼마 안되는 마술의 소양으로 벌레 비스무리한 것을 만지기 시작했다. 사역마를 만드는 것은 마술사에게 있어선 기초 중의 기초였으나, 애초에 그 정도의 레벨조차 없는 카리야는 사역마를 만드는 것조차 힘에 버거웠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했다.

 토키오미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일단 토오사카의 저택에 사역마를 풀어둘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카리야는 고민하는 것과 정반대로, 성배전쟁을 해나가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하는지 냉철하게 판단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




 "입을 벌리세요."


 소녀는 쑥스러운 듯, 우물쭈물 했지만 나이팅게일이 수저를 바로 앞까지 쑤욱 내밀자 하는 수 없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아앙, 하고 입을 벌렸다.

 소녀, 사쿠라가 먹고 있는 것은 나이팅게일이 직접 쑨 죽이었다.


 "선생님, 직접 먹을 수 있으니... 저기, 이렇게 먹여주지 않으셔도 되요."


 어째서인가 사쿠라는 나이팅게일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성배전쟁에 대한 지식은 있기에, 눈앞에 있는 이 여성이 서번트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치료해주고 이렇게 삼일 째 곁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고 간호하려드는 이 사람을 단순히 클래스명으로 부르기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런 소녀가 스스로 먹을 수 있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항의했지만, 나이팅게일은 용서없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안됩니다. 당장은 움직이는 것에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당신의 신체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안심하시길. 저는 다른 모두를 죽여서라도, 결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요..."


 흉흉한 목소리에 사쿠라가 살짝 겁에 질린 듯,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본 나이팅게일은 소녀의 '마음'이 점점 치유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너무나, 너무나 지독한 행위였겠죠.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나이팅게일은 마스터인 카리야보다 사쿠라의 상태가 더 심각하다고 판단, 그 뒤 마스터에겐 안정을 취하라는 말과 건강식단을 차려주는 것 외에는 거의 방치해두고 사쿠라의 간호에 메달리고 있었다.

 사실 신체적 손상만 따지면 카리야가 더 심각했지만, 나이팅게일 프레지의 효과로 카리야는 계속 이 페이스대로 가면 몇 달 뒤에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그에 비해 이 아이는 어떤가. 나이팅게일은 인간의 악의가 이렇게까지 혐오스러울 수 있다는 것에 세삼 치를 떨었다.


 '소녀의 몸 곳곳에 있는 멍 자국, 아마도 일상적으로 폭력적인 학대를 당한 것일 터. 게다가 성기에 상처가 난걸 보면 강간 당했을 가능성도 있어.

 마술적인 영역이라 정확한 진단은 힘들지만, 억지로 개조를 한 듯한 흔적까지... 어째서 시대가 지나도 이런 아이가 계속 생기는걸까.'


 성배전쟁이라고 했던가. 과연 제대로 된 이름이다.

 전쟁에 휩쓸리는 아이들을 위해, 병사들을 위해 장래가 약속된 삶을 버리고 간호사가 된 나이팅게일의 입장에서 보면, 사쿠라라고 하는 아이가 존재하는 것이 마치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것 같아 너무나 괴로웠다.

 그리고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나이팅게일은 잘 알고 있었다.

 신체에 남은 상처, 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에 남은 상처야말로, 앞으로 이 아이가 살아가는 남은 삶을 괴롭힐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치료한다. 나이팅게일은 그렇게 생각하며 될 수 있는한 사쿠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그녀의 마음을 치유하려 했다.

 다행스럽게도 사쿠라는 스스로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 수록 감정 표현이 늘어나며 동시에 나이팅게일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모습도, 불과 삼일 전의 사쿠라였다면 그저 묵묵히 침묵만 보였을 것이다. 항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런 태도를 보여도 상대가 폭력을 쓰지 않으리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좋은 신호다.


 "저기, 선생님."

 "무슨 일이죠?"


 환자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간호사로서 당연하다. 나이팅게일이 사쿠라의 얼굴에 시선을 던지자, 사쿠라는 살짝 수줍어하면서도 어딘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살며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곧 성배전쟁에 참가하는거죠?"

 "성배."


 그런 것에 흥미는 없지만, 일단 성배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오. 저는 그런 것에 참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네!?"


 성배전쟁에 대한 지식을 조켄으로부터 들은 사쿠라였기에, 나이팅게일의 발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영령은 성배를 원하기에 소환에 응한다. 물론 성배 자체를 원한다기 보다는 성배전쟁이라는 상황 자체를 원해 소환되는 서번트도 적지 않게 있는 모양이지만, 그마저도 참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영령으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발언이다.


 "그, 그럼 선생님은 도대체 왜 소환 되신거죠...?"

 "당연하죠."


 나이팅게일은 그 순간, 자신의 신념을 소리높여 당당히 외쳤다.


 "저는 모든 독 되는 것, 해 되는 것을 없애기 위해 소환에 응했습니다. 성배전쟁 또한 전쟁이라면, 수많은 희생자가 나오겠죠.

 하지만, 희생자의 수보다 구원받는 목숨의 수가 더 많아질 때 전쟁은 멈출 터.

 그렇다면, 저는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멈추기 위해, 제 앞에서 스러져가는 단 하나의 목숨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것은, 과연 어떤 망상인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버서커의 말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 버서커 본인 또한, 타인을 쓰러뜨려야 하는 입장에 서면서도 그 의의를 부정하고 구원하는 입장에 서겠다니, 그야말로 광인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과연 나이팅게일이 버서커가 아니어도 다른 소리를 했을까?

 이것은 광화로 인해 나온 헛소리 따위가 아닌, 그녀가 평생을 지켜오고 죽어서 좌로 불려간 뒤에조차 흔들림 없이 지켜온 이상이자 신념이었다.

 사쿠라는 아직 그런 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나이였으나, 왠지 모르게 눈앞에 있는 영령이 강철과도 같다는 인상을 받기엔 충분했다. 사쿠라는 나이팅게일의 손을 살며시 쥐고서 말했다.


 "굉장해요."

 "그렇죠? 아, 물론 당신도 제 환자입니다. 당신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이런 전쟁은 얼른 끝내야겠죠."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제 은인이예요. 하고자 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어내셨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사쿠라는 살며시 미소지었다.


 '...드디어 웃어줬어.'


 그 모습에.

 삼일 전에는 마치 삼도천에서 온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초췌한 몰골이었던 소녀가, 자신을 향해 희미하지만 웃는 얼굴을 보여주자 나이팅게일의 마음 속에 환희가 일었다.

 나이팅게일은 사쿠라의 미소에 자신 또한 웃는 얼굴로, 자신의 손을 잡은 소녀의 손을 꼬옥 감싸주었다.


 "안심하시길. 저는 반드시 이루어내고, 여기로 돌아올테니."


 과연 누가 그녀를 처음 '천사'라고 불렀을까.

 지금 그녀의 미소를 본다면 애초에 그런 것을 생각할 의미 따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딱딱한 제복을 입고 있음에도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천사를 떠올리게 될테니까.




 ◇




 암살자, 자이드는 내심, 토오사카 토키오미의 운명을 비웃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어새신은 자신의 마스터인 코토미네 키레이로부터 아처의 마스터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본래라면 너무나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이런 명령에 군말없이 따른 것은, 어새신 스스로도 토키오미를 암살하는 일이 손쉬우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스터인 키레이와 토키오미는 협력 관계에 있어서, 토오사카 저택의 보안에 대해서는 이미 철저히 숙지한 뒤였기에.


 "아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 '우리' 중에서도 최약체인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실 줄이야."


 키레이가 소환한 어새신은, 놀랍게도 80명이 하나인 군체, 백모의 핫산.

 보구, 망상환상(쟈바니아)에 의해 그들 80명은 모두 어새신으로 현계하고 있지만, 당연하게도 각각 개인은 영령으로 보기도 초라할 정도의 힘밖엔 없다. 하나가 지녀야할 영기를 80이 나누어 갖는 것이기에 이는 당연한 패널티다.

 그리고 자이드는 그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지는 암살자였다.


 "물론이다. 아처를 본다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이, 신속하게 토오사카 토키오미를 말살하라."


 키레이는 다시 한 번 말하자 어새신은 안도했다.

 물론 어새신도 성배를 원해 소환된 서번트다. 자신을 아랫것 취급하는 토키오미의 대우에는 불만이 있긴 했고 만약 토키오미, 더 나아가서 키레이가 자신들을 처리하려고 들면 이에 대처할 방법도 '자기들끼리' 논의중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스터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이제 거리낄 것은 없었다.

 심지어 아처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큭, 어지간히도 기대에 엇나간 영령이었나 보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새신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었다.

 아처는 삼대 기사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저격, 보구, 암살 등에 특화된 전사다. 정면 승부보다는 배후의 습격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어새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물론 정면승부로 암살자에게, 그것도 자신 하나에게 밀릴 정도의 영령이라면 그건 논외지만.

 어새신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토오사카 저택의 결계를 돌파해나갔다. 일류 마술사라도 해체하는 것에는 적어도 하루이틀로 끝날 수 없는 작업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그 모습은 과연 영령이었다.

 그런 어새신의 모습을 다른 사역마들이 지켜보고 있다. 물론 어새신은 그 사역마들의 눈을 피할 생각 따위 없다.

 토오사카 토키오미는 난적. 그 난적이 알아서 퇴장해준다면 그들에게 있어서도 이익이다. 설마 이 현장에 난입해서 초를 치려는 멍청한 존재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자이드가 80의 무리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지는 암살자라는 증거였던 것이다.




 ◇




 "마스터, 긴급 상황입니다."

 "어, 어어? 무슨 일인데?"


 밤중, 사쿠라를 재우고 난 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상담을 고민하던 카리야와 그런 카리야의 얘기를 들어주던 나이팅게일이 돌연 이상한 소리를 시작했다.


 "지금 이대로 가면 최소한 한 명은 죽습니다.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엉? 아니, 무슨 상황인지 얘기를 좀..."

 "당신이 풀어놓은 사역마를 살펴보십시오."


 그 말을 들은 카리야는 다시 한 번 사역마의 시각을 자신의 시각과 동일화했다. 버서커는 자신과 패스가 연결되어있으니 카리야가 풀어놓은 사역마의 시야 또한 미리 확인한 듯 하나, 정작 카리야 본인이 확인을 게을리하고 있었다.


 "이, 이건... 암살자? 어새신이야, 이거!!"

 "예. 그리고, 암살자가 향하는 곳은 당신이 말하던 바로 그 장소가 아닌가 합니다."

 "그, 그렇구나. 이 암살자, 토키오미를 처치하러 가는건가!!"


 카리야는 순간 심장이 덜컥, 멈추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대로 놔두면, 잘하면 토키오미는 죽는다. 그럼 그걸로 된거 아닌가?

 이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사쿠라와 린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검은 유혹에 시달리던 카리야에게, 나이팅게일이 소리쳤다.


 "지금의 그건 단순히 도피행위일 뿐입니다!"

 "내, 내 생각을 읽은거냐?!"

 "당신의 생각 따위, 얼굴에 뻔히 드러납니다.

 알겠습니까? 당신은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를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내려야 합니다. 이렇게 상황에 휩쓸려서 떠밀듯이 억지로 답을 내리면, 그건 평생 당신을 괴롭힐 저주가 되어 돌아올겁니다.

 토오사카 토키오미가 죽도록 내버려둔다, 그런 선택지는 당장의 고민에서 도피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무래도 당신의 마음 역시 치료가 필요한 모양이군요."


 나이팅게일은 어느 덧,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든 상태였다.


 "저는 저 저택으로 향하겠습니다."

 "엥?! 지, 지금?"

 "지금 안가면 도대체 언제 가야한단 말입니까? 저기서 저는 누가 다치건, 반드시 살려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떡하실거죠?"


 따라오건, 따라오지 않건, 알아서 하라고. 자신은 무조건 갈 것이니까.

 나이팅게일의 눈이 그렇게 카리야에게 고하고 있었다.


 "나는..."


 카리야는 자신의 서번트가 건내는 시선에 우물쭈물하다, 눈을 질끈 감고서 소리쳤다.


 "에에잇, 네 말대로야! 이대로 여기서 저 망할 토키오미 자식이 죽게 내버려둔다면, 설령 그게 사쿠라에게 나은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평생 후회할테지.

 어쩔 수 없잖아, 이건!!"
 "좋은 대답입니다. 그럼, 치료를 개시합니다. 마스터. 부디 조심해서 따라오시길."

 "알았어, 알았다고! 놔두고 가지마!"


 그렇게 나이팅게일과 카리야는 마토 저택의 문을 나섰다.

 이 어둠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 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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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저거 단편으로 쓰고 끝ㄴ려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짧게 연재해보려고 함


마토저택 정신병원 개조를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안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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