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는 나중 심심할때 다시 한번 그렸던건데
저렇게 연필콘테로 단색으로 슥슥 그려서 찢어줬었어
저 종이는 아프리카에서 샀던건데 종이 질이 최악이야..
피터한테 줬던건 가져갔던 몰스킨 스케치북에 그려 줬던건데 저것보단 나앗을거야
얘기 중간에 피터가 가지고 있던 신문을 보여주면서
그간 비 때문에 우리 가는 길이 중간에 유실됬다고 알려줬어
사진 보니까 사람들이 배 타고 침수된 길 건너고 있더라
어제 저녁 식당에서 티비 뉴스로도 봤었는데 그게 지금 가는 길이었어
곧 해도 완전히 뜨고 사람들 다 타고나니 슬슬 출발하더라
한창을 가다가 잠깐 눈 붙이다 일어났는데 세상에..
길이 너무 이쁜거야...
우기라서 비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는데 대부분 물이 고인 습지처럼 보이는데
그게 저 멀리 지평선으로 쭉 뻗어있어.. 아프리카가 넓은 대지이긴 하구나 하는 스케일이 느껴졌어
왜 사진 한 장 안 찍었을까 너무 후회되..
밧데리 아끼고 싶었던것도 있었지만 카메라 자체를 꺼내기가 싫었어..
좋고 신기하다고 사진이나 찍어대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어..
돌아오는 길에 찍으면 되니까 일단은 이대로 그냥 풍경을 즐기면서 가고 싶기도 했었고..
나중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가 지체되서 해가 져버려서 못 찍었었어..
한참을 가다가 12시 정도 해가 중천일때쯤 갑자기 도로에 다른 버스랑 사람들, 포크레인이 가득 차 있는거야
거기서 버스가 멈추더니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더니 다들 내리는거야
피터가 걸어서 건너편까지 가서 다른 버스를 타야 된다고 알려줬어
일단은 허둥지둥 따라 내렸어
대지 한복판에서 버스 잘못 타거나 길 잃으면 정말 안되겠다 싶어서 우리 버스 무리들 몇몇 기억해서 잘 따라갔어
와 근데 어떻게 이렇게 더울수가 있을지..
목초지 한가운데에 그림자도 없고 태양이 중천이니까 심각하게 더운거야..
나만 그런게 아니야 여기 사람들도 손수건들을 머리에 덮고 땀을 뻘뻘흘리면서 힘들게 걸었어
걷다보니 저 앞에 한 아주머니가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거야
좀 들어줘야겠다 싶었어
아주머니가 무척이나 좋아하더라 여행객이 자기 짐을 들어준다면서 흑인 특유의 하얗고 시원한 웃음을 짓더라
한참을 걸어가니 아스팔트 도로가 중간이 뻥 하고 쓸려가 있는거야, 비에 쓸려갔는데 신문에서 본 사진이랑은 달리 물은 다 빠지고 없었어
10분을 더 걸었나 유실된 도로 건너편에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땅콩이나 음료 좌판하는 사람도 있고., 도로가 시장바닥 같더라
거기서 짐 들어준 아주머니랑 같이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어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던 땅콩을 나눠줬는데 물도 없었는데 고마워서 목 메여도 열심히 씹어먹었어
그렇게 다른 아주머니 셋이랑 꼬마아이랑 같이 앉아서 이거저거 애기하면서 다같이 기다렸어
피터도 저 멀리서 땀 뻘뻘 흘리면서 서서 기다리고 있더라
눈 마주치니까 또 좋은 인상으로 씨익 웃어, 나도 웃으며 손 흔들어주고, 정말 기분 좋은 녀석이었어
그렇게 30분정도 기다리니까 같은 회사 버스가 오더라
한치 의심도 없이 저 버스다 싶게 사람들이랑 같이 탔어
버스가 유실된 도로를 기준으로 라무에서 몸바사로, 몸바사에서 라무로 그 중간에서 사람을 바꿔 실어 가는 식이었던 거야
그렇게 버스 갈아타서 또다시 2~3시간을 갔었을거야
그때 재밌던게 사람들이 중간중간에 버스기사에 뭐라뭐라하면 거기서 내려줘
보이는건 목초지 지평선 뿐인데 거기서 내려서 걸어가더라.. 그런식으로 자기 마을로 들어가는거 같았어
라무는 케냐 동쪽에 있는 섬이거든
작은 부둣가에 버스가 멈춰섰어
보이는 배가 있고 다른 버스에서 내린 백인 여행객들 둘셋정도가 타러 가는게 보였는데
버스 갈아탈때 짐 들어줬던 아주머니가 와서 자기를 따라오래
따라가보니 오호라 부둣가 뒤쪽으로 안 보이는 곳에 작은 배가 있는거야
배삯이 반값이었어 150실링인가 그랬을거야
라무 사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배였어
내가 Casuarina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를거라고 했었거든
아주머니가 거기까지 길 알려주겠대
배를 15분정도 타서 섬으로 가는데 섬이 정말 너무 이쁘네..
섬쪽 부둣가에 도착해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려던 게스트하우스가 있었어
론리플래닛에서 봤었는데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쌌거든..
여태까지 돌아본 결과 론리플래닛은 믿을만했어
아주머니 이름이 챠리티Charity래,
특별한 일정 없다니까 오늘 고마웠다며 내일 저녁에 식사 대접하러 찾아오겠대
그렇게 바이바이하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어
이런저런 방을 보여줬는데 일단 내가 바지를 일주일동안 한번도 안 빨아입은터라 완전 꿉꿉했거든
어떻게든 빨래를 하고 싶어서 독방을 잡았어, 무엇보다 화장실이 딸려있어야했고 잘 말릴 수 있는 발코니도 있었거든
하루밤 1600실링였는데 이틀에 3000실링 부르는거 2500으로 깍아서 들어갔어
어차피 나중에 사파리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돈 여유 만들었던 터라 여기서 2박 3일은 제대로 놀다가고 싶었거든
방을 잡고 발코니에서 담배 하나 피고 있는데
어떤 노인이 오는거야, 놀러왔냐고 자기가 이거저거 설명해주겠대
이 게스트 하우스 자체가 싸고 참 괜찮어, 아라빅 스타일의 이런저런 계단을 돌아올라가더니 옥상쪽에 또 시원한 발코니가 있네
거기서 어떤 종이를 펴서 보여주는데 크루저나 어선 체험같은 여러 프로그램이었어..
근데 가격이 진짜 기가 차더라 ㅋㅋㅋ
하나하나 가격이 7천에서 1만2천 실링까지 가는거야
나 돈 없다, 이런거 하려 온거 아니다라고 하니까 또 정색하는거야
싱글싱글 완전 친절, 친근하게 다가오다가도 돈 안 쓸거 같으면 내가 사람도 아닌거야 돈도 안 쓸거면서 여기 왜 왔냐는 식이야
내성이 생긴터라 그냥 돌아다니러 왔다니까 그럼 어디 멋대로 돌아다녀보래, 그러면서 나보고 틀림없이 길 잃어버릴거라고
당시 해가 져가는 시간이라 에매했거든, 이대로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기도 싫었고
좀 비쌌지 싶은데 400실링에 오늘 하루 가이드 부탁했어
금방 해가 떨어져서 후회는 안 해, 길이 너무 복잡해서 가이드 없었으면 정말 길 못 찾고 낭패였을거야
여기도 몸바사와 마찬가지로 400년 된 마을이었거든
이미 가이드도 붙어있는터라 관광객 냄새 풍기며 그냥 카메라 가져다가 이거저거 찍어댔어
젤 처음 사진 앞에 가는게 그 노인이야 이름이 챠밍이래
섬마을이라 그런지 다들 동네 사람들이라서 사람들한테 이래저래 소리지르고 다니더라 고약한 영감같이
진짜 신기했어 아프리카라기보단 페르시아같은 느낌이었어
사람들이 건물 이곳저곳 박혀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더라
민속촌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그런 느낌? 이었어..
챠밍이 이런저런 얘기해주는데 여기는 그냥 맘편히 즐기다 가면 된대,
중간에 경찰서를 지나게 되는데 여기 경찰들은 범죄가 없어서 하는게 없대, 그냥 편히 살면서 사랑을 나누고(make love) 그렇게 산대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작은 섬이었거든, 빈부도 없고 문제가 생길 수가 없는 동네였어
다만 비치보이스들은 피하래..
내가 무얼해도 다 괜찮은데 비치보이스들이 파는 마리화나에 손 대면 벌금 물고 감옥에 갈 거라고
엄하게 경고주더라
오기 전에 책에서 읽었었는데 비치보이스들은 해변 있는 동네에 있는 홈리스들이거든
집 없이 해변에서 놀다가 이런저런 손재주 익혀서 관광객들한테 물건을 팔거나 한대, 마리화나도 당연 손 대는거 같았어
어둑해져서 돌아왔는데 숙소에 물이 없었거든,
무엇보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전혀 배가 고프지 않은거야
어제도 감자튀김 억지로 먹은거 밖에 없었는데 한편으론 좀 무서웠어
더위 먹고 낯선 곳에서 스트레스 받아서 그랬던거 같어
돌아다니면서 봐놓은 숙소 근처 상점 가서 5리터짜리 물통이랑 빵 덩어리 같은게 보여서 하나 샀어
숙소 돌아와서 한입 베어먹으니까 빵이 아니더라, 무슨 당분 덩어리인거 같어 달고 쌉싸름하기만해 아직도 그게 뭔지 모르겠어 동물먹이인지도 모르겠고..
그거 억지로 반 씹어서 물로 녹여삼키고 입고 있던 옷 전부 빨래하고 잤어
발코니에서 찍을 수 있었던 풍경이야,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숙소 있을때 대부분을 여기서 보냈었어
제일 밑에는 빨래 널어놓고 찍은 사진..
밑에 입은거는 팬티랑께
일기에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데 기준은 정해져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주변과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웃는 것일 것이다. (중략) 이곳 사람들의 미소는 정말 밝다.. 사진을 찍고 그림으로 담고 싶다.
이젠 배낭을 잃어버린게 재밌다.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의 짐이 이것뿐이냐는 질문에 배낭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무척 놀라며 안쓰럽게 바라본다.
정작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짐이 없어서 그냥 편하다.'
'이곳 가이드들은 여행객들로부터 무언가를 받는다는건 당연하다는 어떤 의존감이 있다.
나는 돈을 써야 되는 사람이다. 돈을 안 쓰려는 나에게 그들은 냉대해지고 왜 왔냐는 식이다.
물을 사고 싶어도 팁을 주고 시키는게 낫고 빨래도 내가 하기보다 시켜서 돈을 주는게 이들의 섭리이다.'
'돈을 안 쓰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나는 무시거리이다. 영어라도 잘 했으면..
한국에 돌아가면 꼭 영어공부를 할 것이다. 영어를 못한다는건 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살기 위해 영어는 물론 다른 나라 말들을 공부해온 사람들이다. 비치보이스들은 심지어 한국말도 할 줄 안다고 한다.'
이 날 아침 버스 탈때 기분이 역시나 좋았거든, 배낭 잃어버린 얘기에 피터도 많이 걱정해줬는데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거든
몸바사에 있을때까지만 해도 모든게 열악하고 불편해서 여기를 다시 오나보라고 생각했거든
동시에 대체 여기서 평생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몸바사에서 sammy한테 물 어딨냐 사고 싶다니까 자기가 사다 주겠대,
얘들이 사게되면 상점에서도 돈 더 받고 중간 마진을 떼어주거든, 이게 여행객들과 가이드들의 섭리야,
새미랑은 실랑이를 하도 한 터라 그냥 사다달라고 했어
라무섬에 와서 빨래비누 없냐 물어보니까 자기들이 해주겠대, 물론 팁을 받고
내가 안에서 말리지 않으면 갈아입을 옷이 없다, 누구 시키며 돈 쓰긴 싫다고 극구반대해서 물렸어
다 그런식이야, 여기선 어떤 형식으로든 내가 돈을 쓰고 이들은 돈을 얻어내고 싶어하는 식이었어
한국에서 그렇게 영어를 공부해도 왜 제대로 대화 한 마디 못할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거는 '영어 안 해도 먹고살만'하기 때문인거 같어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언어를 필사적으로 익히거든.., 이들 눈에 영어도 못 하는 나는 얼빠진 멍청이로 밖에 안 보여졌을거야
돈도 안 쓰니까 훽 멸시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굉장히 분했었어..
아 물론 2년이 지난 지금도 영어는 못 합니다.
먹고 살만 하거든요 시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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