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제로가 33을 파기 시작하였다는 아래의 글을 보고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알파고의 때이른 33침입, 이른바 '묻지마 33'의 출발점은 2016년 12월 31일 타이젬에서 두어진 알파고 마스터와 김정현 프로의 대국일 것입니다. 흑을 잡은 알파고는 19수에 좌하귀 33침입수를 두었는데 당시 저는 그 장면에서 둘 수 있는 수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마스터는 좌하귀 33침입에 앞서 17수로 좌상귀 화점에 날일자 걸침을 하였는데 17-19의 조합은 좌하귀가 화점 눈목자 굳힘(하변으로 향한 굳힘)인 경우 실전에서 자주 등장한 수법입니다. 17의 좌상귀 걸침은 좌하귀 33에 침입하기 위한 예고편인데 좌하귀에 백 화점뿐인 상태에서 33침입을 감행한 데에 많은 프로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알파고 마스터는 이후에도 인간들과의 대국에서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33침입을 몇 번 두었지만 대부분 주위 배경을 고려할 때 납득이 가는 수였습니다. 알파고 마스터가 10수 이전에 배경을 무시한 33침입을 선택하는 것은 오직 알파고 마스터 자체 대국(55국)과 최근에 공개된 알파고툴에만 나타났습니다. 

저는 묻지마 33은 알파고 제로의 수법이며 알파고 마스터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 경우(마스터 자체대국의 경우 1수당 2분, 알파고툴의 경우 1수당 10분) 비로소 선택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공개된 알파고 제로의 기보와 딥마인드의 논문을 보면 알파고 제로는 매우 이른 시점부터 묻지마 33을 시도합니다. 반면에 인간 기보 학습을 토대로 성장한 마스터는 아주 늦게 묻지마 33의 가치를 발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둑에 막 입문한 어린아이들도 묻지마 33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까 홀로 바둑을 배워가는 제로 계열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일찍부터 묻지마 33을 시도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그보다는 알파고 제로의 예를 볼 때 인간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이후에도 이 수법이 도태되기는 커녕 가장 중요한 초반 수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더욱 충격적입니다.

최종 버전의 알파고 제로는 화점을 중심으로 한 포진에서 빠르면 5-6수에서 33침입을 감행하는데 이 때 선택가능한 착수는 귀굳힘, 귀에 걸침, 33침입, 변으로 벌리거나 갈라침 정도입니다. 알파고툴의 예상승률을 보면 두어진 돌이 얼마 없는 초반에 변에 두는 것(특히 갈라침)은 좋지않아 보입니다. 귀굳힘, 귀에 걸침, 33침입 등은 대체로 비슷하게 평가되는데 33침입은 가장 격렬한 수입니다. 판후이가 커제와 같이 진행한 마스터-커제 대결 해설 영상에서 알파고는 승리가 확실하다고 판단되기 전까지는 적극적으로 둔다고 언급하였는데 초반의 묻지마 33도 그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릴라제로가 33침입을 시작하였다는 글을 보자마자 인간의 기보를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바둑을 학습하는 제로 계열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들은 결국 묻지마 33 수법을 중심으로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신오배 결승전에서 두 대국자들은 앞다투어 묻지마 33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간끼리의 바둑에서도 묻지마 33을 잘 이해하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