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그런 시기가 있다.

내 배가 빨랐으면 좋겠고 더 강했으면 좋겠고 더 멋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게임을 하던 시기가.

조금이나마 모교빨을 더 받겠답시고 5클도 해보고 하나에 3~5감자가 넘는 아이템을 덜컥덜컥 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에도 결국 끝이 있다.

끝이 없는 이야기는 없는 법이니까.

아둥바둥 조이와 장터를 보며 열심히 일궜던 그 모든 것들이 어느날 부터인가 다 부질없어 보이고

그다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바로 그 끝이다.

내 기억으로 그 순간은, 꽤 복잡미묘한 감정을 몰고왔다.

게임에 흥미를 잃으면 후련하거나, 혹은 지긋지긋하거나, 미련이 남아 씁쓸하거나, 그런 줄로만 알았다.

마치 전역날 위병소를 나오던 그 때처럼.

하지만 이 오래된 게임에서조차 그런 드라마틱한 감정변화를 느끼기에 우리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건지도 모르겠다.

스며들듯이 익숙한 느낌이다.

매일 보던 아이템, 매일 보던 배.

접속만 하면 모니터로 보이는 그 모습에는 더이상 아무런 감정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불현듯 모든 것이 부질없어진다.

졸린 잠을 깨워가며 푸던 육메가 200원 언저리의 가치임을 알고

없는 살림에 번개를 어렵게 구해 하던 랭작 다음엔 아무것도 없을을 알고

항해보다 백수터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더 편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

지금껏 해왔던 모든 일들이 그저 그땐그랬지라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더이상 빠른배를 찾지 않는다.

멋진배, 강한배도 찾지 않는다.

그런 배들은 진작 애정을 잃고 혹, 더 좋은 배가 나와 값이 떨어질까 두려워 팔아치운지 오래니까.

이따금 바다로 나가고 싶을때면 부캐가 타고있던 적재용 클몽을 꺼내 항구밖으로 나선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그저 리스본 앞바다에서 들리던 ost가 듣고싶은 마음에 돛을 펴고 느릿한 속도로 한바퀴 돌고 들어오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니까.

그래서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마지막 배는 클몽이다.

그 끝으로 오는 길은 다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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