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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그가 떠나간 이후

ㅇㅇ(77.105) 2018.06.01 03:54:40
조회 522 추천 10 댓글 5

BGM 



또 아침이 밝았다.


태욱이 그렇게 가고 꼬박 두 달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혜란은 텅 빈 태욱의 방을 볼 때마다 밀려오는 허전함을 지울 수 없었다. 

매일 아침 혼자 눈을 뜨는 것이 한 두 번도 아닌데, 태욱이 그렇게 가 버리기 전에도 수도 없이 그래왔는데, 혜란에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맞이하는 아침은 너무나 괴로웠다. 

태욱은 야속하게도 그렇게 가버린 뒤 혜란의 꿈에 한 번도 나와주지 않았다.


태욱의 방


혜란은 서류뭉치로 가득한 태욱의 책상, 밝게 웃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컴퓨터,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들 모두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태욱의 어지러진 방을 볼 때마다 정리할까 시도를 해 보기도 했지만 컴퓨터 화면을 볼 때마다 눈물부터 나서 번번이 실패했다. 


'태욱씨, 당신에게 나는 정말 뭐였니'


혜란은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좀 더 내 옆에 있어줄 순 없었을까.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나는 결국 그토록 내가 부르짖던 정의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명우가 대신 자수를 했을 때, 경찰서에 달려가서 다 말할 수도 있었다. 내 남편이, 강태욱 변호사가 진범이라고. 

예전이라면 달려가서 강태욱이 진범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토록 후배 앞에서, 태욱 앞에서 외치던 정의사회구현은 뭐였을까. 가장 두려웠던 게 그거였다. 사랑. 난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어줍잖은 감정 때문에 내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될까봐, 흔들릴수록 내 자신에게 더 냉정해지려고 노력했다.

난 내 삶의 행복보다 나를 괴롭힌 세상에, 약자에겐 늘 가혹하기만 했던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바뀐 건 내 삶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장국장에게 그 쪽지를 건네면서도 태욱이 진범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두려웠다. 

세상이 내게 손가락질하고 지켜온 걸 한 순간에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무서웠다. 아직 정의사회는 오지 않았는데 여기서 멈춰야 하나 태욱에 대한 원망도 들었고 자괴감도 들었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될 것 같았는데 그 바로 앞에서 무너지기엔 너무나 억울했다. 

하지만 태욱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태욱에게 모질게 대했던 지난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 번도 태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준 적이 없었다. 그와 함께한 7년 동안 내 옆에서 빛을 잃어가는 태욱을 바라볼 여유 따윈 없었고 내 감정을 들여다 볼 여유조차 내겐 허락되지 않는다 생각했다. 처음부터 결혼은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땐 몰랐다. 시작과 끝이 같으리란 법이 없다는 걸.


명우도, 태욱도 나 때문에 불행해진 것만 같았다.

명우는 나를 위해 인생을 버렸고 태욱은 나를 위해 삶을 버렸다.

태욱은 혹시나 내게 해가 될까 삶을 포기할 결심을 하면서도 꽃다발을 사 둔 사람이다. 

끝까지 강태욱은 강태욱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말아야 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명우는 내가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송이에게 전화해 술을 사주며 내 넋두리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송이는 묵묵히 들어줬고 옆에서 가만히 술을 홀짝일 뿐이었다. 


'윤기자, 나,,,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정말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혜란, 너는 잘못한 거 없어. 태욱씨도 하명우가 태욱씨 대신 그런 선택을 한 것도 결국은 그냥 다 선택일 뿐이야. 그거에 대해 네가 죄책감 느낄 필요 없어.'


'하지만,,,, 두 사람이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적어도 지금보단 괜찮은 삶이지 않았을까...?'


'...'


혜란은 송이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거실 소파에 누웠다. 

술에 취하니 또 태욱 생각이 났다. 

꿈에라도 태욱이 나온다면 꿈에서라도 물어볼 텐데 물어볼 곳도 없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가르쳐 줘, 태욱씨...'




_


16부 이후 혜란이 시점으로 뭔가 써 보고 싶었는데 

쓰고 보니까 너무 짧다...

혜란이는 정말...혜란본체 말대로 괴로워하다가 태욱일 따라갔을 것 같아ㅜㅜㅜ

혜태 너무 아픈손가락...ㅠㅠㅠㅠㅠㅠ

BGM은 그냥 가사가 혜태같아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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