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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터넷 신문

운영자 2022.07.04 10:24:43
조회 123 추천 0 댓글 0

평생을 언론인으로 있던 분이 퇴직 후에도 작은 인터넷 신문을 만들어 일을 계속하는 경우를 봤다. 평생을 갈고 닦은 실력으로 기계 부품 같던 면이 있던 회사를 떠나 자신들의 마지막 역량을 활짝 펼치는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똑똑한 기자들을 보면서 의문을 가졌던 점이 있다. 정의감으로 세상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용감하면서 타락한 사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점이었다. 쓰는 기사들도 제한을 받았다. 아마도 끌려가는 염소같이 목줄이 매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퇴직을 하고 자유의 몸이 된 이후는 인터넷 신문을 하면서 활활 날개를 펼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들은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는 돈이 그들을 옥죄고 있었다. 몇 명의 직원을 두고 인터넷 신문을 하는 대학 후배가 말했다.

“괜찮아요. 돈에 압박을 받으면 나 혼자 하면 되니까.”

또 다른 언론인은 밤낮없이 자신의 인터넷 신문에 열정을 퍼붓는 것 같았다. 명석한 두뇌에 강인한 의지를 가진 기자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 역시 사정이 비슷한 것 같았다. 큰 조직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리 유능해도 사회라는 광야에 나와 개인으로 혼자 서 있으면 추워하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나는 아주 얇은 잡지를 하던 한 발행인을 떠올린다. 기업 홍보실 직원이던 그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사직을 하고 나왔다. 허름한 마포의 남의 사무실 한 구석인 공간을 빌려 작은 철책상 두 개를 붙여 놓았다. 아내와 그가 잡지사의 전 인원이었다. 들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집했다. 남편은 사진기를 들고 표지사진을 찍으러 나가면 아내는 편집을 했다. 우연히 알게 된 그 잡지 발행인의 얼굴에서 나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었다.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남의 집 차고를 빌려서 거기에 재고 책을 가득 쌓아 놓았어요. 좋은 생각을 글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보는 사람이 없어요.”

그는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가기로 작정했다고 했다. 표지의 글자도 촌스러운 고딕체로 했다. 그 안에 나오는 얘기도 세상 사람들의 저속한 흥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길거리 황색잡지 속에 끼어 보려는 그의 잡지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세상이예요. 바쁘기도 하구요. 저는 잡지 한 장에 책 한권 분량의 엑기스를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출근길에 한 장만 읽어도 책 한 권이 되는 정신적 영양분을 공급하는 거죠. 한 장 한 장을 기도하면서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한달 한달 다르게 만들어 보려고 고심하고 있어요.”

그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퇴직금과 부모에게서 받은 약간의 땅을 팔아서 잡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얇은 잡지를 전문가에게 보인 적이 있다. 전문가는 그 잡지를 호사가의 여유쯤으로 치부했다가 평범한 회사원이 만든다고 하자 기가 막힌 듯 혀를 찼다. 몇달 안 가서 망한다는 냉소적인 의견이었다. 망하고 싶으면 그런 잡지를 하면 된다고 했다. 그 잡지는 나의 컬럼을 매달 감사하게 받아 싣고 있었다. 그 바람에 잡지에 애정을 가지고 발행인과 친구가 됐다. 그는 비지땀을 흘리면서 잡지 뭉치들을 들고 서점들을 돌아다녔다. 종이값 독촉을 피해서 이따끔씩 나의 사무실로 놀러 오고 있었다. 몇 년 후 나는 그의 사옥준공식에 초대를 받았다. 서울 중심부의 높은 빌딩이 그의 잡지사 사옥이었다. 팔톤트럭 열다섯대 분량의 그의 얇은 잡지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정기구독자들이 보내는 돈이 폭포처럼 통장으로 쏟아져 들어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백만부가 나가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잡지의 전문가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기적이라고 했다. 가난뱅이가 부자가 된 걸 나는 내 눈으로 확인했다. 좋은 글을 담은 매체들은 이 사회에 영양가 높은 정신적 빵을 제공하는 셈이다. 좋은 잡지의 제작은 정직한 노동으로 감사한 밥을 먹는 숭고한 일로 보인다. 오염된 세상 속에서 좋은 잡지를 만든 분들은 성경 속의 예언자 같은 역할이다. 일제강점기 김교신 선생은 혼자서 잡지를 만들었다. 집필을 하고 혼자 편집하고 인쇄해서 자전거로 서점에 배달하고 전국독자에게 우송했었다. 일본 형사들은 그런 김교신을 독종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영혼에 독립의 씨를 심어 오십년 후건 백년 후건 들고 일어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상계라는 잡지에 목숨을 건 장준하 선생같은 분은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 잡지는 대한민국의 지성들이 모이는 저수지였다. 권력자를 향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바른 소리를 하는 글들이 모여 들끓으면서 대한민국의 정신을 이루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닻이 됐다. 요즈음은 좋은 인터넷신문이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원래 좋은 일은 돈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은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좋은 인터넷신문을 만드는 현대의 예언자들에게 힘이 솟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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