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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감옥보다 날 게 없네

운영자 2024.05.20 10:24:37
조회 70 추천 1 댓글 0

바다 위로 회색 안개가 흐르고 있다. 동해항의 방파제로 파도가 몰려와 부딪치며 흰 거품을 뿜어 올리고 있다. 하늘과 바다가 회색으로 엉겨 붙어있는 것 같다. 초여름을 알리는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집도 나무도 해안 도로도 비에 축축하게 젖어있다.

나는 이른 아침 창가의 책상에 앉아 삼십년전 대도의 선고법정 광경을 떠올리고 있다. 판사들은 법의 그물 속에 있는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냥 인간쓰레기 통인 감옥에 던져 버릴 수 있다. 아니면 동정하고 다시 한번 살아보라고 사회의 바다속으로 들어가게 할 수도 있었다. 법논리는 그냥 형식일 뿐이다. 중요한 건 판사의 마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본다. 군사법원 판사시절 내가 그랬다. 그에게 연민을 가진 극히 일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탄원서를 부탁했었다. 남을 위한 기도와 탄원은 하나님을 통해 판사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게 적중한 것 같았다.

항소심 재판장은 판결문과는 달리 법정에서 실질적인 판결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호주등 해외에서까지 많은 교민들이 석방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또 정치계 언론계등 각계에서 피고인에게 관대한 처분을 해 줄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담당인 엄상익 변호사가 자기가 집에 데리고 있겠다고까지 말하는 사건입니다. 재판부로서는 굳이 더 이상 피고인을 잡아 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대도에게 자유가 찾아왔다. 재판장은 법조계 역사의 한 획을 이룬 이일규 대법원장의 아들이었다. 그가 대도의 속성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사회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풀어주었다. 그의 행동에는 깊은 의미와 사랑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때로는 얼룩진 인간에게 깨끗해 질 기회를 주는 것이 영혼이 담긴 법이 아닐까. 판사는 더러 속아줄 아량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선배법관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감옥에서만 살던 그는 읽던 책 몇 권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 밖으로 나오면 당장 입을 옷도 그리고 그날 밤 잘 곳도 없었다. 나는 개량 한복 한 벌을 사들고 구치소에 있는 그에게 갔다. 석방 절차를 밟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그와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일단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가는 게 어떨까요? 그곳에서 묵으면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나머지 인생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인데요.”

그 시설은 출소하고 오갈 데 없는 전과자들이 자립을 할 동안 밥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곳이었다. 재래시장의 재단사, 메리야스 가게사장, 고물상 주인, 가구점 사장등 평범한 사람 몇 명이 매달 약간의 돈을 갹출해 운영하는 허름한 집이었다. 폭력 전과가 있는 분이 참회하고 목사가 되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대도가 낮은 데로 내려가 겸손하게 그 역할을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엄 변호사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대도의 대답이었다. 감사했다.

철컹하고 작은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쬐고 있었다. 그가 눈부신 듯 찡그리면서 감옥문을 나왔다. 나는 그와 손을 잡고 풀 향기 나는 구치소의 언덕을 내려갔다.


그날 저녁 내가 말한 시설로 대도를 데려갔다. 그 시설에 있es 사람들이 대도의 방으로 왔다. 그중에는 어린 시절 대도같이 거지 노릇을 하던 사람도 있었다.

언론이 바짝 관심을 나타냈다. 카메라 기자들이 대도의 첫날밤을 찍기 위해 몰려들었다. 수십개의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면서 나는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대도가 민주화 투쟁이라도 하다가 석방된 영웅 같은 착각이라고 할까. 아니면 감옥에서 오랜 수도생활을 마치고 나온 도인 같다고 할까. 대도가 좁고 누추한 방을 보더니 갑자기 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여기 시설을 보니까 감옥 보다 날 게 없네. 나 여기서 살기 싫은데요”

그의 말에 주위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그런 말을 할 자리도 아니었고 때도 아니었다. 그의 방으로 와서 보던 한 남자가 내게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엄 변호사님 저도 저 친구같이 어렸을 때 서울역 앞 거지였죠. 도둑질도 하고 싸움도 했죠. 그러다가 지금은 이 시설에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저 친구나 저나 똑같은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친구는 지금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 하나로 마치 자기가 스타라도 된 듯이 이 시설이 싫다고 하는 걸 보니까 화가 치밉니다. 저 친구를 두고 가시면 저희들이 한번 손을 보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죠.”

나이를 먹어도 그 세계는 주먹이 법인 것 같았다. 안될 것 같았다. 그 시설을 관리하는 목사는 그를 서울 외곽의 기도원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거기서 기도하고 자기를 추스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때 방송국의 ‘그것이 알고 싶다’팀이 밀어닥쳤다. 언론은 갑자기 세상에 나온지 몇 시간도 안되는 대도에게 스타 연기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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